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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아리랑

아리랑에서 구원성[久遠性] 성찰 (평창아라리 3)

아리랑에서 구원성[] 성찰 (평창아라리 3)

 

후세백작

평창아리랑(아라리) 이야기의 시작에 앞서서 우선 우리민족에게 아리랑은 무엇인가?

이러한 사색부터 다시 고찰해 봄으로서 아리랑의 의미와 아리랑의 역사성등을 제 조명해 보겠습니다.

 

여기에 본인은 아리랑의 시원이고, 아리랑의 뜻에 대하여 별도의 내용으로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허구의 역사는

금물이기에 정선 아리랑처럼 현재의 필요에의해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서 만드는 그러한 시도는 없슬 것입니다.

아리랑의 구원성(까마득하게 멀고 오래된 성질)을 되돌아 보며 아리랑의 시원설을 주장한다는게 얼마나 모순된이야기인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리랑은 구전되는 기층문화의 민요인데도 도망가는 선비들이 아리랑의 시원자라고 주장하는 무리도 있는데,,.아리랑이  탐나서 아무리 제것이라 주장한들 역사적 기록도 없고 논리도 맞지 않으니...밭갈던 소도 웃겠소,,,

앞으로, 이러한 모두가 충분한 이해의 글을 남길 것입니다. 어찌 이렇게까지 아리랑이 변절되고 퇴색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토의도 할 것입니다. 또한 아리랑에 내재된 한(恨)을 이해함으로서, 이것이 기층문화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가를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리랑의 이야기에 앞서서 또 하나의 전제 이야기는 구한말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리랑의 연구자들에 모든 학설의 주장들속에 검증은 없어서 너무나 오류가 있고, 너무나 주관에 치우쳐 객관성을 상실하는 논리 구사에 따른 역사적 소명도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랑의 제 이론들은 모두들 검증이란 시스템이 없기에 주관적인 견해도 굳어지고 화석화되면 마치 그것이 하나의 정론처럼 인용되면서 하나의 학설로 대두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예로 본인은 김연갑의 정선 아라리의 집착연구에 대한 논리에는 치환적인 면에서 타당성의 결여라는 입장이다.그는 학자적이 아닌 정선 아라리의 향수자로 이론의 객관성이나 검증도 없이 후일 스스로 인용하면 정형의 이론으로 굳어지는 방법을 취하는 듯하다.

참으로 마음대로 휘져을 수 있는 이런 학문도 아닌 연구 보고서의 리포트들은 다시 없는듯하다. 여기에 본인은 분명 다음장들에서 수 없이 제동을 걸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잃어버린 평창아라리를 다시찾고 평창의 역사의 일부를 복원시키기 위함이다.

 

아리랑에 이색 관련설, 두문동 시원설, 이색의 詩 두 수가 정선의 제영시라고 주장하는,, 이러한 주장들에 역사적 증거는 하나도 없다. 정선의 이러한 설의 발표는1980년대 이후의 발표들로 역사로서의 압증도 없이 이러한 역사들은정선아라랑 향수자들의 향수적 주관을 객관화 시키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도 철저히 검토를 하겠습니다.

 

이보형이나 고숙경의 논문에서도 정선아리랑이 우리나라 아리랑의 근원이라 표현하는데. 물론 이 두분 사람이 현재까지 아리랑에 대한 노력은 감사합니다만 이러한 논문에서 이보형은 아리랑 사설 채집에 정선 아라리는 800여수, 나머지 평창, 인제등의 아라리는 30여의 리스트 도표를 인용하는데, 평창아라리나 정선 아라니는 영서의 같은 공간이란 지역성과 동일한 시간대의 비슷한 역사성속에 비슷한 환경을 인식치 못하고 또한 정선 아라리가 산의 아라리의 개념에서 변화되는 점은 해석도 못한채 정선 아라리가 강원도 아리랑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음률적 게산만 따져서 아리리의 역사성의 전체로 환원하는 그 속에 정선 아라리의 변형은 무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선율적 정통성보다는 변형된 여러작용들의 의미를 가지고 강원도 아리랑 중에 정선 아라리가 가장 중심이라고 한다면 강원도 각 아리랑의 역사는 그 말하는 순간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모순을 만들고 있다.

