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탄면 레져관광 개발안( 평창군 남부권 개발 2案)
후세백작 2018.07.03 12:17
이제 평창은 동계올림픽을 성공리에 마치고, 이제 현안으로는 그간 소홀시되었던 남부권의 균형발전이 부상되고 있다. 남부권 개발안에 지난번 발표레서 평창읍 하리에서 출토된 고조선식 청동검과 청동기시대인의 유골 발굴에 힘입어 과학화된 자료를 통하여 평창의 옛날의 자연과 기상을 알리는 영서문화의 궤적인 박물관 필요성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자칫 아우라지 석기 문화 발굴에 힘입은 정선에게 태백산맥 영서 역사의 기수라는 선수를 빼앗길 수도 있다고 게시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제안은 아마도 평창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2~3천명의 미탄면의 발전을 위한 개발案입니다
그간 평창군은 올림픽을 위한 북부개발에 신경을 써야 했기에 상대적으로 빈곤하게된 낙후된,미탄 개발이 이제 현안으로 떠 올랐습니다.
본인은 지난해 여름 청옥산에서 내려와 밤중에 평창으로 돌아오면서 멧둔재 터널앞에서 미탄을 돌아보았슬때 참으로 이상한 점을 보며 차에서 내려 한참을 유심히 바라보았던 기억을 회상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면 소재지정도라면 최소한 가로등 몇 개라도 야밤을 밝혀야 할텐데 미탄면 소재지의 시가지는 캄캄한 어둠 그 자체였습니다.아마도 평창의 오지로서 어둠 그 자체일테이지만, 이젠 이곳을 지나다니던 정선인들도 진부에서 나전으로 도로확장에 반감되어 미탄은 더욱 고립될 둣 합니다.
이러한 오지의 미탄에 남부권 개발이란 명목으로 예산만 투입된다고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산간농업 위주의 면으로 청옥산의 고냉지 채소작물들의 집단성 개발등 여러 안건도 있겠으나 미탄은 아직 보이지 않는 남다른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한치뒷산의 미탄 아라리(아리랑)과 또 하나는 청옥산 육백마지기 개발안 입니다. 이 두가지 안을 모든 사람들이 인식하고 이해하는 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닌 엿사적 사실을 본인은 이미 밝혔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의 이해가 필요한 사안이기에 설명적인 글로 제안 합니다.
◆ 한치 뒷산의 평창아라리의 이해
평창아라리(아리랑)은 태백산맥 영서의 산간의 기능을 그대로 보존하는 전통성을 유지한채 오늘도 미탄명을 위주로 평창일대에서 불리워지고 살아 숨쉬는 메나리조 산의 아라리라는 민요입니다.
평창아리랑은 유독 후렴이 없고, 또한 듣는 사람의 聽者에겐 좀 촌럽다고 판단되는지 모두들 왜면하는 아리랑입니다만, 본 평창아리랑에 대한 학자, 연구자들의 연구가 미진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아리랑 연구자들, 진용선, 김연갑, 이보형, 고숙경, 이창식 교수. 전산제교수. 깅등학교수, 박만일 교수 아마도 약 50여명의 대학교수들의 세미나 리포트를 아무리 들추어 보아도 아리랑의 시원이 어떠하는등 겉모양의 외형적인 연구로서 본인에게는 전혀 아리랑의 의미는 다가오지 않기에 본인은 각고의 노력으로 아리랑의 恨을 기조로 하는 평창아리랑의 후렴이 없는 점을 밝히면서 옛 선인들은 가락이 아닌 가사에 치중하였다는 논리를 게시 하였습니다.
만약 하나의 가락에 천 여수의 사설이 필요했다면 가락은 아마도 그 시절에도 발전하여 요즘 렙보다 더한 다양한 선율의 장르적 발전을 가져와야 함을 역설로 이해해 보면 영서의 산간의 아라랑의 전통성을 유지한 평창아라리는 선율보다는 사설의 가사로 일상의 한(恨)을 풀어헤치는 모습을 가졌기에 후렴이 중요하지 않았던 점입니다.
* 아라리란 뜻은 아리랑과 같은 의미의 단어이며 평창아라리라 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불리는 고유명사화의 단어를 따르는 것이다.
