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임진왜란사 (10) 썸네일형 리스트형 <영월, 고씨굴이라 전해지는 슬픈 역사 이야기> 高 柱 浩 영월의 고씨동굴의 새로운 역사 이야기가 밝혀졌습니다. 지금까지는 백과사전이나 영월 역사에서도 고씨 굴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는 자료가 없어서 임진왜란때 고씨 일가가 피난가서 고씨굴이라 불린다 서술되고 있지만, 당시 역사적 사료를 발굴하여 고씨 동굴의 역사는 의를 내세운 의병장의 모습으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합니다. 당시 역사에서는 고씨굴은 3형제의 의병장으로서 나라를 위한 충정의 슬픈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고씨동굴 안내판엔 근거도 없는 고씨만 살았다는 비 역사적, 동화적인 이야기를 꾸미고 있는데, 새로 밝혀진 고종원 3형제의 임진왜란시 의병장으로서의 역사 이야기로 다시 서술하기를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영월문화원의 고종경 창의비에 대한 문의에 답을 드립니다. 영월문화원의 고종경 창의비에 대한 문의에 답을 드립니다. 高 柱 浩 감사합니다. 우선 이렇게 현대의 시기에 의병장 발굴의 역사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이번 영월 문화원의 창의비 제막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래의 적 사항과 호구록을 접하며 본인이 생각하는 일반론을 피력하겠습니다. 후세백작 2019.08.28 21:12 柳永吉(유영길) 215代 선조22(1589) 1538~1601 江原道 觀察使 *임란 연대와는 상이함 임란 당시인 1592년 당시 강원 감찰사는 유영길이 아니라 申 點(신 점) 218代 선조25(1592) 1530~ ? 江春道 觀察使이라야 맞을 것이다. 여기에서 호구록에는 8/19일자 일기에 두번 道伯이란 서술이 있지만 고유명사는 붙이지 아니하였다. 아마 옛날엔 (2~30년 전)에는 .. 후세백작의 글에 의해 영월은 임진 의병장 고종경 창의비를 세우다. 후세백작의 글에 의해 영월은 壬辰義兵將 髙宗慶 倡義碑를 세우다. [해설자료] 영월고씨굴 (寧越高氏窟)| 역사문화 김원식 | 조회 31 |추천 0 | 2019.08.20. 14:26 [해설자료] 영월고씨굴 (寧越高氏窟).hwp [해설자료] 영월고씨굴 (寧越高氏窟) ------------------------------------------------------------ [미완의 의병장 고종경과 고씨동굴] [출처.전문인용] 블러그 이름 : 후세백작의 지평. 블러그 주소 : http://blog.daum.net/kkks1/376/. 글을 쓰신 분 : 후세백작 아래의 글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평창 현감 남천 권두문의 "호구록이라는 난중일기에 서술되어있는 고씨동굴로 피난간 고종원 형제와 그의 아우 고종경이.. (임진왜란 당시 고씨동굴과 미완의 의병장 고종경 형행사건) [평창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고씨동굴과 미완의 의병장 고종경 형행사건) 후세백작 2016.06.03 03:37 국난의 어려운 시기에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하는 의병들은 시대를 넘어서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임란당시인 420여년 전 평창에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임란 전 횡성 세족인(*주; 제주고씨 화전군파 )의 고광후는 아들 3 형제를 데리고 영월로 이사하였는데, 임란을 겪으며 그의 형제들은 모두들 왜구에 대항하자는 고경명의 "창의격문"을 읽고 뜻을 같이하며 셋째인 "종경"은 영월과 그의 고향 횡성등지에 알리어 의병을 모집하니 마을사람들은 종경의 문무재주를 추앙하여 그를따라 의병에 참가하여 고향을 지키겠다는 향병(鄕兵)이 수백명이 되었다. 장차 홍천과 영춘 사이의 .. 2015 나의 가을 사색 ( 평창의 임진왜란사 중에서,,) 이번 추석 고향 나들이가 즐거웠고 좀 바쁜듯하였다. 