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역사의 이해』 책 (P238~262)
[제 5장]
= 조선 선비들의 기행 =
평창 우통수
于筒 在五臺山 山院寺側是 漢江上流爲 東國第一泉
우통은 오대산 상원사 곁에 있는데 한강의 상류에 있으며 나라안에 으뜸가는 샘이다
- 허균 -
'평창 우통수(平昌 于筒水)'
◎ 평창 우통수 (平昌 于筒水)
우통수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서대 수정암에서 60m에 해발 1,200m에 위치해 있으며, 2011년 12월 16일에 강원도 기념물 제88호 '평창 우통수(平昌 于筒水)'로 지정됐다.
우통수는 한강의 발원지로 여기서 나온 물이 한강 한가운데를 흘러 한중수(漢中水) 강심수(江心水)가 된다. 우통수는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향기롭게, 쉬지 않고 수천 년 흐르고 흘러간다.
1. 우통수(于筒水)에 대한 문헌 기록들
우통수(于筒水)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자락에 위 치한 우물형태의 샘터로, 현대에 들어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로 밝혀지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한강의 발원지로 인식되어 온 곳 이다.
우통수는 오대산 장령봉 밑의 서대(西臺) 수정암으로부터 약 60m 가량 떨어진 곳,[1] 해발 약 1,200m 높이에 위치한 샘으로 땅속에 서 솟아오른 지하수가 아니라 바위를 타고 흐른 물이 고인 것이다. 특히 물 맛이 좋기로 유명하여, 삼국유사에 따르면 우통수는 오대 산에 있는 사찰들에서 차를 끓여 마시는 약수로 사용했다고 하며,
◎ 取于筒水煎茶. 이민구(李敏求, 1589 ~ 1670)
取于筒水煎茶 (취우통수전다) 우통수를 길러 차를 달이다
(傍有小史曰 飮此令人聰明 笑而書之)(방유소사왈 음차령인총명 소이 서지)
(곁에서 있던 아전이“이 물을 드시면 총명해 집니다”) 라고 말하여 웃으면서 쓴다.
聖水移人性 (성수이인성) 성스러운 물 인성을 바꿔
能令濁者淸 (능령탁자청) 어리석은 이 맑게 해준다네
停甌不欲飮 (정구불욕음) 그렇다면 나는 마시지 않으려오
我自厭聰明 (아자염총명) 나는 본래 총명함을 싫어하오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로 지목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인데, 1473년에 간행된 세종실록의 '지리지(地理志)'에서 “오대산 서대 아래 수정암 옆에서 샘이 솟아나는데 이를 우통수라 한다. 물의 빛과 맛이 특별하며 한강의 근원이다. 이로 인해 봄·가을에 그 고을 관원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한다. 한강물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 흐르나 우통수가 중심이 되어 빛과 맛이 변하지 아니한다.”라고 밝히면서 조선 왕조가 공식적으로 한강의 발원지를 우통수로 인식했음과 함께 이를 신성히 여겨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성종때인 1530년에 편찬한 신동국여지승람에서도 우통수를 한강의 발원지로 지목하였으며, 이후 쓰여진 택리지와 같은 지리서나 청구도, 대동여지도와 같은 지도에서도 우통수를 한강의 발원지로 기록하고 있다.
◉ 연려실기술에서는 강릉의 오대산 우통수(于筒水) 금강연(金剛淵)에서 나온다. 또 하나는 두타산 북림계(北臨溪)와 삼척의 죽현 (竹峴) 물과 합해서 남쪽으로 흐르는데 한강이 비록 여러 곳의 물 을 받아들였지만 우통수가 그 주류이다라고 태백의 지류보다 우통 수가 주류라고 명시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한강물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 흐르나 우통수가 중심이되어 빛과 맛이 변하지 않고 중국의 양쯔강과 같으 므로, 한(漢)이란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기록되 있다.
◉ 우통수는 물의 빛깔이 곱고 맛 또한 다른 물보다 훌륭하다는 데에 서 유래된 이름이다. 우통수의 물이 복판 줄기가 되어 한강을 흐른 다는 데에서 우통수 물줄기는 한중수(漢中水) 또는 강심수(江心水) 라 불리기도 하였다.『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우동수(于洞 水)가 지금의 우통수로 변화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한강 시원의 명확한 비정은『世宗實錄』「地理志」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實錄에서 비정하고 있는 한강의 시원은 五臺山 西臺의 于筒水이며, 이러한 인식은 조선조를 一貫하는 정설로 자리매김한다
한민족의 젖줄, 한강의 시원(始原)인 만큼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도 나온다.“우통수 곁에는 이미 수정암이라는 암자가 있었으며 신라 신문왕의 아들인 보천과 효명 태자의 두 왕자는 우통수의 물을 길어서 차를 달여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허균은 `화사영시(和思潁詩)'에서 “우통은 오대산 상원사 곁에 있는데 한강의 상류이며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샘이다”라고 했다.
오대산 서대 수정암의 우통수, 동대 관음암의 청계수, 남대 지장암의 총명수, 북대 미륵암의 감로수, 중대 사자암의 옥계수, 적멸보궁의 용안수(龍眼水)는 모두 일급 샘물이다. 속리산 삼파수, 충주 달천과 함께 조선의 3대 명수로 전해진다.
오대산의 일급 샘물들이 흘러 월정사 앞의 금강연(金剛淵)에서 만난다. 금강연은 바닥의 암반에서 물이 용출(湧出)하는 특이한 구조다.
