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정사에 대한 나의 이해

《월정사 13층 탑의 예찬론》

월정사 13층 탑의 예찬론

오대산의 개산의 자장율사로부터 시작됩니다. 중국에는 4대 성지가 있는데 자장에 의해 수입된 청량산 (일명 오대산)의 문수신앙 단 하나만 들어와 오대산은 한국 불교의 성지가 됩니다.

따라서 오대산은 우리나라 불교의 원류이며 조선왕조에도 숭앙받는 사찰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조금 미루고 우선 저의 관심사를 조명합니다.

월정사 탑은 국보 48-1호 석조보살상은 국보 48-2호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고있는 현재 9층 석탑에 필자 단 한 사람은 십여 년 전부터 13층 석탑이라고 주장하며 문화재청에 이의 신청을 했었으며 아직 이 연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고려말에 민지가 13층 탑이란 기록의 문헌을 찾았으며 이제 실측을 통한 13층 가상도면을 만들면 논리가 정립된다아래에 인용하는 블로그 글은 탑의 예찬론을 쓸 수가 있는 상태가 되었으며 여기서 예찬론은 아름답다는 형용어들을 넘어서 고려 초 교종으로서의 국교화에 고려의 사찰은 전토를 노비도 소유하기에 불교 사찰에서 탑등의 대역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12C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쌍수의 선종이론이 확립되며 우리나라 불교가 대승불교로 자리하기에 월정사 13층 탑에는 세존의 사리를 봉안하며 이 땅에 지금까지 우리나라 불교의 주를 이루는 선종으로서 대승불교의 산파역의 상징성을 가짐을 볼 수 있는 점이 윌정사 13층 석탑의 위상이란 점입니다.

이로써 월정사 탑은 불교사적으로서는 민족문화의 역동적인 한 시대의 대업을 이루었으며 또한 타파의 찬란한 조형미는 민족 문화유산으로서 자리매김 하는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바로 월정사 탑의 현재의 문젯점을 기고합니다. 아래에 필자의 블로그 <후세백작의 지평> 에서 이러한 문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월정사 탑의 현재의 문제점》

월정사 탑은 상부의 함몰로 인해서 지난 2월에 정비공사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공사를 하려고 보니 중대한 결함문제가 발생하였던 듯 15m가 넘는 동 탑을 대형 조적물을 세워 포장을 하여 보존한다기에 이제는 더 이상 동 탑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과거 13층 탑이 9층으로 재시공한 문제와 다름없는 이유 때문입니다.

동 탑의 원래의 13층위 상륜부의 금동 철재 장식물은 지름 약 10cm의 찰주라는 기둥에 조립되어 두 개 층의 옥개석과. 탑신석에 구멍(찰주공)을 뚫고 약 5m 이상의 찰주를 꽂고 그 틈의 유격은 진흙을 개어서 넣었다고 합니다 ('70년 9층인 동 탑의 해체 복원공사. 정영호 리포트)

이때 유격이 생겨 상륜부가 흔들리게 되면 하루에도 수 만번씩 흔들리기에 진흙은 부서지고 유격은 더 심하게 움직입니다. 또한 진흙이 완전 고정되었다면 바람에 흔들리는 상륜부의 진동은 아래 찰주공을 끼운 8. 9층에서 그 힘을 감당하여야 하기에 아래층보다 폭이 좁은 위층으로서 조금씩의 균열등이 강풍에 부서지는 현상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본다면 탑 전체를 포장한다고 근본적인 정비는 아닙니다.

지난 '70년 해체 복원공사시 몇 기의 옥개석을 새로 제작하여 갈아 끼웠듯이 신규로 대체한다면 하는 의견입니다.또한 아래층엔 오랜 세월에 무게감등으로 균열이 가는 듯 합니다만 이 문제를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의 제시로는 수다사에 주석했던 원주 법천사지의 지굉국사의 승탑입니다.

원주에 국보는 지광국사 비와 승탑 두 점뿐입니다만 승탑은 일제때 오사까에 밀매되었다가 반환되어 중앙 박물관 야외 들에서 6.25때 폭격으로 100여 조각으로 부서져서 다시 붙였는데 저는 10여 년전 동 탑의 석수스님의 조각 마음과 기법을 읽기에 두 시간 동안 자세히 관찰하면서도 깨졌었다는 점을 알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동 탑은 국보 101호로 책정되며 대전 문화재 보존 과학처에서 다시 깨지지 않는 강럭한 접합을 하고 현지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듯 동 탑. 월정사 탑도 과학적인 진단이 있어야 할 듯하며 이로써 시민 곁으로 다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참고 ; 월정사 팔각구층 석탑의 조탑배경과 건립시기 연구 .숙대강사)

이 논문에 월정사 탑의 양식 계보가 고구려형이라 하며 건립목적은 지방 분권화 과정이란 논문은 이제 임용고시 기출문제에서 송나라 영향이라야 맞기에 폐기처분 되어야 할 논문이다

여기서 거론되는 약 열 명정도의 학자들 모두 고구려 계통 예찬자들,,, 논문 모두다 폐기되어야 한다.

왜냐면 이 학자들 설의 책을 보고 임용고시에서 북방형이라 쓰면 낙방할 수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2014년에 발표되었지만 필자는 2013년에 역사학자도 간파하지 못했던 송나라 영향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쉽게 한 것이 아니라 주철문화를 찾기 위해 송나라 역사를 20개 서점의 송나라 역사책을 모조리 뒤져본 결과이다 그리고 이 논문에서 보살상도 이를 조각한 석공스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빗나간 이야기를 하고있다

참으로 한국사학 이 뿐만이 아니예요  신사임당에 대해서도 거의 위선이고, 국행성황사란 개념도 모르고...이 점에 나의 블로그에서는 원천적 이야기를 하고있다

필자는 역사 전공자도 아니지만 이제 필자가 월정사 탑의 바른 이해의 논문을 쓸 것이다

 

《월정사 탑의 석질의 문제》

동 탑의 석재의 재질은 대보화강암입니다.

대보 화강암이란 중생대 쥐라기 말 이후의 시기에 습곡등의 지질의 변동에 의하여 여러 색의 화강암이 된 것으로 오대의 서쪽인 차령산맥이 주산지입니다.

이러한 대보 화강암도 산지에 따라 차이를 나타내는바 오대산 15km 아래인 수항리사지 탑은 순수 대보 화강암으로 옥개석 4면의 귀가 동일 모양으로 깨진 점은 자연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무당 등의 인위적 행위로 보인다.

또한 1970년에 밀반출 되었다가 적발되어 돌아오며 관리소홀로 좀 부서졌지만 불순물이 없는 대보 화강암 원석으로 마치 엊그제 깍은 듯 해맑은 모습이지만 월정사 탑은 미색을 띠는 화강암으로 이런 점은 화강암의 1% 공극 사이로 철분. 운모등 광물질이 녹아 들어가 색상을 띄게 된다.

따라서 동 석탑의 표면이 찌들게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표면의 광물질이 산화되었든 오랜 시간에 석재에서는 이탈된 느낌이다. 또한 이러한 점에서 색상을 띄는 회강암은 무광물의 대보 화강암보다는 경도가 약한 점이다.

 이러한 표면의 부식화. 노후화의 코팅 처리등은 가능한지 정비 문의도 해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