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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생각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의 모뉴먼트적 기념 조형물에서...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의 모뉴먼트적 기념 조형물에서...

 

 

 

아래의 두 사진은 평창읍에 세운 평창동계올림픽의 기념 조각상이다.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 개최에 대한 기념비 제막은 어딘가에 있어야 할 좋은 소재의 발상이다. 그러나 본인의

감상으로는 이 점의 조각상이 그리 좋은 조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누가 주관하고 누가 조각을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내력은 알 필요없이 이 두 모뉴먼트(기념비적인) 조각이 무엇이 문제인가 또한 이를 통해보는

조각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필 하겠다.

 

흔히들 미술 감상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면서 전문적인 소양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감상이란 다른게

아니라 전문가가 아니라도 내 상식에서 그림을 보고 느낀 점이 바로 감상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예술에는 무감각하여 잘 모른다며 그런거 처음봤어 라고 말할때 처음본 바로 그 느낌이 당사자의

감상의 이해인 것이다.

본인은 조각 전공자로서, 아래에서 본인의 감상 소견을 피력한다.

 

 

 

 

조금 풍자스런 이야기이지만 스키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운동이다.

등산은 낑낑거리고 고생스럽게 오르막을 기어 오르지만,,,스키는 리프트를 타고 오르며 아래로 미끄러지며

하는 운동이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편한 운동이다.

 

위 기념비는 스키 정핑시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정핑대에 올라 100여m 상공을 날아 오르는 긴박한

스릴의 모습은 없다. 스키 점프는 아래로 향하며 날아 오르는 것이지 위로 날아 오른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위로 날아오른 " 飛上"이란 제목쯤으로 점프의 상징성을 나타낼수도 있슬 것이다.

 

이제 위 사진의 포즈에 대하여 분석적으로 나열해 보자.

모든 운동에서 힘을 주면 가장먼저 목에 힘이 들어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의 중심선은 운동시 움직이는

인체에서 발목 내측상과에 중심의 축선이 연결되고 그 힘은 발목을 지나 발바닥의 앞굼치로 연결된다.

 

싸이클이나 달리기, 모든 운동에서 목에서부터 발생되는 모든 힘은 발바닥의 힘은 발의 뒷굼치가 아니라

앞굼치에 모여서 힘을 발산하는 것이다.

그러지만 위 사진의 조각은 발 뒷굼치에 힘이 모이게 되며 이로서 이 조각은 사실위배라는 큰 오점을 가진다는

것이 본인의 견해이다.

 

하나의 비유를 예로 보면 옛날 공업화 시대로 진입하며 우표에 톱니바퀴 3개가 서로 맞물리는 도안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톱니바퀴 3개가 두개씩 연결되면 톱니바퀴의 제 역활을 하지만 3개사 동시에 물리면 구동축은 돌지

못한다. 이것이 상식위배로 사회는 그런 모습들에 낙인을 찍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발 뒷굼치에 힘을 주며 스키 점프를 한다면 차마 웃음이 않나올수 없다.

이 조각상은 세계 올림픽에 대한 조각상이지 동네 잔치는 아니기에 아마도 북구 사람들이 다녀가며 이런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무지하다 평 하겠는가??

 

그리고, 다음으로 위 조각상에서 점핑포즈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이해해보자.

이 포즈는 기실 스키만 신지 않았다면 스키선수의 동작인지 다이빙 선수의 동작인이 이해하기 애매하다. 또한

한쪽 발은 뒷굼치를 접어 앞으로 향하며 또 한쪽 발은 뒷굼치를 들고 차롓자세를 할 수 있나 한번 해 보면 알 수 있다..

 

한 발을 치켜들은 모습은 새 역사를 쓰기위한 긴장된 도전의 세계를 향하는 것도 아니고 승리의 만취감도 아닌

여유로운 망중한 시간인가?? 이런 포즈가 스포츠를 대변하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이다.