용출하는 금강연 물과 오대산 샘물이 합수해서 한강으로 내려가는 우통수가 된다. 물소리로 머릿속을 씻고 샘물로 뱃속을 씻는다.
◉ 권근의 기문
고려말 ~ 조선초 선비인 양촌 권근(1352~1409)이 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기(五臺山西臺重創記)에 쓰기를 "--서대 밑에서 샘이 솟아나서, 빛깔과 맛이 보통 우물보다 났고 물의 무게 또한 무거운데 우통수(于筒水)라 한다,
서쪽으로 수백리 흘러가다 한강이 되어 바다로 들어가는데, 한강이 비록 여러군데서 흐르는 물을 받아서 모은 것이지만 우통수가 중령(中泠; 깨우칠 령, 떨어지다 령) 이 되어 빛깔과 맛이 변하지 아니하여 마치 중국의 양자강과 같으므로 한강이라 이름짓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치 중국의 양자강의 경우와 같이 물이 무겁고 단단하다는 뜻에서 중냉(中冷)이라 부른다.
“서대의 밑에 솟아나는 샘물이 있으니, 물 빛깔과 맛이 딴 물보다 훌륭하고 물을 삼감도 또한 그러하니 우통수라 한다. 서쪽으로 수백 리를 흘러 한강이 되어 바다에 들어간다. 한강은 비록 여러 곳에서 흐르는 물이 모인 것이나, 우통 물이 복판 줄기가 되어 빛깔과 맛이 변하지 않는다.” 하였다.
● ㈜) ; 중냉이란 중국 강소성 서북쪽의 양자강 샘을 말하는 것인데 그 샘물 맛은 차기로 소문이 났는데 황토가 넘쳐나도 양자강 강바닥을 흐르며 다른 물과 섞이지 않았다 한다. 우통수의 물도 그와 같이 긴 여정을 따라 한강에 다다를 때까지도 그 맛과 기운을 잃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산(臺山) 오만진신(五萬眞身)” . 삼국유사 3권
삼국유사’에 따르면 우통수 곁에는 이미 수정암(현재의 서대 염불암(念佛庵)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신문왕의 두 태자인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이 오대산 속에 이르자 푸른 연꽃이 갑자기 땅 위에 핌으로 형인 보천이 여기에 암자를 짓고 머물러 살았으니 이곳을 보천암(寶川庵)이라 했다. 여기에서 동북쪽으로 600여 보(步)를 가니 북쪽 대(臺)의 남쪽 기슭에 역시 푸른 연꽃이 핀 곳이 있으므로 아우인 효명이 또 암자를 짓고 살면서 각각 부지런히 업(業)을 닦았다...두 태자는 항상 골짜기 속의 물을 길어다가 차를 달여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진부면지(1993)에는 우통수의 3가지 특징을 기록하였는데 첫 번째로 순수한 맛이 으뜸이어서 이물로 차를 다리면 茶味가 독특하고, 두 번째는 차기가 얼음보다 강하여 얼지 않고, 세 번째로 물빛이 푸른 듯 희지 않고 신비하다고 하였다. 우통수(于筒水)는 부 서쪽 1백 50리에 있다. 오대산 서대(西臺) 밑에 솟아나는 샘물이 있는데, 곧 한수(漢水 한강)의 근원이다.
◉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샘이며, 금강연이 발원지이고 봄.가을에는 지방의 관원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대목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강원도 강릉대호부 편에 “ 봉우리 다섯 개가 고리처럼 벌려 섰는데, 크기와 작기가 고른 까닭에 오대산이라 한다. 서대 아래 수정암 옆에서 우리샘(檻泉 함천)이 솟아나는데 빛과 맛이 여느 물과 다르며, 그 무게 또한 그러하므로 우통수라고 하며, 곧 금강연은 한강물의 근원이 된다. 봄 가을에 그 고을 관리로 하여금 제를 지내도록 명하였다. 한강물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 흐르나 우통수가 중심이 되어 빛과 맛이 변하지 않으니 마치 중국의 양자강과 같다. 한강의 한(漢)이란 이름이 이로 인하여 되었다.”로 기록이 되어 있다.
세종실록에는 '오대산 수정암 옆에 물이 솟아나오는 샘이 있는데 색과 맛이 보통과 다르고 그 무게 또한 그러하여 우통수라 한다. 우통수는 금강연이 되고 한수의 근원이 된다'라고 기록돼 있다
가로, 세로 각 1.5m 규모의 샘물인 우통수는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시대 신문왕의 태자 2명이 머물며 부처님께 차를 공양했다는 신령스런 물로 기록돼 있다
◉ 1929년에 발행한 "조선환여승람(朝鮮환與勝覽)"의 강원도지리총설 산악편에 “오대산은 일명 청량(淸凉)이며 만월(滿月), 기린(麒麟), 장령(長嶺), 상왕(象王), 지로(智爐)등 오대(五臺)가 산 위로 나열하였으니 높고, 크고, 깊어서 인적이 드물다. 서대(西臺) 아래에서 우통샘이 용출해서 산곡수와 더불어 합류하여 기린동구릉(麒麟洞丘陵)에 이르러 반야연(般若淵)이 되었고, 동대(東臺) 아래에 금강연(金剛淵)이 있으니 4면에 반석 폭포가 날아 내리니 즉 한강의 근원이다.”
