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월정사 8각 9층 탑은??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 (국보 제 48-1호) ▶ 현재 월정사탑은 보존을 위해 덮개로 포장되어 있다.
시민들과 함께하던 천년보물 월정사 팔각구층 석탑은 노화로 인하여 포장속으로 보호하게 되었습니다.
탑이란 우리나라 고유양식이고 월정사 탑은 1.200여기의 탑중에 가장 장대하고 모든 탑의 각 부분의 양식을 모두 표출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우아한 미를 자아내는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심오한 불교의 우주관을 새기며 우리나라 문화를 대표하였습니다.
지난해 상부의 함몰문제로 복원공사중 불가피하게 포장을 하여 보존한다는데 어떠한 결함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필자의 상식적인 이해는 다르다는 점을 피력합니다
석조보살상도 노후화로 인하여 보존처리후 실내인 박물관에서 전시합니다만, 아래의 지광국사탑의 이야기를 예로 합니다.
<지광국사 현묘탑>
지광국사의 탑비 기록엔 국사는 수항리사지에서도 주석하였으며 현재 원주에는 국보가 2개로 법천사지의 " 지광국사의 현묘탑(국보 101호)"과 "지광국사 탑비" 입니다.
지광국사 현묘탑은 승탑으로 조각수법이 빼어납니다 그래서 일제 초에 불법 유출되어 일본 낭인들이 오사까에 귀족에게 팔았는데 이 비석이 멋있다고 소문이 나서 테라우치 초대총독은 알게되어서 국가 소유니 그 자리로 반환하라고 판매자들을 구류까지 시키고 감옥에 보낸다고 하자 삼만 오천원의 원금을 돌려주고 반환하여 돌아와 경복궁 서편에 있었습니다. 아마 당시로는 신작로가 생기기 전인듯 합니다.
필자는 이십 년전쯤 경복궁에서 "지광국사 현묘탑"을 보았는데. 필자는 전공이 조각이라 관심이 가서 한참을 보앗다. 이런 조각을 하겠다는 구상을 한 점도, 또한 어떠한 마음으로 깍았을까 하는 생각과 한면엔 창의 조각에 아라베스크 무늬까지 조각이 되어 있다.
조각이란 눈으로 보지않고 말로만 들어선 몽타쥬처럼되기에 아랍을 가본 사람사람이 조각했슬텐데 그럼 석공이 서역을 다녔슬까 아니면 구도의 길로 현장법사처럼 서역을 다녀온 석수스님의 조각일 것이란 추정을 하는데 월정사 탑도 이러한 석수스님들의 노력이라 추정합니다.
그런데 지광국사 승탑에 대하여 후일에 알고보니 지광국사 탑은 6.25때 포격을 맞아 100여 조각으로 부서졌는데 저는 한시간 가량 보면서도 그걸 몰랐으니 정말 깜쪽같이 붙여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과학의 발달에 본 탑은 대전의 문화재청 정비실에 들어가 접합부위를 긁어내고 다시는 깨지지 않은 접합의 정비를 마쳤으며 원주 부론의 법천사지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잠시, 석재 조각에 대해서 설명)
이태리 대리석 조각은 연질 돌이라 칼로 다듬어도 되기에 정교한 미를 자아내고 태국등의 돌 조각도 우리 대보 화강암보다는 무른 사암급이기에 조각이 쉽지만 화강암은 경도가 2,5정도까지 높아서 조각이 힘들며. 초보자는 망치 한방에 꽁알 한쪽도 떨구기 힘들며 정만 튑니다.
가까이에는 주천 법흥사의 징효대사 비는 크기가 2m쯤 되는데 대게 오석으로 현재는 보령 오석만 있듯이 산지도 멀고 운반도 용이치 못하자먼 옛날에 어어 툴이나 전동공구가 없기에 연자방아의 축력을 이용해 갈지만 탑의 네모돌은 정으로 평면작업을 하기에 탑의 접헙되는 부분들은 그렇게 곱지 못합니다. 예로 보면 진부 탑동리 탑은 현재 기울게 새워져 있고 탑재들 사이에 틈이 있는 것은 이전시 서로 같은 짝을 못맞춘 것입니다.
그러면 징효대사비에 대한 감상으로 어려운 한문 알면 좋치만 그냥 어떠한 마음으로 글씨를 조각했는가 들여다 보면 몇 삼년간 한자한자 공들어 조각한 성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석재의 질이나 결에 의해 각이 부서지면 이것은 나미아불 타불이 됩니다. 그러기에 망치 한방에 내가 원하는 만큼 끝까지 100%를 해야 되는데 평창읍내 시장 뒷편에 이효석의 기념비에 부인 이경원을 이원경으로 잘못 조출하여서 이를 친구에게 알려줬더니 역사의 이름을 잘못햇으면 수정해야 된다기에 수정이 불가능하니 모른척 해라 하였지만 보고가 된듯 한데 아직 그대로 입니다.
만약 세종로의 세종대왕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찌될까요?? 그러기에 조각은 어려운데 아래 지광국사 탑은 날까지 전수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법천사지는 시굴조사의 택지조성 공사의 완료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속에 폐사지로 돌아가고 그곳에 원주의 국보 두개가 있기에 답사여행의 자원화가 될 듯합니다.
이렇듯 월정사탑도 현대과학의 보존처리가 가능합니다 .
월정사 탑은 15m로 거대하지만 각 부분별로 해체가 되기에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지금처럼 가건물로 포장하면 강한 바람에는 보호되지만 노후화에 항구적 해결책은 아닌듯 합니다.
월정사 팔각탑의 제일의 아름다움으로 월정사의 랜드마크 입니다. 또한 관광자원이기도 하기에 앞으로 이 부분도 여러 토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대산 사고의 실록귀환의 문제에 아직 획실한 답은 아닌듯 합니다
하지만 원주사람들은 지광국사 승탑이 국보로 되고 귀환 운동에는 많이 노력했고 답은 얻었습니다
아직 오대산 사고 환수본은 제자리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일전 진부에서 귀환운동에 잘못한 느낌에 성명서를 부탁하여 보니 46책이라는데 이거 47책입니다
환수본 46책에 배진현 교수가 후에 한권을 발견하여 최종 47책입니다
◀사진에 4개의 석재는 탑의 옥개석(지붕돌)으로 지난 1970년 해체 보수공사시 1.2 6.9층의 개석이 파손이 심해서 새로 만들어 교체한 것임. 천년세윌 비 바람속에 일부 파손되면 지금도 이와같은 보수공사의 정비를 하는게 상식일듯 합니다
▶ 원쥐 부론면의 법천사지로 돌아가게 될 "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101호)"
▼ 지광국사 현묘탑 상륜부와 탑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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