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탄신일에 정심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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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본당의 비로사나불. 전면 5칸, 측면 4칸 보통의 사찰에 큰 불당이 대부분 20칸으로 건축양식
규격은 비슷한 표준형으로 근자에 축조된것이다.
아직 탑파나 석등도 마련되지 못한 신흥 사찰로서 그래도 도시근처의 많은 신도들의 신앙의 도량이 되고 있다.
아래 현판글씨 " 대적광전"" 그 글씨체 감상에 있어서 글씨가 조금 굵어 둔탁 한듯하나 그 속도감의 필력에
의해 쓰러지지 않을 힘의 미를 지니고 있다.만약 이 글씨체의 볼륨을 조금 가늘게 죽인다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 건물전체의 느낌에 외동진 글체의 감을 느낄수 있슬 것 같다. 그럼 이 글체 이상으로 여기에 쓸 수 있슬까??
이 절은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 기슭 입구에 자리하며, 대게의 사찰들은 그 역사가 천년이 넘지만 이 정심사는
다른 사찰에 비하여 가장 짧은 20년 좀 지난 절이다.
그만한 이유는 위 사진의 성철 스님이 이곳에서 말년을 지내며 투병생활을 하셨기 때문이고, 당시 아랫마을에서
밤이라도 왕진을 다녀가는 간호원이 나의 가장 친한 이웃이기때문에 나는 그 점을 잘 알고 쓰는 것이다.
대적광전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과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의 삼신불을 봉안함으로서 연꽃에서 출생한
그리고 연꽃속에 함장 녹아있는 된 이상적 불국토의 세계, 즉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상징한다.
이곳이 잠시 거처하신곳으로 조그만 불당을 모시고 밖에는 화단에 석등하나 갖춰져 이 정심사의 모태가
된다. 지금은 그 앞마당에 조그만 소품들의 습작같은 미니 조각공원처럼 가꾸어져 있다.
성철스님 !!
그는 조계종 종정 당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라는 법어는 아직도 회자되는 법어이다.
스님은 수미산에 파 뿌리를 뽑아 던지고라는 ""돈오돈수" 아마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쌍수"의 "돈오점수"의
깨우치고나서 수행에 정진하라는 대중 교화적인 뜻에 대하여 통하고서 뭘 닦냐는 반어적 모순에 돈오돈수
설을 갈파하셨는지는 모르나 아직 무교인 저로서는 3일을 생각하여도 이해하기 힘든 화두입니다.
그는 또한 " 참선 잘 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열반에 드셨다. 그러나 그의 말씀은 오늘도 학파의 이론으
로 또한 대중의 교화에 큰 업적을 남기신듯 하다.
위 석등은 전형적인 신라전통 양식입니다.
어느 조각 문하생의 습작들인 모양입니다.
위조각의 두개의 산형사이에 만다라< 범=全> 이라는,,, 이 조각의 테크닉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아래의 물방울
조각표현은 좀 서툴다,
이런 물방울 조각 기법은 "정현도"조각가가 80년대 대통령상을 받은 조각품이있다.
이러한 조각 수법으로 우린 대통령 상을 받았지만, 내가 본 일제 디자인책에는 벌써 물방울의 그라데이션처럼
점점 작아지는 이러한 형상이 이미 우리보다 앞서 만들어져 있다.
그럼 대통령상에 빛나는 정현도는 모방일까요?? 우연일까요??
그런데 현 사회에선 이를 모방이라 규정한다.
때뭍지 않은 동자가 창공을 가르는,,
둥근 우주의 원형예정속에 소년의 한걸음.
마치 성직자의 구도의 길 같습니다.
때뭍지 않은 동자가 창공을 가르는,,
둥근 우주의 원형예정속에소년의 한걸음.
마치 성직자의 구도의 길 같습니다.
그러나 아래의 사회인들은 창문의 유혹과 잠겨지는 사회의 고달픈 고뇌의 표정일뿐,
사회도 마음의 일부에서 파생되는것,
잠겨진 마음을 여는게 신앙심일까??
이 두상이 일그러진 이유는 ?? 코에서 턱까지 길이가 코에서 눈썹까지의 길이와 비슷해야 될텐데 너무길다.귀와 목도 일그러지게...
이 정심사의 단청은 일품인듯, 우선 전체적인 칼라의 톤이 날리지 않는 깨끗한 이미지를 보인다.
스님 기분은 어떨까?? 잘 모르지만 어떤 역사의 스토리가...
나같으면 장문의 시를 안치락까지 빼곡히 쓸거야...
여인네의 스님 발 씻겨주는 보시가,,,, 이 역사적 이야기는 옥산님이 설명을 하셨으면??
원효대사의 당 유학길의 이야기인듯 합니다.
간밤에 산길에서 목이말라 고인물을 찾아 목마름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하였는데 다음날 보니 해골안에 고인물이라..
아 ! 모든게 마음먹기에 따라 틀려진다. 부처님은 내 마음속의 일이로다라고 생각하고 그길로 귀국, 화쟁사상의 잋체유심조를 설하는
해동종을 창시하여 범 국민의 불교 교화 운동으로..
황진이 유혹에 서경덕이 끄떡도 않는,,, 뭔가 잘못되었슬지...
황진이가 비록 서거정이는 유혹했지만 소세양을 사모했답니다....
벽보고 8년의 달마대사와 그 6조후의 혜능대사가 아닐까 하는...
8년간 벽에서 고개 한번 돌리면 禪종은 다 깨지는 것 아냐??
싱그런 오월에 정심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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