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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평창 - 난 그곳에 가고싶다

2014 추석, 그립던 나의 고향 ....평창 나들이

  오늘은  추석이다.

오곡백과 풍성한 추수 감사의 의미가 있는 고래의 풍습이 배어온 우리의 최대 명절의 하나이다. 그러나  몇해 전 까지엔 한가위라, 중추절이라 하며 조금은 활기 띤 모습이었지만 갈수록 조용한 분위기이다.

 

  나의 고향 평창엔 동쪽 먼 산위로 보름달이 휘영청 하건만 이젠 옛 추억의 회상뿐,,,친구하나 만나질 못했다.아마 이젠 몇 안되는 친구들도 가부장으로 가족을 거느리는 바쁜 명절이라 만나지 않는게 예의로 존중하는 풍습인 듯하다.

 

  그립던 옛 친구덜,,, 모두 다 어디 갔느냐??

가족도 두고 홀로 시골행 뻐스에 오른 나는 오늘 성묘 이후엔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 남산을 찾아보았다. 우선 깔끔하게 단장을 한 종부교를 건너며 그렇게도 옛 추억에 서운치 못한 것은 무엇인가 되짚어 보았다.

 

  어린 시절 남산 정자각 아래 종부 뱃터의 명사십리 모래의 백사장엔..검정 고무신 반 접어 기차놀이 하다가 어느 선배의 모래탑 쌓기를 따라도 해보고, 가장 하이라이트는 종부 건너는 사람이 드물어 두서너 명 건널 때 마음씨 좋은 뱃사공의 허락으로 배에 오른다.

 

 두서너 키만큼 깊은 푸른 물을 건널 때 나와 친구들은 안전하라고 입을 꾹 다물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던 눈치와 재빠른 나의 칭구는 바가지로 배 바닥의 물을 퍼낸다. 선장은 공짜로 배 태워준 게 아니라 배 바닥에 고이는 물을 퍼내는 그것을 원했던 것이라. 공짜 승선만은 아닌 듯.

 

  이젠 백사장 모래가 드문드문 그 사이로 여울이 흐르고 기억에 없는 바위 몇 개가 덩그러니 나동뎅이 친다. 왜 그럴까 자세히 보니 철망에 돌로 다졌던 종부 수중보가 그 위의 남산을 관통하는 터널의 수로로 대체되고 백사장의 가두리 보는 없어진 탓이라.

 

  청송의 숲, 남산의 송학정 아래엔 서산 미륵 땅 어디에선가 백학이 날아들고 백사장 아래의  검푸른 강물은 평창 뚜꾸뱅이의 대명사라, 평창 제일 낭만의 물과 산의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자랑하였건만 옛 정취는 찾을 길 없었다.

 

  서울의 한강 개발사업 중 가장 역활이 큰 것은 잠실 수중보이다.

뚝섬 아래엔 옛날엔 졸졸 흐르던 한강 물도 가득찬 듯 넉넉함을 보여주고 있다. 물의 출렁이는 여유로움이 어쩜 사람들의 마음도 넉넉하게 만들듯이 남산 송학정 아래에 옛날처럼 가두리 수중보가 있다면 무언가 지금처럼 떠내려 보내지 않는 찰滿의 넉넉한 미관을 자아낼까?

 

  강줄기의 지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현 터널 수로 아래의 보에 여울이 송학정 아래로 이르는 곳엔 낙차가 만큼 크게 여울이 지는데 여기까지는 물이 차 올라야 남산 백사장은 다시금 우리에게 여유로움을 선사하지 않을까??

 

  이를 뒤로하고 언젠가 잘 마련한 데크위의 길을 따라 남산 아래로 강물을 따라 올라갔다. 우선 느끼는 것은 30여년 전의 소나무는 한뻼의 둘레인듯 하였건만 이젠 둘레가 1m 이상의 힘찬 소나무들이 다가온다.