그러기에 그를 인용하려면 같은, 동일한 방법의 채집인가, 아니면 스스로 발이 닯도록 다니면서 균등한 방법으로 채집을 했어야 옳은 일이기에 아리랑 논문들은 모두 앉아서 기존의 기록들 가지고 탁상공론을 하는 것이다.(이후의 다음 글 중에서 이보형과 고숙경의 정선 아리랑의 찬미에 대한 논리성의 결여라는 점으로 집중 조명을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요즘 정선아라리의 가사 채집수는 3천수이니 6천수라하는 것은 남자가 부를때 여자가 부를때 어간이 좀 틀려도하나의 사설이라 치면 지역적으로 같은 아라리가 지역적으로 센발음,된발음의 차이를 말하는 억지들이다. 그럴려면 불확정성의 이론을 들이대고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이 불러온 아라리가 전부 시,공간이 틀리기에 각기 다른 아라리라고 채집수는 1억이라 주장하면 어떠하리오. 이런 이야기들은 억지춘향의 허풍선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학위논문에서 가장 쉬은 텍스트의 하나는 어쩜 아라랑 논문이다책 3권만 읽으면 그 속의 사유적 생각의 짜집기화된 논리구성의 책 한권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근사한 예를 하나들어보면 김창주의 "아리랑 기원설의 검토연구"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은 객관적 입장에서 아리랑의 편향들을 고취시키는 수작의 논문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는 제목에서 밝히고 있지만 아리랑의 사색적 폭은 그가 선택한 책 속의 한계의 범주를 못 넘어서고 있듯이 여타의 아리랑 논문들, 특히 박사학위 논문으로서도 손 쉬운 택스쳐로 아리랑다섯권, 열권 읽으면 그 속에서 책 한 권 만드는, 아리랑의 새로운 모습의 범위가 넓혀진게 아니라 똑같은 방식의 틀에 갖혀 자기 것이 진짜 아리랑이니, 아리랑뜻은 남의 이론에 비해서 내가 진짜 아리랑 뜻이니, 아리랑의 시원은 이것이라는등,, 역사적 기록은 없는데 그러한 추론적주장들은 자기는 나보다 더 특별한 사람이란 주장인가??

똥먹던 개도 웃겠소.

 

내가 생각하는 아라리뜻은 어떤 것이고, 또한 시원은 어떠한 것이라는 주장은 어쩜 아리랑의 하나의 지류적인 의미를 가지고 그것을 아리랑 시원이라고 주장들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런 주장들은 자동 기술적인 매너리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그래도,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아리랑의 이야기의 틀를 벗어난 참신한 노력으로 저돌적인 연구서중 하나는 고자연의"恨을 찾아서"이라는 석사학위 논문이다. 그 논문에서는 恨이란 무엇인가??

恨의 의식이 무의식속으로 다시 해체되는 과정을 칼스타프 융의 심리학을 빌어서 연구하고 있다. 석사과정의 논문으로 많은 노력과 공을 드리고 있는데. 문제는 매번 정체성이라고들 하는데, 그 정체성은 무엇인가??恨은 어떤 의미인가를 이야기 하고자 함이 중요한것이다.

 

물론 이 책도 정선 아리랑의 향수자의 범위를 못 넘어서고 있지만 (정선 아리랑을 보편적, 객관화의 입장에서가 아닌 주관적 편견속의 논조하는 자세이다.

어머니의 구박에 며느리의 恨이 의식이라면 이는 다시 무의식세계로 풀어지는 것을 융의 의식과 무의식으로 전개하는데 이러한 택스쳐적 확장이란 의미가 있으나 의식이 무의식속에 ,,,뭔가 대단히 잘못된듯도 하다.그것은 아마도 자아와 자아 이전에 모든것의 이드(id)로 자아는 이드의 세계로 환원되어 다시 초월적 자아(수퍼 에고)로 승화한다는 이야기를 융의 심리학적 측면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한듯 하다.

그러나 의식이 무의식속에 접하여야 한다면 자아가 이드에 반영되어 초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에 초자아는 읫ㄱ적이지도 못하고 무의식이 혼합된, 즛 사실적이기보다는 비 합리성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논문도 다시한번 검토해봐야 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며 이 장에서 아리랑의 恨은 무엇인가를 다시금 역으로 환원도 해보며 恨의 앙금의 값을 다시금 파악하고져 한다.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우리 민족의 정서와 정체성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무엇일까?이에 답으로는 한(恨)이라 한다면 억지주장은 아닐듯하다. 恨의은 기층의 저변을 축으로하는데 이러한 恨을 한마디로 함축한다면 그것은 아리랑이라고 표현한적이 있다. 그럼 아리랑은 무엇일까??