또한, 조각이니 이런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짝다리로 해부학적 인체의 모습을 기형을 만들겠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기에 통용이 않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바탕으로 다시 이 조각상을 전체적으로 다시보면 스피드의 날렵하고 힘찬 동작의 전율의

느낌은 없다. 왜냐면 한발은 스키를 벗고 뒷굼치를 들고있는 動的인 모습이 아니라 靜的인으로 스포츠 선수의

달리는 모습이 동적인 액티브가 아니기에 전율이 흐르면 안되는 조각상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조각가는 스키와 선수의 오브제의 매치라고 말한다하여도 지금 이 모습은 활공의 모습이며 이런 자세의

포즈는 기형이 되기 때문이다.

 

위 포즈의 인체도 포인트의 힘이 없는. 운동선수답지 않은 느낌으로 모뉴먼트적인 전율을 느끼지 못함이 본인이

바라보는 아쉬움이다.

 

 

 

 

스피드 스케이트가 소재로 되어 있는데 스피드 스케이팅의 목표는 속도이다. 하지만 위 동상에서 스케이팅

자세는 전속력 질주의 모습은 아니고, 레이싱이 끝나고 일어설때쯤의 자세인듯하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트레이드 마크는 파이널 라스트의 전속력 질주 모습이다. 그런데 사진의 자세는 힘찬

스피드의 이미지도 아니고 휘파람 불며 타고있는듯한 여유로운 모습이지 스릴과 박동감이 넘치는 긴장된 순간의

포즈는 아니다.

 

위 사진의 포즈가 아니라 몸을 좀더 숙여서 자세를 낮게하여 몸의 중심이 더 내려와야 한다. 지금 이 자세의

모습은 중심이 위로 올라가 있으며 앞발의 전진에 따른 뒷발이 얼음 노면을 긁으며 균형잡음으로 힘이 분산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러면 최고의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은 어떤 것인가??

그 모습은 앞굼치는 앞으로 30도 정도 구부러져야 하며 뒷발은 뒷무릎을 힘차게 치며 쫙 뻗어야 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앞, 뒤 발의 간격이 크게되면 자연 상체도 더 구부려 낮아지게 된다. 이러한 자세는 공간력이 작아지기에

이러한 댄스자세로 변형을 했다 한다면 이 자세는 스피드의 전율과 다이나믹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 이 포즈에서 참으로 우스운 것은 스피드 스케이팅 날에 신발은 스피드 스케이트 용이 아닌 발목도

감싸는 스피드 내기엔 반감이 되는 엉터리 신발을 신고있다는 점이다.

조각가는 조각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나 상식의 기반위에나 가능한 일이지 기념비적인 모뉴먼트 동상에서

이러한 고증도 없는 조각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해부학적으로 무릎아라 다리는 상지보다는 좀 긴듯한 인상이고 신발과 발목의 매치는 상당히 어색하며

신체 다른 부위보다 아랫다리 부분은 모델을 보고 제작한듯 상부의 조각과는 언밸런스적으로 세밀히 묘사되어

있는데 스케이트 선수는 나부가 아니라 유니폼을 입었기에 이러한 인체적인 느낌은 없어야 정상이다.

 

또한 등은 힘없는 상태로 구부러져 있으며 등에서 연결되는 목은 등 박스 트렁크에서 나온 자연스런 느낌이

아니라 목을 잘라서 부위가 맞지않은 곳에 분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즉 인체의 해부학적으로 가능화지 않은

모습이란 점이다.

 

자, 그러면 목은 숙인 상태에서 고개를 쳐들 수 있나 한번 해보면 그 답도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목뼈인 경추는

15도 전방으로 구부러져 있긴 하지만 위 조각상의 목뼈를 두번 뿌뎌야 가능한 기형의 모습이다.

이 조각가는 인체의 해부학을 공부하지 못한 전형적인 아카데미즘적 공부는 하지않은 자이다.

 

집이나 도형의 조각에선 사이즈의 비율적 구애를 받지않고 창문을 크게도 만들고 작게도 변형할 수 있지만

한정적으로 제한된 인체에서는 인위적으로 마음대로 해서는 않 되는 것이다.

 

미술을 한답시고 누드 그림을 그린다고 호기심으로 바라보지만 그것은 사치스러운 학문이나 감상적 차원이

아니라 인체의 해부학적 모습의 이해이다.