 

 

평창 第一景 남산 송학정과 평창전경

 

 

 

 

  아마 일전 평창분들의 진산 의견에서 진산은 어드메뇨??

임금님의 뒤 병풍의 일월 오악에서 오악 중 삼각산을 주산으로 잡듯이 평창은 조산, 백덕산에서 회룡 하는 용이 서산을 타고 방칫골을 넘어 방송국 중계소 부근에선 용 오름치는 힘찬 과협의 박환을 거치며 시루목을 넘어 노산에 정기를 내려놓은 형국이다.<바로 위 사진에 중개소 옆에 가장 큰 봉우리를 맺는..>

 

  위, 아래의 사진들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물이 산을 가른다면 평창의 진산인 노산은 주먹을 뿔끈 쥐듯이 산의 중앙부는 곰의 배꼽처럼 내려앉아 힘을 주며 수태 극의 물로 빨려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힘차게 입수하는 대명당이라.이곳이 평창의 기상을 말하여 줌이로다.

 

  단, 여기서 나로서는 시루 목이란 단어적 의미는 모른다.

평창의 언 똥 고집쟁이의 말로는 시루봉이란다. 그런데 시루덕의 함지와 솥을 잇대어 수증기로 찌는 시루떡 함지의 형상이라면 긴목은 빠져야 할 듯도 한데..목이라 함은 군사적 용어로 아마 요충지인듯 하며, 태기산과 발원하여 백덕산으로부터 용이 멀리 날아오는 중

방칫골을 넘는 회룡고조시엔 박환의 긴 목을 가진다면 이 노산을 어찌 시루봉이라 할 수 있으랴.

 

  아마 일제 강점기의 왜구들은 이땅에 큰 인물이 남을 방지하기 위해 조선 팔도의 풍수를 방해하는 등 우리보다

더 지형의 형상을 꿰찬듯한데, 이 와병의 목은 길게 내려와 시루목까지의 목이 긴 학을 형상화하여 일본어의 鶴의 쓰루라는 단어에서 기인한 한것은 아닐까??

 

 언 똥 고집쟁이가 이를 본다면 조선 시대에도 시루목이라 불렀다고 또 우길걸,,,

 나로서는 그 증거자료를 보질 못하였으며 또한 조선 사람들은 학의 목처럼 긴 형상을 떡 시루형상에 짝 달라붙은 형상이라고 하며 떡시루에 목은 왜 붙일까??우리의 지형에 붙는 이름은 풍수의 형상적 표현의 작명일 텐데... 시루목이 시루떡 함지와 물 끓이는 그 아래의

솥의 사이에 짝 달라붙은 아무것도 없는 곳의 목이라 함은 불필요한 의미인 것이다.

이를 조선 시대 사람들이 떡 시루형이라 표현하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무식한 것이지 조선 사람들이 그렇게 우매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이 여울까진 물이 차 오르면 송학정 아래의 강물은 씻겨 내려가는기분이 아니라 만유(滿流)의 풍족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가질 것이고,, 이러한 주변의 정리정돈이 풍수의 일차적인 선급과제는 아닐까??

 

 

▲ 이 후세백작의 등산길을 가로막는 두 소나무 비키시오.

  그럼 후세백작의 명으로 "부부송"이라 이름을 지어 주노라.

   "그대들은 앞으로도 더욱 다정하게 천년가약을 풀어가며 그대들의 머리위엔 천년학이 노닐도록 히시오""

 

이 잔잔한  평창의 스카이라인에 언젠가 큰 망루같은 건물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옛날에 내가 놀던 친구네 집 마당이라..

그 옛날엔 큰대문집으로 통하였건만,,,역시 이름이 좋아서 또 한자리 하는군,,,

새끼 물개야...

오데갔뇨??

지난해까진 매번 명절전날에 게삼츠레 막껄리 한잔씩 하였건만,,,

아마 큰 마당팔고 떠난건 아닌가??