선율의 가락보다는 일상의 한스러움을 자신의 내면세계의 자아에 투영하여 현재보다는 미래의 시간대에는 소원을 풀 수있는 염원을 갈망하는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였기에 삶 자체의 즐거움보다는 응어리진 한의 표출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서지방 산간아리랑의 한의 표출이 전국 모든 아라랑의 기조가 되는 아리랑 이해의 서두에 아주 중요한 이론입니다.
본인의 이러한 아리랑 발표는 현 정선아리랑 향수자들보다는 언젠가는 보편적 객관성을 가진 학자들이 출현한다면 저의 이론은 바로 아리랑의 시원의 지평으로 정립될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성은 지닌 평창아라리는 아직도 한치 뒷산 청옥산을 중심으로 미탄지역에 전승되고 있기에 미탄은 우리나라 아리랑의 寶庫인 것입니다.
* 정선인들은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라는 아라리 사설 한점을 아리랑의 시원이라 주장하지만 역사적 증거도 없슬뿐더러 민요의 구전성에 선비들이 아리랑을 만들엇다는 논리는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본인은 이 가사가 청옥산에서 춘궁기 봄철에 나물뜯을때 검은 구름이 몰려와 눈이 될지 비가 될지하는 애틋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라고 이미 밝혔습니다.
청옥산은 높은 봉이 없어서 잘 안보이지만 봄비가 온 다음날 약수쯤에서 송기산 뒤로 마치 킬리만자로의 눈처럼 동쪽을 가로지르는 화얀 산이 청옥산입니다.
http://blog.daum.net/kkks1/1571『아리랑에서 구원성[久遠性] 성찰 』(평창아라리의 이해 3)
◆ "육백마지기"라는 단어의 뜻의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육백마지기는 청옥산의 고원위에 화전민들이 고랭지 채소를 경작하는 밭이 크기에 육백마지기(약 18만평)라고 누구의 설명도 필요없이 모두들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육백마지기의 뜻은 그것이 아니란점을 지난번에 발표 하였습니다.
http://blog.daum.net/kkks1/1559 『2)"청옥산 육백마지기"의 어원 의미의 고찰』<평창아라리의 이해 2>
위에 링크한 글에서보면 "육백마지기"의 육백은 옛 선인들은 밤 하늘에 떨어질듯 크게 보이는 별, 금성을 "六白"이라 불렀습니다. 금성(개밥바라기)는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있는 내행성이기에 해질무렵 서쪽하늘에 나타났다가 동이 트면 태양을 따라 보이는 샛별입니다.
또한 "마지기"는 고랭지 채소를 경작하는 밭의 단위가 아닌 논의 단위입니다. 밭의 단위는 두락으로 화전민들이 잘못 불렀다 하여도 수 많은 사람들에게 구전되었기에 잘못 부른 것이 아니라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육백마지기"에서 "마지기"란 "맞이하기"의 구개음화된 "마지하기"가 다시 준말이 되어 "마지기"로 불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백마지기는 금성을 맞이하기가 구개음화로 육백(금성)을 마지하기 → 마지기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면, 옛날 선인들은 이곳을 왜 육백마지기(금성 맞이하기)라고 불렀슬까요??
청옥산은 해발 표고 1,250m로 일반 평치의 300 여m 보다는 약 천여m가 놆은 곳의 넓은 고원 입니다. 고원은 지상보다 대기속에 수증기가 적고 또한 청정지역이라 밤하늘 별빛을 아른거리며 가로막는 물질이 적기에 별빛이 마치 쏟아지듯 보이는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이지만 지난주 만난 동창친구왈, 은퇴후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조금의 농사를 짓고 산다면서 마을에 사람들은 없지만, 그래도 밤하늘 별빛을 보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는 왜 이렇게 밤하늘의 별빛을 보며 살아간다고 하였슬까요??
