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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간성(干城)

이름없는 간이역, 지평리엔,,,

 

이름없는 간이역, 지평리엔,,,

 

 

후세백작 2015.07.19 23:37

 

  태풍이 지나간다는데 어이, 가랑비만 내리고 있다. 

후덥지근한 일요일 오후. 방콕보다는 어데론가 자전거로 한 바퀴 떠나야 시원할듯, 그래, 서울 전철중 에어콘이 가장 시원타 못해 춥도록 시린 중앙선에 자전거를 싣고 양평을 지나 종점 용문까지 시원스레 가보자.

 

  용문역에 내려서니 아직 해는 중천인듯 후끈한 열기에 숨이 탁 막히는 듯 하다. 그러나 아직 이정도야...하는 수 없이 땀을 철철 흘리며 용문고개를 넘어야 했다. 용문고개에서 잠시 쉬며 나는 한참 두리번 거렸다. 저 산을 돌아서는 지평인데, 원주로 가는 기찻길에 용문 다음은 지평역, 구둔역, 문막뻘로 이어질텐데.. 중앙선 전철은 아직 완공소식이 없어서,,지평으로가는 철로를 유심히 바라보았던 것이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엔 이 철로를 업그레이드 하여 KTX가 평창을 가야한다.

경춘 ITX-청춘열차는 180km/h 급이지만, 영종도에서 부터 강릉까지는 100분 이내 주파하기 위해서는 평창으로 가는 열차는 320km의 KTX-산천급이 투입될 것이다. 원주~강릉간은 레일은 250km이라느니 여기에 300km의 KTX-산천급의 열차를 올리면 언 밸런스라는등,,,어쨌거나 3년만 기다리면 산꼴같던 나의 고향 평창을 KTX로 다닐 수 있어 기다리는 마음이다.

 

  앞으로는 누가 강원도를 "감자바우"라 말할 것인가? 특히 군대가면 "삐탈"이라 하지만,,  이젠 세월이 변하여 KTX는삐탈에도 올라가는데, 아마도, 고참나리들의 고향은 모란가지 돌아 곳집이 있는 골짜기보다 더 산꼴이올시다.

용문 다음역은 지평역, 구둔, 양동, 문막, 원주로 내려가는데, 중부 내륙의 이름모를 간이역, 지평과 구둔은 역사적인 마을이다.

구둔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적의 방어를 막기 위해 설치했던 9개의 진지를 말한다. 이포에서 양평으로 올라올때 대신에서 지제. 구둔과 지평을 통해서 왜군이 한양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는 교통 요충지의 증거이리라.

  또한 지평은 6,25동란에 치열했던 전투지로 벨기에 바스토뉴의 일명 벌지전투와 동일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이는 한국판 라이언 일병구하기로  세계 전사에 찬연히 빛나는 곳인데, 지평하면 그저 술 잘먹는 친구들일랑 아는것은 지평막걸리일뿐,,그런데 말이다. 이 지평 막걸리 공장은 6,25때 프랑스 대대의 지휘본부였다 한다.

 

  예전에 나는 양평문화원장님을 만나러 두어번 지평을 다녀가며 지평리 전투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는데...당시  프랑스  대대장은 랄프 몽클라르(Ralph Monclar) 중령의 무용담 이야기 또한 재미있다.그는 현역 쓰리스타(3성장군)인데, 중령의 계급장을 달고 대대장으로 6,25에 참가한다.

 

  1, 2차 대전에서 10번의 부상과 13번의 무공훈장에 빛나는,,,우리네 깍뚜기들은 흉터의 부상을 더 자랑하지 않턴,,,당시 6,25 전쟁이 발발하고 유엔에서 파병이 결정되지만 프랑스는 2차대전의 피해자로 여건이 부족한 이유로 파병에 반대적인 여론에서도 몽플라르는 강하게 파병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560여명의 자원자들이라 대대병력에도 미달되니 몽플라르는 3성장군에서 중령으로 강등하고 대대장으로 병력을 이끌고 6,25전쟁에 참전한다.

 

  이 프랑스 군대는 미 보병 2사단( 현재는 의정부, 동두천 주둔의 23연대에 배속되어 장전호 전투이후 흥남철수에 내려밀리는 전선은 1,4후퇴후 1월 5일에 다시 서울을 내주고 수원-원주-강릉선으로 후퇴합니다. 이때 중공군 4차 공세에 국군은 횡성에서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하니 서부전선과 동부전선의 분깃점인 지평리는 노출된다.

 

  23연대장 프리먼 대령은 재빠르게 알몬드 19여단장에 퇴각을 건의하고 알몬드는 8군 사령관 리지웨이에게 퇴각을 건의하지만 리지웨이는 프랑스군대는 현 위치를 사수하라 명령을 내린다. 중공군 9만대 미,프랑스 군대는 600명이 완전 포위당한체로...이런 상황에 현 진지를 고수하라는 명령은 행여 코박고 죽으라는 기분일지도...

 

  아마 우리네들은 이러한 명령에 이유를 항변할 것이고, 그보다는 이러한 명령 자체가 있슬수 있는 상황은 아닐것이라 생각되지만,,,이 명령에 프리먼 대령과 몽플라르 중령은 살기위해서 즉각적으로 고지를 버리고 지평리 마을의 평지에서 1,6km의 참호를 파기 시작한다.