◉ 고산자 김정호가 순조 34년(1834)에 제작한‘청구도’에는 오대산이 한수지원(韓水之源)이라고 적혀 있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에서 한강의 근원으로 꼽은 `우통수'에 조선후기까지 많은 지리지에서는 우통수와 금강연이 한강의 시원지로 기록되어 있다.
또, 조선시대 지도에서도 금강연과 우통수 표기를 찾을 수 있는데, 금강연이 표기된 지도는 11종, 우통수가 표기된 것은 5종, 우통수와 금강연이 동시에 표기된 지도는 5종이며, 이 가운데 고산자 김정호가 순조 34년(1834)에 제작한 ‘청구도’에는 한수지원(韓水之源)이라고 표기돼 있다
2. 지리지속의 우통수
이처럼 우통수와 금강연이 한강의 발원지로 규정되고 난 후 매월당 김시습을 비롯해 이이, 허목, 김창흡 등 유자(儒者)들이 오대산을 찾았다. 오대산을 유람하는 이들은 반드시 우통수와 금강연에 대한 시나 기문을 남겼다.
1) 연려실기술 (강원도편)
◉ 연려실기술 별집 제16권 지리전고(地理典故) / 총지리(摠地理)
남강은 그 근원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강릉의 오대산 우통수(于筒水) 금강연(金剛淵)에서 나온다. 한강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들였지만 우통수가 그 주류이다. 오대산 물이 두타산 북림계(北臨溪)와 삼척의 죽현(竹峴) 물과 합해서 남쪽으로 흘러, 정선 동쪽 여량역(餘粮驛)을 지나 군(郡) 북쪽에 이르러 광탄진(廣灘津)이 되고, 군 남쪽은 대음강(大陰江)이 되고, 군 서쪽은 용암연(龍巖淵)이 된다. 또 흘러가다가 영월 후진(後津)이 되고 금봉연(金鳳淵)에 이르러 금장강(錦障江)과 합한다. 금장강은 바로 평창(平昌)의 연촌진(淵村津) 하류이며, 또 서쪽으로 주천강(酒泉江)과 합하는데 주천강은 바로 원주 동쪽 주천현 거슬산(琚瑟山) 여러 물의 하류이다. 또 남쪽으로 흘러 영춘(永春)에 이르러서 눌어탄(訥魚灘)이 되고, 또 남쪽으로 흘러 남진(南津)이 되며, 서남쪽으로 흘러 단양에 이르렀으며, 북쪽으로는 상진(上津)과 하진(下津)이 되고, 서쪽은 소요항탄(所要項灘)이 된다.泠
2) 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 강릉대도호부편
◉ 명산(名山)은 오대(五臺)이다.【부(府) 서쪽에 있다. 봉우리 5가 고리처럼 벌려 섰는데, 크기와 작기가 고른 까닭에 오대산이라 한다. 서대(西臺) 아래 수정암(水精庵) 옆에서 우리샘[檻泉]이 솟아나는데, 〈물의〉 빛과 맛이 여느 물과 다르고, 그 무게도 또한 그러하므로 우통수(于筒水)라고 하며, 곧 금강연(金剛淵)은 한강물[漢水]의 근원이 된다. 봄ㆍ가을에 그 고을 관원으로 하여금 제사지내게 한다. 한강물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 흐르나, 우통수가 중심이 되어 빛과 맛이 변하지 아니해서 중국의 양자강(楊子江)과 같으므로, 한(漢)이란 이름이 이로 인하여 되었다.】
名山曰 五臺 。【在府西。 山五峯環列, 大小均敵, 山以是得名。 西臺之下水精庵側檻, 泉湧出, 色味勝常, 其重亦然。 曰于筒水, 卽金剛淵, 爲漢水之源。
【산천】
◉ 권근(權近)의 기문에,“서대의 밑에 솟아나는 샘물이 있으니, 물 빛깔과 맛이 딴 물보다 훌륭하고 물을 삼감도 또한 그러하니 우통수라 한다. 서쪽으로 수백 리를 흘러 한강이 되어 바다에 들어간다. 한강은 비록 여러 곳에서 흐르는 물이 모인 것이나, 우통 물이 복판 줄기가 되어 빛깔과 맛이 변하지 않는 것이 중국에 양자강(楊子江)이 있는 것과 같으니 한강이라는 명칭도 이 때문이다.”하였다.
權近記:“西臺之下,有檻泉涌出,色味勝常,其重亦然,曰于筒水。西流數百里爲漢江,入于海。漢雖受衆流之聚,而于筒爲中 冷 ,色味不變,若中國之有楊子江,漢之得名以此也” 芳林川。在府西一百五十八里。
【산천】
◉ 정추(鄭樞)의 시에, “금강연 물이 푸르게 일렁거려, 갓 위에 묵은 먼지를 씻어낸다. 월정사에 가 옛 탑을 보려 하는데, 석양에 꽃과 대[竹]가 사람을 매우 근심스럽게 한다"하였다. 우통수(于筒水) 부 서쪽 1백 50리에 있다. 오대산 서대(西臺) 밑에 솟아나는 샘물이 있는데, 곧 한수(漢水 한강)의 근원이다.
