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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려워

인류에 도전하는 알파고(Alpha Go)와 인공지능의 미래엔..

 

물론 인공지능(AI) 계발에 논란은 많치만  오늘 이세돌 바둑 기사와 인공지능의 바둑대결은 인류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고, 영원히 기억될 날일것 같다.

 

인공지능의 알파고와 바둑 최 고수의 첫판 대결에 알파고가 승리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두뇌는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물론 5판승제이기에 앞으로 4판을 이세돌이 다 이긴다하여도 이번대국의 의미에서 알파고의

인공지능은 인간 지능이상으로 계발되었단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알파고는 인간의

대적을 넘어선 경지가 될 것이다.

 

인간이 만든 경우의 수에서 연산이 제일 많은 것이 바둑이라면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의 최고수에 도전하고 정복한

것이라 하겠다. 여기에는 전문가들의 표현대로 알파고는 승부수도 띄웠다는데, 또한 실축한 것도 아마 승부수를 향한 

포석이었슬 것이다.

 

어느 이론가의 이야기를 빌면 '양이 축적되면 질로 전환한다'는 철학적 개념의 변증법적 입장에서 보면 '전체는 개체들

간의 합 이상'이라는 게슈탈트 개념을 비유적으로 이야기 하는데..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온 인간은 잘 된 통찰의

케이스를 축적해 왔듯이,  마찬가지로 인공지능도 이런 식으로 빅데이터를 쌓아가면 인간을 넘어서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궁무진한 수가 바둑기사들은 그 많은 경우의 수를 연산하지 않고 통찰의 힘으로 바둑을 두어 간다면, 지금은 인간의

직관과 통찰이 컴퓨터를 앞서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끊임없이 빅데이터를 능동적으로 처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인간의 직관과 통찰을 넘어서는,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무엇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상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날 최첨단 인공지능으로 '성동격서(聲東擊西)'와 '응수타진' 등 온갖 바둑 기술을 사용하며 이세돌 9단에

공격적으로 응수했다 한다.
'성동격서'는 한쪽에서 소란을 피운 다음 다른 쪽을 공격해 상대를 속이는 방법이며, '응수타진'은 행마를
결정하기

전 특정한 착수를 통해 먼저 상대방의 뜻을 묻는 전략이다.

 

인공지능이 바둑의 종목에서만 국한될까는 미지수이다.

왜냐면 무엇을 발명에 인간이 할 수있는 데이타를 입력시키고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창출하라 주문할 경우 이는

알파고의 바둑과는 그 성격이 또한 틀리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간 알파고는 지금까지 450만번의 대국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통계와 기억장치등의 연산으로 이루어졌겠지만 인간

이상의 노력이 부여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알파고의 바둑은 시작부터 끝까지 답습의 연구결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발명을 하라면 그 창의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의 알파고의 바둑은 바둑 한판의 결과까지 수 없이아마도 24시간 잠이나, 식사시간도 없이 또한 감정도,

 

지루함도 없이 입력된데로 바둑을 학습하였고, 지금 이 대국은 그러한 바둑의 수 많은 순열과 그 순열중 가장 최상의

조합으로 나타난 것이지 국소적인 유리한 선택은 있긴하나 새로운 발명은 아닌 것이다.

이미 수 많은 패턴으로 길이 나 있고 그중 최상의 기억장치 선택이 감성과 수없는 연산을 파악치 못하고 통찰로 두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이타의 기록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일반 뉴스에는 알맹이도 없이 와와 하지만 이러한 개념이 나의 생각이다.

즉, 인간은 전혀 새로운, 또한 감성의 결과도 유출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이러한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을 할 수있슬까

하는 점이다.

 

만약 인공지능 컴퓨터가 니체의 니힐리즘이나 이러한 새로운 철학적 개념의 이론을 창출해 낼 수 있슬까??

