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평창의 풍수지리 이해
1) 수정산(水精山)의 이해
⊙ 동국여지승람에서 “진산(鎭山)은 수청(水靑)이요, 【군(郡) 서북쪽에 있다.】” 라고 하였다.
⊙ “신중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서 노산(魯山) 은 군의 북쪽 1리에 있는 진산 (鎭山)이다. 수정산(水精山) 군의 서쪽 20리에 있는데, 가물면 여기에서 비를 빈다. 위 기록에서 진산은 수청산이요. 또한 수정산은 군의 서쪽 20리에 있는데 가 물면 비를 빈다라는 이해를 합니다.
조선사회는 유교사회로 주자 성리학의 사회였지만 불교적 신앙과 무위자연의 노장사상, 제자백가의 음양오행수, 도참사상의 풍수론이 지배적 사상인 사회였는데 위 기록의 평창의 진산인 수정산에서 비를 빈다라는 이해 풀이를 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는 풍수적 논리이기에 풍수적 관점으로 이해하여야 하 며 이로써 평창의 풍수지리적 고찰을 합니다.
鎭山을 사전적 의미로 볼 때엔 “예전에, 나라의 도읍이나 성시(城市)의 뒤 쪽에 있는 큰 산을 이르던 말. 그곳을 진호(鎭護)하여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를 지냈다.” 한다. 따라서 鎭山이란 개념은 고을의 뒷산을 숭배하는 개념 이다.
그러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수정산이 평창의 鎭山이라 명기한 점은 풍수적 이해로 풀어 이해하여야 한다. 조선시대에는 풍수가 발달하였지 만 풍수라 하면 금시발복이라는 음택지를 생각하지만, 풍수의 원래의 취지는 환경속에 생활의 기본 지리, 지형의 선택으로써 북풍을 막아주는 진산을 뒤 로하여 산에 기대고 남향의 앞에는 물을 얻기 쉬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장 소를 주거공간으로 삼듯이 인간이 생활하기 위한 합리적 공간을 구분하여 선 택하는 합리성의 사고행동이다. 예조의 기록에서 볼 때, 명산에 단묘와 신패제도를 마련하고”에서 보듯이 진산에서는 기우제 등의 산제(山祭)를 지내는 마을 공동체의 풍습을 가지고 있 다.
풍수에서 태조산, 증조산, 주산으로 이어지는 용맥의 祖宗的 흐름을 중요시 하였다. 산맥의 흐름은 혈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가진 연결 고 리로서 혈과 주변의 자연환경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공간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 다. 조선시대에 관아가 자리 잡기엔 향교의 음택지도 잡아야 하고, 또한 진산들 은 다수가 풍수적 주산(主山) 혹은 조산(祖山)을 중심으로 하는 읍치 관아 배후 에 산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따라서 수정산을 진산이라고 했을 때 진산의 위로 맥을 잇는 조산으로는 백덕산이고, 아래로는 진산에서 내려와 노산으로 이곳의 내명당이 평창읍으로 이는 생활공간의 양택의 풍수로써 진산의 배사면에 즉, 진산을 뒤로하여 북풍을 막는 주거공간을 만드는 풍수를 가지는 것이다.
⊙ 수정산 발원의 평창의 지형 <백두대간과 백덕산, 수정산, 노산의 관계>
(강원도 지형도 참조)
강원도 일대 지도 84 아래에 지도에서 오른쪽 세로선이 백두대간으로 차령산맥은 오대산의 오대의 서대에서 발원하여 해발 1,300m급만 따지면 서대의 장령산 – 계방산 – 태기산 – 백덕산 – 치악산 – 여주에서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포평야까지 이어지는 산맥으로 백두대간의 여러 정맥 중 가장 길게 250km를 이어 내리 고 있다.
