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갑산(琚瑟岬山) 의 위치 연구
平昌 歷史硏究者 高 柱 浩
거슬갑산은 강원도 7대명산으로 평창읍 도돈리의 오도산이 거슬갑산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고증적 고찰연구로 현재의 백덕산이 원래 거슬갑산이라는 점을 제시하며, 다음으로 수정산을 평창의 진산으로 보았슬 때 백덕산 (거슬갑산 )은 이에 대한 증조산이 되는 점으로 거슬갑산은 수정산의 연구에 선행되는 문제를 가진다.
또한 평창 사서라 하는 『길위의 역사』책에서는 거슬갑산에 대하여 세종때의 기록으로 단묘와 신패를 마련하다는 동국여지승람의 원주목의 주천현의 거슬갑산(속칭 백덕산)인 기록을 도돈의 고지도와 답사 등으로 오판하여 도돈리의 거슬갑산에서 기우제를 지낸 것으로 결론을 가지는 실수를 하기에 이 책의 기록은 오류임을 공지하기에 이 역사는 평창의 문화사로 불가한 점을 공지한다.
『길위의 역사』책은 김진백 저, 정원대 공동답사. 2009.로서 이 책은 일부를 제외한 전반적인 역사 조명이 잘못되어 있다. 평창은 예, 맥이 아니라 외부에서 온 점이라 하는데 당시 마. 진, 변한의 삼한 자체가 고조선으로 고조선 민족은 예맥족이다. 또한 산성 답사를 자세하게 하였지만 그 이론적인 모습은 없는바 노산성에는 치가 있다. 치(雉)는 꿩이 앉아서 멀리 보듯이 성에 튀어나온 부위로 치는 고조선의 선대의 요하문명 홍산유적에서부터 나타나는 우리민족의 역사로서 중국은 수천년후 당나라의 서안에서 나타난다.
또한 노산성은 퇴메식 산성이지만 읍치 관아의 성이란 점으로 평창에서는 너무나 노산성에 대해서도 논고가 약한바 후일에 논고합니다.
◆ 도돈리의 거슬갑산이란?
◎ 오도산이 거슬갑산으로 불리어지는 점의 이해
현재에 통용되는 거슬갑산(琚瑟岬山) 은 평창읍 도돈리 산 46번지로 해발 540m 이다, 산 정상에는 평창군에서 세운 오도산(悟道)이란 표지판이 있는데 오도산 아랫줄에 괄호속에 작은 글자로 거슬갑산이라 기명되어 있다. 평창에서는 이러한 거슬갑산이 강원도 7대 명산이라 한다. 거슬갑산이 강원 7대 명산이라 하면서 오도산이란 표지판에 아랫줄에 副名으로 쓰여져서 괄시를 받고있다면 과연 7대 명산이었던 위상은 무엇일까? 자못 궁금하다.
◎ 오도산 (悟道山) 의 뜻은 1620년경 평창 이씨 이진흡이 입산 수도하여 도를 깨우쳤다고 하여 오도산으로 불리어지고 있다.(출처: 평창읍지)
◎ 마을 주민들은 오도산 (거슬갑산)을 거슬치 (琚瑟峙), 또는 거슬재. 거스래재로 부르기도 했으며 산 정상에는 서낭당이 있다.
이곳의 지형은 평창강이 감입곡류 하천으로 큰 수태극을 그리며 둥그런 산세의 오도산을 감아돈다. 이 땅에는 과거 대야촌이란 지명을 가진 대상리, 대하리 마을이 오도산을 뒤로하며 천변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 이곳의 오도산이 과거 강원도 7대 명산이라 알려지고 있지만 지명이란 역사적 사건의 특이성이나 연형상등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되는데, 도돈리의 거슬갑산의 내력은 없는 듯하며 찾아볼 수가 없다.
◆ 강원도 7대 명산이란 이야기는 조선 초「동국여지승람」의 강원편 기록에 의한 것이다. 그 내용으로는 우선 아래에서 문헌속의 거슬갑산(琚瑟岬山)에 대한 문헌적 기록으로는 2건이 있다. 이 모두 인용한다.