인체의 표면 피부는 그 속에 삼겹의 근육으로 이루어지며 그 근육속에는 뼈가 존재하기에 그림에서 뼈의

부위가 자연스런 연결력이 부족하면 .경추의 목뼈 7번째는 흉추의 연장선상이지 뼈와 뼈가 연결이 안되는

느낌으로 위에서 말했듯이 목은 아래로 굽히며 얼굴(고개)는 쳐드는 표현은 각 부분의 뼈가 뿌러지기 전에는

불가능하고 어색한 것이다.

 

또한, 우리가 힘을 쓸때는 어금니를 꽉 물로 목에 힘을 준다. 그렇듯이 이 포즈에서 스피드 요건의 하나는 목에

전신의 힘을 주어 목 중심에서서 생성된 힘이 다리로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위의 포즈에서 목을 아래로 떨구고 고개를 쳐 들고 함이 들어가는가 직접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작품은 거짓의 허구란 점이다. 왜 그랬슬까 하는 점은 이 작품을 하는 작가는 인체의 해부학을

공부하지 않은 것이 명확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으로 인체 각 부분을 연결했기 때문이다.

 

조각이란 사진 한장으로 입체를 꿰 맞춘다는것은 어려운 이야기이다. 그러기에 누드모델을 필요로 해부학적

연구통하여 아름다운 미를 찾아 공부하는것이지 그것이 사치나 허세는 아닌 것이다.

 

이런 필요에 의해 해부학은 레오나르도다빈치가 창시하고 당사자에 의해 완성이 되며 의학서에서도 해부학책

서문에 그의 사진이 실린다.

 

다빈치는 해부학을 연구하기 위해 3개월 된 무덤 때로는 한달된 무덤등 근육을 연구키위해 밤으로 공동묘지에서

시신을 유기해 와서 근육과 뼈의 구조관계를 연구했다. 그는 당대에 교황과 어깨를 견주는 마이스터로서 명성을

가지지만 학문적 연구를 위해 이러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위 조각은 사진 한장에 의해 앞면 뒷면등 짜 맞추며 아랫 다리 정강이 근육은 사실적 수법으로 이 부분만 더

두두러지게 나타나기에 오히려 더 거슬리게 보인다.

건물을 조각한다면 창문의 크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한정되고 잘 구분되어 서로 연결된 인체는 해부학적

측면의 사실에 의거치 않고 상상을 통해서 인체의 구상화는 어려운 법이다.

 

본인이 조각한다면 앞 무름픈 좀 더 구부리고 뒷 무릎은 무릎 뒷편에 힘을 주어 무릎 뒤가 하지 윗 다리와

일선상으로 나타내며 이로서 무게 중심은 더 낮아져 안정적 모습으로 힘찬 스피드를 나타내는 역동적 모습의

조각을 할 것이다.

또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의 장단지 근육은 그야말로 장단지임도 강조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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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나의 모교 평창초교에 가산 이효석 선재님의 동상이 건립되었는데 가산 선생의 얼굴엔 일반적 조각에

아마도 수십년전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작품에서 이런 모습이 두두러지며 광대뼈에서부터 턱까지 2면의

곡선으로 강인한 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동상을 자세히 보면 입술도 참 이상하게 밉게 보인다.

 

하지만, 실제 사진에서 보는 가산 선생의 턱은 뾰족한데 조각에서는 전혀 딴판의 말 주걱턱을 만들고 있다.

고증 이전에 말 주걱턱의 강인한 모습은 군인등이 적합하며 하는 조각가는 관상학도 상식으로는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조각을 하고서도 작가 누구도 아닌 교수 누구라고 써 놓았다. 교수가 작가보다 더 높은 세상이란 말씀인듯..

 

또한 조각의 통상적 기법, 즉 가장좋은 묘사방법으로 흉부의 가슴은 어떻게 나타내는가??

유방과 유방의 사이는 유방 하나의 공간이 떨어지는데 이는 사실적이지 않은것으로 시각적 느낌에 더욱 충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평창올림픽 선수촌 숙소엔 "총알 맨"이란 제목으로 남자의 토루소 같은 나신 3개가 있다.