 

아리랑은 마치 시어머니의 구박스런 노여움에 비친 한탄의 恨스러움의 발산인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노래 부를때 여러가지 감정을 표출하지만 그래도 즐거울때나 기쁠때의 노래가 가장 많을텐데 아리랑은 오직 한가지 패턴으로 인생살이속박에 대한 한탄스러운 탄식으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속에서 인간의 삶의 문화이기에 그 역사속 사건들을 인용해 본다.아리랑은 민요의 한 장르이고 민요란 예술의 한 장으로서 아리랑의 구원성은 아마도 고대 삼한시대의 "동맹"과 같은제천의식에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위한 詩적인 언어와 더블어 음악과 집단적인 춤에 어우러지지는 않았슬까 추론해본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를 보면 곡식을 파종하는 단오와 추수에 감사하는 기원제 추석은 그리스에서는 겨울철에 밀을 파종하고 봄에 수확하기에 겨울의 축제와 봄의 축제로 이어진다. 그런데 겨울의 축제에는 희극을 연출하고 봄의 축제에는 비극을 연출한다.여기서 희극의 즐거운 유희는 그 순간의 즐거움이었고 봄의 축제에 비극의 공연이 더 인기를 끓었다 한다.성기를 깍아들고 우머스럽게 노는 희극의 즐거움은 순간이었지만, 비극은 인간의 마음속에 파장의 여운을 남기기에 비극을 더 좋아했다, 그러면 왜 비극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카타르시스(감정의 정화)라고 하였다.이렇듯 아리랑속의 恨은 민중들의 한 풀이이다.(원래 민중이란 용어는 좌파적 용어가 아니라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서술함에 我와 非芽의 사이에 자신의 주체의지로 살아가지 못하는 민초들을 간파하였다. 이것이 아마도 민중이란 용어의시발인듯)

 

스스로의 자아(ego)에 대한 자각적 의지의 인식으로 내적 충동의 내면적 감정을 표현하여 세상을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재편하여 이에대하여 카타르시스를 행하고 있는 것이 아리랑의 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관점이다.

그러기에 아리랑은 디오니소스 축제의 비극에서처럼 민초들이 즐거운 때보다는 고된 삶의 恨이 서린 아리랑 사설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카타르시스(감정의 정화)를 통하여 승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恨이고 恨의 표출이란 점이다여기에서 또 하나 아리랑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모든 이야기를 자기 중심적 이야기로 재편하여 스스로의 삶의 恨을 자신의 감정의 해소(카타르시스)를 통하여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는 점은 다음의 글들에서 아리랑의 시원성 문제에서 논할것이나 우선 간단한 이해를 해보면 정선아라리 향수자들은 "눈이 올라나 비가올라나 억수장마질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내게로 막 모여든다"라는 한편의 사설에 의해서 아리랑의 시원은 이조초 죽림칠현이 불렀다고 하지만 역사에 정확한 기록은 없다.

 

이 사설은 임금님이 진노하여 검은 구름이 내게로 막 몰려든다는 의미이다. 이 사설은 임금보다 결과로서는 나에게 몰려든다라는 의미로 내가 주가 되어 있는 문장이다. 무슨 선비들이 임금보다 자기가 목적인 가사를 쓰고 임금님을 위한다는 이해의 말은 큰 괘리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러기에 이 사설은 임금을 그리는 사설이 아니란 점이고 김연갑의 하나의 주장일뿐이라면 필자는 이 사설이 미탄면 해발 1,250m의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춘궁기 봄철에 나물뜯을때아 아라리란 점의 주장이다.

고운의 산이기에 일시에 검은 구름이 확 몰려 드는데 비가될지 눈이 될지 애틋한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라 하였다.