◎ "동국여지승람 “ 강원도 산천조 (인용 1)
명산(名山)은 치악(雉岳)이 원주 동쪽에 있고, 거슬갑산(琚瑟岬山)이【속칭 백덕산 (白德山).】원주 임내 주천현 (酒泉縣) 북쪽에 있으며, 의관령(義館嶺)이 회양부(淮陽府) 북쪽에 있고, 금강산(金剛山)이【일명 개골(皆骨), 또는 풍악(楓岳)이라 한다.】 회양 임내 장양현 (長楊縣) 동쪽에 있으며, 오대산(五臺山)이 강릉부 (江陵府) 서쪽에 있고, 팔봉산 (八峯山)이 홍천현 (洪川縣) 서쪽에 있으며, 태백산 (太伯山)이 삼척부 (三陟府 ) 서쪽에 있다.
<원문> 名山曰 雉岳 , 在 原州 東, 琚瑟岬山 在 原州 任內 酒泉縣 北, 【俗號白德山。】 義館嶺 在 淮陽府 北, 金剛山 在 淮陽 任內 長楊縣 東, 【一名皆骨 , 一名楓岳。】 五臺山 在 江陵府 西, 八峯山 在 洪川縣 西, 太伯山 在 三陟府 西 。<세종실록 76권, 세종 19년 3월 13일 계묘 2번째기사 1437년 명 정통(正統 ) 2년>
◎ 인용2
(세종 19년 (1437)년 } 예조에서 악·해·독·산천의 단묘와 신패의 제도를 상정하다. 원주 관할 안의 주천현(酒泉縣) 거슬갑산(琚瑟岬山)은 사묘가 현내의 평지에 있고, 위판에 거슬갑산지신위 (琚瑟岬山之神位)라고 썼는데, 청하건대 ,‘위 (位)’자는 삭제하고, 다시 산기슭에 땅을 가려서 단을 설치할 것.
<원문> 原州任內酒泉縣 琚瑟岬山祠廟, 在縣內平地, 位版書琚瑟岬山之神位, 請削位字, 更於山麓, 擇地設壇 。
위 인용부에 강원도 7대 명산을 보면 오도산이 거슬갑산이라 하여 여기에 나열된 7대명산 대열에 속할 수 있슬까 하는 점은 "거슬갑산 (琚瑟岬山 )이【속칭 백덕산(白德山).】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거슬갑산( 속칭 백덕산)은 원주 임내 주천현(酒泉縣) 북쪽에 있다 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도돈의 오도산을 거슬갑산이라 하는 두개의 지명의 혼동을 가져오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연구, 고찰해 보기로 한다 .
◆ 두 곳의 거슬갑산의 비교 연구
◎ 백덕산 (속칭 거슬갑산)의 고찰
백덕산(白德山)은 1,350m로 영월과 평창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영월군 무릉도원면 산 1-1 번지이며 바로 옆의 사재산은 평창읍 원당리로 갈라진다 . 백덕산은 백두대간의 중추적인 오대산에서 서편의 지맥을 타고 계방산 - 태기산 - 백덕산 - 치악산으로 내려 흐르는 산세에 위치하며, 백덕산은 사재산, 사자산, 수정산, 구룡대산, 갈산의 1,000m의 산으로 둘러쌓인 산지로 강원도 남서부의 지붕을 이루며, 이로써 백덕산은 그 정상부에서 안흥, 사자산, 수정산의 위쪽(원당리)와 아래쪽(입탄리)등 여러 방향의 길로 갈라진다고 한다 .
우리나라의 지형은 대부분 습곡산지 지형이기에 우리민족은 산 기슭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왔기에 양주동 박사는 단군은 산 위에 살던 민족이라고 표현할 만큼 산과 접하며, 산을 숭상하고 살아왔기에 산악숭배의 진산사상(鎭山思想)을 가지고 있다.
◎ 도돈리 오도산의 거슬갑산
조선의 고지도에서 분명 백덕산은 빠지지 않는다 . 그리고 평창편 지도에서는 남부에 거슬갑산이 명기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지도들은 18C 중엽 이후에 정상기의 지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은 1530 년에 편찬되었다 (물론 성종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첫 장에 전국지도가 있고, 각 도별 첫 장에 도별지도가 있다.)