사유와 사고를 통한 통찰력과 그를 발판으로 발명되는 문명등은 아직 인간만의 세계이란 점이다. 그러기에 알파고는

아직도 인간 능력 범주를 따라오지 못한다. 다만 인간이 정해준 카테고리와 그에 수반되는 자료들을 주었슬때 인간보다

더 치밀하고 철저한 발명게임을 할 수 있슬 뿐이라고 이해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 알파고의 대국 승리에 인간이 비관만 한다면 그것도 오류적 편견들일 것이다. 

인공지능때문에 인간의 일자리를 무려 700만개까지라도 잃어버릴 수 있다한다. 그 숫자적인 것보다 인공지능에 이번

 

대국에 패하고 우리는 가슴을 철렁거렸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옳치못한 뉴스의 보도로 우리의 상식을  일그러 놓는 잘못된 편견이란 점이다.

인공지능의 하나의 사물이 발명되면 분명 기존의 일자리는 컴에서 대신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의 패러다임의 구조에

우리 일상의 많은 문화가 죽어가고 있는것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머지않은 시간대에 인공지능의 성장으로 인간은 실직되고 할 일이 없다고 판단하는 뉴스들,, 너무나 오류적이란 생각이다.

아주 저렴한 예로 이해를 해 본다면 공사장에서 포크레인 없던 과거에 삽자루로 땅을 파고 일하던 시절에 포크레인이

발명되자 삽자루메고 출근하는 잡부들은 하루 아침에 몰살당했다.

 

하지만 포크레인은 건설현장이든 농업용지든 무수히 많은 자역을 ,, 아마 지구 전체를 변형시킬 정도로 막대한 량의

작업을 하였다,  여기에 몰살당했다는 노동자 수의 백배, 만배가 넘는 운전자, 건설 현장, 토목현장등 수 많은 종사자들이

발생된다는 점을 내다보지 않고 코 앞에서 위기라고 인간들은 나불 거린다.

 

이제 인공지능도 학습을하여 승부수를 띄우고 돌변하는 자세의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의 능력이상을 발휘하는 시간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것이 위기가 아니라 지금보다 수 백배 더 큰,,, 아예 인간의 삶의 목적 방향을 좀더 돈독히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란 점이다.

 

인간의 지능으로 우주로 나간 보이저 1,2호보다 인간의 한계이상의 인공지능으로 발돋움한다면 이 바둑의 대결은

더 큰 이변으로 기억될 날이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인공지능의 발전이 인류에게 희망일까?? 아니면 인류의 근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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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0,15, 03;25

전날 쓰다 말아서 이어서 씁니다.

어제 이세돌은 1승(스코어 3;1)로 이겨 인간의 머신에 대해 겨우 체면 유지를 하였습니다.

 

위의 저의 글은 이런 환희나 승, 패와는 무관한 알파고의 바둑이 우리 프로정상의 위치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으로 진단하여 앞으로 인간세계에 얼마만큼 파장을 나타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이 프로그램으로 발명가는 데이타를 알파고에 집어넣고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데 어떤 문제들이 있는가 풀어

볼 수 있고, 또한 의학적으로 인체에  알파고를 응용하여 어떤 부분이 취약하고 발병 문제 원인을 루트를 따라가 볼 수도

있고, 정 안된다면 장기와 장기사이에 바둑의 패를 써서 수명을 연장해 볼 수 있는....이는 앞으로 세기에 죠크만은 아닌

발상의 전환으로 생각해 봄직도,,,

 

60갑자 한 평생이지만 인간의 수명을 최대한으로 잡을땐 150세까지 살 수 있다 한다. 이미 자기 공명과 레이저 시술로

평균 수명은 90까지 연장되고 여기에 앞으로 게놈 프로잭트나 또한 알파고 프로그램의 분석력으로 인체 해부시 수명은

150살로 향해 갈 수 있슬 것이란 생각이다.

