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아라리와 청옥산 이야기]
2013. 11. 08. 후세백작
청옥산 말장에는 노루 사슴이 놀구요
우리집 울안에는 임자 당신이 노네요
청옥산이 무너저 평지가 되기는 쉽지만
우리들의 깊은 정은 변할수야 있나
한치 뒷산에 곤드레 아지미 맛만 같아도
고것만은 뜯어들 먹어도봄 살아나지
육백마지기 퍽퍽 무너져 육지가 평지 되어도
청옥산에 정든것 만큼은 잊지는 맙시다
한치뒷산에 곤드레 딱죽이 임에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삼방산 중터리 신안개 돌거든 비올줄 알고
건너 모태에 개 짖거든 내가온줄 알아라
("평창아라리 가사집" 중에서 발췌. 2005 . 평창군 문화 관광과 발간 )
평창 아라리 중에서 미탄면 일대에는 청옥산 육백마지기 지명이 들어가는 가사가 참으로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가사들의 아라리는 평창아라리에 시원이 있지, 이 가사들을 가지고 정선 아라리라 하며, 또한 정선 아라리가
원조라 하는것은 언어 모순이다.
평창군 미탄면 일대의 아라리는 그들 스스로의 독창성가사에 지명의 고유명사까지 가사에 기입되어 만들어졌는데
이를 정선 아라리라 하면 큰 어패이다. 왜냐면 정선사람들은 자기 동네,,, 나전, 구절,사북 등의 지역적 고유명사의
가락도 없이 미탄, 청옥산, 한치,육백마지기등의 고유명사를 미탄 사람 대신 만들어 불렀었다면 그것은 억지인 것이다.
그러면 현존 미탄아라리는 정선의 장단인가 하면 후렴도 없는 평창아라리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그러길래 미탄 아라리는 이 지방 아라리의 가장 원형을 보존 하고 있는 것으로, 정선 아라리에서도 이렇게 한 지역을
표현한 집약적 단어는 없다.
위의 고유명사 외의 일반명사로만 된 아라리 가사들은 평창, 정선이 공유하는 가사들이 대부분이지만, 위의 예시에서
보듯 청옥산 아래 화전민들이 지역적 특성을 갖는 단어의 아라리를 부를때 서로 주고 받으며 일반가사의 아라리도
타 지역보다 더 많이 생성되었으리라 사료된다.
청옥산 아래 두만이 마을 등 미탄 사람들의 아라리가 지역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예부터 미탄 아라리는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줌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육백마지기 아래 청옥산 일대의 평창 아라리는 가장 독창성있는 가사들로 이루어졌으며 산나물 뜯으러 또는
산간지역의 농사의 주된 밭일을 하며 고되고 심심할 때 서로 한 소절씩 주고받으며 부르던 아라리로 흥을 돋구었던 것이다.
미탄면 회동리 청옥산 아래 두만이 마을 등의 화전민들이 어려운 생활고에 춘궁기인 봄철에 청옥산 위의 고원인
육백마지기에서 끼니 연명을 위해 나물 뜯을 때, 삶의 고달픔을 달래기 위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감흥을 노래한 것이며,
이 아라리의 가사들은 민초들의 가시적인 현실속의 삷을 순수한 일차적인 즉흥적인 가사들이 위주이지 만약 이차적,
서사적이라 하면 자기의 생활 이외의 역사적 사건이나 사유적, 이지적 내용의 가사들로, 그러나 아라리엔 그런 이지적이고
고차적인 2차적 모습의 가사는 단연 없다.
( 아라리는 나 자신의 삶의 가사만 표출되길래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 막 모여든다"라는
가사를 임금을 그리는 가사로 해석하면 이것은 2차적, 서사적 내용의 가사가 되기에 아라리는 큰 괴리에 빠질 만큼 모순이다.
그러한 해석은 학자들이 아니라 정선 아라리의 편집광적인 연구가들의 일차적인 이해의 모순들이다. 그러므로 이 가사의
아라리도 자기의 한탄과 비애를 읋조리는 일차적 서정성으로 이해 하여야 한다.
이를 임금을 그리는 충신들의 노래라 한다면 이 가사들이 역사적 위배, 또 문학사적 장르의 위배이기도 하다.