본인은 한때 별자리 메시아 인덱스의 도록책도 한 권이면 다 나오는데 그 설명이 어려워 세권으로 이해해 보는 별지기였기에 얼른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에 살며 아파트 숲 공간사이로는 시계도 가로막혀 별이 하나, 두개만 보이고, 탁한 공기속에 그저 희미하게 보일뿐, 이런 생활에서 전원으로 나아가 쏱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면, 바로 말문이 막힙니다. 그 순간 누구나 모두 저 먼 별빛속에 대화라도 나누고 싶은듯한 시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날 이곳 육백마지기에 올라 별을 바라보는 선인들도 동일한 마음이였기에 바로 이곳을 별중 가장 크게 빛나는 금성을 맞이하러 올라가 보던 장소로 육백마지기라 하였으며 이곳 옆의 성마령도 星(별성) 摩(갈마.닿다. 쓰다듬다. 가까이 다가가다)라는 뜻으로 육백마지기와 의미가 상통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육백마지기가 금성을 맞이하러 올라가던 곳을 알았기에 이 아름다운 곳을 "별빛마루 육백마지기"로 이해 해야 할 것입니다.
◆ 이 두가지 미탄의 차별화된 이미지의 개발과 발전방향
이렇게 미탄은 아리랑의 寶庫 "평창아라리"와 별빛이 남다른 청옥산 "육백마지기"의 두가지가 공존하는 고장입니다. 미탄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평창아라리 보존회가 있고, 태백산맥 영서의 산의 아라리가 전승되는 고장으로 산의 아라리는 삶의 아쉬운 恨을 모두 자기중심적으로 내면의 자아를 통한 성찰로 恨을 극복하고 승화하기에 선율적인 가락에 의존하고 치중치 않고, 일상의 모든 표현의 노랫말 사설에 의존하는 情恨을 담은 아라리로우리민족 아리랑의 지평으로 해석되며,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 전승되어 살아 숨쉬는 고장으로 이에 대한 상징성으로 한치뒷산 청옥산 정상에 평창아라리의 전국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상징적 회관을 건립하여도 좋을 듯합니다.
이러한 기치아래 평창의 위상을 높여 보다 긍극적인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을 기약합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미탄 아라리 보존회가 유네스코에 등재되고 미탄에는 어느 뒷마당에 그저 조그마한 장고 이미지의 기념비 하나가 초라하게 세워져 있다. 또한 아라리 보존회는 면 사무소 마을회관에 기거하다가 그래도 큰 마음 먹었다고 콘서트 연습장 하나 건립하는,이것도 특정 마를에 건립되니 타 마을에서는 편견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렇게 아직도 민족의 아라리의 원류인 미탄 아라리는 옹졸한 정책의 푸대접을 받고있다.
하지만, 본인의 주장대로 평창아라리의 전통성속에는 우리나라 아리랑의 보편적 기조인 恨이 사설에 의하여 시원적으로 발생되며, 이로서 선율적인 의미의 가락에 치중치 않기에 후렴을 중시치 않아 후렴이 없지만 삶의 많은 이야기속의 응어리를 풀어헤쳐 현재보다는 미래에는 아무 탈없는 해원의 시간을 맞이하고픈 삶이 녹아져 있는 민요인 것이다.
지금의 정선 아리랑의 향수자들의 역사적 기록도 없는 편견적, 그리고 아리랑의 삶의 한이 무엇인인가를 모르는 외형적 아리랑 조명으로 일그러진 주관적 견해를 떠나, 후일 객관화된 이론을 찾는 학자들이 나오면 본인의 평창아라리는 모든 아리랑의 원류로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 평창아라리의 상징성으로 산의 기능성을 가진 산의 아라리답게 평창아라리의 보고인 미탄 한치뒷산 청옥산의 정상에 평창아리리의 상징적인회관을 건립하고 상설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미탄 아라리 보존회의 제반 모두가 이곳으로 통합되는 점입니다.
* 민요의 기능성을 "강등학"은 세미나에서 발표하지만 기실 민요의 기능성은 미국의 남부 뉴올리안즈 탄광촌에서 재즈 음악을 발굴한 미, 국회의사당 소속의 민요학자 알랜. 로맥스입니다.
또한 청옥산의 육백마지기는 이 지방의 옛 선인들이나 성마령을 넘던 옛 선비들이 밤하늘에 머리위로 쏱아지는듯한 초롱초롱한 별빛에 매료되어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느낌이었기에 이 곳을 육백마지기(금성 맞이하기)라는 이름을 붙였던 곳으로 착안하여 이곳에 바로 오토 캠프장을 마련하여 마이 카 시대와 텐트문화에 걸맞는 오토 캠프장 시설을 구축하여 별을 사랑하는 별빛 마니아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인접 정선, 영월의 레져산업과 유대하여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육백마지기에서 별을 헤아리며 캠프를 하여 별빛을 즐길수 있는 아이콘의 개발인 점입니다.