 

일전에 본인은 이미 사설의 가사를 600년전에 불리어진 시원성을 가지는 사설이라는데 반하여 이에 오류를 시대사적 역사성이나 제반 이야기를 통하여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아리랑은 그 모든 사설의 자기중심적으로 재편하여 한탄을 내면의 세계에서 에고(ego-자아)를 통한 성찰로 자아극복응 통한 초자아적인 삶의 승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그러기에 만수산 아리랑의 사설을 자기 중심적 관점에서 보아야 이해가 되는 것이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임금님이 계셨던 만수산에 진노한 먹구름이 내게로 막 몰려든다. 내 잘못은 없어도 민초이기에 자기의 의지가 아닌 하늘의 마음에 얽메여 봄철에 내릴 비가 해발 고도가 높기에 눈이 될 수도 있고, 비가오든 눈이와도민초들의 삶은 그런들, 저런들 이어져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란 점이다.

이렇게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아리랑은 생성되고 또한 그러한 관점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아리랑 연구자들은 매냥 내가 옳니, 시대가 어떠하니등만 따졌지 아리랑의 의미는 무시되고 도외시되었으며 그 누구도 아리랑이 자기관점이란 기본공식을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아리랑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랑을 서사적이라고 표현한 사람은 강원대에 상설 정선아리랑 연구소까지 차려놓은 박만일 박사와 현재에도 정선 아리랑의 긴 아라리를 아리랑의 시원으로 문화재로 엮자고 주장하는 김연갑 이 두사람은 서사적인 아리랑을 이야기도 한다.하지만, 아리랑읜 모든게 자기중심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지 결코 단 한줄의 서사적 이야기도 없다.

본인은 평창아라리 천 여 수를 모두 읽으며 서사적인 사설을 찾아보려 하였지만 단 한줄의 가사도 없다.만약 아라리가 서사적 가사였다면 아마도 영월의 단종의 비에에 대한 사설이 좀 많을듯 싶지만은 단종비애의 가사는 단 한줄도 없다.모든 아라리 가사는 1인칭 단수 현재로 나에게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리랑은 비극적 요소의 자신이 중심이되어 삶의 한탄을 통하여 극복의 승화를 하는 점이지 아리랑은 결코 서사적이지는 않다.강원대에 정선어리랑 연구소도 차려놓은 박만일 박사나 김연갑은 아리랑이 서사적이란 말로도 기록하고 있는데..결코 본인은 그런 서사적 아리랑은 단 한번도 보지를 못하였다.

아리랑은 민초들이 부르는 민요이고 또한 이 민요는 자기중심적이란 관점의 룰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위배되면 그것은 아리랑의 아니기에 철저히 자기중심의 문체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혹시나 독립군 아리랑은 마치 군가(軍歌)처럼 상징성과 목적성에서 역사를 위한 의미의 가사로 서사적이지는 않을까 찾아보았지만 결코 서사적이지는 않고 자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독립군이 되어 떠났다고 집안에 소식좀 전해주시오 하는 가사이지 독립군이 되어 나라를 빼앗은 일본 왜구들을 물리치겠다는 의지의 표명도 없기에 서사적이지는 않은 개인의 감정을 나타내는 가사란 점이다.

또한 공주의병 아리랑을 하나의 예로 본다면 목적을 가진 의병의 아리랑이지만 임진왜린시 고경명의 "창의격문"처럼

나가 싸우자는 구국의 결의를 위하는 구호보다는 3자적 입장에서 역사를 들춰보는 민초들의 恨이 가식없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아라리는 어느 선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오는 구비가사란 점이다. 이 사설의 가사들이 자기중심적으로 재편되어 승화한다면 재편되어야 할 이유나 목적은 무엇일까??아리랑의 구원성(性)은 어디서부터일까?

이에 관하여 본인은 시원설이나 확장설(구한말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는 이론), 또는 아리랑의 뜻에따른 기원설등 아무것도 주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리랑의 구원성으로 볼때 여기서 본인은 괜스레 시원설이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시원에 대한 명확한 역사기록도 없거니와 구원성으로 이해해 본다면 시원설은 있슬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부정확한단어로 역사를 칼질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양새가 아니란 점이다.

 

정선아라리에는 정선아라리 향수자들의 의도대로 역사적 사실의 증명도 없는 이야기들을 재 배치함에 문제를 가지는 것이다. ego(내면의 자아)가 나의 슬픈 삶의 운명을 만날때 칼스타프 융(정신 분석학자)은 이를 운명의 악마적 의지라고 말합니다.