鄭樞詩:“金剛淵水碧粼粼,洗盡從前冠上塵。擬向月精看古塔,夕陽花竹政愁人。”
于筒水。在府西一百五十里。五臺山西臺之下,有泉涌出,卽漢水之源。
【산천】
◉ 진화(陳澕)의 시에,“당년에는 그림 속 오대산을 보았는데, 구름 속에 높고 낮은 푸른 산이 있더니, 지금 만 골짝 물이 다투어 흐르는 곳에 와서 보니, 구름 속에서도 길은 어지럽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노라.” 하였다
陳澕詩:“畫裏當年見五臺,掃雲蒼翠有高低。今來萬壑爭流處,自覺穿雲路不迷。”
大關嶺 在府西四十五里。卽州之鎭山。自女眞之長白山,縱橫邐迤,延袤南蟠,據東海之濱者,不知其幾,而此嶺最高,有徑縵迴山腹凡九十九曲,西通京都之大路也。距府治五十里。俗號大嶺。
【불우】
◉ 정추의 시에,“고요한 밤에 풍경소리 반공에 울리는데, 단청한 불전에 등불이 붉다. 노승이 우통(于筒) 물을 즐겨 말하는데, 지수(智水)와 어느 것이 묽고 진한고.”하였다.
鄭樞詩:“夜靜風箏響半空,丹靑古殿佛燈紅。老僧愛說于筒 水 ,智水與之誰淡濃?”
권근(權近)의 기문에, “우통물 근원에 수정암이 있다. 옛적에 신라 왕자 두 사람이 여기에 숨어서 참선하여 도를 깨쳤다. 그리하여 지금도 중으로서 수도하고자 하는 자는 모두 여기에 머물기를 즐겨 한다.”하였다. 등명사(燈明寺) 부 동쪽 30리에 있다.
○權近記:“于筒之源,有菴曰水精。昔新羅二王子嘗遁于此,修禪得道。至今衲子欲修證者,皆樂居之。”
3. 유산기(遊山記)속의 우통수
조선 선비들의 산수유람시 유람기속의 평창 우통수 기록이다.
1) 풍악록(楓嶽錄)
• 창곡(蒼谷) 이현영(李顯英, 1573 -1642)
1595년(선조 28) 별시 문과에 급제해 1628년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창곡집(蒼谷集)』 권4 「풍악록(楓嶽錄)」을 저본으로 삼았다.)
오대천(五臺川)을 건넜는데, 시내의 근원은 상왕봉(象王峯)·지로봉(智爐峯)·만월봉(滿月峯)·기린봉(麒麟峯)의 4개 봉우리 사이에서 나와 넘쳐 힘차게 흘러 월정사(月精寺)를 지나 금강연(金剛淵)과 합해 정선(旌善)경계에 이르러 희복천(希福川)과 백여리를 지나 비봉산(飛鳳山)을 보듬고 영월군에 이르러 죽령강(竹嶺江)으로 들어갔다.
대개 이 물은 색과 맛이 보통 물보다 뛰어났으며, 한강이 여러 물갈래를 받아들여 이 물이 중파[中派 ]의 역할을 하는 것이 중국의 양자강과 같다고 양촌(陽村) 권공(權公)의 기문(記文)에서 말했다.
(원문) 又二十七八里, 從禿山院, 過省野, 望五臺山, 雲霧冥漠, 風雨且阻, 無乃天地秘藏之靈眞窟宅. 非人人所能覰也哉. 因涉五臺川, 川之源, 出自象王·智爐·滿月·麒麟, 四峯之間, 汎濫橫流, 過月精寺, 合金剛淵, 至旌善界, 與希福川, 經百餘里, 抱飛鳳山, 至寧越郡, 入竹嶺江. 盖此水, 色味勝常, 受衆流爲中派, 若中國之有楊子江, 陽村權公之所記云. 向暮投珍富驛, 碧樹連天, 禽鳥相聞. 又八九里, 有淸心臺, 極平鋪, 登覽己, 仍抵 大和驛宿
2) 유풍악록(遊楓嶽錄)
• 만모(晩慕) 정기안(1695-1767)
이 산에는 오대(五臺)가 있는데, 동쪽은 만월산(滿月山), 남쪽은 기린산(麒麟山), 서쪽은 장령산(長嶺山), 북쪽은 상왕산(象王山), 가운데는 지로산(地爐山)이다. 지로산은 오대의 중간에 위치하는데, 뭇 산이 감싸 안고 있어 그 형세가 마치 왕에게 신하들이 조문하는 듯하였다. 중대의 서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는데, 그다지 크지는 않았으나 매우 화려하였다. 한참동안 피로를 풀며 오래도록 머물렀다.
지팡이를 짚고 수백 보를 내려오니 길 왼쪽에‘옥계(玉溪)’라는 샘이 하나 있었다. 물맛이 매우 달고 부드러웠다. 오대의 샘에는 각각 이름이 있는데, 동쪽은 청계(靑溪), 남쪽은 총명(聰明), 북쪽은 감로(甘露), 서쪽은 우통(于筒)으로 모두 이름난 샘이다. 그 중에서 우통은 한강(漢江)의 발원지이다.
(원문)
蓋是山凡五臺, 東曰滿月山, 南曰麒麟山, 西曰長嶺山, 北曰象王山, 中爲地爐山. 地爐居五臺之中, 衆山拱抱, 勢若朝宗. 中臺之西, 有寂滅寶宮, 不甚宏大, 而窮極侈靡. 息疲良久.
