그래 숭례문 재건에 국민 성금이--- 이 후세는 참말 우서워서
[ 그래 숭례문 재건에 국민 성금이--- 이 후세는 참말 우서워서 ]
글쓴이: 후세백작 08.02.13 12:51
난 엊그제 이 글을 쓸까 망설였는데--연일 돌아가는 TV 자막에 수십번 성금이란 얘기가 나오니 일단 컴앞에 앉으면 나의 생각이 글이 되겠지.
나의 주 요점은 종미로 미루고 이 화재에 대처하는 모습들 웃기지도 않더라. 끝끝네 손상을 해서라도 진화하라는 보고를 받았다는 유 청장과 또 한쪽은 적군이 휴전선 넘어온다는 보고 후 쏴 죽여야 된다는 군대식 논리로 맞짱 뜨는 소방관들 ----보고하고 적을 쏘자면 그는 이미 십리밖으로 줄행랑 쳤슬텐데...
자 !! 이제 불타 없으니 이왕이면 국민적 성금으로란 조은 아이디어도 나오고, 이는 고사리 손들의 저금통 배를 갈라 역사 체험의 조은 기회도 주어진다. 하지만 이 재건엔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 볼 일들이----
우선 역사적으로 이성계가 서울의 범위를 정하고 (서울의 뜻은 육관이란 지관이 터란 책에 ---- 눈이 녹은 안쪽을 솔안이란 어원이라고 오류를 범 하던데--- 똥을 쌀 ---- 이 긴 야긴 다음에 하고) 도성의 축조에 들어가 세종에 이르러 남문을 축조 하였다는데, 그 시기엔 규모가 장대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원래 서울 위치 선정시 삼봉 정도전은 방향을 동으로 잡자고 하였고, 무학은 스님이 유교국가의 국사가 되어 그 방향을 남으로 잡았다. 여기서 정도전은 남쪽으로 정면을 잡게되면 피를 부르고 화마가 끊이지 않을거란 예측을 했다.
세종이란 나의 글 마지막에 정몽주, 정도전 ,이제( 양녕대군) 들의 몰락의 이유가 ?? -- 그래서 정도전 보다 조그마코 까무잡잡 하지만 눈은 흑질백질처럼 새까맛케 빛나는 무학의 이론대로 서울의 방향은 남을 정면으로 목멱산(남산)을 안산으로 주작을 관악으로 잡혔다.
그런데 삼봉의 예견대로 세조의 찬탈에서부터 피를 부르고 화마가 끊이지 않았다. 이 화마를 누르기 위해 광화문 앞에 지금도 해태상 두마리가 있고, 임금의 침전 뒤에 지금의 청와대 뒤뜰에도 조그만 해태상이 있는데, 이 해태상은 내가 언젠가 얘기했던 삼척 척수비가 향교뒤 땅에도 묻었던 작용과 동일한 것이리라.사람들이 광화문 해태상을 버렸을 경우 예비적 빠따라는 ...
이 해태상이 미신이라면 청량리 롯데 백화점 건설중 건물에 포함된 해태상을 파 뒹기고 건물을 세우는데 공사중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을 수정하여 그 해태상을 찾아다 다시 그 자리에 안치하였다. 골목쪽으로 구부러져 다시 보면 해태상이 존재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이 화마를 인간의 범주이상 신(神)들의 장난(노여움)이라 여기고 쉽게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들이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난 말이다 .사람보다 귀신이 사람을 더 무서워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귀신은 반신불수정도이니,,, 혹 처녀귀신 만난다면 얼마나 기분 조을까??)
만약 일제 강점기 초에 왜눔들이 우리의 정기를 끊는다고 산세에 혈을 끈으려 철항을 때려 박기도--- 평창에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 평창예찬이란 글에 보면 시루목이 평창땅 관자놀이에 해당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혈은 시루목 고목나무를 올라 여울위 삥창제일 높은 곳에 그 혈을 끊는 정을 때려 박았다. 철항 때려 박고 그 위에 또 박고 --- 만약 뽑으면 그 아래 끊어진건 안 뽑히게끔. 또한 그곳이 제일 적당한 장소 였으리라 --- 그건 물을 만나는 곳에 용이 탁 멈추기 때문.
이러한 일본놈도 인천에서 서울로 처음 진입하며 관문 남대문으로 들어 오면서도 이 남대문을 불로 처리하리란 생각은 겁이 났던 것이다--- 이것은 화마의 작용이니.(쪽 바리는 나치가 파리 점령시 만큼 문화적이지 못했지만 불의 사용은 겁 먹었던 듯)
이제 본론으로 가 보자 국보는 다수의 보물들에서 앞선 것 하나가 국보에 해당되었고 1호 2호등의 일련 번호가 더 무게있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논리는 따질수야 없겠지만 그렇게 우리가 자랑할수 있다면 아마 석불사와 에밀레 종이 국보1,2 호를 차지해야 될것이다. ( 그것이 우리의 미와 과학과 공학과 노력의 결실체로 현재 누구도 다시 만들지 못할 정도의 조상의 얼이 깃든 보물들 이리라 ,,)
숭례문을 복원하는데 3년이 걸린다면 --- 참 우섭기 짝이 없는 시간일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치악산 일대의 소나무들 황장송( 껍질리 얇고 붉은)은 황실에만 사용하였는데, 약 500년 수령의 지름이 1m나 족히되는 소나무들을 문막 뻘에서 뗏목으로 내려왔을 텐데 이젠 그런 나 무들 어디서 구한담 ----남대문은 2층이니 공포가 아닌 다포 (용마루) 일텐데 목재가 좀 많이 들었을텐데.~~
혹 이북이라도 있을깜, 아니면 중국에라도 일본은 소나무가 많으니 그거라도 갔다가 국보 1호에 --- 제일 쉬운건 캐나다산 스기나무 이지만---핀란드 나무가 조은 것은 국토의 반이 호수이고 울창한 산림 벌채하면 호수에 1년 넣었다가 음지에서 일년정도 말린다. 이렇게 하는 소나무라야 그 송진이 다 빠지고 뒤틀림이 없는데.,,
아마 어느 고목집에 야밤에 귀신소리가 딱닥 울린다는 소리는 이 소나무가 터서 갈라지는 소리이다. 그러니 소나무 건사하는 데도 2년 족히 걸리는데.3년에 완공한다니...
