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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문화에 대한 나의 소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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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어서는 저 먼 동해바다로 가고싶다
글쓴이: 후세백작 09.05.10 21:53
이 글은 일전 살롬의 납골당에 대한 수목장과 납골당에 대한 나의 다른 생각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은 죽을때 어떠한 예식을 치르고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을 좀 해 보셨습니까?? 살면서 한번쯤 죽음을 생각해 본다는건 오히려 삶을 더 가치있게 가꾸어 나갈 수 있슬 것이다. 오늘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삶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득이 있을 것 입니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폴레옹도 그랬고, 나의 할머니도 그랬으며, 따라서 곧 너도 그럴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의 첫번째 대 명제인 것이다. 이 돌아가는 마당에 식을 마련한게 장례인데 이는 여러 유형이 있다.
장례식이 끝나면 서양은 대부분 납골당, 수목장, 또한 몽고의 풍장등 지리적 ,토질적 연유로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나지만 우리나라의 지형은 습곡산지의 국토라서 명당이라는 풍습으로 토장이 성행되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토장을 중시 여기고 용이 내려오다 멈춘곳이 명당으로 해석하고, 풍수라 하여 명당이란 용혈이 내려오며, 이를 중히여겨 금시 발복의 욕심도 부렸다.
우선 명당부터 야기하면 -- 분명 자연에도 차고 골 바람부는 곳도 있지만 따스하고 온후한 땅도 있다.
명당이라면 風의 바람과 水의 물이 조화로운 땅을 찾아 이를 길지라 하는데, 중종때의 잡과출신 “남사고”는 죽어 최고의 명당에 묻혔다는데, 그 시신은 땅의 흐름으로 어데로 간지 없어졌다는데 과연 그곳이 명당일까 ??
우리의 조상들은 이런 길지를 찾아 산소를 쓰는 전통이 내려왔다.
대체로 명당이라 자리 차지한 묘의 생태를 보면 글좀하고 윤택한 집안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조상 밭뙈기 좋아야 후손도 번성한다 밭뙈기 타령도 나올만 하다.
우리고장의 명당의 구체적인 예를 본다면, 평창엔 두말할 것도 없이 상원사 위의 적멸보궁이라고들 말을 할 것이다. 어사 박문수가 그곳에 올라서 감탄도 하였다는데, 그곳은 비로봉의 현무에서 출발하여 좌청룡, 우백호가 두 겹으로 병풍을 치듯 원을 그리며, 남쪽의 주작은 멀리 월정사까지 30 여리를 달려내려 앉았다. 이 주작의 토산도 무게가 장엄하고 빼어난 것이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또한 평창읍내의 최고 명당중엔 들뜬 고개의 잿말랑에 어느 학교가 들어선 땅이다.
10년전쯤 군청 현관 입구에 어느 대학교 설립 모형도를 보는 순간 나는 친구에게 이곳이 어디냐 물어보았다.
---그 학교 이사장님 왈 정 남향이라면, 감히 우리학교 정도가 들어앉을 땅이 아니라던데--
천년 비기의 대 명당들은 시기가 있는 것인지?? 명당이 풍수의 용혈이라지만 시간이 맞아야 인연인 것인지?? 우리사회는 신라 경순왕의 묘(장파리의 리빌교를 지나 임진강가 GOP안쪽)가 최고의 명당이라, 사방 70 여리의 산세를 거론하며 어느 지관이 떠드는데, 그래서 혹이나 김씨 성이 천 만정도로 많은 것인지?? 옛날 소도라는 곳에 범인이 들어가도 잡지 않았다고 국교때부터 배웠다.소도 = 소벌구리. 이것은 神의 땅이다.
사람이 죽어 제사장들이 장례를 치르던 곳으로 죽은자의 땅엔 산 사람의 접근을 삼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약 몽고는 풍장으로 제사장이 죽은 사람을 해체하여 까마귀가 먹기 쉽게 갈라 놓고 일정기간 후에 뼈만 회수한다는 이런곳도 소도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습곡지형에 바람과 물의 조화로운 곳을 잘 찾아 신비스런 명당을 구축하였는데 한번쓰면 다시 자리가 없다. 그러면 후대인들은 전부 명당이 아닌 악혈에 쓸수밖에 없고 앞으론 사장이고, 대통령이고 모두들 없다는 모순을 낳는다.
나로서는 위에 적은 명당의 이론들이 과연 합리성과 타당성을 부여받을지 의문이다. 아무튼 현실적으로 우리 국토는 묘의 포화상태로 편리한 방식들이 나온다. 그중 납골당과 또 요즘 유행은 수목장이라는데 --- 우선 수목장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일반의 견해와는 다른 정 반대이다.