扶筇下數百步, 路左有一泉, 名爲玉溪. 味頗甘軟. 五臺泉各有號, 東爲靑溪, 南爲聰明, 北爲甘露, 西爲于筒, 皆名泉, 而于筒乃漢江所發源也. 玉溪之西有小菴, 扁以金夢. 數僧居之. 晨昏瓣香于寂滅宮. 高險空寂之地. 無所求而爲此者, 非至誠能之乎? 移此心而嚮道, 亦何所不至乎? 惜乎! 其溺於外敎也.
至上院, 院東有應眞閣. 閣之東有樹, 一大一小, 葉如側栢而柔. 僧言此乃懶翁手植, 而翁去時謂曰 “此木死吾當死. 死而復生, 吾復出世.” 數十年前忽枯死, 今復生葉. 陪吏亦言見其柯葉朽槁云. 少頃下山, 還到月精寺.
3) 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
• 낙전당(樂全堂) 신익성(申翊聖,1588-1644)
우동수(于同水)는 하나의 작은 절구 정도인데도 한강의 근원이 되니 이상했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물이 아주 특이하다고 하는데 내가 한 모금 마셔보니 달고 차가웠으며 차를 끓여 마시니 더욱 좋았다.
(원문)
五臺之大, 比金剛不翅齊鄒, 而其峯巒圓肥, 水石無奇勝處. 唯于同水一小臼, 而爲漢源者, 異矣. 世傳此水殊異, 余爲一喢甘洌, 煮茶尤佳.
4) 오대산기(五臺山記)
• 미수 허목(許穆)
오대산은 창해(蒼海)의 서쪽 140리 지점에 있다. 오대산 북쪽은 설악산인데, 옛 예맥(獩貊) 지역이다. 산이 높고 크며 골짜기가 깊어서 기운이 쌓인 것이 많은바, 상왕(象王)ㆍ지로(智爐)ㆍ청계(靑溪)ㆍ장령(長嶺)ㆍ기린(麒麟) 등 다섯 개의 산이 있고, 정상에 모두 대(臺)가 있어서 오대(五臺)라고 부르는데, 장령봉의 우통수(于筒水)는 영험 있는 샘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산중의 물과 합류하여 기린봉 동쪽 골짜기에 이르러 반야연(般若淵)이 되고, 월정(月井) 아래에 이르러 금강연(金剛淵)이 되니, 한강의 발원지이다.
(원문)
長嶺于筒之水。稱神泉。與山中之水合流。至麒麟東壑。爲般若淵。月井下爲金剛淵。漢水之源。
중대에서 조금 내려오면 사자암(獅子庵)이 있는데 우리 태상신무왕(太上神武王 태조)이 창건한 것으로,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권근(權近)에게 명하여 사자암기(獅子庵記)를 짓게 하였다. 옥정(玉井)이 있는데 아래로 흘러 옥계(玉溪)가 된다.북대 동남쪽이 만월봉(滿月峯)이고 그 북쪽이 설악산이다. 만월봉의 정상이 동대(東臺)이고, 동대에서 흐르는 물이 청계(靑溪)가 된다. 동대에 올라 붉은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았다.
상왕산 서남쪽이 장령봉(長嶺峯)이고 그 위가 서대(西臺)이다. 서대에는 신정(神井)에서 샘물을 길어오는데 이를 우통수(于筒水)라고 이르는바, 한송정(寒松亭)의 선정(仙井)과 함께 영험 있는 샘으로 알려져 있다.
장령봉 동남쪽이 기린봉(麒麟峯)이고 그 위가 남대(南臺)이다. 그 남쪽 기슭에 영감사(靈鑑寺)가 있는데, 이곳에 사책(史冊)을 보관하고 있다. 상원사(上院寺)는 지로봉 남쪽 기슭에 있으니, 산중의 아름다운 사찰이다.
(원문)
北臺東南爲滿月。其北雪嶽。滿月絶頂爲東臺。東臺之水。爲靑溪。登東臺。望赤海出日。象王西南爲長嶺。其上西臺。西臺汲神井。謂之于筒之水。與寒松仙井幷稱靈泉。長嶺東南爲麒麟。其上南臺。其南麓有靈鑑寺。藏史於此。上院。在地爐南麓。山中佳寺。東隅有大木。枝幹赤。葉類檜。霜隕則葉凋。謂之老杉。
5) 국역 이이 율곡전서
○ 冷冷石竇泉【竽筒水在西臺水精菴】 돌 틈에 흐르는 차가운 샘물,
<남대(南臺)·서대(西臺)·중대(中臺)에서 노닐고 상원사(上院寺)에서 묵다>
【우통수(竽筒水)가 서대(西臺) 수정암(水精菴)에 있다.】
一飮遺世情。 한 번 마시니 세상일 다 잊고.
禪房坐蒲團, 선방에서 포단(蒲團) ※자리에 앉으니,
灑落魂夢淸。 상쾌한 기분 꿈마저 맑구려.
<※ 포단(蒲團)- 승려(僧侶)들이 깔고 앉는 방석. 부들로 둥글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顧况, 宿湖邊山寺詩)>
6) 채제공 번암집
○〔于筒水〕 {우통수}
君子有心源 군자에게 마음의 근원이 있어
以是推四海 이것으로 사해까지 미뤄 가나니
君看于筒涓 그대 보라 졸졸대는 우통의 물이
去爲江漢大 흘러가서 드넓은 강이 되는 걸
우통수(于筒水) : 오대산의 서대(西臺) 장령봉(長嶺峯) 밑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곳이다.