나는 가끔 경복궁을 가 보았다 , 내가 식견이 만치는 못하지만 아마 이건 임금이 에헴 거리던 용상이라기엔 너무 초라한듯--- 자금성에서는 변솟간만 못할걸. 경복궁 갈때 마다 우리의 약소한 스케일의 이미지를 못 지웟는데, 기실 숭례문이라 더 특이하진 못하다. 그것을 다시 복원해야 될 이유는 아마 세계 여러나라에 관광가이드에 코리아 하면 첫장에 국보1호 숭례문 으로 되어 있는데 이제와 이 이미지를 다시 바꿀수도 없는처지, 그러면 외제 나무라도 가져와 급하게 이미테이션( 모조품)으로 ---참으로 우서운 모양새의 국보 1호가 될게 아닌지.
우리는 이 재건의 기회를 다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복원 한다면 그 옛날 방식대로 전기공구를 사용하지 않고 크레인도 사용하지 않는 똑같은 답습의 재현도 가능하리라. 이것은 지금의 대목장의 능력은 있으나 그 맛이 기계에 의한 샤프하고 칼진 맛이 된다. 그러나 그 옛날에는 배 흘림이나 팔작의 처마 곡선도 지금과는 그 느낌이 다른 어줍잔은 듯 하지만, 그 맛의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그것을 흉내나 낼까??
단적인 예를 하나 보자. 평창에서 가까운 주천 법흥사를 가 보면 꽤나 크게 걸직한 비석이 하나 보인다. 고려 중기의 징효대사 비인데. 그 비석은 1,200년 전에 제작한 것으로 그 시대엔 최치원의 비석이 12년 걸렸다는데 법흥사 비석도 10년 세월은 걸렸을 것이다. 이 징효대사비는 최치원의 비석과 비슷한 크기로 그 스케일과 비문과 거북이의 비례들을 지금 보아도 시원한 맛이리라.
여러분들이 한문을 몰라도 그 비석 앞어서 가만히 보라. 그 비석의 석수장이의 성실한 인내심을 읽을 수 있으리라. 아마 놀랄 것이다. 흥분되는 것이 뭐냐면 천년의 시간은 사라지고 그 석수장이와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현대 기계로는 이러한 비각의 맛의 글자 조각이 불가능 하리라.
이렇듯 우리는 국보 1호를 재건함에 기존의 틀을 맞춰 복원함에도 그 열의가 담겨야 함은 물론 이 과학화 시대의 첨단 과학의 힘도 빌려야 된다.
만약 중국사람들이 숭례문을 보고난 감상에 .... 그깐 우리 자금성 화장실 하나 정도쯤 가지고 나라 안팍이 시끄럽다게 성금해서 국보 1호라 하며 만들더라.-- 참말 아니 우서울수가.
세계의 모든 유적의 독창성을 보아라 앙코르건, 마츄피추건, 아부심벨이건 -- 우린 그들보다 상위 시대에 살며 그런 건물 하나에 모금을 하여야 하나--- 그리고 그것이 역사에 남겨질 것인가??
그래 그나마 이젠 불에 타지않게 방염도 하려니와 소방수들의 물에 의하지 않는 깨스 방식의 스프링클러와 모든 첨단 내실화로 세계에서도 하나뿐인 그런 모습으로 다시금 창조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결정체가 세계에 자랑으로 세게인들앞에 으뜸으로 구경오게 만드는 비젼이 있어야 극복이란 용어가 다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성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성인도 선각자도 , 사상가도 배출 못 하는 풍토이다. 왜냐면 일전에 그래도 한 시대를 통치한 정치가가 하는 말 가만히 음미해 보자. 이 정권 끝나면 (선거에서 지면) 전쟁난다나(내분) ...일단 이 말에 후세가 답을 한 마디부터 하고 보자---이 양반아 앞으로 100년이 가도 그런식으론 인재 함양이 어려울듯 하네. 인재란 주워서 나는게 아니라 시대적 함양의 분위기 속에 배출됨이 옳은 표현 아니겠는가??
우리에 정치는 이런 아사리 판에서 무슨 인재를 바랄 수 있었던가?? 조은 재목이 자랄숲엔 서양잔디 깔아 골프치니 울창한 인재의 토양이 없었는데, 우리 정치와 행정엔 이런 나와 같은 사색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힘 없는 민초 이 후세가 한마디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세계의 어는 누구도 다시 못 만들 그러한 첨단 과학으로 석굴사의 과학과 미학, 공학을 겸비하듯이, 이러한 창조적 도전으로 세계 문화유산의 대열에 끼일 수 있는 그러한 숭례문 복원계획이 있은 후 모금이 조으련만----
이대로는 싫타. 큰 이슈도 없고, 무엇이 된장인지도 모르는 성금 모금만이 중요치는 안을 것이라.
친구들 !!! 행여 단체로 만원씩이라도 모금하자고 이카페에 그런 의견이 나오면, 이 후세는 돈도 없고, 마음도 없다고 말하여 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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