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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백작네 헛간

사진 세장의 감상과 미학

  ****<착시>***************

왜 사진이 움직일까…   눈도 100% 믿을게 못된다는 해설에....

어리 어리...

눈을 감았다 뜨면서 보던가 얼굴을 흔들며 보면은 이 막대들이 흔들림을 더 잘 볼 수 있습니다.그것은 불안정한 사선과 역 사선의 착시현상인 것입니다.

능지 처참이 여기서 시작된듯…

그렇다면은 능지처참이란 흉악한 살해방법이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 생존을 위한 수단이란 말씀 아닌지??

그런고로 이를 형벌로 이용했던 인간은 참 잔인한 동물이라는..

뉴질랜드의 브라 철조망 –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매년 조금씩 늘어나 현재 7000여개의 브라가 걸려있다고.

http://1000amazingplaces.blogspot.com/2013/03/859-cardrona-bra-fence-new-zealand.html

(사진을 불러올 수 없기 이전에 뉴질랜드의 홈피이 원본의 에러가...)

< 브라 감상과 그 이해>

미술 이야기중 하나로 1917년 남자 소변기에다가 'R, Mutt' 란 가명으로'샘'이란 제목을 달아 제2회 뉴욕 앙데

팡당展에 출품했던 마르셀 뒤샹은 오랜시간 서구사회를 지배해왔던 知性이 가식에 가득찬 허구임을 선언하고

기존의 관념적 예술세계에 대한 혐오와 조롱에 곁드려 모든 사물과 모든 가치 그리고 정신은 때와 장소에 따라

전달되어지는 메시지가 다르다는 새로운 美學의 철학개념을 작품으로 보여준 획기적인 시도였습니다.

 

소변기가 변소에 걸려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변소에 걸려있는 소변기 역할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눈 오줌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마르셀 뒤샹은 소변기에다가 물이 솟아나는 분수

(噴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fountain 샘'이란 제목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소변기가 달려있어야 할 장소로 변소가 아니라  전시장을 택했습니다. 그 소변기가 하나의 작품으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설적인 소변기 작품 '샘'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과 평론과 회화사에 끊임없는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 이 세상에 그림이 존재하는 한 뒤샹의 소변기 '샘'은 영원히 인구에 회자

되는 다양한 논제가 될 것이지요.

 

'떼뻬이즈망'

미술용어로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를 벗어날 때 발생되어지는 새로운 미적 개념을 이르는 단어입니다.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예술세계가 그것입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

예술의 사회적 가치창조와 나아가 현대사회로 진입하는 20세기 초   예술이 새로운 역사를 선도하며 이끌어가

있음을 상징하는 위대한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정사실'로 믿고 따르는 낡고 헌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 용기있는 자

게만 허락되는 기회입니다.

 

-The greatest are misunderstood 위대한 것은 이해되지 못한다.

                                                                     -에머슨

 

이 글을 다시 이해하여 보면 뒤샹은 전시회에 그림을 그리지 않고 고물상에서 사용폐기된 변기를 주워서 깨끗히 청소하여 이를 전시회에 출품하고 제목을 "샘'이라 하였습니다.

전시회 구경 온 모든 사람들은 이 물건을 보고 변기라 하겠지만 단 한사람 이 변기의 작가 뒤샹은 이를"샘'이라하는 것입니다. 이 전시회에서 이 "샘"이란 작품에다 누가 이를 변기로 사용할 것인가?? 이미 변기로서의 사용 용도는 끝났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예술행위가 지금도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동시대에 았던 대중들의 관습적이고 세속적인 사고의 틀을 깨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이러한 기존 인식의 타파와 사고전환은 미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또 하나 죠크를 하죠.우리의 천재작가 백남준 아티스트는 이 뒤상의 "샘"이란 작품은 인류최대의 사기라 하였다. 그러나 그 사기는 우리가 이해되고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미술사에 자연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등 모든 이즘(ism=사조)는 사람들의 머릿속 고정관념들인 지적 사유의 습타파로 사회전반의 영역에 확장을가져오게 되는 것이 이 미술의 경향(이즘)들인 것이다.