7) 이민구 동주집(東州集)
우통수〔于筒水〕 우통수는 서대 백련암 동북쪽 백보 지점에 있다. 돌을 쪼아 우물을 만들었는데 등나무 덩굴이 덮어 가려서 산승 중에도 아는 자가 드물었다. 백련암 동쪽에 샘이 있어 또한 우통수라고 부르는데 진짜가 아니다.
○〔取于筒水煎茶傍有小史曰飮此令人聰明笑而書之〕
우통수를 길어서 차를 끓였다. 옆에 있던 소사가
“이 물을 마시면 총명해진다.”라고 하기에 웃으며 시를 쓰다
성스런 물이 인성을 바꿔서 聖水移人性
탁한 성품을 맑게 한다네 能令濁者淸
찻잔 내려놓고 마시고 싶지 않으니 停甌不欲飮
나는 본래 총명함 싫어서지 我自厭聰明
○ 冷冷石竇泉【竽筒水在西臺水精菴】
一飮遺世情。
禪房坐蒲團,
灑落魂夢淸。
○ 우통수〔于筒水〕
一脈寒泉醮齒香 한 줄기 찬 샘물 마시니 입안에 향기 돌고
虛明石甃澹天光 해맑은 돌우물에 하늘빛 어른댄다
憐渠不盡朝宗意 어여쁘다 도랑물이 조종의 뜻 사라지지 않아
日夜西流繞漢陽 밤낮 서쪽으로 흘러 한양을 감싸네
※[주] 도랑물이 …… 감싸네 :
우통수 물이 한강으로 흘러가는 것을 말한 것이다. 조종(朝宗)은 제 후와 백관이 제왕에게 조회하는 것을 말하는데, 보통 온갖 물줄기가 바다로 흐르는 것을 표현하는 말로 쓰인다.《서경》〈우공(禹貢)〉에 “강한이 바다로 흘러간다.〔江漢朝宗于海〕”라는 말이 있다.
8) 정두경 동명집(東溟集)
○ 현 상인을 전송하다 2수 〔送玄上人 二首〕
妙法從來不二門 묘한 불법 예로부터 불이문인 줄 알거니
五臺歸去與誰論 오대산에 돌아가면 뉘와 함께 논하려나
山前正有于筒水 오대산의 산 앞에는 우통수의 물 있거니
漢水江心是發源 한강수의 물은 바로 거기에서 발원하네
翠壁蒼崖一萬重 푸른 절벽 파란 단애 일만 겹이 겹치어서
蓮花持向最高峯 연꽃 모양 이루어서 가장 높은 봉 향하네
蓮花持向最高峯 잔을 타고 강 건너자 바람 파도 고요하니
蓮花持向最高峯 문수께서 못된 독룡 억누를 수 있으리라
※[주1] 불이문(不二門) :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법문(不二法門)으로, 상 대 차별을 없애고 절대 차별 없는 이치를 나타내는 법문이다.
※[주2] 잔을 …… 고요하니 : 진(晉)나라 때 기주(冀州) 출신의 어떤 승이 항상 나무로 만든 잔 〔盃〕을 타고 물을 건너다녔으므로 사람들이 그 승을 배도 화상(盃 渡和尙)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세세한 행실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신 통력이 탁월하였다고 한다.
※[주3] 문수(文殊)께서 …… 있으리라 : 인욕(人慾)을 억제하고 불법(佛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문수는 문수보살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현 상인(玄上人)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독룡(毒龍)은 독이 있는 용으로, 불가(佛家)에서는 흔 히 이를 사람의 욕심에 비유하기도 한다.
9) 윤증 명재집
○ 금강연(金剛淵)에서 율곡(栗谷)의 시에 차운하다
新羅世後二千年 신라 시대 이후로 이천 년이 흘렀으니
王子修禪事杳然 왕자가 수선한 일 알 수가 없지마는
唯有于筒泉底水 유일하게 우통의 샘물만은 남아 있어
月精門外湛空淵 월정사 문밖에 맑은 못을 이루었네
10) 매월당 김시습은 서대(西臺)라는 시
○ 서대(西臺)
드넓은 부처 말씀이 본이요 겉모습 아니고
금빛여래는 헛것인 듯 참이니
산빛을 보고 소선은 일찍이 게송을 남기고
솔가지 그린 위언은 이미 신묘함을 전했네.
우통의 맑은 물은 깨끗함이 옥과 같고
상서로운 향화 부처님 말씀처럼 큼이라
어슷비슷 여러 봉우리 구름 속에 보이니
천녀가 옷깃 여미고 새벽 공양 올리네.
11)“오대산 유람기” 김창흡
오대산의 샘물은 각기 이름이 있다. 중대는 옥계수(玉溪水)라고 하며 서쪽은 우통수, 동쪽은 청계수(靑溪水), 북쪽은 감로수(甘露水)이며 남쪽은 총명수(聰明水)라 한다.
1) 이 산은 그릇으로 비유하자면 대단히 덕이 높은 군자와도 같아서 조금도 가볍거나 거친 태(態)가 없다.
2) 깊숙한 숲속의 커다란 나무는 크기가 몇 아름씩이나 되어 구름에 닿고 해를 가릴 정도에 이른다. 청한자(淸寒子) 김시습은 <초목이 우거져 속인이 드물게 찾는 곳으로는 오대산이 유심하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러하다.
3) 암자가 숲 깊숙하게 자리했으니 어디에 있든지 결하(結夏; 하안거)할만 하다. 이것이 또한오대산의 뛰어남을 이룬다.
