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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 월드컵으로

가자, 월드컵으로,,,

 

 

우리의 태극 전사들이여 !!

결전의 날은 밝았도다.

동안 갈고 벼르던 칼을 꺼내어라 !!

오~~ 따단따,,, 대~한-민국.

 

오늘 우리의 태극전사들은 남미의 아르헨티나의 탱고의 축구를 제물로 16강의 고지를

오르게 하여줄 승리의 여신이 따라주소서 !!...

특히나 마라도나의 한국은 벽을 느끼게 하겠다는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거만감에

이 행운의 여신이 우리 태극전사팀의 팔을 높이 치켜들어 승리하게 해 주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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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월드컵 사상 제일 졸전은 한국이란 기사가 있었다.

그것이 무슨 이야기일까??

그것은 바로 54년 스위스 월드컵때 처녀출전한 우리나라의 이야기이다.

 

나는 내가 알고있는 이야기는 당시 후보 골키퍼로  교체맴버로 들어가 전반 콜기퍼보

더 많이 골을 먹었고 헝거리전에 9-0, 터키전에 7-0 으로 졋지만 그래도 우리의 대

한민국이 식민지에서 한국동란으로 그 슬픈역사를 탈피하고 자유를 획득하고,  이 대

한민국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애국심을 발휘하였다는 자부를 가진 경기였다.

 

그분은 당시 아디다스 점을 경영하면서 저는 학과 단체 유니폼관계로 그 샾을 찾았으

그 분의 안방에 걸려있던 적색 유니폼 상의에 태극마크를 찍어맨 듯한 남루한 당시

월드컵 출전때 입었던  유니폼을 입어보고 친구 가방속 사진기로 찰깍,  원조 태극 전

사의 유니폼을 한번 입어본,,,건데 사진학을 배우는 사진기라 흑백으로...그때에 들은

이야기들이다.

 

시중의  블로그나 카페 3-4곳을 뒤져보니 스위스 월드컵 출전이야기에서 어찌된 일인

선수중 11명이 미군 공군기로 60시간에 걸쳐 스위스로 도착하였다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은 오류입니다,컴이란 한사람이 확증되지 않은 감상을 사실로 쓰면 즉 종로서 방

꾸면 한강건너 잠실선 똥 쌋다고 번지는 오류의 경향을 조심해야 됩니다.

 

이런 오류를 간과하고   당시 출전선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 몇 토막 쓰는 것입니다.

한국, 일본, 대만에 출전권이 하나 주어진 시드 배정에서 대만은  기권하고 일본과 홈

웨이 방식으로 두번 경기의 결과로 월드컵 진출을 확정짓는 것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여 두 경기 모두 일

에서 치루게 되었는데, 허나 이승만대통령은 반일주의자로 북의 남침을 받으면서도

반공엔 약했던 모양이다.

빗나가는 이야기이지만 6,25 침공시 북한은 3개월 전부터 38선으로 전방투입등 3일전

는 모든 포에 공이를 장착하는등 부산한 움직임이었다는 어느 투항한 인민군 사단장

글을 볼수 있었다.

 

이것은 그해 2월에 미 국방장관인 애치슨 라인에 한반도는 탈락되엇고 이에 고무적인 

한은 3-4월 부터 도발 준비를 하여도 미국은 한국을 자유주의 선에서 배제하였던 것

이고 이승만대통령도 반일은 했지만 반공은 못했으며 요즘 이승만 업적이 조금 부활되

는듯 한데 6,25 동란의 우리의 책임자로서 의무와 이하,, 나 개인적으론 이승만을 찬양

하진 않는 이유이다.

 

일본과의 1차전에  전반에 1-0 패에서 이를 악 물고 죽어도 일본은 이겨야 한다는 각오

후반에 1-4로 다섯골을 먹이고 우린 승리하였고, 다음 2차전에서 2-2로 비김으로서

우리나라는 사상 처음으로 5회 스위스 월드컵의 출전권을 따내었다.