미술사의 전반적인 예를 들어보면 인물이 중심이고 산과 들은 오직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고전주의 시대에 사람은 그것만이 최고인양 고정관념의 틀속에 살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어느날 왕은 '렘브란트"라는 궁정화가에게 어느 만찬때 선 보일 왕과 왕비가 있는 그림을 명령하있는데 브란트는 왕과 왕비의 인물이바진 산과 들만 존재하는 자연만 그려 제출하였습니다.당시로선 인물이 빠지면 그림이 아니었는데 그는 그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렷던 것이고 이 일로 그는 궁정화에서 쫒겨나 궁핍한 생활속에 마치 우리나라의 이중섭이 담뱃종이에 스케치하듯 램브란트는 휴지조각 주워서 스케치하는 그런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사회인식의 고정관념을 부수고 사회가 앞으로 나가게하는 즉 사람들의 머리속 생각의 전환에 큰 여를 한 것입니다.이라한 자연주의에 이어 낭만주의 인상파. 후기인상파(인상파 이후파). 입체파. 미래파 이모든 사조는 사회의 체된 사고를 깨뜨리는작업들이지요.후기 인상파의 고갱의 바다를 단순히 처리화는 표면처리에서 표현화는 그 누구도 바다는 파도가 치고 갈매기 날고, 포말이 부서지는 바다만 연상하고 멋의 기교를 부리지만 붓한번으로 단색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바다가 아니고 굶어 죽는줄 알기에 그렇게 행위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속에 살고있는 인간들에게 용기주었던 것으로이는 단순화 처리가 현대회화, 현대사상의 단순화 시초가 되어 세잔을거쳐 피카소의 큐비즘(입체파)로 이어지며 이 사회에 변혁을 가하고 현대가 생겨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이 글을 읽어 이해하고 위 사진의 브라의 사진들을 다시 보면 그 감상의 생각이 틀려졌슬것 입니다.브라자란 원래 청바지처럼 작업기능으로 고안 되었으나 그것에 미적 디자인등으로 마치 섹스의 심벌로 자리게 되었다. 그래서 사용을 다한 이 브라들을 바라볼때 우리는 핑크빛 감정으로만 바라볼 것인가??

그 줄에 걸어놓은 브라들은 제 수명을 다하고 다른 입장에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이미 핑크색은 죽은 것이다.이 아름다운 자연에 브라를 걸어 놓으면 비,바람에 구겨진게 아무리 핑크색이었더라도 과연 아름다울까??감상은 보는이의 가치척도에 의해 달라지겠지만 어쩜 이 브라라느 모티브를 통해 인간의 자연정복은 정복이 아니란 점이다,자연은 제 수명들 속에 인간은 잠시 편리를 위한 이용만 할뿐 자연을 정복하진 못한다는 느낌도 있슬 것이다.그로서 인간은 자연속에 동화되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 감상을...

친구덜,,, 혹 마누라가 버리는 브라들 있으면 잘 보관하였다가 우리도 뉴질랜드 여행함며 이곳에 기증하면... 한 인간으로서 자연과의 메신저로 말이다... 아니 그보다 평창앞 남산에다 주르륵 걸면 어떨까??이해 못하는 시골 아줌씨들,,, 만식할메(멘제기 할메)가 하던 버릇 흉내낸다고 욕할런지.... 그럼 이 후세는 얼러 가야겠네....발자국 소리도 없이...

구정도 지났고 하니 돌아오는 장날엔 투전한판 벌리세. 이 엄동설한에 무슨 돈이 있으리오만 광에 곡식 무져두면 뭘 할꼬.그져 옥식이 말 가웃 멜빵에 들고나와 우리 신나게 시루목 게삼츠리네 집으로 향하자.

산옥이에 입술은 객주집에 술잔이오 이눔도 빨아보고 저눔도 빨아~~

만지산 전산옥이만 갈보냐~~~시루목 삼츠리네 과부댁인들 조치않냐??

날 춥다고 동면한 겨우살이 동물 황빠야... 지난 추위에 블랙박스 동파당했다는 은기야...왜 좀 잘 싸메고 다니시지... 쯪

뒷전에서 광만 팔면 어떠리..

삼츠리내 껄찍한 막걸리가 그립지 않나...

.........................................終

 평창중고 22,25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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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 13 

 

논란의 여지가 있는 Cardrona의 ''브래지어 울타리''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카드로나 밸리 주민 샘 리(Sam Lee)는 다시 한 번 대중의 브래지어를 가족의 경계 울타리에 걸어두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2006년까지 7년 동안 울타리에 걸려 있는 브래지어의 수는 1,500개로 증가했으며, 퀸스타운 레이크 지역 의회는 교통 안전상의 이유로 브래지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씨는 자신의 연구에 따르면 시의회가 철거를 요구할 법적 권리가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하며, 브래지어 울타리 부활을 위한 지지를 모으는 페이스북 사이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주 오타고 데일리 타임즈(Otago Daily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브래지어 울타리는 그와 친구들이 12월에 여자친구 다니엘 쿡(Danielle Cook)의 죽음에 대처할 때 약간의 재미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토요일에 그들은 쿡 씨의 브래지어 네 개를 울타리에 붙였습니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날 때의 기억은 대부분 슬픈 기억입니다 ... 그리고 재밌는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브래지어는 3일 후 울타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씨는 수요일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팻말을 첨부했다: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 브래지어는 미소, 장난, 기쁨을 최대한 누리며 살았던 삶에서 남은 전부입니다.

''하나 더 낳게 해주고 그 빌어먹을 브래지어는 내버려 둬.''

그러나 브래지어와 간판은 어제 제거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해 이 대표는 브래지어 울타리를 복원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시의회 대변인은 ODT에 집행팀 중 누구도 ''항목''을 제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mark.price@odt.c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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