아라리 가사엔 민초들의 고달픈 역경을 해학적이고 은유적으로 달관하는 순수한 일상의 가사로서 고된 삶의 고통을
역설적으로 반전시켜 재미를 더하는 가사로 녹여서 세월의 낙을 만들어 보내는 게 민초들이 부르던 아라리의 지혜인 것이다.
이 아라리의 가사들은 인생살이의 깊은 한(恨)이 베여 있으며 정수동이 보다 더한 해학과 풍자로, 참말 가사 속의
은유적이거나 풍자적인 어법의 가사들이 어쩜 민초들이 지은 것일까 하는 의문으로 이 아라리 가사들의 기발한 착상과
연상은 한편의 詩일까 ??
의아하고도 순발력 넘치는 가사들의 아라리를 들을 때 참말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삶의 고달픔 속에서도 그 고달픔을 승화하여 흥으로 품어버리는 민초들의 애환을 달래던 가락이 아리랑인 것이다.
아리랑이란??
전자에 언급했듯이 고래의 먼 역사, 즉, 단군조선 시대에도 기쁠 때나 슬플 때도 감정을 달래기 위한 노래를 불렀슬 것이고,
그 중에 아리랑이란 가사를 불렀다면 그 아리랑의 뜻은 직역으론 고개를 넘어가다, 의역으로는 님그리워하다라는 광범위한
뜻은 아닐까요??
고개 넘어 산 위의 城에 계시는 님(임금)의 평안과 무사안일이 백성들, 즉 민초들에게 전쟁의 노역이나 화(禍)가 미치지
않는 것이란 고대 사회에 전쟁과 노역이 민초들의 가장 큰 근심이었슬 것이다. 이런 근심이 없자면 임금님이 편안하셔야
하고 그로서 민초들에게도 평온을 찾을 수 있는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아리랑은 먼 역사에서 아마 이러한 시발을 가지지 않았슬까 하는 유추적 해석이며 그 이후 아리랑은 각 지역, 각 시대를
이어오며 민초들이 각기 다른 환경속에 일차적인 자기 삶을 표출한 가사들로 서로 원조라는 등 각 지역적 아리랑의
시발들을 가지는 것이다.
그 중 이 평창 아라리는 어느 시대인지, 어느 역사 속에서도 그와는 무관하게 화전민들의 깊은 산속의 생활에서 그 환경의
스스로의 가사를 만들어 삶의 고된 순간들의 한탄을 탄식 조로 소화해낸 독창적인 아라리인 것이다.
또한 정선 아라리에선 원조나 원류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오류를 범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삼 만냥 짜리 정도의 언 아리랑 책엔 정선 아리랑이 시기적 상한대로 이색을 거론하며 아마 이것이 원류와 원조로
굳혀지는 정설로 될 것이라 썼다.
이러한 책은 단 한줄도 읽어줄 수 없는게 인용 글귀들은 원래의 책에서 찾으면 될 것이고 그의 생각. 그런 주장은 오류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오류라 생각하기 이전에 아리랑이 정선서부터 시작되었다는 한심한 이야기로 정선 아리랑을 포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원래는 평창 아라리나 정선 아라리의 가락은 산의 소리의 동질 음이었고 그 가사도 한 바운드(하나의 문화권역
내에서 하나의 장을 동일 가사와 가락으로 이루어진)의 가사들이었는데 근대화 시기 정도에 정선아라리는 오지의 고립되어
이어져 오던 아라리가 외부와의 접촉으로 인하여 산의 아라리가 개량되어 짧은 스커트로 갈아입듯이 화전민들의 산의 소리의
가락이 들의 소리의 가락으로 탈바꿈하여 산에서 부른다면 바탕에 어울리지 않는 스커트 입고 산에 올라 한민족 고유의
아리랑을 부르는 짜깁기 소리일 뿐, 산의 소리의 고유의 한탄과 탄식조의 가락을 품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기에 한치 뒷산의 평창 아라리는 지금까지도 외부와의 순화도 없이 자생한 아라리로 산의 소리의, 그 고유의 가락으로
잘 계승되어 왔으며 오늘도 살아서 민초들의 생활과 같이 호흡하며 그들의 애환을 달래려 불리워 지고있는 것으로 이로써
평창아라리는 전통성의 가치가 높은 것이라 하겠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것이 나의 평창아라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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