수목장이 자연으로 돌아가 나무에 양분을 주고 그 나무가 사회에 공기정화등의 혜택을 주는좋은 발상이긴 하지만, 나무는 자연의 방식에서도 울창한 산림을 만들 수 있다. 쥬라기 공원이란 영화의 울창한 숲이 공룡의 먹이이다. 약 6천 5백만년전에 “딥 임팩트”영화같은 소행성의 충돌로 지구는 전세계가 화산으로 검은 구름에 쌓여 태양을 보지 못한 식물이 광합성이 안되어 죽고 연쇄적 먹이 사슬로 모든 동물이 일시에 죽었다.
백악기 토양의 검은 띠 약 9cm가 그 검은 구름이 브라운 운동에 의해서 내려 앉은 것이다. 그 시절까지 약 5천만년 정도 초식공룡은 무게가 백톤이 넘고 하루 약4톤의 나뭇잎을 먹으니 자연 식물도 무성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 시절의 메타세콰이어란 수종이 요새미티 언덕아랜 높이 100m 짜리 군림이 아직 600여 그루있고, 이 수종의 원산지는 양쯔강 유역에서 자연적으로 바람에 홑씨가 세계를 덮은 것이다. 남이섬에 울창한 나무들이 메타 세콰이어다 < 미국에선 자이언트 세콰이어라고 불림>
이렇듯 산림은 자연상태에서 공해만 없으면 지구상에 가장 많은 것이고 이것이 지구의 원동력인 것이다. 이런생각에 나는 구차한 수목장은 거부한다. 그리고 또 납골당도 거부한다. 인간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게 아닌가??그러면 그 자연은 우주의 일부이고(질량 불변의 법칙), 나는 죽어서 구차한 그곳에 쪼그리고 싶진 않다.
한 평생 성냥곽 같은 콘크리트 숲에서 서성이던 인생 죽어서도 차디차고 조그만 돌함에 같힐 것인가? 나는 그런 납골당도 거부한다. 나의 고향이 어딘진 몰라도 오리온좌 M 239 (M=메시아 =별자리 인덱스)등을 휘돌아 이 우주공간의 나의 고향으로 가고 싶기 때문이다.과연 저 푸른 창공속에 나의 고향이 있을지 -- 죽어서는 이 땅의 사람이 아니기에 그런 구차한 구속을 싫어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단면을 보자. 우리는 6,25 전전 세대의 전쟁의 폐허 속에서 , 무에서 유를 일구어내는 어려운 여건의 부모님 아래서 유교주의적으로 자랐다. 그러나 지금 전후세대의 부모들 자식이 2-30대인데 그들은 우리와 양식이 판이하다. 전후세대는 부모들의 조금의 저축과 교육열로 남의집 심부름과 견습의 “꼬마“라는 용어는 80년대에<아마, 나의 기억으론>사라진 것이다
이는 전후세대의 자식들이 조금 사회를 익히면 부모의 자금의 도움을 얻어 소호라도 스스로 창업하는 세대이다. 핵 가족시대의 핵 문화라 할까---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우리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유교적 경향이 엶어져, 부모의 공경과 제사 문화의 차이가 우리세대와는 현저히 틀릴것이다.그래서, 우리세대는 늙어서 자식에 구원 받기를 삼가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우린 자식에게 죽어서도 무얼 더 요구 할것인가? 나는 이런 속세의 의미에서도 흔적을 남기고 싶지않다. 만약, 남기는게 지금의 사회의 사고로는 짐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냥 자식들이 기일만 알고 그날의 의미만 세기면 족하여야 할 것 같다.
죽음이란 과연 두려운 것인가 ???우리가 살며 가장 두려운 것이 죽음이다.아직 생각하지 안아본 분들이 만을지 몰라도 미래의 죽음을 한번 생각해 보면, 만약 나는 60 에 죽을때, 또는 75세에 죽을때 아니면 90까지 살때등을 가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는지 등의,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밑그림을 더욱 확연히 그릴 수 있다.
나는 약 30년전 친구 아버님 병 문안을 간 적이 있다. 눈길에 약 30리를 골짜기까지 찾아 갔는데 어르신께서 하시던 말씀 “자네들 성의는 고맙네만 이만 돌아가 주게. 8시간만 더 살면 새해를 맞이하니 한 살을 더 살 것이고, 지금 내가 정리할 것이 많아 시간이 필요하네” 하시던데...
아쉬움의 느낌이 남는게 인생일 것이다. 만약 시골서 닷 마지기 농사를 지으며 살아도 그의 경제활동에 무얼 그리 정리해야 할것이 많을까?? 하는 의문이라면 이는 잘못 생각일 것이다. 머리의 지적작용의 아쉬움이 남는 법이다. 또한 죽음의 문턱에선 시간의 촉박함이-- 무엇을 정리하든간에 일순간에 지나가는 회상과 그의 정리 시간인지 모르겠다.다시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옛날 학창시절이나 군대시절에 일병때 상병때 하는 식의 일목요연한 기억을 할 수 있슬까??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선 주마등같이 스치는 기억이 모두 아쉬움으로 변하는 듯 하다. 나는 그 어르신의 말씀이 큰 교훈이 되었다. 인간의 삶은 경제만이 축이 아닌 가치적 삶의 구현이란---그래서 죽음을 생각해 보면 보다 알찬 생의 실천방법이 모색되리라.