4) 샘물의 맛이 특출하게 좋은데 이런 물맛을 맛 보기는 다른 산에서는 드문 일이니 이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뛰어남이다.
12) 이유원 임하필기
○ 오대산(五臺山)의 물을 양자강(揚子江)에 비유하다
권근(權近)이 말하기를,“오대산 서대(西臺) 밑에 용솟음치는 샘이 있어서 여기서 물이 펑펑 솟아오르는데 그 색깔이나 맛이 보통의 물과는 다르다. 그래서 이를 우통수(于筒水)라고 하는데 이 물이 서쪽으로
흘러서 수백 리를 지나면서 한강(漢江)이 된다. 이 한강이 합쳐진 뭇 물줄기들을 받아들이는데 그중에 우통수가 가운데의 줄기를 이루는바, 이것은 마치 중국의 양자강과 같다.” 하였다.
13) 허균은 (于筒在五臺山山院寺側是漢江上流爲東國第一泉)
(우통은 오대산 상원사 곁에 있는데 한강의 상류에 있으며 나라안에 으뜸가는 샘이다)
호를 惺所라고 스스로 영리할 성자를 쓰던 허균은 (1569~1618)이 남긴 화사명시(和思暝詩)중 "소회"를 쓰면서 소자정에 답한 운을 쓰다(書惺用答邵資政韻)끝 부분에 어느 봄날이 끝날 무렵 차를 끓여 갈증을 달래고 싶지만 어찌하면 우통수의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14) 홍만종이 지은 <소화시평>에는 오대산이 한강의 발원지임을 암시하는 시를 찾을 수 있다.
4, 우통수는 역사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하여야 한다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샘이며, 금강연이 발원지이고 봄.가을에는 지방의 관원으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대목도 있다. 이지누 씨는“이런 내용은 권근의 기문에서 밝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종실록에는 '오대산 수정암 옆에 물이 솟아나오는 샘이 있는데 색과 맛이 보통과 다르고 그 무게 또한 그러하여 우통수라 한다. 우통수는 금강연이 되고 한수의 근원이 된다'라고 기록돼 있다.
월정사성보박물관 학예실장 자현스님은‘불교에서 바라본 제례의식, 생명수 사상’에 대해 고찰했다. 자현스님은“우통수와 금강연과 관련된 기록에서 실질적인 한강의 시원이란 부분과 우통수의 색과 맛, 그리고 무게가 다른 물들과 달랐다는 신성적인 특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금강이라는 명칭이 또 불교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한강의 시원문제와 불교는 불가분의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통수는 실록과 지리지의 문헌에서 기록에서와 조선시대 관동을 유람하던 선비들은 모두 다 한강의 발원지라 서대의 우통수에 올라 그 물맛까지도 기록들 하고 있다. 우통수는 삼국유사는 물론 조선조 세종실록과 연려실기술 등 무려 20여개의 문헌에 기록될 정도로 국내 샘물 중 가장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으나 제대로 보전되지 않아 역사적 가치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평창군은 선비들의 발자취가 어린 우통수에 대한 역사 및 문화적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 이 시대에서는 스토리텔링을 통한 체험관광 명소로 조성하여야 할 것이다.
5, 우통수가 표시된 조선 고지도 (6종)
대동방어전도 대동여지도
조선지도 동여도
청구요람 청구도
※ 검룡소의 문제
남한강의 시원지는 오대산 오대천 위쪽의 우통수라고 알려져 왔는데, 국립지리원이 1987년에 실측 조사한 결과 삼척시 금대봉의 검룡소가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었다.
검룡소는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계곡으로 1986년에 태백시와 태백문화원에서 메워져 있던 것을 재정비한 후 소를 만들어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검룡소란 이름을 검룡소가 한강의 방원지라고 부상될 때 태백문화원장이 이름 지었다 한다.그 이전에는 검룡소라는 이름 자체도 없었기에『대동여지도』에서도 태백산 근처를 보면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는 그려져 있으나 검룡소는 나타나지 않는다. 조선시대 지리지에서는 검룡소를 한강 발원지로 기록하지는 않았다. 검룡소에는 단 한줄의 역사도 없었다. 위의 연려실기술의 인용에서 보듯“두타산 북림계(北臨溪)와 삼척의 죽현(竹峴) 물과 합해서 남쪽으로 흐르는데, 한강이 비록 여러 곳의 물을 받아 들였지만 우통수가 그 주류이다.”라고 모든 역사서에서는 우통수를 한강의 발원지라 하며, 검룡소는 근자에 만들어진 이름이며 역사에 흔적조차 없다.
태백에서 정선으로 내려가는 골지천에 검룡소의 물은 합류되어 골지천을 타고 광동댐에 저수되어 수량이 부족한 태백 남부의 태백,삼척, 영월 ,정선등지의 용수를 마련키 위해 1988년 삼척 하장면의 골지천에 광동댐을 막아 용수를 저장하였다.
여기서 문제는 2009년 태풍의 예상으로 댐의 물을 모두 방류하고 가뭄이 들자 당시 뉴스에서 태백을 검색해보면 많은 기사에서“ 강원 남부지역의 끝 모를 가뭄이 주민들의 식수난은 물론 생태계까지 파괴하면서 재앙수준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강 발원지의 꼬리치레 도롱뇽이 집단 폐사했고 민물고기와 개구리도 메마른 하천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등 광동댐 자체가 바닥을 드러내고 메말라 갈라져 있다.