 

그런데 또 하나 알파고가 중요한 것은 기존의 자동차 재원의 입력값을 통해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자동차와 알파고가

바라보는 자동차 설게의 차이등으로 우리는 기존 자동차의 내연기관의 손율을 수정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알파고의 프로그램은 다양한 범위에서 사용될 날이 있는 것이기에 알파고는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이 길어도 맺지 않는 이유는 이 글에서 나의 생각으로  두 가지 사실에 대해서 일반인의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피력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글이 큰 영향력도 없고, 읽기에도 지루한 점은 잘 알지만 나로서는 나의 세계를 갈 뿐이다. 문인도 아니고,

칼럼니스트도 아니지만 다만 취미로서 시간날때 나의 생각과, 사유의 세계로 가는 것은, 어느 소설에서처럼 명화를

그리고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불타 없어지지만 그는 거룩한 그 이상의 세계를 밟았단 것에 비유한다면 좀 갑질이겠지만,,,

 그러나 나의 생각은 인터넷엔 없다. 그러나 나의 블로그엔 나의  생각이 수 없이 만타.

 

그러기에 산야 팅구야... 동창카페에 나 같은 글이 또 있으렴?? 아마도 나의 통창카페도 뒤 털어지는 문화는 아닐텐데..

짜석덜,,, 까막 눈들에 잇빨엔 옥수수 씹으면서도 떠드는 수다쟁이덜이지....

 

위에서 나의 가상적 이해를 보듯 인공지능은 바둑에만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삼성은 스마트 폰에 촛점을 맞출때 일본의 소니는 로봇 연구에 주력했다가 시기가 맞지 않고 스마트 폰의 활황에

국제기업인 소니는 몰락했지만 일본의 어느 로봇은 매년 대학입시에 중위권 대학정도는 합격한다는데..

바둑도 이 대학시험을 치루는 로봇도 그들의 공통사항은 입력된 자료내에서 선택이란 점이다.

 

물론 바둑을 두는 알파고는 바둑 전체의 균형을 파악하고 한알 한알 선택하여 두는 지능처럼 인공지능의 선택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대학시험을 치는 인공지능 로봇은 몇 억만자라도 입력되어  필요한 부분을 유출하여 쓰는등 하지만 여기서 바로

그들의 한계는 인간이 설정한 카테고리와 , 또한 심어준 입력 값이란 점이다.

 

이 한계를 넘을 수 있다면 감성을 가지는 감정표현을 하는 인간과 다를바 없다.

아마 그때는 아이를 출산하는 혈육보다 내가 나의 의견을 심어주는 로봇들을 자식으로 여길 사람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는 공상도 해 보며(복제자식)... 그러기에 이 공상은 언제라도 항상 비현실이란 점이다.

 

일전 세계의 석학들은 인공지능 계발에 반대하였다.

스티브 호킹은 인류의 멸망까지 운운하며 또한 이 알파고 바둑의 기업인 구글의 슈미트 회장도 같은 목소리였으나

구글은 이러한 세계를 거미줄 같은 네트웍으로 묶고 그중 우량 기업을 인수하여 인공지능에도 힘쓴다.

 

이번 바둑 일차전에서 구글은 이러한 인공지능을 선하게 사용할때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라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선하다는 것은 한정적이라 그렇지 않을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또한 먼 후일 인공지능들이 인간의 단점을 파악하고 인간을 단순하게 '아름다운 세계에서 무익하고 해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가 현실에서도 나타날까??

 

그 보다 나의 생각엔 구글이란 거대 기업 하나가 더한 무서움으로 대두된다.

물론 구글은 차세대 무인 자동차 연구에서도 우위적인 자리를 점하고 이 알파고 프로그램도 하늬 프로젝트레 의미를

고 인류에 빛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시간데엔 여러분들이 동네 어느  산을 사진 하나 찍어  인터넷에 올릴

경우 구글은 이 사진은 어디에 어느 산 입니다하고 전 세계를 커버하는 자료들과 인류 문명의 모든 자료들을 점하고

그들의 말에서 선하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그보다 한쪽에선 선하지만 다른쪽에선 폐로 돌아버린다면 구글은 편견을 가지는 위선을 자행할 것인가??

