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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기상

4) 平昌의 鎭山, 魯山은 카르스트 지형이다.(하리 옹달샘은 왜 마르는가요??)

  4) 平昌의 鎭山, 魯山은 카르스트 지형이다. .(하리 옹달샘은 왜 마르는가요??)

 

장에서 잠시 언급한바 평창의 진산 魯山은, 마치 금광이라도 있어서 눈앞에 이득이 보는게 아니라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속에 매미가 울어재키고 겨울이면 찬바람의 북풍을 막아주는 정감어린 산으로 언제나 평창인들의 가슴속에 鎭山思相을 자리하고 있는 靈山으로 魯山은 평창인들과 함께하는 친구요, 평창의 메아리인 것이다.

 

본인은 지난 글 "국구사우에 대한 이해"로 평창의 지형적인 고찰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그 글을 쓰며 魯山의 지형적 특성을 간파하였는데, 고대인들은 용수시설의 물과 불가분의 관계에 평창의 근간은 노산 아레에 하리 옹달샘에서 중리 중학교로 내려 흐르는 샘물과의 사이에 관아가 위치하며 하리에서 중리로 뻗는 도로는 일제 강점기의 신작로와 사방 사업으로 인해 관계수로를 만들어 평창을 비옥한 농토를 만들었지만, 고 지도에서도 이 길을 잘 나타나는바 좀 비약적이지만 이 길을 관아길이라 구분해 본다면 평창의 지리적 여건을 자연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기에 과거에는 하리와 중리 샘을 사이로 자리잡은 관아는 노산이 북풍을 막아주는 배산임수형으로  평창 양택 명당의 1번지라 할 수 있다. 국구사우 고찰에서  정조떄, 당시 기록에 관아 옆 옛 원우터가 그대로 있어 그곳에 다시 사우를 짓기로 했다는 기록에서 볼때.그러면 관아 옆이라 함에 관아의 터를 어떻게 볼것인가에서  중리 중학교 운동장으로 내려 흐르던 샘물이 관아의 구분을 만들었으며 그 샘물옆에 장마시 너른 버덩의 숲지를 만들던 것이 자연상태이며 관아쪽을 양택이라 하지만 중리쪽은 맨 끝에 여제단이 있듯이 음택성 땅으로 여겨진듯 하기에 그곳에 (중학교 운동장내 고사된 고목나무)에 중리쪽으로 사우터가 있지는 않았슬까 하는 추정분이었습니다만 여기서 관아가 양택의 명당이라면 관아가 자리 잡았던 주된 이유는 양쪽에 샘을 낀 지형이기 때문인듯 합니다.

 

그렇다면 샘물이 왜 중요한가는 고대인들의 생활에 필요한 용수를 제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바  샘물이 마르면 자연 우물을 파고 하였슬텐데 유독 평창읍내 일원에는 인공의 우물이 없다면 평창의 진산 노산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평창인들에게 여름에는 시원한 물로서, 겨울철에도 얼지않고 차겁지 않은 항상 풍족한 물을 제공해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천혜의 자원, 우물이 나오게 되는 노산의 지질학적 이해를 해본다면 우리의 이 시대인들의 얼마나 무지했으며 이러한 과오가 앞으로 어떠한 양상의 결과를 초래할지 본인은 모릅니다만 이러한 노산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범위내에서 논고를 하겠습니다.

 

 魯山은 타원형의 산으로 가운데가 함몰된 구릉지역으로 이 샘과 하리의 옹달샘이 없었다면 즉, 카르스트 지질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5~60m의 산정호를 만들 수 있다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타원형의 독립된 산으로 노산은 원래 가운데가 함몰된 구릉형이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는 카르스트 지형이기 때문이다. 노산의 원래의 모양새는 지금의 모양새가 아니었으며 중앙부가 내려앉은 것은  돌리네에 빗물이 들어가며 석회암 용식작용으로 샘으로 녹아 흐른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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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카르스트 지형에 관해서 개괄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카르스트(Karst)지형이란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이산화탄소를 함유하는 빗물이나 지하수에 쉽게 용해되어 탄산수소칼슘이 되고, 수분이 증발해버리면 여기에 독특한 석회암 지역이 발생하게 되는 것으로 화학식으로는 CaCO3+H2O+CO2 → Ca(HCO3)2 이다..