평창의 백일홍 축제는 끝이 어디인줄 모르는 공활한 가을하늘아래 오색의 백일홍 속으로, 드넓은 자연속으로 빠져들며, 자연과 동화되는 축제임에는 더 말할것도 없이 좋치만, 이는 시간성의 제약과 공간적인 시장성 범위의 한계에 놓이지만, 오토캠프란 가을이든 여름이든 시간적이고, 레져 여행객의 공간적제약도 없이, 전국 모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오토 캠핑장이란 점 입니다.
더 나아가 이곳에 별빛 이야기의 꽃, 천문대를 설립하면 가까이 영월의 별마로 천문대와 차별성은 그곳은 예약시간에 망원렌즈를 통하여 별을 즐기곤 돌아가야 하지만 이곳에 천문대를 즐기는 별 매니아들은 바로 이곳에서 캠프를 하며 쏱아지는 별밤속으로 분위기를 이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소형 망원경은 렌트하여 주는등 별빛축제에 관한 많은 아이콘의 개발과 또한 아라랑의 체험으로 이어져 장작팰때, 김맬때의 아리랑. 물래질할때, 길쌈질할때에 시어머니 구박을 늘어놓는 아라리의 체험과 사시사철 장철에 이밥도 좋치만 곤드레와 딱죽이의 밥도 즐겨보는 테마가 있는 전국 유일의 별빛마루 오토 캠프장 시설을 통한 관광레져 산업으로 지역경제를 혁신적으로 활성화 시키는 방안도 연구하고 이에 미탄인들이 먼저 합일된 모습으로 로드맵을 준비하여 단계적 개발도 고려해 보아야 할 때인것입니다.
본인은 이러한 개발안에 행정적, 서식적은 글로 쓰지 않은 점은 지금까지의 본인 생각을 대할때 사람들은 종래의 지금까지의 고정적 생각을 버리고 이번에 발표한 이야기처럼 아리랑의 전통성을 지닌 육백마지기의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관에 의한 이해의 글로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평창초교 100주년에 앞서 3년전 본인은 모교의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가산 이효석 선배님의 동상을 세우자는 글을 발표한적이 있습니다, 본인은 그것이 자랑이 아니라 글은 총구의 방향도 돌리는 힘을 가졌기에 이 제안을 통하여 여러 현안과 의견을 감지하시고 역동적인 남부 발전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청옥산에서의 사진 입니다.
우리는 흔히 산에서 사진의 배경이 그리 좋을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청옥산의 여러 사진들을 보면 일출시, 안개시, 봄과 가을,, 고냉지 채소밭의 시원한점등 시시각각으로 명 장면의 사진도 촬영할 수 있는 곳입니다.
위 사진을 감상하노라면 원경과 근경이 뚜렷이 구분된 점입니다.
이 사진을 보며 앞의 근경이 없이 구름속이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면 그렇게 원경만 찍으면 힘이 없는
사진이 될 것입니다.
과거의 일반 사진기로는 이런 원경과 근경의 확연한 사진은 조리개를 무한대에 놓고 피사체를 가까이에서 찍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사진입니다만 이젠 셀까로 손쉬운듯, 위 사진을 감상하노라면 우선 우리의 지식에 가리오앙산에 발원하여 청옥산을 깃점으로 평창의 장암산으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의 삼각 고원의 힘찬 산세에..
위 사진에서는 그러한 점이 노출되지않고 마치 구름위를 떠 흘러가는 산들처럼 부드럽기만 합니다.
동양화의 여백(비백)보다도 더 단순하게 표현된 산세들의 소리없는 무빙.
산은 흐로고 물은 안개가 되어 산을 따라 나서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묻는 이도 없건만,
산은 말없이 조용히 흘러만 갑니다.
이렇게 청옥산의 사진들은 자연 그대로 시시각각의 좋은 촬영을 선정할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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