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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현판으로 임태영의 글씨
=서체의 그래픽적 이해=
※ 모각된 현재의 현판과 새로 제작되는 현판의 디자인의 문젯점
◈ 맨 위에 제작중인 현판은 현재 사용중인 현판을 반대의 네거티브(negative)의 방법으로 주변을 어둡게 하고 글씨를 밝게 한즌 방법일뿐이며 새로 제작안의 그래픽은 종전의 글체에 글씨 라인의 폭을 더 두텁게 했슬 뿐이다.
◈ 모각의 현재의 서체나 작업중인 서체는 글씨체의 느낌이 아니라 조형적에 있어서 면 분할의 도형이지 힘이 들어있고 살아있는 글씨는 아니란 점이다.
그것은 획의 굵기가 같아서 붓을 내리긋고 삐치고 굴려야 하는 여러 부분에 그 폭의 넓이가 동일하다면 그것은 붓의 놀림이 아아니란 점이다.
붓의 필력이란 그 모양새의 분할과 붓의 흐름의 시간차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돌아가는 부분과 내리 긋는 부분이 동일한 넓이라면 동일한 시간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것은 붓에 의한 글씨가 아닌 도형이기에 글체의 폼은 죽었다 해야 하는 것이다.
◈각 자마다 크기및 획의 균형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점은 각 자별 분해적 이해에서 언급한다.
※ 각자(刻字)의 개별적 분석
(모각의 글자의 레터링의 기준은 임태영의 원래의 광화문의 글자체를 기준으로 하여 여기에 모각체가 변형된 점의 분석임)
◈ 光 - ① 위의 점 3개중 가운데 내리삐침의 큰 획은 머리모양(붓을 돌려 시작하는 장식점의 (serif)가 현제의 모작체는 가운데를 중심으로 둥글게 하고 있으나 일반서체에서는 왼쪽이 먼저 지면에 닿기에 왼쪽이 높은 타원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임태영의 원래의 글체에서는 조금 타원으로 보인다.
② 왼쪽의 삐친 획도 그 모양세가 틀렸다.
③ 아래의 人변
은 윗 부분이 떨어지는 서체로 볼륨의 두께 때문에 붙어있는 것으로 보이며 임태영의 원체에서는 두께의 볼륨이 가늘기에 두 부분이 붙은 것으로 보여도 시각적 문제에 장애가 되지 않았으나 ( 오히려 직선으로 내려 그어서 단순한 획의 균형의 무게감을 잡은듯 싶다) 현재 사용중인 현판의 서체보다 준비중인 서체는 볼륨이 더 두껍기에 하나에서 사선의 획이 출발된것 같은 느낌으로( 쉬운 이해로 꼬다리가 매달린듯한 시각) 이 문제 해결은 볼륨이 두꺼울수록 아래의 인변의 간격을 좀 더 넓혀서 볼륨감을 주어야 한다 (그것은 글체의 레터링에서 펜 글씨는 선에 의하지만 붓글씨는 선이 두터운 면으로 나타나는 문제를 고려해야 되는 것이다)
④
(人변)에서 임태영의 원체에서 왼쪽의 삐친 획은 직선에 가깝다 그러나 모각체는 아래로 좀 휘어진 모양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 획은 수직으로 내려올때 폭이 두꺼워졌고 원체보다 모체에서는 좀 더 둥글게 올라가며 원체보다 좀 더 길게 올라갔다.
이러한 점들이 원체와 모각체의 차이로 모각체는 붓글자가 아닌 도안의 면 분할의 글체로 죽어있다는 표현이다.
그럼 왜 그렇게 될까 하는 문제는 사진을 확대하여 크게하면 외각선의 입자는 분명치 않으며 망점 처리로 50% 30% 이렇게 나타나는 문제에 외곽선을 잡기가 애매하다는 결함을 가지기 때문이다. 차라리 원체를 똑같이 모방하려면 극 사실 그래픽이나 뎃생으로 그려봄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 化 -ⓘ 왼쪽의 人변에서 光자나 化자의 세리프가 모각체에서는 둥글게 레터링 되어 있으나 원체에서는 인변은 거의 없는 수준이며 光자나 化자 모두의 세리프는 모각체처럼 앙징스럼지 않은 완만한 곡선을 지니고 있다.