고지도는 전통시대에 지도로서 축적과 윤곽을 중시하거나 회화적 표현을 하는 점에서 1,900 년대 이후 근대적 측량에 의한 정확성을 가지는 지도와는 거리가 있다. 그 예로서는 전국적으로 고지도에는 무수한 오류를 가지는 바 실례로 홍천의 강은 마을 건너편으로 다르게 그려져 있다. 고지도는 제작자가 모두 답사를 하고 그리지 않기에 지리적 정확성보다는 그 지방의 역사 내용들과 주기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대동여지도는 별도로 대동地誌에 좋은 정보도 가지기에 이를 활용할 수가 있다.
(도돈 옥녀봉에서 보이는 백덕산과 수정산 )
평창읍에서는 백덕산을 서산너머 뒷산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해동지도 (부분도)에서 보듯 모든 고지도에서 거슬갑산(백덕산)은 좌측 중간이 아니라 아래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 거슬갑산 (琚瑟岬山)의 뜻은 무엇일까 ?
정원대는 이 지방에서는 거슬갑산은 고봉에 담긴 밥 같다고 한다고 하는데, 또한 길위에 역사책에서는 양주동 박사설 등 갖은 이해를 하지만 거슬갑산의 사전적 의미로는
거(琚)는 패옥 거자로서 패옥은 왕, 조복을 입을 때 좌, 우로 늘이던 장식.
슬(瑟)은 큰 거문고를 뜻함.
갑(岬)은 산허리 갑.
거슬갑산에 필자의 이해로는 ,1351m의 백덕산 주변으로는 천여m 급의 사자산, 사재산, 수정산등 여러 산들이 장식처렵 겹겹이 백덕산의 산허리를 두르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있다. 하지만, 도돈리의 오도산을 거슬갑산이라고 할 경우 그 뜻 풀이는 불가한 지명이다.
그리고 슬(瑟)자는예맥의 예족이 북방계열 강릉은 당시에 하슬라라고 할때 슬(瑟)자가 사용되었듯 신라때 백덕산으로 개명하기 이전에 백덕산을 거슬갑산으로 불리워졌다고 사료된다 .
문무백관의 조복장식의 거(琚)
※ (주) 학자들의 일부 논문에서는 거슬갑산을 거슬압산이라고 쓰고 있는 바 이는 押자는 감독할 갑, 또는 누를 압자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논문에서도 한글로 압자로 쓴 예도 자주 보이는데 , 이 점은 이해가 곤란하다.
※ 동국여지승람 강원편에서는 산허리 갑(岬)자를 사용하였으나, 조선 말기 모든 고지도에서 거슬갑산은 押자를 쓰고 있다. 원문을 못 따르고 강원도 예맥지방에서는 押의 지명을 다수 쓰고 있기에 오기한 듯 하다. 押자는 예, 맥지방에 많이 나타나는 지명으로 嶽(큰 산악)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물론 押자는 예맥어로 백제 (삼한의 마한)이 고착된 언어로 강원지방에서는 押자를 썼던 지방이 여러지역에 보인다.
◆ 도돈리의 거슬갑산
위에서 논했듯이 백덕산이 이전에는 거슬갑산으로 지명된 점은 1,350m의 백덕산 주위로 천여m의 사자산, 사재산, 수정산등 여러 산이 백덕산의 허리를 잔주름의 패옥을 두루고 있기때문에 거슬갑산으로 불린 점으로 사료된다. 하지만 도돈리의 오도산을 거슬갑산이라 할때는 그 지명적 의미는 갖지 못한다. 따라서 도돈리에는 맞지도 않는 거슬갑산으로 불리게 된 점은 예전에 고지도는 작성자가 현장 답사도 없이 그렸기에 전국적으로, 쉽게는 홍천 고지도에서도 마을이 강 건너편에 있게 그려지는등 이러한 오류아닌가 추정한다.
평창 도돈리의 오도산은 구한말 쯤에 만들어진 이름인 듯하고, 이곳이 거슬갑산이었다는 전설이나 유래도 없고, 또한 거슬갑산의 의미로는 어떠한 역사적 내용이 따르지 않는다.