 

  지금껏 전술개념에 고지를 선점해야 유리할텐데,,,, 평지로 내려와 1,6KM의 참호에서 기다리던중 중공군은 갖혀있다는

먹잇감을 잡으로 9만여명이 몰려왔다. 그러나 이것은 릿지웨위의 덧에 걸려든 것이다.

 

  기갑에 패튼 대정차군단의 영웅 패튼장군이 있다면 공수엔 가슴에 항상 수류탄 두발을 메달고 다니는 릿지웨이가 있다.그런데 맥아더는 까만 썬글라스에 씨가등,,, 20대 젋은 친구들의 연기력을 흉내내는,,,영화배우도 아닌 군인으로서그러한 분장과 제스쳐를 트루먼만 실어했겠는가??

 

  벌지전투의 직송상관은 군당장 릿지웨이였다.

그는 우리 한국 전투에서도 동일한 벌지전투를 만들어 승리하며 1,4후퇴로 용기를 잃어가던 유엔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다시금 서울 수복에 이르게 된다.그러면 상대적으로 핵, 핵 거리고 핵만 터추자던 맥아더는 더욱 작아지게 되는 것이다. 암튼 6,25전쟁은 민주주의에 대항하여 쌓트는 공산주의의 간보기 실험장같은,,,또한 맥아더대 모택동의 전술의 씨름장인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인천상륙작전 후 맥아더는 웨이크 섬에서 트루만과 회담을 가지는데 언 기자는 둘이 만났슬때 맥아더는 거수경례가없었다 한다. 이후 이문제에 본 사람이 없어 찬반의 답은 누구도 없다하는데 ,,,그럼 당사자 두 사람은 정확히 알고 있을것이고 그들의 자서전엔 무어라 쓰지도 않았는지??

 

  대통령은 한나라의 최고 국군통수권자로 별 닷개의 원수도 경례를 붙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군법에 회부될 일 아니겠는가??싫어했다 한다. 이러한 맥아더는 그 회의를 마치고 점심을 같이 하자는 트루먼에게 동경일이 바쁘다고 점심식사제의를 무산시킨다.이것은 분명 맥아더의 어깨가 뻣뻣해진 모습이고 이후 맥아더는 중공군의 총알이 날아들어도 중공군에게는 오판을 계속 한다. 무식한 노인네의 똥고집처럼...

 

  낮에도 영하 20도의 강추위에 장전호에서 미 해병이 포위되는,, 극동군 사령부의 오판의 명령만,, 또한 횡성전투에서 한국군 1개 사단이 7-8천명 손실을 입고 붕괴되는 아몬드 장군의 잘못된 게산의 명령들,,,하지만 이 지평리 전투에서 유엔군은 50명만 전사하였지만 중공군 5천명을 때려잡는...유능한 장군은 100명의 아군 피해를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다음의 만명을 살려내는 명 전투가 아닐까??

 

  다음편으로 지평리의 영웅 두 사람을 그려 보입니다.

예고편이 너무 장황한듯,,,

 

 그렇다. 지평리전투는 비록 한국군이 아닌 UN군이지만 그러기에 이국땅에서 사선을 넘어서는 그들의 준비성과 용맹함은 이의 추모행사를 넘어서서 시대를 넘는 기념비적이고 젊은이들에게 체험교육의 산 역사의 하나의 장을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에 다음 장으로 "지평리 전투"를 그려 보이겠습니다.

 

---------어느 댓글에서 -----------------

세월은 유수라 흐르면 그만이지만
시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개념이랍니다.
어느 부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사고 팔수도 없는..
그래서 세월이 흐르면 누구에게나 그리움은 남겠지요.

 

하루, 하루 쌓여 세월은 밀려서 生은 먼 가장자리로 다가가는듯 하지만..
종착역은 아직 장미꽃 화원을 돌아 저 먼 안드로메다를 넘어가야 할 시간이 남은듯 합니다.
이 넉넉한 시간에 그래도 찔레꽃 미소와 향기가 가득한 인생의 한 복판에 서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메나리조 평창아라리의 고향
청옥산도 무덥지요??


비가 올라나 소나기가 쏟아질라나...

간밤에,, 이른 새벽에도 서산 저편이 농담(濃淡) 짙은 수묵화같은 구름은,,

청옥산 고마루 골짜기 넘지나 말게나

님 계신 저 구중구처 안쪽까지도

육지가 바다가 되도록 퍽퍽 쏱아져 내려라..

 

---죠크 하나 ---------------------

 

요즘 문인들 사이엔 표절이 논란이 되고
난 내 기억을 믿지 못한다 하는데...


" 육지가 바다가 되도록 퍽퍽 쏱아져 내려라.."는
한치 뒷산 아라리에..

"육백마지기 퍽퍽 무너져 육지가 평지 되어도
청옥산에 정든것 만큼은 잊지는 맙시다"라는 아라리 가사에서

따온 표절이라고 볼수 있습니까??

 

그만 갑니다.

.

.

 

 

 

 

 

 

 

 

 

 

 

 

 

 

 집에 돌아오는 저녁에 큰 소나기를 만났다.

 아마도 올해에 처음으로 시원한....그런데 이 사진의 밖은 지금 한참 소나기 중,

내가 기다리는 것이; 이길것인가 소나기가 이길 것인가??

다리 아래의 약 1Km가 넘는 이 길을 자전거로 두어번 왔다갔다 하다보니 소나기는 이내 삭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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