 

돌리네라는 슬라브어로 계곡(valley)이라는 뜻하는 것으로 빗물이 석회암의 절리(틈)를 따라 지하로 침투하면서 지표를 용식하여 생긴 원형이나 타원형의 와지(움푹 패인땅)을 돌리네라고 합니다.돌리네는 물이 잘 빠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대부분 논농사보다는 밭으로 이용되려는 붉은 색의 토양이 테라로사(terra rossa)라 합니다. 단양의 지명은 이러한 붉은 토양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물이 빠지면서 침식이 일어나는 돌리네는 카르스트 지형 발달과정에서 지표에서 초기에 나타나는 가장 작은 규모의 와지

수식

로 표시된다. 돌리네가 성장하여 인접한 돌리네와 결합된 것을 복합돌리네(compound dolines)라고 한다. 와지 중에 일반적인 돌리네 보다 큰 것을 우발라(uvala)라고 하고 우발라보다 훨씬 큰 형태로서 하나의 폐쇄된 분지 지형을 이루는 것을 폴리에(polje)라고 한다. 돌리네 바닥에는 빗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가 있는데 이를 싱크홀(sinkhole) 혹은 포노르(ponor)라고 하기도 한다. 이 배수구는 직접 관찰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토양으로 피복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주변에는 용식되지 않았거나, 토양층을 뚫고 솟은 석회암들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라피에 혹은 카렌이라고 한다. 카르스트나 돌리네, 우발레, 폴리에등은 아드리아해 연안의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카르스트 지방에서 선행 연구되어서 슬로메니아 언어를 사용하는데, 한 중국 게림의 이강이나 베트남, 한 해 7천만명이 다녀간다는 필리핀의 지하 江등도 카르스트 지형으로, 우리나라에 카르스트 지형은 고생대 캄브로 오르도비스기의 조선노군층에서 발달하는 지형으로 평안남도,황해도와 강원도 남부, 충청북도 북동부, 경상북도 북부에서 카르스트 지형이 널리 나타난다.남한에는 단양에서부터 영월, 평창, 정선, 태백등에 발달해 있으며 이러한 석회암의 주요성분은 탄산칼슘으로 조개등지에서 나오는 것으로 엣날 이곳이 바다였슴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지하에 하천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며, 때때로 대규모의 석회암 동굴이 형다.

 

평창군 미탄면 돈너미 마을과 고마루, 정선군 남면 발구덕 마을,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그리고 단양군 어상천면 무두리 등은 우리나라(남한)의 5대 ‘돌리네 마을’로 알려졌다. 정선의 발구덕은 ‘8개의 구덕’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인데 구덕은 구멍이라는 뜻으로 돌리네를 의미한다. 돌리네는 독립되기보다 무리지어 발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5만 지형도를 분석해 보면, 북한의 황해도 ‘대평’ 도엽에 254개, ‘신막’ 도엽에 261개가 나타나고 남한에서는 충북 단양의 ‘매포’ 도엽에서 55개가 발견된다. 외국의 경우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는 1평방마일 당 1,022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돌리네는 대부분 밭으로 이용되는데 경작이 진행되면서 와지가 매립되어 점차 평지화되는 경향이 있다. 돌리네가 많이 무리지어 발달하려면 지하수위보다 높은 고도에 넓고 평평한 땅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석회암이 산간지방에 주로 분포하기 때문에 돌리네가 무리지어 발달할 수 있는 곳은 대개 하천 연안의 넓은 하안단구(河岸段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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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 노산의 지질적 특성

 

평창의 노산에 대한 지질학적 이해의 이야기를 하여봅니다만 아래의 글은 지질학적 학술의 인용이 아닌 본인의 이해의 관점의 서술이란 전제하에 이야기라는 점을 먼저 명시합니다.