 

 

아!! 언제보아도 산과 물이 충만한 나의고향 平昌!!

 

군민 여러분들의 노력과 수고로 잘 가꾸어진 남산과 평창!!

아마 여성분들은 오르지도 못했던 가파른 송학정 입구,

데크 플레이트로 잘 정비되어 편리함도 좋았다.

난간대가 깨지며 사람이 다치지 않을까 염려속에 난간대 속에는

아연 파이프도 장치되어 안전제일 원칙도 섬세한 배려일것이다.

 

조금 아쉬운 점이있다면 자연은 자연다워야 한다.

남산의 송학엔 그 옛날처럼 천년학이 날으는 모습의 노력은 어떨까??

옛날에 남산정위에 노니는 학들은 벌레를 물고 미륵땅의 서산만 왕래하였는데...

지금도 서산 어디쯤에 鶴들의 집은 있슬까??

 

송학정아래 검푸른 물과 하얀 백사장의 모래톱에 뛰노는 아이들,,

푸르다못해 싱그런 청송의 숲속에 노니는 천년 鶴

이 모든 것이 평창의 가장 아름다움이요, 푸른 평창의 활력소 아닐까 생각한다.

 

 

 

남산의 곱게 뻗어 올라간 소나무들은 이풍진 세상속에서도 토양과 기후의 좋음을 여실히 나타내 보인다..

위 사진의  소나무는 강가의 바위등의 토질과 강바람을 막아주다 이리저리 휘말린듯. 이풍진 세월...그래도 이 소낭그는 말없이,불만도 없이 100여년을 그냥 거기서...

 

 

 

 

이풍진 세상에 모든 풍파 헤치고 홀로 외로이 살다간 한 그루의 소나무,

어림잡아 130여년의 나이테..

 

 

동쪽 밤하늘에 떠오르는 팔월 추석의 대 보름달,

어디선가 강강수월래의 가락도 들릴듯 한데...

 

    < 평창 아라리 중에서..>                         

 

감자꼬치 피므는야 씨앗넣기 끝내고

평창강에 하루모여 철렵이나 해 보세

 

평창강 모래자갈밭 닮아버릴 지라도

한 번 맺은 우리정은  변치를 맙시다

 

옥녀봉의 산봉오리는 볼때마다 봉긋데~

우리할멈 젖가슴은야 물컹이가 되었네

< 주 ; 도돈 거슬갑산의 옥녀봉>

 

감투봉에 떠오른 달은 평창강서 놀고요

낮에 본 아가씨는야 꿈속에서만 노누나

 

한잔걸치고 거슬재넘다 여귀가졸졸 따라와~

여것봐라 따돌리다보니 칭넝쿨에 걸였네

< 주 ; 도돈에서 대하리로  거슬갑산 넘다가 귀신이 따라오는줄 알고>

 

 

위에 사뭇 풍수적인 글도...

풍수라,,, 평창의 제일의 명당은??

입탄고개 아래 언 대학교 건설하던 곳이라 생각한다.

풍수엔 형태적인 면과 시공의 방위,지질적인 면의 두개의 합치 일텐데 우선 형태적인 풍수에선 대 명당이라는...

 

언젠가 군청 민원실 친구를 보러갔다 나오는데 정문 코너에 모형도 하나가 유리관안에

다시 들어가 이를 보고 평창군은 돈이 많아 괜한 명당 모형도나 만드나 하고 친구에게 말을 건네니

(그 모형도 크기는 최소 500에서 천만까지 싯가일텐데...)

그게 아니라 대학교 짓는 부지라 한다.

그런데 왜 명당자리에서 대학교는 주저 앉아야 할까??

평창의 천기누설은 다음 언제로,,,

평창 명당의 10選

지관들... 나와 대작 함 해 볼까요??

단, 엣날  "터' 라는 엉터리 책으로 이름 날리던 지관같은 분은 아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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