미덕(arete)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의지이지만 운명앞에서는 거역할 수 없기에 운명을 악마로 보고면서도 운명앞에 순종하는 이유가 비극이기에 민초들도 즐거울때보다 슬픈, 그 슬픔의 애틋한 마음이 운명앞에서 순종하면서 자신의 감정 정화를 통한 승화가 되어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가지는 가사의 틀로 발전하게 됩니다.

또한 이것이 영서지방 산간 아리랑이기에 일을 하면서 무료할때도 혼자 부르는 것이기에 아리랑은 잘 수련한 가창자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음치도 혼자 중얼거리며 독창조로 자신의 운명속에 애틋함을 노래가사로 카타르시스(정화 또는 의학적 측면에서 배설)하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아리랑의 모든 사설은 자기중심적으로 재편하여 한탄을 내면의 세계에서 에고(ego-자아)를 통한 성찰로 자아극복을 통한 삶의 승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리랑의 내면세계의 가장 큰 특성이다.

아마 지금까지 누구도 본인의 이러한 자세의 아리랑의 내면은 무엇인가 이야기한 적은 없슬 것이다.바로 이 내면의 세계란 무엇일까??

 

강등학의 이야기에 산의 아리랑의 기능성면은 기실 미국의 민요학자 알랜 로맥스의 민용의 기능성 이론의 재현을 넘지 못하는 이야기이지만, 아라링은 구전되어 흐르는 민요로서 산의 아리랑과 들의 아리랑으로 정확하게 구분된다.

그러면 산의 민요와 들의 민요는 어떻게 다를까 다른 측면으로 이해해 보자.예술의 심리학 기원설은 인간의 본능적인 창조심리, 즉 예술충동(art impuise)에는 모방본능설, 유희본능설, 흡인본능설, 자기표현본능설이 있다한다.

여기에서 흡인본능설은 예술이 남을 즐겁게해주고 그들을 끌어들이려는 흡입본능에서 출발하였다고 합니다.그러기에이러한 흡입본능설은 노동하려는 의욕을 남에게 자극시키고, 사람들 사이에 협동을 촉진시키기위해 만들어졌다면 사회적 필요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ego(내면세계)의 사유적 삶의 성찰이 있어야 남을 끌여들일 수 있는 것이기에 전자에 대해서 2차적인 면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즉, 기능성 면에서 들의 아리랑은 흡인본능설을 위주로 사람들 사이에 협동을 촉진시키는 목적을 가졌다면 이것은 내면세계(ego)의성찰에서는 2차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산의 아라리는 바로 내면세계(ego) 그 자체란 점이기에 들의 아라리는 삶의 성찰이 아니며 산의 아라리가 자신의 삶의 성찰인 내면세계(ego)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영서지방의 산의 아라리는 가락보다 가사에 치중한 점을 알 수 있다.여기에 인용의 의미가 없슬듯하지만 참 중요한 의미의 이해를 하나인용해보면 지난주 동창생 만남에 70음악을 듣던 어느 동창녀왈 이젠 가락이 아니라 가사가 더 재미있다라고 한다.아마도 다수가 이러한 느낌이리라. 그다지 음악적 가락은 중요치 않으며 보다 많은 일상의 삽화에대한 사색적 삽화의 가사가 두드러지게 강조되는것이다.

음악적 장르에서 후렴은 반복되지만 이것은 사색엔 도움이 안되며 의미가 없다. 이러한 결과 영서의 평,영,정(평창, 영월, 정선)의 아라리는 후렴이 없는게 특징이다.* 정선아라리는 근자에 후렴이 붙어 있었으며 이는 정선인 연규한씨나 김연갑의 책에서도 기록되고 있다. 또한 과거 강원도 산간의 아라랑은 모두 후렴이 없었다는 기록도 나타나고 있다.

 

이후 현재까지도 정선 아리랑은 후렴이 붙어가는 진행중이며 후렴은 돌아가며 소리할때(돌림창시) 가창자가 제목을 못 정하면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등이야기를 하지만 가락의 유희적 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야 타당성있는 것이다.

영서의 아라리는 돌림창 이전에 민요의 기능면에서 산의 소리로 혼자 나무할때. 나물뜯을때등의 일과 또힌 무료할때 혼자부르는 그리고 혼자듣는 唱者가 聽者인 것이다.