 

그들은 시모노세끼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관부페리에서, 또한 조선열도 삼천리 방방곡곡

에서 우리가 일본을 누르고 세계로 나아간다는 우승의 환희와 희열은 그치질 않았다.

우리 역사에서 식민치하를 종식하고, 한국동란이 휴전한 다음해에 가진것은 없어도 그

기쁨속에 논바닥에 새끼줄 감은 공이라도 남녀노소 누구나 축구를 즐기게 열광의 도가

그 자체였던 것이다.

마 우리역사상 스포츠 열광으로는 이만한것은 먼후일 2002 월드컵때일 것이다.

 

그리고 대한 체육회에선 스위스로 가는 준비에 바빳지만 만족할만한 예산은 없었다.

예산은 월드컵 출전경비로 약 200달러 조금 넘는듯( 아마 당시 1-2달러면 미국행 비행

티켓을 살 정도인 모양이다)

 

그리고 선수들 단복은 단장이 잘 아는 양복점에 외상으로 구입하고 희망찬 장도에 오른

이다. 일본 도쿄에 가면 버쓰표처럼 사서 비행기 기다리면 될줄 알았는데 막상 일본

가보예약을 실시하고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가 없고 방콕을 가야 한다는데 이 방

콕행 비행기표도 10개만 구입하여 1진이 떠나고 다음날에 남은 표가 열개라 선수 두명

분의 표가 없었다.

 

이때 영국인 신혼부부가 그 말을 듣고 영국은 축구의 종주국이고 신사의 나라임에 선뜻

기의 표 두장을 내주어 방콕을 가게 된다.

방콕에서 또 하루 기다려 스위스 쮜리히 비행기를 탑승하였는데 당시의 비행기는 쌍발

프로펠라기로 요란한 굉음과 서양인 의자에 우리 동양인 체구로서는 발이 바닥애서 떠

서 가게 되었고, 그것도 또한 캘커리에서 하루 수리하고 로마에서 쉬며 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쮜리히에 밤 10에 내려 당시로선 우리는 숙박에약도 못하고 현장에서 경기본

부의 안내로  여관급 하나를 선정하고 피로를 풀고 다음날 오전 11시에 약간의 운동후

오후 3시에 헝거리와 결전 하게 되었다.

32연승의 막강 헝거리와의 한판에 처음에 조금은 대등한 경기를 하는듯 하다 후반에는

우리 선수 3명이 경기장 바닥에 주저 앉고 일어나질 못했다.

또한 이때의 선수들은 한국전 3년간에 경기를 할수 없어 젊은 층은 없고 서른이 넘은

노장선수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가 때문이다.

 

이 어쩐일인가?? 그것은 쌍발기에 장시간 타면서 발이 당에 닿지도 못하고 또한 밤 10시

내려 다음날 경기에 시차적응도 하지 못하고 뛰면 뛸수록 귓까리에는 요란한 굉음소

리의 여운이 더욱 진동하는듯,,,

 

일본을 눌르고 자주 독립국 코리아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 죽도록, 젖먹은 힘까지 다하였

건만 발에 쥐가나서 경기시간에 그라운드 내에 주저앉는 이변을 속출하였고 신발 바닥에

묶은 굽은 너덜거리며 풀려나가고,, 콜기퍼는 무수한 골을 먹으니 제게 이 이야기를 들여

주시는 함흥철 후보 키퍼로 교체되었으나 후보 키퍼가 더 많이 골을 먹을수 밖에 없었던

경기였다.

 

또한 터키와 한판도 7-9으로 완패 ,, 그때의 방식으로 시드제가 있어서 두게임만에 탈락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의 선수들은 일본을 눌렀다는 사기와 독립국 코레아의 뜨

거운 애국심이 충전되어 있어 떳떳한 경기를 치른 것이다.

 

요즘의 올림픽은 과학화 스포츠로 선수는 과학의 도구입니다.