위 두번째 인용부 “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산천조” 편에서 거슬갑산의 사묘가 평지에 있는데 위판을 수정하여 산 기슭에 단을 설치하라는 예조의 명은 그 기록이 있다면 당시 실록에 주천현 편에 기록될 사항이며 평창군 실록에는 그러한 기록은 없다. 여기서 단을 설치하라는 기록으로 보면 거슬갑산에는 시산제를 지내는 연원으로 보이는 바, 지금 평창읍 도돈리의 오도산 (거슬갑)에서는 이러한 시산제의 기록은 없고 동국여지승람에 최초로 기명하는 백덕산(속칭 거슬갑산)은 기우제를 지낸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 평창조에서는 평창은 군 1리의 수정산( 증황/ 시루목의 불근당으로 추정)에서 비를 비는 기우제를 지낸다고 기록하였기에 수정산과 거슬갑산의 양쪽에서 모두 기우제를 지낸다면 두 개의 체제 행정 관할인 듯, 백덕산과 수정산이 각기 기우제를 지내는 모습의 기록도 구분해 볼 수 있다 . 수정산은 평창의 진산이라는 기록에서, 진산이란 용어나 기우제도 넓게 보아서는 조선사회는 풍수적 사상이 저변에 깔려서 진산이란 용어가 실록의 지리지에까지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풍수라 하면 금시발복의 명당론으로 누구나 이야기도 많겠치만, 풍수는 자연속에 살고있는 인간으로서 자연을 합리화 하려는 생각을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수정산 편에서 진산이란 용어의 설명은 결국 풍수사상에 입각하는 설명으로 밖에는 없습니다. 평창의 지형과 수태극까지도 폭넓게 조명해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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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슬갑산의 오류들
<동국여지승람의 강원도 산천조>에서는 "거슬갑산 (琚瑟岬山 )이【속칭 백덕산(白德山).】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원주목 산천조>에서는 거슬갑산(琚瑟岬山) 주천현(酒泉縣) 북쪽 30리에 있다. 백덕산(白德山) 주의 동쪽 30리에 있다.
즉 백덕산과 거슬갑산은 다른 산으로 보고있다. 여기서는 만약에 백덕산과 거슬갑산을 두개의 산으로 볼 수는 있어도 장암산이 속칭 삼방산이라 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거슬갑산( 속칭 백덕산)이라 한 점이 맞으며 거슬갑산의 고대의 예맥어로 불리어지다가 신라 경덕왕 17년에 전국의 지명이 향음으로 바뀌듯이 신라시대의 白자는 희다라는 뜻이 아니라 크다(大)의 개념을 가지는 바 백두산, 장백이. 장백산 등의 뜻이 크다란 개념이다.
고대어들은 작은 (小)의 개념 용어는 미약하나 모두 크다는 의미를 가진다.
◎ 미탄의 呑(삼킬 탄)자는 마한어로서 많은 지명에 나타난다.
◎ 홍(弘) 자는 넓다라는 의미로 홍성 등에 나타난다.
◎ 한(翰) 날개 한자로 넓고 큰 모양 한자로 한림 등에 나타난다.
◎ 한치(寒峙) 성마령 앞의 높은 재로 이때의 한은 瀚(넓고 큰 한)을 서야하는데 한림에서처럼 변형되 쓰이고 있다. 따라서 한치(寒峙)의 한자는 일차적으로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세계에서 큰 재라는 의미를 가진다.
어느 향토사가는 한문 2급이라며 문화원까지 가서 한치를 추울 한자라는데 그건 옥편에도 있다. 하지만 한치가 추운 산이라면 여름 에도 춥고, 또 그 산만 추운 산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게 일차적이고 감각으로 느끼는 추움이란 2차적 요소이다. 본인은 한문 무급이 라 하잔소, 불만이 있으면 길바닥에 흘리지 말고 본인에게 연락바랍니다.
평창 지명지가 잘못이라고 무수히 이야기 하더만 요즘은 쏙 들어갔읍니까? 평창인문지리의 3종의 역사책은 과반의 역사가 틀리며, 오 논술인데 필지의 평창인문지리 비평글을 보시고 그 많은 오류들을 정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