남에게 들려주기위해서는 선율에 후렴이 붙는것이 흡인본능설처럼 더욱 효과가 있지만 영서 산간 아라리는 스스로를자위하는 창자가 청자가 되는 즉, 이것은 가락의 즐거움이 아니라 가사의 오묘함의 재미를 덧붙여나가는 노래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평창아리랑(아라리)도 천여 수의 가사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정선 아라리도 거의 같은 가사로 어느 지역에서 발생인지 알 수도 없을만큼 지역의 동일성 가사도 있지만 나물뜯는 아라리 가사는 평창군 미탄면 아라리로 일면 한치(寒峙)뒷산(청옥산) 아라리인 것이다. 그런데 정선 사람들은 정선 남면에 한치(汗峙/ 땀한) 라 우긴다. 정선 한치는 일제때 광업소가 있던 곳으로 그 산은 나물한포기 나지 않아서 땀한자를  쓰는데 그래도 정선한치라고 우길런가??

 

영서 산간지방에 아리랑이 유행되었던 조선 말기의 사회상을 보자

 

여기서 본인은 전국적으로 아라랑이 확산, 유행된 시기를 말함이지 그 이전에 아리랑이 이 지역에 어떻게 흘러왔는가 하는 역사는 없고, 또한 시대상황등을 고려할때 이 지역 태백산맥 영서 산간지방에 아리랑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조선 중기에 평창군수(종 4품직)로 양사언이 부임하였는데 군민들을 보자 옷도 헤어져 가릴곳도 못가라는 화전민처럼 볼품이 말이아니엇기에 양사언은 눈물이 왈칵 쏱아졌다 한다.당시 기의 기록에는 군 소재지 시내일원은 50여 가구이라는 점에서 보면 조선 중기사회의 문제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세의 형평성이다. 이미 양반들은 무소불위하지만 노비들은 부모가 사망하여도 부모의 조세를 물고있있던 것이다.이러한 결과 노비들은 따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고 (그래야 사망자의 세금은 없어질것이기에) 인구는 현저하게 작은점의 정책적 문제와 당시 시대상황은 서낭당 문화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국사성황단 아래 각 부락, 각마을엔 고목나무, 돌 누적단등의 서냥단 문화가 팽배하고 있었던 점등의 모든 시대상황을 간과할 수 없다.

진용선의 뗏목 아라리의 한 부분엔 목상이 벌목공과 대화중에 무사안일을 위해 서낭당에 기원제를 드려자고 벌목공이 이야기하자 목상왈,,, 수전노처럼 벌받으면 내가 받을 것 아니오, 그러기에 일 없소이다 하는 당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당 시대의 사회상속에서 아리랑이 많이 전승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중기 이후 문화에서 헐버트의 기록으로 나타나는 고종황제의 왕실에서 전문 예인 집단이 아리랑을 매일 공연하고 장려하는등,,  이때에 전국적으로 아리랑이 확산되고 유행되었던 점이다.또 하나의 설은 구한말 뗏목경기로 정선아라리가 한양으로 내려가고 경복궁 중수공사시 군역자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확산시켰다는 이론은 신출나기 김창주의 아리랑 본문에서도 가능성 낮은 이야기로 분류되었건만,,정선 아라리병 향수자들은 남의 글은 읽지도 않고 아직도 구물거리고 자기 논리만 펼치는 듯하다.

 

정선 아라리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는 문제나 시원설, 모든 문제들을 다음으로 충분히 OK될만큼 논해주리라만은 우선 이해로 정선 아리랑은 산간 아라리의 기능성면에서 후렴이 붙지 않았는데 이러한 사설이 전국으로 전파되었던가??정선 아라리가 산의 아라리로 그 기능을 하기위한 템포에서 8/9박자의 긴 아라리가 처음부터 발생된 것은 아니다.

 

정선 아라리 향수자들중에 김연갑. 이보형, 고숙경은 그들의 논문에서 강원도 아리랑의 중앙에는 정선 아리랑이 존재하며 이 정선 아리랑이 뗏목을 타고 한양으로 내려와 팔도의 군역인부들이 전국으로 전파했다는데,,, 그럼 정선 아라리는 언제 산의 아라리의 기능성을 저버리고 외부의 영향으로 변색되었는가 묻고싶다.