 

노산의 지형적 고찰이전에 우선 미탄으로부터 평창으로 이어지는 곳, 조동에서 이곡까지는 실개천이 흐르는데 노산에서부터 웃 상리까지는 평상시에는 개천 바닥이 마르고 돌 장강만 드러내고 있다. 그런 그 냇물은 어디로 갔슬까?? 송어 양식장의 샘물은 70년대에 초당 일곱초롱의 수량이 나온다는데 이것이 지하 강이 다시 용천수로 올라옴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

 

미탄 기화리의 쌍굴는 약 6만년전의 돌을 이용한 도구를 사용하던 선사인들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그들의 이곳 동굴생활에 필요한 조건의 하나는 물일텐데 이 굴 50여m 아래엔 용천수가 솟고있다. 굴속에서 올라오는 용천수는 온도의 영향을 받자 않아 겨울철에도 얼지 않아서 선사인들에 식수로서 매우 유용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렇듯 노산아래의 옹달샘도 이러한 원리와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는 옹달샘이 말라 비틀어진듯 하다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라는 동요의 詩語처럼 지난 세대에는 낭만적 우수도 같이하던 옹달샘이 왜 마르게 되었슬까요??. 아마도 사람들은 이제 옹달샘도 그 기운의 천년 運道가 다하여 샘이 말랐다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 입니다.

 

평창의 진산인 노산도 산세의 대부분이 고생대 카르스트 지형으로 잘 연구하면 그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이사항이란 노산은 타원형의 단독형 산으로 그 가운데가 함몰된 지형인데 카르스트 지형에서 가운데가 함몰되있다면 원래의 지형보다는 석회암의 용식작용에 의해 내려앉은 지형인 것이다.

 

이러한 용식작용에 의한 땅은 배수가 잘 되는 붉은 지형으로 이를 티라로사(terra rossa)라 하며, 밭농사 농토로 사용에는 적격인 토양을 지니고 있는데 이곳의 물빠짐은 돌리네, 또는 군집의 돌리네인 우발레나 폴리에등의 싱크홀이 생성되었겠지만 밭의 개간에 의해 가려져 있었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빗물이 석회암을 녹이며 뚫고 나오는 샘이 옹달샘과 중학교뒤의 샘뿐만 아니라 노산성 맨 윗 봉우리의 샘도 나타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은 노산의 뒷편 여만리에서 절벽을 바라보면 여러 곳의 샘이 흐를 뿐만 아니라 시루목 여울 아래의 강물 속 밑 바닥에도 샘이 솟고있다.

 

예전에 이곳에서 수영을 하나보면 5~6m 아래의 강바닥엔 각형의 바위가 하나 잇으며 그 주변은 모래바닥인데 뽕뽕 물이 올라옴과 밀도 차이... (아마도 압력을 받은 무게라 ,, 우통수 샘물이 중수(重水)라서 한강물에 섞이지 않고 흐른다는 이야기처럼) 이렇게 물의 밀도차이가 지며 이곳을 내려가면 약 1~2m는 샘물에 의해 차가움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노산의 석회암지형의 퇴수 채널이 강 바닥 아래 부분의 지하로도 흐르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세월이 다하여 옹달샘도 말랐다고 한다면 그것은 큰 오류란 점입니다. 석회암의 지형의 용식작용은 5억년의 세월동안 빗물에 바위가 녹아 흐르는 것이라면 위에 표현한 천년운도로 옹달샘이 생을 마감하는게 아니라 마르는 것이 아니라 용식작용에 샘의 통로는 더욱 커져야 하기에 샘물이 생을 마감한단는 것은 성립될 수 없는 논조이기에 노산아래의 샘들이 마른 것은 자연적 현상이 아닌 이뉘적 과오란 점을 지적합니다.

 

지난 90년대 이후 언젠가 노산의 이러한 테라로사 지형에 땅을 다져서 활궁장을 만들고 시멘트를 부어서 건축물과 하수 채널을 만들어 인위적 사용이 이러한 천년의 지질학적 특성인 돌리레를 막고 파괴한 것이 샘물이 마르는 이유인 것이다. 그러길래 옹달샘은 천년샘으로 운기가 다한것이 아니라 수 억년 흐르던 샘을 이 시대 평창사람들의 무지에 의해서 가로막은 것이다.