그리움 속의 아득한 고향의 추억과 시간이 흐른 지금, 친구 한 사람 만나지 못한 고향 나들이라 좀 씁쓸하지만, 그래도 평창의 여정은 즐거웠다. 정원대님의 시집 씨리즈 감상 그 중 정원대님 시집을 한 권을 받아 들고서는 밤에 깊도록 들춰보며 잠들기도 하였지만, 평창강을 소재로 한 일련의 詩는 우리에게 낯익은 단어들의 배합에 어쩌면 추억어린 서정의 감동을 자아내지만 또한 일련의 평창강 씨리즈의 詩作의 구성에서 평창강과 그 구성 소재들의 오브제를 통하여 인간과의 유기적인 이야기를 담고있다. 일상적이고 단순한 詩語들의 배열 같지만, 그 속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투명한 감정을 드리우고 있다. 마치 복잡한 일상을 한 겹 벗겨 버린듯한 詩語 속엔 나.. 임진왜란시 평창전사(戰史) [임진왜란시 평창전사(戰史)] 후세백작 2014.10.02 01:50 평창 임진왜란사의 개괄적 언급을 하면, 1592년 임진란때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명령으로 조선 정벌군은 9번대까지의 본대와 예비대, 그리고 기타 부대를 합해 28만 명이나 되었다. 일본군의 편제를 아래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정명가도가 아니란 점은 아래에 평창군수 권두문이 체포되는 이야기에서 체포되어 포승줄에 묶인 권 군수에게 왜 항복을 안 하는가 하며 왜장이 나 "모리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강원 감영의 관찰사의 품신을 내정받고 온 자이다라고 말한것은 임진왜란이 정명가도가 아니라 조선침략이고 아래의 글에 보면 조선의 물자, 군사들을 징발하여 추후 명을 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가진 것이다. (본대) 1번대 : 고니시.. 강절부(강소사)님 이야기 후세백작 2014.10.01 01:03 후세백작 Y 후배님이 오셨구료,,,지난번 후배님들과의 산행은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배님은 鷹岩(매응,바위암)리 출신 아마 4년 후배이죠?? 그날 언 후배왈 매화의 뜻을 아십니까?? 하고 묻길래 나는 농담으로 저는 평창에 남쪽 지방으로 가장 먼저 매화꽃이 만.. [스크랩] 이 마음 알아주셨으면.... 인터넷을 통하여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또한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만난 사실이 없어 얼굴조차 모르는 분들과 비록 문자로나마 서로 간에 대화를 나누고 그로 인해 우의마저 느낄 수 있음은 즐거운 일이며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로그 나들이를 하다가 우연히 내 조상.. *** [ 임진왜란 왜구와 대항하여 싸운 평창 군민들의 함성]**** *** [ 이 글은 임진왜란 당시 군, 관민을 통솔하셔서 왜구와 대항하여 싸운 당시의 권두문 군수님과 평창의 선인들에 대한 저의 작은 소묘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임진왜란 당시 평창군수이셨던 권두문 군수님의 직계 12대 후손인 아이디 "나무귀인"님의 방문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릴 적 노성산에 올라 역마차 달리던 성벽에서 뛰어놀며 이곳이 노성장군의 싸움터라 불렀지요. 그리고 노성장군이 무슨 역사인가 늘 궁금했었답니다. 그 궁금증에 해답의 일부를 일전 엄기종님의 카페에서 권두문 군수님의 임진왜란사 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궁금증이 해결되었습니다.나무귀인님의 글을 보면 평창에 왜구가 침입한 시기는 선조 임금님이 의주로 피난 가고 명의 도움으로 고니시 유키나가>이 조선정벌의 마지막 .. Re:강소사 죽음은 사라질 뿐인가--- 우리는 평창을 변화시켜야 한다. Re:강소사 죽음은 사라질 뿐인가--- 우리는 평창을 변화시켜야 한다. 후세백작 09.02.05 09:31 좋은 지적 감사 합니다. 응암에 아카시아 제방사이에 돌 무더기가 무덤이었군요, 저는 군 입대전에 두 굴 모두 올랐는데 그 두개 굴의 정확한 내용은 이제 알았습니다. 강소사가 아무리 후실 부인이..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