그러기에 정선 아라리가 강원도 아리랑의 맥이라고 하는 것은 향수자들의 주관적인 견해이고 그들이 썼다고 다음에 그를 인용하여 하나의 정설화로 둔갑시키는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 부분도 다음으로 한편씩 자세하게 인용하여 어떤 우를 범하고 있는지 자세하게 기록할 것이다.이렇게 정선 아라리는 후렴을 달기 위해서 산의 아라리의 템포를 잃어버리고 좀 더 느려지는 경향으로 개조되는개산조의 아리랑이라면 평창아라리는 아직도 옛 원음 그대로 후렴도 없이 불리워지는 전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평창아라리는 위에서 언급한바. 하나의 유희적 가사가 아니라 일상의 삶 자체로 내면세계(ego) 그 자체란 점이기에 산의 아라리는 삶의 성찰이란 점이며, 또한 정선 아라리는 이러한 점에서 세월의 유수속에 변하여 그 기능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유휘적인 노래로 변모했지만 평창아라리는 옛 원형 그대로 삶의 내면세계의 자아를 확립하고 보존되고 있다.이것이 평창아라리의 진면목으로 앞으로의 보존성과 그 가치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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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恨을 통하여 아리랑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희랍 고대 축제인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봄의 축제, 기쁨보다 비애의 향연에 사람들은 더욱 열광했고 와디푸스왕의 공연이 최고의 인기를 끈 점에서 이러한 와디프스의 한이 가슴속에 응어리지는 점은 지구 반대쪽인 우리의 아라리의 恨과 그 맥이 상통하는 점을 기조 텍스트로 연구하고져 합니다.

 

우리민족의 기저에도 기쁨보다 슬픔의 恨이 더 각인되어 민중들에게 구전되는 민요 아리랑의 사설을 통하여, 모든 이야기는 다시금 자기중심적으로 재편되어 내면의 세계 에고(ego.자아)를 통한 성찰로 자아극복의 삶의 승화를 보여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사설을 가진 영서 아라리가 그 삶의 자아를 찾는 아리랑의 진원지이며 여기서 정선 아라리는 그 원형을 유지치 못하고 변종되었지만 평창아라리는 영서 아라리의 원형을 지금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 한 예로 평창아라리는 아직도 후렴이 없다. 이것은 본문에서 보듯, 영서 산간지방의 아라리는 원래 남에게 보여주는 유희본능적인 노래가 아니라 모든 사설이 자기중심적으로 쟆련되어 가사에 치중하는 아라리로 스스로에게 즉, 창자가 청자가 되는 가락으로노래이전에 삶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아리랑의 근원인 恨을 기조로 하는 아리랑의 기원으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며 여기에 아직도 각종 매스미디어나 문화발전에도 동화되지 않은체 오늘도 살아 숨쉬는 평창아리랑이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더군다나 학자들까지도 평창아라리는 후렴도 없고 재미없다 촌평하지만 평창아라리는 남에게 즐겁게 들려주려는 유희의 아라랑이전에 삶에 있어서 그 바탕에 깔리는 恨을 기조로 사색의 창을 넓히는 공간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란 점이 윗 본문의 이야기이다.
학자들은 용역에만 움직이는 미물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후렴이 없는 아리랑은 왜 후렴이 없슬까 하는 연구서는 아직 없었다. 그리고 또한 삶의 한탄의 恨의 의미가 무엇인지 삶의 내면을 통하여 사유적 철학을 부여해 보려는 학자도 없었다.

 

하지만 본인은 평창아라리의 후렴이 없는 근저를 찾아보고 이것이 恨의 시초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엇다.그러기에 옛 전통 그대로 오늘까지 이어진 평창아라리의 후렴이 없는 점을 밝혀봄으로 평창아라리는 유희의 아리랑이 아닌 민초들의 生의 밑바닥에 깔린 인생살이의 구질스런 비통하고 한탄스러음을 아리랑을 톨하여 자아의 내면세게에서 카타르시스(감정의 정화, 순화)를 통해서 다시금 승화시키고 잇는 것이 아리랑이란점을 밝히고저 합니다.

이로서 영서 산간아라리의 恨이 아리랑 전체로 확장되고 승화된 점을 이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