이제 끝으로 나와 내딸이 제일 사랑하는 아인슈타인은 1957년쯤인가?? 내가 태어날때쯤 미국의 한 병원에서 72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병명은 장파열이다 그때의 의료기술로 별 어려움이 없이 창자만 꿰메면 되는 것인데, 의사가 아인슈타인에게 수술 의향을 물었을때 그는 그냥 나두어라 하여 수술도 않코 그냥 죽은 것이다. 그때, 메스를 들었다면 아인슈타인은 10년 더 살 수 있었으리라 라고 그 수술 집도 의사는 얘기 하더라는데, 그려면, 그 10년간에 통일장의 완성이나 아무튼 인류의 발전과 사고 전환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을 수도 있었을텐데,그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왜 그랬을까?? 자못 궁금하다.우리는 단 3일을 더 살자고 모두들 죽을땐 수술 한번을 원하는데..... 아인스타인은 통일장이라는, 아니 그보다 특이점<빅뱅의 한 점으로의 우주의 시원>의 해답을 바라던 그 였는데,,, 왜 좀더 살아 그의 답을 구하는 욕심을 져 버렸단 말인지??아마 ,그의 생각엔 神의 비밀에 그런 주사위 놀이를 하지않는다는 신성의 생각이었슬까??인류문명은 인간살이와는 무관하여 원시적으로도 행복히 살 수 있고 언제라도 조금씩 문명은 발전해 나가니 비록, 인위적 삶으로 더 문명의 진일보를 가져옴이 인간사에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 하는 나의 구차한 답이 아인슈타인이 죽음을 맞이할 때 생각에 맞을련지는 모르겠다. 그리하여 그는 자연의 상태로 우주에 귀속된것이다
여기서 보면 우리는 말기적 암이라도 수술하여 시한부 생을 3개월 더 살길 원하는데, 그 3개월간 무엇을 더 영위할 것인가?? 가치있는 삶이 될 수 있슬까 ??만약 그가 그 수술로 살자고 함은 대문앞이 저승길이라... 죽음의 공포로부터 물러나길 바라는 의도였슬까?? 그러나 운명은 언제라도 죽음이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구차한 목숨의 연명보단 미리 예견하고 미리 건강을 챙기는 현명함이 우선이리라.
있을때 잘하라는 유행가 가사자락 처럼 목전에 다다랐을때 촉박함 보다 힘 있슬때 무언가 생의 완성을 가져옴이 현명할 것이다. 그리고 죽음을 비관적으로 생각말고 내 죽음이 다가오는구나 하고 낙관적인 자세로 임함이 어떨까??
70년대 동아일보의 어느 기자는 자기가 살아서 나는 모월 모일 몇시에 장례를 치르니 조문객들의 뜻을 잘 아니 조문 오지 마시라고 부고를 내고 4-5일뒤그 시각에 운명하였다. 그 기자양반 기인이긴 하지만 자기 죽는 시각까지미리 알고 그리 죽고 싶었을까 ?? 하지만 스스로 미리 부고를 내고 생의 마감을 준비하는 긍정적인 삶으로 마감 하였으리라.
또한, 엊그제 어느 까페를 들러보니 어느 글에 써 윈스턴 처칠이 노벨 문학상이라는데---평창의 아디 "백덕산지기"는 그 뜻과 써 처칠을 잘 모르는 말씀이지. (처칠은 당시로선 의원 봉급이 없어서 평생 글을 써서 원고료에 의존했다. 그가 장교로 인도에 가서 신문에 칼럼을 쓴게 그를 유명하게 했지 고희가 넘어 쓴 것이 아니다...처칠 회고록 정도는 봐야 문인이랄까???)그의 자서전엔 2차대전과 영국 폭격속에도 여유와 유머를 잃치 안았고, 그가 92세에 죽기전 그의 유언장엔 그의 장례절차에 조명각도까지 세세한 곳까지 신경을 썼으며, 진혼곡 울리며 유니온 잭을 휘날리는 타임까지 유언장에 서술한대로 하여 그대로 식을 치렀다.수많은 군중들의 울음바다에도 그는 죽음을 그리 태연히 할수 있는 동기는 무엇일까?
자.. 우리도 이런 생각을 잠시 하여보자.나는 생의 꾸질한 유언서는 남기고 싶지 않다.물론, 누구나 자기의 부모님과 사랑하는 가족을 요단강 건너 이승에서도 만나길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나의 고향은 어디일까?? 죽어서는 고향도 없단말가???그냥, 그것이 고향이런가 ??
나는 꾸질한 유언장은 남기고 싶지 않치만, 하지만 쪽지 하나엔 ---"저 파란 동해바다에 뿌려달라"고 한마디는 쓰고 싶다. 이것이 나의 유언서이다.그래, 그곳도 자연이고 우주이기에 나의 고향의 일부인 것이다. ( 낙산앞 동해바다---- 이곳도 우리의 고향의 일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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