 

물론 지금의 알파고도 구글이 인수하며 재력에 의해 과학도 빨리 발명을 창출할 수 있어 좋치만, 구글은 디지탈 사회에

작은 정부와 개체별 흐트러진 자아의 생활속에 파고드는 아주 거데한, 지구촌을 손바닥 안에 넣고 굴리는 아주 무서운

정보화 단체이기 때문이다.

과연 지금의 구글이 먼 후일까지 계속 동일한 기업철학을 유지할 수 있슬까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 우리는 주목하고 인터넷의 불신적 대란과 인터넷의 소요가 생긴다면 이에 대응할 백신같은  강구체제를 보완해

 나가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인공지는에 세계의 석학들은 2년전 반대의 의견으로 법제화 하나는 마치 핵무기에 IAEA같은 세계 공동 억제법을

마련하자는데, 법이란 오픈 범이라야 효율성이 잇지 억제법이란 그 실효성이 적기에 문제이고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문명이

정도(正道)로 나가지 못한다고 법으로만은 설득력은 부족하다. 그 문명을 이기는보턴과 채널을 구축하야 함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 함이 아니라 인공지능은 먼 후일 인간을 누루고 인류멸망을 가져올 수 잇는 위기라 하여

모든 인간은 이 알파고의 바둑을 ... 저 놈이 새끼를 쳐서 우릴 잡아먹을라 덤벼들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속에 좀 꺼림직하니

바둑을 구경하며 이세돌이 한 판 이겼다고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환호는 인간의 잠시적인 동요이지 이 글 맨 위에 앞으로 4판을 인간이 이긴다 한들 인공 지능은 벌써 인간을

능가하는 시간대로 가고 있슬 것이다.

 하지만 이 과학에 힘입애 사회 전반은 위의 자동차에시처럼,,(물론 앞으로 자동차는 중학교 기슬시간에 신나게 배우던

4행정 사이클의 내연기관이 없는 모터나 기타 요즘 잡종( 하이브리드_ 하이 브리드는 2중적이란 뜻의 단어로 막말로 튀기란

단어와 같은 뜻이다) 하이브리드 카 시대도 마감해질 세월에...

 

장동차의 에시에 차의 열 효울의 극대화를 위해서 이 알파고 프로그램으로 기존 차의 설비에 대입해 보는...

이렇듯 우리의 일상의 문명의 이기재들에 다시금 그 효율 파악과 이로 인하여 스마트 폰의 디지탈화 패러다임 시대는 가고

새로운 문명에, 가존의 발명품들의 효율적 정비등까지의 새로운 가치관에 도전하는 알파고 패러다임(가칭) 시대가 도래될

수 있는 점이다.

 

이러한 인간지능의 시대에는 기존의 일자리를 잃겠지만 위의 포크레인 예시처럼 인공지능의 영역은 더 넓어지고 새로운

일자리는 가존에서 수십 배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기에 알파고를 위시한 인공지능의 시대의 도전은 인류문명 발달의 극치를 이룬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 인공지능은 먼 후일 인간을 무시하고 인간에 도전 하리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그것은 인공지능은 주어지는

데이타 속에 조건 제시를 넘어서는 감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충견은 죽어도 아주머니를 배반하지 않기에 뭇 인간이 손대면 성 추행이란 레드 딲지를 내미는 가슴 품에서 유유자적 놀고

있어 행복한 것처럼 인공지능도 인간에게 사랑받으며 언제라도 최초 값의 한계를 넘어서는 감성적 진화나 변신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만약 인공지능이 감성적 지능도 가진다면 인공지능도 앞으로 천년 후라도 공자의 충효사상같은,,,실존주의 철학같은

 그러한 사유적 새로운 문화도 창출할 수 있다고는 생각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상의 평인이 호킹박사의 수학적 언어을 어찌 알겠소만은  이 두가지 사실이 본 후세백작의 생각이란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