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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에 대한 나의 이해

2) 월정사 8각 9층 석탑의 경계석에 대한 나의 이견(異見)

 

      2) 월정사 8각 9층 석탑의 경계석에 대한 나의 이견(異見)

 

  근래의 월정사 중창에 8각9층 석탑의 난간석과 석조 보살좌상과  석등의 공사를 하였는데 이 3개의 공사

공통적 요소들의 기준점의 잘못 책정으로 인하여 연차적으로 잘못되어가는 월정사 중창을 소상히 해부해 본다.

 

< 월정사 8각 9층 석탑의 전경>

           (좌; 1차 철재 난간석)                                                  (우; 3차 2중 석재 난간석)

 

 무엇이 그리 큰 오류를 범하게 만들었냐 하면 그것은 블로그등의 월정사 사진들비교해 볼때, 맨

공사의 탑파 난간석 공사의 영향으로 인한 석조보살상과 석등공사에 미치는 파장을 볼 수있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처음엔 철재 가드레일이었으나 그후  약 십년전쯤에 1차 1단 석재계석으로 공후 

근래의 중창에서 2단 석조 경계석으로 다시 확장 공사 되었다.

 

1970년대 탑 해체 보수공사시의 기록을 보면 법당의 전면 5칸은 18,15m로 기록되 있다. 그러면 위 사

판독으로 탑파의 난간석은 약 한 변이 약 15m 임을 알수 있다.

 

아마 70년대 해체 보수 공사시의 철재 경계석이 90년대에 녹슬고 그를 석재 1단 경계으로 대체하였

양이다. 이때 공사금액은 6천만원이 넘는 금액으로 지방자치단체인  평창군청에서 결재되었다.

즉 한변이15m이라면 사각의 변의 합은 60m로 즉 난간석 1m 당 일백만원의 공사비를 지불한 셈이다.

 

공사금액이 왜 이렇게 비싼가 하면 이 공사는 문화재 시설 공사로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심의과정을 거

않았는가 하는 일반적 상식 이외엔 아무것도 모르지만, 어떤 경로인지금 나는 알 수 없지만 그 공

주자는 지방세수의 담당자는 평창군청이었고 문화재 보수공사비는 여타 일반 공사의 10배 이상이라는

액의 금액이라는 것이다. 당시 강원도의 모 건설사가 문화재 2급기사 자격증으로 이 공사를 계약한 것이다.

 

그후 혹시 이번 중창에 앞서 이1차 경계석이 미관적으로 약하다는 일반적 여론이 있었던듯 싶고,  2차 석

경계석은 가로활대가 2단용으로 구상되었던듯 싶고 아래의 그림같은 2단 석조 경계석을 제작, 설였지

공사비 부풀림으로 규모가 크게 하였슬까??

 

그 보다는 기존의 여타 경계석의 전통성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2단용 경계석을 제작 설치하였다면

이말도 모순이다.

그 2단 석재 경계석의 구상은 다름아닌 해인사 3층 석탑의 경계석의 완전한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 아래 그림 4 참조 ; 그림4는 해인사 경내의 3층 석탑과 그 경계석이다>

 

글쎄요, 국보 48호의 8각9층 석탑의 경계석은 독창성 없이 어느 이름모를 작은탑의 경계석을 베낀것이다.

물론 독창성이라야 기존의 도형들일 테지만 아래의 참조 조형물들의 사진을 보면 약간의 해답을 구할 수 있슬

이다.

 

국내 모든 조형적 시설물들,,,  진신사리를 모시는 탑파나 능묘, 궁궐등 모든 난간석엔 각 석주가 기본

연꽃 무늬의 위 아래 붙인 모양의 살들이 연속되어 있다.

하다못해 백담사의 다리 교각도 기계화 되었지만 그런 폼을 나타내고 있는데. 월정사의 각 석탑은 완

곡선에 탑에 反하여 경계석은 사각형의 강직한 직각의 도형 경계석을 제작하였다.

 

근자에는 이런 류의 기계 조각의 제작 용이성도 가지고 있다.

만약 기존의 전통을 탈피하고, 또한  탑의 높이 15m에 비례적으로 맞는 2단 난간석을 들여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이라면 이는 더 큰 모순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래 사진 2번의 사람이 기댄 난간석의 사진을 보면 마치 나이애가라 폭포를 기대서 관망하는 모습이 된다.

이 탑파가 종교적이 아닌 일반인들에겐 신성시 될 필요도 없겠지그래도 국보급 문화재를 또한

설물도 고가의 금액인 문화재인데 그곳에 기대만드는  이런 유도적 기회를 제공함이 옳치 않을 것이다.

 

이 2단 경계석이 석등과 석조 보살상의 제작에 영향을 미친 첫 단추를 잘못꿴 느낌들을 이해하여 보자.

나는 경계석 공사의 일지나 리포는는 본적이 없이 단순히 개인 블로그들의 중창 사진들을 비교하여 보며

공사의 순서는 다음으로 거대석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석조 보살상을 제작함을 알게 되었다.

