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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아리랑

1)아리랑고개, 성마령을 답사한다면,,,<평창아라리의 이해>

 

1) 아리랑고개, 성마령을 답사한다면,,,<평창아라리의 이해>

 

후세백작 2018. 05.23:58  

 

<아리랑고개, 성마령을 답사한다면,,>

 

이번 오월엔 평창문화원에서 성마령을 답사한다 합니다. 

평창을 넘는 성마령의 일반적인 역사속의 애환을 짚어보는것인지 그 방문지의 목적이나 내용은 모르지만 어쩌면

평창아라리의 관심으로서는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습니다.

 

성마령은 평창과 정성의 군역(郡域)의 경게로 평창땅은 동쪽으로 대관령, 안흥쪽의 문재, 전재. 영월쪽의 고도치재

(일명 원동재)와 더블어 정선을 넘나들던 嶺으로 기실 성마령은 정선의 관문으로 정선은 가장 오지로 백파령,성마령,

마전치(비행기재), 반점치(강릉쪽),  백봉령을 넘어야 외부로 향할 수 있는 길이 트이는 곳으로 기실 정선은 성마령을 

넘어야 제천, 원주, 서울로 향할 수 있는 정선의 관문이며 평창으로서는 영서지방의 동일한 지리적 관계에 놓여 동일

문화권을 지향하는 후문정도의 위치에 있어 평창으로서는 그다지도 중요한 郡域은 아니란 점이다.

 

평창에서 정선길은 성마령과 마전치재 두길의 고개가 있는데 아마도 이를 구길과 신길로 부르는듯 하며, 이번

평창문화원의 답사의 의미나 범위, 내용은 잘 모르지만 조선시대 이곳을 넘어 정선군수로 부임하던 오흥목의 부인은

하도 높고 험하여 다시 돌아올 생각이 끔찍하여 눈물을 흘리며 "성마령 아실아실 관음베리"라고 한 수 읊었다 한다.

 

또한, 성마령은 평창의 뒷문으로 임란때는 왜구들이 백봉령을 넘어 정선에서 이길로 평창으로 넘어오는 한맺힌 역사도

간직한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비추어 보려고 가는 것인지 본인은 멀리서 그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성마령에 가면

평창과 정선 사이의 아리랑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슬 것이다.

 

정선인들은 이곳에다 10여년전 정선아리랑 시비를 세우고 도원문화의 정선 아리랑이 이곳을 통하여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이러한 진위 여부는 아래로 미루고 우선 평창의 역사 문화의 평창문화원에서 성마령을 답사한다면 자연 정선인들은

정선 아리랑 詩碑에 신경이 쓰일 것이고 평창인들이 무엇을 하는가 관심도 있슬듯 하다.

그런데 평창인들은 아무런 멘트도 없이 다녀갔다면 오히려 정선인들은 이 아리랑 시비를 평창도 인정한다고 더욱

힘주게 될 것이며 그로서 평창아리랑은  정선 아리랑의 부수적인 하위로 전락시킬 것이다.

 

2016년에 김연갑은 정선 아라리를 강원도 아라리로 개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바 근 평창, 횡성은 한 바운드리로

보고 아라리라가 아닌 어러리라 떠들고 있다. 이것은 바른 이해는 아닌것으로 사료되며 그가 정선 아리랑을 강원도

아라리로 둔갑하지는 이야기엔 이미 성마령, 백파령 시비로 평창아라리를 초토화 시켰다는 생각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남는다.

 

그러기에 평창의 역사, 문화의 그룹이 이곳을 답사한다면 평창아리랑에 대한 어떠한 입지적 표명을 남긴다면 더

좋을듯 하다.

 

 

<성마령 평창경걔 정선땅에 새운 정선 아리랑 시비>

 

정선아리랑은 강원대학교에서는 부설 정선아리랑 센타등 박만일 박사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연구도 되고 연구책자도

여러점 있지만 평창아리랑은 평창군이 평창아리랑 명명에 따른 평창아라리 가사 채집의 사설집 한권뿐이며 평창

아라리의 제 이론적 성격도 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평창아라리의 이론적 토대가 전무한 상태에서 본인은 부족하지만 한 줄이라도 제 이론의 성격을 쓰고자 함에 있어서

정선아리랑이 평창아리랑의 사설(辭說), 또한 평창아리랑의 이론적 모태나 발상지 자체도 정선 아라리가 흡수하여

와전시켜버렸기에 평창아리랑의 제 이론적 성격을 정립하기엔 평창아라리가 정선 아라리의 일부로 인식되는 점을

불식하여야 한다.

 

그러기엔 정선아라리의 논리적, 구조적 모순을 밝혀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앉고라도 평창아라리가 본 고장의 자연속에

삶을 표출하는 서정적 가사의 사설임을 직시하고 단 한줄이라도 감성적인 평창아라리 이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 평창아라리가 왜 중요한가 하는 의문에 답은 평창아라리에 보이는 평창인들의 정체성 모습이다. 천 오백여 수의

사설속에 이 고장 선조들의 소박하며 순후한 마음씨를 아름다운 가락에 담고있기 때문이다.