몇 개월동안 주민들은 생수를 받아 생활하는 점을 볼 수 있으며, 이상의 뉴스들에 보듯 이것은 가뭄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물이 부족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검룡소도 우통수와 마찬가지로 산새는 토산지역의 르스트 지형으로 석회암 절리를 따라 흐르는 여러 곳의 웅덩이를 마련하고 그것이 검룡소로 모여 수로로 18km를 흘러서 골지천에 합류된다. 이곳이나 골지천도 카르스트지형이라 상시 마르는 점도 있다. 하지만 위에 인용한 역사 사료들을 보면 한강 발원지, 우통수(于筒水)를 한강의 발원지로 보는 데는 두 가지 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
◎ 강수계 행정관리 분
조선시대 지리지인 『세종실록』 지리지를 비롯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택리지』『대동지지』『강원도지』『여지도서』등과 개인 문집 가운데 이익(李靈)의『성호사설(星湖樓說)』과 이긍익의『연려실기술』등은 모두가 한강의 발원지를 오대산 우통수로 기록해 놓고 있다. 『대동여지도』에서도 태백산 근처를 보면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는 그려져 있으나 검룡소는 나타나지 않는다. 조선시대 지리지에서는 검룡소를 한강 발원지로 기록하지는 않았다.
우통수가 한강 발원지라는 또다른 근거는 한강 지류와 관련한 것이다. 한강이 국가하천으로 지정된 구간은 상류가 영월 동강댐 예정지까지이고, 그 이상은 지방 1급 하천으로 분류되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오대천과 송천이다. 검룡소쪽에서 내려오는 골지천은 지방1급하천으로 갈라지는 2지류이기 때문에 한강의 발원지에 포함될 없는 지류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한강 줄기의 지방1급하천 가운데 물의 양이 많고 길이가 긴 오대천의 발원지가 곧 한강의 발원지이므로 우통수가 맞다는 주장이다.
<태백시청 시민게시판에 기고의 글>
소통참여
시민게시판
작성일 2021, 09, 01
<골지천 평상시 모습>
(첨부파일 ; 20210731_121722.jpg) 바닥을 드러낸 지천 사진.
※ 소통 참여의 게시글 “검용소는 한강발원지가 될 자격이 없다“의 이해
<골지천과 환선굴의 위치>
위 투고 내용은 검룡소에서 나온 물이 골지천에 합류되어 광동호 오기까지엔 건천수로 일년 중 장머철에 일주일 정도만 골지천에 전체적으로 흐르며 나머지 시간에는 땅속으로 스며들어 땅속에서 반대쪽 방향인 환선굴 쪽으로 빠져 가고 있다는 내용으로 따라서 골지천 주변의 주민의 투고로 이 목적은 건천수가 되는 지점서부터 콘크리트 수로등의 채널을 만들어 물의 방향을 골지천으로 돌려달라는 청원의 글이다.
이러한 추정의 이야기는 전쯤 필자의 글에서 이미 게시되고 있었습니다.
(2009년 황지의 가뭄에 대한 뉴스들)
◈ 강원 남부 가뭄..생태계 재앙 확산
입력 2009.03.04. 16:19 수정 2009.03.04.
◎송세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리포트]
20여 종의 양서·파충류가 서식하는 한강 발원지 태백 검룡소 일대 계곡.계속된 가뭄으로 계곡물이 바짝 말라 곳곳이 자갈밭으로 변했습니다.그나마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는 꼬리치레도롱뇽과 개구리 30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습니다..<중략>
◎[인터뷰:홍진표, 태백생명의숲 사무국장]
"가뭄을 통해서 물줄기가 끊겨지면서 좁은 공간에 여러 아주 많은 개체들이 몰리면서 용존 산소량이라든지 먹이의 문제라든 지 이런게 문제가 생기고..."
하천 물이 말라붙어 바닥을 드러낸 골지천 13km구간도 수생동물의 무덤이 됐습니다.바위틈에도, 얼음 밑에도 죽은 민물고기와 다슬기가 널브러져 있습니다.이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도 집단 폐사했습니다.웅덩이를 가득 메운 물고기 떼는 물길이 끊겨 꼼짝없이 갇혀 버렸습니다.물이 거의 바닥난 웅덩이에선 물고기들이 고통스러운 듯 애처롭게 파닥입니다. 물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는 물고기와 개구리가 떼를 지어 모여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 가뭄은 5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번식기를 맞은 수생동물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통수(于筒水)는 한강의 발원지임에 변함이 없다.“
高 柱 浩 2018. 10. 19. 10:30
(부분 발췌분)
2009년 황지의 가뭄에 대한 뉴스들)들을 보면은..
이 뉴스들을 보면 골지천의 하천은 광동댐 만든 다음부터 물의 채널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수로란 점이다 따라서 만약, 이제 우통수 아래에 인위적으로 실오라기 같은 물수로의 채널이나 호수에 연결하여 100km 만들고 우통수의 물을 이곳 수로를 통과하여 한강으로 흘러 보낸다면 이는 현재의 검용소의 거리보다는 약 7~80km 더 길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람들은 황지의 광동댐 수로는 식수의 필요에 의해 만들었지만 우통수의 수로 호수나 채널은 장난이라고 비난한들 두 개다 모두 인위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립지리원은 일년 365일중에 일주일만 적용되는 건천수의 마른장광도 본류의 물은 지하에서 다른 방향으로 흐르다 지하로 며들 때 국립지리원의 기록 측정의 명료한 자료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