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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기상

관동록(평창부분 발췌)

관동록 - 이천상

 

금강산은 동해(東海) 위에 있는데, 일명 개골(皆骨), 풍악(楓岳), 봉래(蓬萊)라고 한다. 중국에서 삼신산(三神山)이라고 부르는 것도 곧 그 가운데 하나이다. 진시황(秦始皇)이나 한 무제(漢武帝) 같은 중국 사람들이 바다 건너까지 사신을 보내 (불사의) 약을 구하고 신선을 만나 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끝내 한 사람도 신산(神山) 에 발을 들여 놓았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어찌 신선이 평범하겠는가? 생소한 길 또한 강과 바다를 건너 만리를 지나야 하는데 그 형세로 보아 실로 쉽게 도달하지 못한다. 다행히 나는 해동(海東)에 태어나 신산과의 거리가 겨우 천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행장을 갖추어 떠나면 열흘이면 도달할 수 있는데, 세상이 번잡스럽고 걸리적거리는 일이 많아 한갓 수고로이 꿈속에 생각만 하다가 몇 날 몇 달이 지나갔다.

임자년(1672) 가을 8월 16일 무오일. 한 두명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계획하여 출발하기로 하였다. 새벽을 타서 고치령(古峙嶺)을 넘으면서 수놓은 비단으로 숲을 이루고 가을 빛이 아름다워 마침내 시 한 절구를 읊었다.

그 이튿날 용정원(龍正院)에서 말을 달려 금성(錦城) 운라동(雲蘿洞)에 닿았는데, 바로 탁여(鐸如) 금종(琴從)이 사는 곳이다. 금종과 나는 동행하기로 하였는데, 내 뒤에 떠나기로 약속하여 이미 하루가 되었다. 이날, 바로 평창(平昌)으로 향하면서 이전부터 알고 있던 나두추(羅斗樞)를 방문하여 같이 가기로 약속하고 저녁에 물가에 있는 마을에서 묵기로 하였다. 마을 이름은 약수(弱水)였다. 신선이 사는 산을 방문하려 하는데 길이 약수로부터 시작되니 감상이 없을 수 없어 마침내 한 절구를 읊었다.

今行直向蓬萊去(금행직향봉래거) 오늘 발걸음 곧바로 봉래를 향해 가는데
去路先由弱水津(거로선유약수진) 가는 길 앞서 약수진을 건넌다.
回首□山山萬疊(회수□산산만첩) 머리를 돌려보니 산과 산이 만겹인데
白雪遙隔世間塵(백설요격세간진) 흰 눈이 멀리서 막아주네 세상의 먼지를.

약수로부터 평창군을 거쳐 대화역(大化驛)이 이르렀으니 약 90여 리를 간 것이다. 산중이라 시골 주막도 없고 또한 날도 저물어 배회하며 빙 둘러 보는데, 풀숲 사이로 좁은 길이 있는 것을 알고 5리를 찾아 가니 곧바로 산 정상에 도달하였다. 몇 집을 얻어 묵기로 하였는데 마을 이름은 잊었다. 다만 모두 부역을 피하여 깊숙이 숨어 살기 때문에 인가의 통행이 없어 마치 무릉 도원(武陵桃園)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새벽이 되어 한 고개를 넘어 청심대(淸心臺)에 도착하였다. 청심대는 산의 낭떠러지에 우뚝 솟아 나온 곳으로써 돌이 서있어 몇 길이나 되어 열 사람은 앉을 수 있다. 굽어 보니 천길 낭떠러지 아래에 맑은 못이 있는데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깨달음을 주고, 마음이 맑고 정신을 상쾌하게 해준다. 청심대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시(漢詩) 한 수를 읊었다.

淸晨跨馬到淸心(청신과마도청심) 맑은 새벽 말을 타고 청심대에 도착하니
臺下長江深百尺(대하장강심백척) 대아래 장강의 깊이가 백척이어라.
登臨一嘯迎谷風(등림일소영곡풍) 올라가 휘파람 한 가닥에 계곡 바람 맞이하니
我心淸了已非昔(아심청료기비석) 내 마음 맑아져서 이미 옛 것이 아니로다.

마치 내 마음이 하루하루 새로워지는 듯하였다. 맑고 깨끗함을 흠뻑 받아 마음을 비우고 밝고 조용함을 얻어 속세를 일체 끊으니 욕심이 없어지고 편안하다. 텅 빈 방에 달빛 빛나고 좁다란 연못으로 흐르는 물 맑도다. 운대(雲臺)의 아침 햇살 창살 사이로 천 갈래 만 갈래로 절로 나누어지는데 사방으로 탁 트여 비뚤어지거나 굽은 것이 없다. 안타깝게도 세상 사람들은 스스로 어리석어 시련과 고난을 감추니 온 세상의 어둠이 칠흑 같은 것이다. 주인에게 이 대의 이름을 신중히 하여 소홀하지 않도록 부탁하였다.

진부(眞富) 역사(驛舍)에서 아침을 먹고 오대산을 빙 둘러 보았다. 나라에서 역사서를 간직하였는데, 정말로 마땅한 장소이다. 결국 월정사(月精寺)를 지나 밤이 되어 횡계역(橫溪驛)에서 묵었다. 대화로부터 횡계까지 그 거리가 150리이다. 횡계라는 곳은 곧 대관령(大關嶺) 밑으로 8월에 서리가 내리고 4월에 얼음이 녹아 오곡이 익지 못하는데 오직 기장만이 자란다고 한다.

이튿날 새벽 마침 대관령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니 바다와 하늘이 마주 닿아 상하를 구별할 수가 없다. 밝게 빛나는 별과 달만이 흐릿한 가운데 점점이 늘어서 있는데 하늘인지 바다인지 묘연하여 알 수가 없다. 또한 마을 불빛이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밝았다 흐렸다 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강릉부(江陵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