 

얼굴은 바케스를 뒤집어 쓰고 강력한 근육질의 남자가 성기도 보란듯 조각되어 있다. 서양에서 조각에 성기

표현은 일반적으로 포경상태로 끝을 몸에 붙게 무드러지게 만든다.

 

하지만, 총알맨의 3개의 흉상은 그 강한 근육의 연속에서 성기는 자연 돋보이게 되며 작가는 스스로의 미학적

논제에서 인간이 보는 사회를 바께스를 뒤집어쓰고 보이지 않을때가 더 편한 세상이라하며 인간의 내면의 美론은

시작되는데...

 

하지만 그 논제는 찬성하지만 그 이론을 위해 이런 노골적인 포즈로만 조각을 하여야 될 것이라는 점엔 찬동하지

못한다. 그러지 않고도 그 논젤글 충분히 어필할 수잇는 다른 조각은 없슬까??

 

이 점은 어려운 미학이라 혹 다음에 다시 쓸까 생각해보아야 하지만 미학자들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요즘 뉴스엔 북칸예술단이 식상하게 나오시는데,,여기서 예술단이라...예술은 독창성과 개개인의 창조적

감성이나 예지 능력을 가져야 함에 북칸 예술단은 매일 똑같은것 연습하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반복성의

기능인의 딴따라이지 그들에게 예술적 가치관을 찾아보기란 아렵다. 그러기에 예술단이란 명사는 부적절한 용어인듯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조각의 예술에서,,,

구상적 모티브의 인체조각에... 세종로에 있는 이순신장군 동상에서 전통사상에 칼을 오른쪽이니 왼쪽이니

운운한다. 물론 이 동상에 일을 도와주던 학생들이 이제 팔순을 넘기니 아마 60년전에 조각인듯하다.

 

이렇듯 평창의 스키. 스케이트 조각상은 위의 지적한바대로 오점도 있고 보기에 스피드의 모뉴먼트로서는 너무나

미약하다는 점이 본인의 생각이다. 그러기에 발주처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위원회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도 웃기는 점은,,, 월정사 팔각구층탑 난간석의 4각 2층 구조물은 동 탑이 국보 48호이기에 난간석도

문화재청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난간석은 독창성은 커녕 합천 해인사 뒷마당에 있는

3층 석탑 난간석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팔각탑에 4각 난간석의 매치도 이상하건만 울 나라 전통 난간석의 유형에도 위배되는듯,,,

하지만 문화재청 심의위원들은 찬성했었는지 아니면 낮잠잤는지는 알 수없지만 전문가 심의에도 무언가 석연찮은

점을 남겼다.

 

이만 물러납니다.

낼 모레 시골가서 사진으로만 본 동탑들을 입체적으로 다시 확인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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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딴따라 애들이 평창와서 언 사람을 지칭하듯한 그노무 " J 에게"만 불렀지 "바람아 멈추어다오"는

가사를 몰랐나...

위문공연단이 위문좀 잘들 하시지.

하늘도 이젠 무엇이 불만인지... 바람잦을 날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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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계막식에서 정선아리랑이 창출되었다.

잘 단련된 소리꾼의 느릿느릿하게 恨의 소리를 조금은 감미롭고 긴장된 스타일로 불렀다.

듣기는 좋았으나 본인은 그보다 평창아라리의 유네스코에 등재된 미탄 정가악회등의 평창아라리가 그보다는

이 땅의 삶의 체취를 시그널하게 그들에게 먼 후일까지도 기억될 수 있게 더욱 효과적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서술했듯이 남아공 월드컵에 기억으로는 원주민 추장 두사람의 토착적 춤 사위 한판이 가장 인상적으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듯이 영서지방 산간아라리의 토착적 원음인 평창아라리는그에 따른 춤 사위 공연이

소리로만의 청각적만이 아닌 이미지 모습까지 곁들인 가락으로 삶의 의미와 모습을 표출하기에 영서지방을

대변할 수 있는 평창의 가장 세계화이란 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창은 평창의 이미지를 남기지 못하고 죽 쑤어 펴돌리고 빚만 남게되는 것은 아닐까??

그나마도 가리왕산의 중봉은 올림픽후 원형복귀라니 다행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