여기에 평창 관아는 차령산백의 백덕산에서 회룡고조하여 수정산으로 내 려오며, 수정산은 정봉에서 세 갈래의 준령으로 뻗어 내린다. 왼쪽으로는 향동리로 내려와 후평 용산에서 멈추고, 오른쪽으로는 입탄과 도돈으로 겹으로 치닫고 중앙으로는 조둔의 새귀앙지산을 너머 하평과 방축골의 능선을 타며 증황(시루목)을 넘어 노산을 맺고 있다. 따라서 백덕산이 증조산(시조산) 격 이 되고 수정산은 평창의 진산으로 보면서 수정산 자락인 노산 북쪽 1리에서 비를 빈다(기우제)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진산을 노산이라 하였다)
평창은 차령산맥의 중봉 백덕산에서 발원하여 수정산이 조산으로 수정산 자락이고 또한 발왕산에서 백석산, 두타산 등으로 이어 내리는 산세는 가리 왕산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영월단맥으로 여기에서 말려 올려진 삼방산과 가리왕산에서 흐르는 남병산 준령인 장암산이 지산으로 평창으로 다가들어 수 정산의 지산 용산, 노산, 서산등이 남산과 사이에 사천강을 굽어 만들었다.
남한강 700리 중에 감입곡류가 가장 심한 평창강은 굽이마다 선상지의 개활지의 충적평야가 생성되었고 1920~30년대에 제방을 겸한 신작로 조성 사업시 관개수리사업으로 인근 영월이나 정선보다 몇 배 많은 비옥한 논을 생성하였으며 또한 볍씨의 품종개량으로 인하여 농업 소출이 증가하였다.
지 금도 이점은 평창에는 계장보, 다수보, 용황보, 임하보, 주진보, 후평보, 여만리보, 중리보, 약수보, 천동보, 도돈보, 대상리보, 대하리보 등 10여 곳이 넘 는 보(洑)의 관개수리 시설하여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 「평창의 지리지 」정원대. 2022
이 책에서는 차령산맥인지도 모르며 오대산에서 내려오다 가리왕산으로 하는 엉터리 소리들을 하였다. 평창의 역사에 모든 단원을 모두 꺼꾸로 비논리적으로 서술하는바 이 점ㅇ에 정원대 책은 사료로서 인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2) 평창지리의 풍수적 고찰
수정산이 평창의 조산이 되며 수정산은 정상부에서 세 갈래의 준령으로 갈라져 좌측으로는 행동, 후평으로 내려와 용산(龍山)을 맺는다
. 우측로는 두 겹으로 도돈과 입탄으로 갈래를 뻗어 내리고 중앙의 준 령은 조둔의 새귀앙지산을 타고 넘어 하평과 방축골로 이어내려 증항재(甑項 峙. 시루목)를 너머 노산(魯山)으로 맺는다. 하평에서는 유동리까지의 서산을 만들고도 있다. (조선시대에 西山이라는 기록은 있다).
이렇게 수정산 자락이 평창이며, 반대편으로는 장암산의 송계산과 삼방산 이 다가들어 수태극의 사천강으로 노산(魯山)을 에워싸고 관아가 있는 평창 고을의 양택지의 대명당을 만들고 있다. 이로써 진산을 수정산으로 삼고 가 물면 비를 비는 기우제를 지낸 것입니다. (* 수정산은 수청산이라고도 하였 으며 수정산의 남쪽을 수청이라고도 하였으며 이후 수정산으로 합일되었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보는 풍수적 견해의 평창입니다.
⊙ 수정산의 지맥인 노산의 풍수 평창은 차령산백의 준봉의 하나인 백덕산을 증조산으로 하여 회룡고조형 으로 뻗은 수정산을 조산(조선시대에는 평창의 진산이라 하였다)으로 이어지 며 오랜 세월속에 수정산에서부터 진룡(眞龍)은 돈질(頓跌)의 지세를 만들며 과협(過峽)과 박환(剝換)으로 내려와 산세는 하평에서 약수로 서산의 지각(枝 脚)을 만들며 힘을 부추겨 능룡(壟龍)으로 일어나 방축골을 노도(櫓悼)처럼 달 려 내려오며, 봉요(蜂腰)속에 龍은 성정(性情)의 氣를 감추고 증황(시루목)을 넘어서 노산에서 龍은 개장천심(穿心)하며 승천하였다.
용은 조산에서 개장(開 帳)을 하며 30여리를 달려 내려와 증황(甑項:시루목)의 목(目)에서 입수하여 龍은 평창의 진산인 노산에 정기를 불어넣고 천심(穿心)을 하여 비룡상천(飛 龍上天)하였다. 즉 노산은 기슭을 갖지않는 타원형 산으로 가운데가 구릉으로 내려앉은 곳은 용이 승천한 자리로 결인(結姻)을 만들며 정기를 내려놓은 진 용의 형국이다.