 

성인의 가슴까지 올라오는 경계석은 힘이 있어 보이지만, 다음으로 석등도 3,5m의 거대한 석등을 만들

되었다. (아래 3부의 석등편 참조) 또한 마지막으로 경계석내에서 천풍화속에서도 한결같이 공양을

드리며 쇠잔한 석조 보살상의 대체 모조 조각 작품이다.

 

경계석을 높이 하니 원래의 석조 보살상은 경계석안에 가둬  버린 느낌이 되었고 밖쪽에서 볼때는 목만

달랑달랑 거렸슬 것이다.그로부터 탈피가 좌대의 높임이다.

주 조각품에 좌대의 비율이 1;1 크기이다. 즉  배가 반. 배꼽도 반.,, 세계 어느 조각품을 뒤져 보아도 좌

1/3을 넘지 않을 것이다. 즉 이런 언 발란스의 조각으로 그 난간석 울타리를 올라탄 것이다.

 

그래서 아래의 그림에서처럼 8각9층 석탑의 정면에서 전경모습을 찍는다면 석조 보살상의 조각이 석탑

단부와 아래 2개층의 탑을 마치 사다리처럼 올라탄 불 균형의 美를 창조한 이다.

 

 

 

 

  

 

무엇이 主인가??

세존이 있어야 불공을 드리는 보살이 있고,  경계석의 조형이 석탑의 조형을 능가 하려고 애쓴듯 하지만

오히려 방해만 하였단 점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1> 근래의 공사중 맨 처음으로 경계석 공사를 하였다.

       ( 이후  석조 보살상이 제 자리에서 실내 박물관으로 보관 이전된듯 하다)

   2> 새로 제작, 설치된 2단 경계석은 사람의 흉부 높이까지 올라간다.이로서 새로 제작된 모작의

       보살상은 경계석 높이만큼 좌대를 올려 석조 보살상이 경계석으로부터 가려지는 부분을 탈피하여

       완전한 조각품으로 시야에 들어오도록 노력 하였다.

       그 결과 보살상의 높이가 약 3,5m이고 석탑의 높이 15,15m 에  1/5인 지대석과 탑신의 하단 2층

       가리게 된다. 탑신의 상단부 보륜및 보개를 뺀 탑신은 약 1/ 3,5을 가려진다.

       과연 보살상이 主이고 석탑이 종인가??

       이 문제는 아래 챕터 3)의 석조 보살상의 고찰에서 논의해 보기로 한다.

  3)  경계석 위로 올라선 보살상의 느낌은 아마 어떨까??

       나의 감상으로는 경게석은 사람을 차단하는 울타리같은 느낌만,,,그러나 경계석이란 그곳의 영역을

       가려주기 위함이라야 옳은 듯 하다

  4)  이 사진은 해인사 경내의 3층 석탑의 경계석 사진으로 월정사 석탑의 경계석은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심의가 있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었슬까?? 분명한 것은 이 경계석은 그런 구차한 행위<전문 심의>

       필요없는 모작이다.  이러한 부분들의 이해로 본다면 국보 48호의 8각 9층 석탑에 대한 이해가 젼혀없는

       개축공사라 아니할 수 있슬까??

      예술이란 독창성의 발전적 美를 추구함이다.

 

      다음 챕터들에서 <석조 보살상의 모작과 석등의 제작> 더욱 가당치 않은 이해를 하여 봅니다.

 

  참조 조형물들의 사진을 보면서 일반적으로 난간석(경계석)은 탑 둘레의 구분과 능묘의 시설물에 흔히 있다.

쌍계사의 8각9층 석탑은 월정사 탑의 1;1 모작인듯 하나 그 경계석은 전통양식을 따른 것이고, 아사진의

복궁 어전의 근정전 앞 계단의 난간석들을 보아도 전형양식은 석주가 8각이고, 연꽃의 상칭무늬로

이루어져 있다.

불교 조형품이나 능묘에서 연꽃을 오브제로 택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주 순수하고 깨끗함의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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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장에서 석등의 모순점과  석조 보살상의 모조 조각품과의 대비로 보는 원래 석보살상의

그려 본다.( 이는 모조품의 이미테이션으리 오류를 논할 필요보다 보살상의 조각시 원작자의 생각치 하여보는

이해는 다음 3) 으로 씁니다.

  

 

 

 왜 이렇게 꽁꽁 붙잡아 2중의 울타리로 가두어야 할까??

아래의 기단부가 가려지는 완전한 석탑의 사진을 찍을수 없다.

기단부의 힘이 위로 뻗치는 석탑을 그려볼수 없다.

이 석탑의 영역은 지반 다지기의 지하의 널판지 돌까지가 이 석탑이다.

이 탑의 신성한 영역, 즉  보살이 세존에게 불공을 드리는 영역의 일반적 땅과의 구분인 계를 구분함이

경계석이다.

나의 생각은 이 경계석이 장벽을 치는것보다 오픈형으로 우리의 시야에 들어옴이 더욱 으리라 생각한다.

더 자세한 설명은 석조 보살을 논한 후에 평전을 내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