 

평창아라리는 영서지방 산간의 다양한 일과 놀이 문화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매기.나무하기등 산간의 들

농사보다 밭농사 위주의 혼자하는 일에서 스스로 흥을 돋구며 지루함을 달래며 또한 그 기능적 면에서도 일의 속도의

템포를 맞추는 효과를 가져오는등 아리랑의 선율적인 가락의 노랫소리 이전에 일상의 일과 삶의 전체를 아우르는

향토색 짙은 문화를 드러내는 정체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고장 후손들은 평창아라리의 문화는 이 지역 삶의 숨결임을 잊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강등학은 후렴이 있고없는 상황 즉, 평창과 정선의 경우에있어 후렴을 붙여 부르지 않는것은 산간노래의 양상이며

후렴을 넣어 부르는 것은 들의 노래의 양상으로 보았다.  또한 산간노래로 존재하던 아라리가 들의 노래로 기 기능적

확장을 이루었고, 이것은 그 생태적 환경이 변한 것에서 찾았다.

이렇게 본다면 평창아라리는 산간 노래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강등학 "향토민요 존재양상과 장르적 동향"(200,11,8 강릉대 인문과학 연구소 제 9회 학술대회)

 

제즈음악 채집하여 발굴한 민요학자 알랜 로맥스의 민요의 기능적 이해로 산의 민요와 들의 민요로 구분하였는데

원래 정선아라리도 평창과 인접한 태백산맥 영서라는 공간속에서 원래 후렴이 없었는데 외부인들과 저촉에 의해

후렴을 달고 기능성을 상실한 예전의 본인 글에서 비유는 몸빼입고 김메기를 해야 할텐데 겉멋이 들어 미니스커트

입고 김메기를 한다고 우섭잖은 비유를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아래 2장에서 정선아라리는 경복궁 중수시에 뗏목을 타고 한양으로 내려가 8도로 확장 전파되어갔다고

하건만 그 증거는 없어도 아마도 그 시기에 목상과 벌목꾼들이 오가며 들의 아라리의 후렴이 옮겨붙었다는 이야기는

모르는듯 하다.

 

이러한 영서 아라리 특히 평창아라리엔 아직도 후렴이 없지만 후렴이 없어도 지금까지 평창아라리의 존재 양상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영향도 없이 존속되고있다. 이러한 평창아라리 후렴의 특수적 보편성은 김연갑의 <아리랑

시원설 연구>라는 책을 해부할때 김연갑의 후렴논의의 한치도 놓치지 않은 그의 기록과 본인의 후렴에 관한 다른

논고의 대비적 이해때 다시 논한다.

 

우선 간단하게 맛을 본다면 구한말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확산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확산의 내용과 깃점(특이점)은 경복궁 중수설과 임오군란 이후 궁중에서 전문 연에인의 가무에서

비롯되었다는 서로 상반되어 둘중에 하나만 선택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본인은 아리랑 특성과 제반에 전부 다른

시각의 관점을 가지는데...그 중에 평창아라리를 통해서 보는 아라리의 후렴의 문제.

 

정선 아라리는 그의 책에 논리문제로,,,돌림창에서 순간적으로 사설 선택이 안될때 시간을 끌어주는 목적등의

기실 이 이야기는 연규한씨가 먼저 이야기한 논지로 알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에서 후렴이 붙어졌다면 지금도

후렴이 없는 평창아라리는 어떻게 설명할것인가??

 

평창아라리는 기능적으로 산간 아라리이지만 길쌈질 할때 아낙네들이 돌려가며 아라리를 한곡씩 뽑았슬 것이며

겨울철 모여앉아 짚신을 삼고 발을 엮고 광주리를 만드는 수공예 작업시 조용한 공간의 무료함을 달래기위해

돌림창을 뽑았슬텐데..

그래도 평창아라리는 그러한 후렴이 조성되지는 않았는데 이로서 정선 아라리에 후렴의 문제에 김연갑의 이야기로는

제 설명을 다하지 못한다고 사료된다.

 

그러기에 이러한 모순으로 본다면 김연갑은 정선아리라만 곱씹어 생각했지 아라리의 전체적, 포괄적 접목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햇다. 다만 그러한 논지는 아라리의 부분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 모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로맥스의 이론대로 한다면 들의 민요는 선후창이니나 산의 민요는 돌림창이라야 맞는 수순인데 평창아리리는

후렴의 꼬리가 없는 것일까... 다음에 논고 합니다.

 

2장에선 구한말 아리랑의 전국적 유행의 모습

3장에서는 정선 아라랑의 연구자들은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라는 가사가 아리랑의 시원이라 주장하지만 본인은 청옥산에서 나물 뜯을때의 한치 뒷산 아라리

가사의 하나라는 주장으로 이 두 견해에 대하여 기숳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정선 문화론이 정선 아라리를 받침하는 위상이라 하건만 이를 허상으로 볼 수 있는 의문점을 분석하기에

몇 절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4장에서는 아리랑이 기층 민요호서 제 이론에 충실한 점과 아리랑의 전반적인 이해.

5장에서는 평창아라리의 제 목소리는...

또한 평창아라리의 특징적 사설의 이해등,,

 

앞으로 수 없이 써 나갈 것입니다.

저의 이러한 노력에 보탬이 되는 제안등도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에 반하는 생각은 언제든지 논쟁 한마당을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