② 원 체의 人변의 왼쪽으로 삐친 머리 획의 폭은 가늘고 또한 위 아래가 1/2 정도로 나누어 지는데 모각체는 삐친 획에서 아랫변이 좀 더 길고 삐친 폭도 두텁다.
③ 오른쪽의 匕변에서 원 體에서는 완쪽의 人변의 머리 획 영향으로 乙변의 시작부가 오른쪽으로 좀 구부러져서 내려오며 아랫부위도 폭이 넓고 약간의 각진 부분을 가지며 꺽어서 삐쳐 올렸지만 모각체에서는 직선으로 내려오며 원체보다 좀 두껍고 아랫변 돌아가는 부위도 두텁고 라운드 형으로 돌아가며 세워 올리는 부분이 원체보다 더 올라갔다.
④匕변에서 사선의 획은 조금 위로 올라간듯 보이지만 이는 시작점의 경사적 영향으로 시각적 느낌일뿐 원체에서는 乙변에 가운데 부분으로 접지하여 관통하지만 모각체에서는 위로 올라가 있다.
◈門 - 본체에서는 위의 날日획의 가로획이 가늘어서 절반 위로 올라가 있다. 하지만 모각체에서는 가로 획도 동일한 두께로 두껍게 하다보니 날日변이 처져 내려 둔중함을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門자의 날日변은 1/2 위에 잇는데 이 점을 어긴 레터링의 영향으로 둔중함으로 보이는 것이다.
※ 임태영의 글체에 복제가 아니란 점의 분석적 이해
이렇게 원체와 모각체의 레터링상의 비교 분석하면서 현존 걸려있는 처음의 모각체에서 이를 모르고 한 것이 아니라 원체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더 돈독히 보이자고 수정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수정이 일반적인 한계를 넘어섰기에 필력에 의한 글씨로 보이지 않고 글씨가 아닌 도형의 그래픽화 된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총체적인 문제점 또 하나는 맨 위의 금색의 새로 제작하는 현판을 보면 각 자간의 거리가 글자 부피의 무게감과 상응해서 광~화자간 사이는 화~문자간 사이보다 좁아지는 현상으로 되었으며 또한 글자간 폭을 넓히기에 門자는 상대적으로 위축되 작아짐을 나타내며 또한 門자는 비틀어져 있어 찌그러드는 느낌을 받는다.
※ 임태영이 쓴 원래의 현판의 서체의 감상적 이해와 문젯점
위의 맨 아래 사진이 최초의 광화문현판으로 유리건판사진이며 스미소니언 박물관 자료라는 것도 사진이기에 글체가 다른것은 아니다. 여기에 재제작 광화문 현판 색상과 글자마감 등의 원형고증과 제작방침은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소장 고사진(1893년경)과 일본 와세다대 소장 ‘경복궁 영건일기’(1902년)를 참고해 진행했다.
하지만 임태영이 쓴 처음의 광화문 현판의 서체가 과연 아룸다운가에 관한 문제에서 필자로서는 그다지 찬성을 못하며 빈약한 글체로 과연 제일 정궁의 현관의 현판문에 걸릴 수 있슬까 하는 의심도 자아낸다.
편액의 서체는 글씨 3자나 해당 요어가 같은 유니폼의 모양새를 가져야 스마트하고 유니트 하게 보이기만 그러한 노력은 없었던듯 하다
아래의 비교 글체에서 보면 빛光자는 위, 아래 변이 1/2정도씩인데 비하여 임태영의 체는 아래 획이 좀 더 크게 잡혔다. 그러며 光자가 옆의 化자와 균형적 매치를 이루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언 밸런스적 느낌이다. 더 쉽게 하자면 빛광자는 번득이는 섬광의 느낌을 가져야 하기에 무언가 쨔빠르게 움직이려는 느낌을 담고 있어야 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임태영의 글체에서 門자는 찌그러 드는 느낌이다. 그러기에 이 門자는 化자와 조화를 잘 이루지 못하고 있다.