이로써 평창의 노산(魯山)은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의 대명당 인 것이다. 이곳이 평창의 기상을 말하여 주고 있다. (노산은 5억 년의 카르스 트 지형이 용식되어 녹아 여만리 쪽 강바닥에서 치솟는 샘과 하리 옹달샘, 중학교 뒤 옹달샘 등 여러 샘을 통하여 빗물에 녹아 내린 것이다)
사천강(평창강)은 노산을 수태극으로 감아돌며 면면히 흐른다. 이곳에 태 백의 정기를 받은 평창은 평온할 平에 창성할 昌자이다. 산이 강을 굽게 만들 고 강이 산세를 갈라 놓는 한국의 전형적인 마을로, 백두대맥의 정기는 차령 산백을 타고 백덕산에서 수정산으로 내려와 노산으로 이어진 정기는 수태극 의 사천강이 노산을 감아 정기를 멈추게 하였다. 이러한 노산 아레엔 예부터 평창의 관아를 자리잡은 것이다. 이곳이 평창이다.
산이 다가들고 물이 돌아들면 귀한 길지임이라는 풍수에 양택의 고장으 로, 따사로운 태양과 산과 들이 마주하며, 사방을 산과 강이 함께 따라 감돌 며 보호하는 형상으로 비, 바람을 막아주고, 하늘빛을 땅에 그대로 내려주는 천혜의 땅, 평창인 것이다. 87 평창역사의 고찰
제2장 <용어 이해>
과협 (過峽) - 풍수지리에서 내려오던 산줄기가 주산(主山)을 만들어 다시 일어 나려 할때에 안장처럼 잘록하게 된 부분을 이르는말.
박환 (剝換) - 용암이 수 만년의 세월에 비. 바람에 풍화되어 삭아서 부드러운 非石非土의 흙이 되고 조금만 더 파들어가면 돌이 되는 과정을 말함
頓跌 (돈질) - 크게 굴러지며 얕게 내려간 능선 줄기
壟龍 (농룡) - 밭두둑처럼 얕게 내려간 능선줄기.
枝脚 (지각) - 산맥이 내려가며 양옆으로 뻗은 가지를 지각이라 하며, 지각은 본체의 용을 멀리까지 갈 수 있도록 힘을 발휘한다.
蜂腰 (봉요) - 용맥이 변화롭게 내려가면서 기봉하고 과협이 생기는데. 그 모양이 벌의 허리처럼 잘록하고 다시 둥굴게 형성하는 모양을 말함
性情 (성정) - 산천이 형상에서 하고자 하는 의도로 氣가 감춰져 있는 상태
櫓悼 (노도) - 지각이 짧으면 노도라 한다. 배가 나가기 위해 노가 필요하듯 용세가 뻗히면 노도를 달게 마련이다. 만약 이러한 노도 지각이 없으면 死龍에 불과하다.
眞龍 - 진혈을 가진 참다운 용.
穿心 (천심) - 산봉우리 아래에서 맥이 중심으로 뚫고 나오는 모양. 개장천심.
穿帳 (천장) - 장막을 두룬 듯 가운데를 뚫고 기어 오르는 형상.
結姻 (결인) - 내룡의 기운이 혈 앞에 뭉쳐 툭 튀어나온 부분으로 목이라 한다.
※ 이러한 풍수의 용어로 수정산에서부터 노산까지 이해할때 증황(시루목)은 멀리 뻗어 내려 온 용의 맥이 노산(시루봉)으로 응결하기 위한 관자놀이(클러치) 격의 項을 만들고 있다. (수항리도 이러한 풍수적 용어인 項을 사용하고 있다)
※ 이 글은 풍수 예찬이 아니라 노산아래 평창 관아가 자리하게된 당시의 사상적 기반의 풍수 론에 의한 노산을 고찰하였습니다.
※ 노산은 카르스트 지형으로 평창관아 옆에는 옹달샘이 솟고 동편쪽에 객사 옆에도 옹달샘이 솟아 평창고글 군수는 여름철이면 시원한 물을 마실수 있었고 겨울철에도 차겁지 않은 샘물을 이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