그리고 80년대의 스포츠는 국위 선양이라고 떠들어 댔습니다

허지만 이때의 월드컵 처녀 출전은 마치 헤이그에서 이준 열사가 세계 만방에 고 하듯

우리의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역사적 사명감이 강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54년에 처음으로 스위스 월드컵에 처녀 출전한 경험입니다.

이제 우리의 스포츠는 세게의 스포츠임을 자부한다.

 마라톤의 한도 풀었고, 수영, 역도, 피겨, 골프, 야구등 세계의 최 강호임을 자부한다.

또한 어느 종목이든 노력하여 ,,,우리의 젊은 선수들 ... 세계 정상을 못 오르는게 없습

니다.

북한도 브라질에 진 경기를  세계인들은 칭찬을 마다 않고 있다.

오늘의 북한은 우리와는 이념적으로 상반되고 나를 죽이는 적으로 한치의 용서가 있

어서는 않 되겠지만 인간 한계와 세계인의화합의 장인 이 스포츠 정신에서 보면 북한

의 대 브라질전은 앞으로 약소 팀이 나아가야할 게임방식의 한 패턴을 에시해준 참

좋은 경기엿다고 평함도 우리의 품위를 지키는 일인데 그를 평하지 못한다고 떠드니

참으로 우섭다.

 

 이젠 스포츠가 과학의 도구도 아니고, 국위선양도 아닙니다.

이제 우승의 휘날레는 지난 겨울 꽁꽁 얼어 붙었던 경제한파를 한 순간에 녹이는

10 조원대의 경제 파급효과를 가져온답니다

 

태극전사들이여 !!

그대들은 말로 비아냥거려 스포츠 정신에 위배되는 마라도나를 처단하라...

이것이 우리 국민의 명령이고 요구인 것이다.

진정 그대들은 우리 국민모두의 염원인 승리에로의 활 화산이 되어라.

끝으로 승리의 여신의 행운이 다가오길 손모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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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에피소드 하나----

월드컵의 영웅엔 펠레임엔 틀림 없슬 것이다.

그러면 월드컵 최고의 행운아는 누구일까?

그는 66년 런던 월드컵때의 에우제비오일 것이다.

 

런던 월드컵 팔강전에서 북한과 맞 붙은 에우제비오의 포르투칼은 전반에 북한에

숨도 못 쉬는 졸전으로 3-0패.

그런데 후반에 어찌된 일인지 북으 선수들은 패기를 잃고 우둔해진사이 유세비오는

해드트릭을 하는등 4-5로 이겨 4강 진출을 하게 되니 당연 그날의 하일라이트는 에

우제비오에게 돌아간 것이다.

8강에서 해드트릭이란 걸사한 제목으로,,,,

그런데 왜 전잠에 날쎈돌이처럼 의기양양하던 북한은 후반에 기동력을 잃고 침몰

하였슬까??

북한으로 돌아와 이 의심점조사에 들어가보니 그들이 마치 독일 월드컵때 토고의

선수들이 밤새 술 먹고 놀고 다음날 스위스전을 하듯,,,

(당시 우리에게 그런 행운이 있었으면....)

북한은 팔강전 전날 올 나이트를 하고놀았기 때문임이 밝혀지고 주장 박두익만 함

경도 감독으로 존재할뿐 당시의 선수들은 모두들 아오지인지 어디로 사라진 것이다.

 

에우제비오,,, 북한에 전반에만도 3-0으로 지던 폴투칼이 이런 이유에서 후반에

닷골 넣고 런던올림픽의 영웅으로 에우제비오가 탄생된것이다.

우리 초교때의 일이죠,

내 친구 한넘은 조그만 볼 하나면 운동장이든 복도이든 화장실에서도 혼자 드리볼

하며 자칭 에우제비오라 하던 당시의 그런 영웅에 에우제비오가 등극하게된 이유

였던 것입니다.

 그럼 만약 당시 북한팀이 성실했다면 본선 진출과 어쩌면 당시 우승은 잉글랜드일

텐데,,우승도 훔쳐 볼수있지 않았슬까 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