거러기에 본인의 이해로는 이 글체도 불만족스러운데 이 체를 사진을 확대해서 윤곽선이 없이 망점 처리가 돠어 그라데이션으로 색이 나가는데 어디를 외곽선으로 선정활까 하는 문제에 답이 없기에 사진을 보고 그린 모사체는 원형을 못따르는 것이다. 그래도 과연 임태영의 체를 고려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물론 맨 아래 사진의 임태영의 글씨체도 빼어난듯 하진 않게 보이지만 그 체를 복원했다면 위의 모각 두 체는 잘못된 모각임을 지적 하고자 한다.
이러한 여러 사항이 다시 복원할 현판의 문젯점으로 이를 간략히하면, 光化門의 모든 글자의 세리프는 법도에도 맞지 않는 제 각각이고 光자는 아랫변이 펜 글씨로는 원래 떨어져야 균형을 유지한다면 글씨에 볼륨을 넣을때는 더 벌려야 정상이지 지금은 가지 하나가 두개로 나누어져 불안정한 모습에 化자는 팬 글씨에 볼륨을 가져 두변은 사이가 달라붙어 불난한 모습을 가지는데 볼륨이 커 지면 원래의 팬글씨도 수정을 가해야 하는 점도 모르고 있다.
또한 光자나 化자의 꼬리가 길게 치켜 올라가 마치 낚시 꼬리같은 느낌을 가지는데 이는 치켜 올리는듯한 여운에서 멈추어 함락되지만 연장된다는 여운을 남겨야 글씨의 묘미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또한 門자는 큰 門을 알리는듯 하여야 하는데 日의 가로 획이 똑같은 굵기로 인해 둔탁한 모습을 유발하고 있다. 그리고 작은 부분을 보완하다가 더 큰범위로 글자체 전체가 돌아가 비뚤어진것도 모르고 있다.
이러한 느낌의 레터링은 원래의 체의 문젯점을 수정하고자 하는 의미가 뒤집어보면 글씨의 힘읋 잃게 만드는 아주 큰 단점으로 글씨 각 자의 균형감이 없기에 3字의 전체의 밸런스도 언 벨런스란 점을 읽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아래 이미지에서 보듯 일반적인 폰트의 서체만큼도 효과를 내지 못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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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체 비교)
◆ 光자와 門자의 비교
당시 유흥준 문화재청장도 처음의 임태영의 글체에 부족한 점을 알고 있었듯이 여러 의견의 수렴으로 추사체를 집자하든지 하는 案도 제시하였다.
경복궁 중건의 시기(1865년)에는 편액의 큰 글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듯 싶다. 추사 사후 10년 후에 중수 공사가 이루어졌고, 그런 문제로 추사의 서체를 찾아 집자한다면 그도 한자씩 각 자의 이해는 있으나 3자 전체의 통일성의 문제가 놓일 것이다.
또한, 해강 김규진은 당시 3살이었고 18세에 하나의 글체를 배우고져 청나라 8년 수학하고 돌아온다,그러기에 해강이 어떤 체를 구사하던 이로부터 30년 후쯤 될 것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문제에서 본인의 견해로서는 한글체로 하는 것도 마땅하리라 생각한다.
박정희가 썻던 광화문 한글의 서체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가라고 그의 글체는 없애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문제다. 물론 그는 서예가는 아니지만 옛 스럽고 강직한 맛이 있으니 팔당호란 비석도 요즘은 없어진듯 하다. 그냥 한 시대적인 역사로 이해하지 못하고 없앤다면 다음엔 이 시대의 유물도 없애는 논리를 가질 것인가??
요즘 폰트는 그러한 체들과 유사한 체들이 꽤 여러개 있다. 문화의 예술이란 하나의 최우선 작품만 중시되는게 아니라 여러표현의 복합적 어우러짐이 예술인 것이다. 물론 이 논리를 주장하는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위의 얼그러진 글체를 걸지말고, 또한 그것이 처음의 임태영의 처음의 원본과도 너무나 멀어졋기에 원본이란 의미도 없다 그러기에 한글의 해서의 정체로 쓰든가 아니면 훈민정음의 글체로 쓰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