 

백봉령 카르스트( 정선군 임계면 지원리 산 1-1번지)의 약 50여개의 돌리네는 지질학적 학술가치와 학습의 장으로 천연기념물 제440호 지정되었지만 이곳 평창의 노산의 함몰된 테라로사와 돌리네등 카르스트지형은 일부 소수 몇 명이 이용히는 활궁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가진 자의 특권이라면 평창엔 활궁장 하나 마련할 장소가 이곳 아니면 또 없겠는가?? 여기에 평창인들의 이해와 고민은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의 무지(無智)는 활궁장 과녁 뒤에도 샘물이 있다하며 관정인듯한 박스의 뚜껑을 열어 보이며 샘물을 보여준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이 샘물은 함몰된 지역에서 퇴수구도 없다면 다시 어디로 흐를 것인가... 아마도 자연적이라면 이곳 일때에 샘물의 분출 압력여하에 따라서 어느정도 늪의 습지를 만들었슬 것이다. 어떠한 습지라도 그 크기에 상관없이 전 세계의 모든 습지는 "람사르 습지 협약"에 등록을 하여야하며 세계적으로 얼마 남지않은 습지가 생태학적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연구되고 보존되어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노산(魯山)을 고찰해 보고 고민해야 합니다.과연 魯山을 예전의 자연상태인 돌리네가 살아 숨쉬는 지역으로 복원할 수 있슬까 의문은 남습니다만,이 시대의 평창인들의 무지를 볼 수 있으며 참으로 기막힌 일입니다. 이러한 인위적 제어가 앞으로 어떠한 재해를 가져 올지는 모릅니다만, 그럼 현실적으로 위험한 또 다른 가상치부터 이해해 보겠습니다.

 

평창아라리(아리랑)의 보고이며 아리랑 구원성(久遠性)의 시원을 가지는 미탄의 청옥산을 지난해에 개발키 위해 郡당국은 아마 외지인의 밭을 인수한듯하여 그곳에 민들레를 심었고 보기또한 좋은듯 하며 이러한 청옥산의 테마는 필요한듯 합니다만,,,

 

이러한 개발에 위험적 요소라면 민들레는 청옥산에 살지 않는 꽃으로 이 꽃을 심게되면 청옥산의 자생종 꽃 20여종은 혹시나 살아남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또한 또 다른 무엇인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잇는것은 생물, 식물이나 동물의 생태계 이해에 쉽게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렇듯 노산의 지질적 문제도 무엇인가 우리가 알수없는 균형의 변이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이나 우리의 세상사에 하나의 일이나 사건은 그 결과의 영향이 조건반사나 투사로 반영되듯이 노산의 카르스트 지형을 인위적으로 제재하였다면 필히 무엇인가 다른 변이를 가질 것은 자명한 논리이지만 그 변이를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논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평창의 또 다른 하나의 역사적 소실에는 여만리 강변에 한쌍(두기)의 돌 누적단입니다.

이것은 여만리 마을의 서낭단(성황단)으로 우리가 알고있는 당집은 서낭단이 아니고 고목나무와 돌 누적단이 서낭단으로 이는 박수, 무당의 무속신앙이기 전에 마을의 안녕과 읍치 수호의 神으로 이러한, 아마도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돌 누적단의 서낭단이 지난 제방공사에 사진한장의 기록도 없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제방 공사에 묻혀버렸다.

 

 "강원도의 선사문화"라는 책에서 한림대 발표분엔 이를 적석총( 고려시대의 무덤)으로 이야기 하는데.. 어디 평창사람들은 조상을 강변에 묻는 청개구리입니까?? 역사쟁이들의 꼬라지냐고는...이러한 돌 누적단의 유물을 우리는 파 헤쳤지만, 그래도 이 유물은 인위적인 것이라 없어져도 그 여파의 자연적 괴리는 없다할 수 있으나 위 예에서 청옥산의 민들레 심기나 노산의 카르스트의 돌리네를 메꾸는등의 자연에 대한 인위적 제재나 행위는 그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어떠한 물리적 균형의 보상이 있기에 우리는 노산의 카르스트 지형의 파괴에 대하여 다시금 재고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시대에 노산의 정기를 끊었다면 다시금 그 복원의 결과라면 옹달샘이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이고 노산의 정기를 쏟아주는 하나의 정표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옹달샘이 살아나고 평창의 진산으로 노산이 살아나자면 위의 이야기에서처럼 카르스트 지형의 재 복원의 문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평창인들의 심사숙고가 있어야 좋을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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