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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昌歷史 史觀定立

11. 성마령과 육백마지기 고찰

11. 성마령과 육백마지기 고찰

           「 平昌歷史의 理解 」p179~186      후세백작

1) 육백(六白)마지기 어원의 이해

평창군 미탄면 소재 청옥산은 해발 1,256m로 신생대 3기의 고위도 평탄면이 융기되어 고원을 이루는 지형으로 정상부엔 육백마지기로 잘 알려져 있다. (신생대 1, 2기는 없는 시기이다.) 청옥산 정상부는 이러한 고원부는 돌출된 산세가 아니라 평지처럼 느껴지기에 사람들의 느낌에는 익숙지 않은 산이지만, 평창읍 유동리에서 저 멀리 동쪽 하늘과 맞닿는 청옥산의 산세를 볼 수 있으며, 눈이 쌓인 청옥산은 더욱 확연하게 볼 수 있다.

청옥산의 고원부는 육백마지기의 고위도 평탄면의 형성은 오랜 침식 작용을 받은 평탄면이 융기하여 높은 고도에 평편하게 나타나는 고위도 평탄면의 지형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고위 평탄면은 신생대 제3기 요곡 운동에 의하여 융기되어 현재의 지형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의 오대산-육백산-태백산 사이에서는 한반도가 요곡 운동을 받기 이전의 지형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 지역에서 잔구성 산지들이 1,000m 내외의 평탄한 고도에서 되어 있다.

지형이 융기한 후 침식을 적게 받은 단단한 지형이 평탄하게 남아있는 지형으로 대관령 정상부 고원과 이러한 육백이란 단어는 도계의 강원대 분교가 자리한 산도 육백산이라 하는데 삼척시의 지명 유래에서 육백산은 볍씨 600 말을 뿌릴 면적이라 하는 육백마지기와 똑같은 유래를 가지고 있다. 도계의 육백산. 미탄면 청옥산의 육백마지기 고원등이 이에 속한다.

이곳 미탄면 일대에 현재 회자되는 이야기로 육백마지기 뜻은, 일설에는 화전민들이 밭농사를 지으며 청옥산 고원부에 볍씨 600 두락을 뿌릴 수 있는 논의 넓이로 환산해 보는 넓이라 하여서 육백마지기가 되었다 한다. 1,960년대에 산 정상에 정착한 화전민들이 약 59만㎡에 이르는 거친 땅을 개간해 한국 최초의 고랭지 채소밭을 만든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러기에 화전민들은 우리가 이곳에 올라가기 이전에는 육백마지기란 말을 들어본 적도 없어 육백마지기는 우리가 만들어 전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물론 화전민들이 처음으로 육백마지기라고 단어를 만들어 이곳의 지명을 육백마지기로서 불렀지만, 육백이란 이미 이곳에 존재하여 왔던 지명으로 조선시대에 금성을 육백이라 지칭하였기에 이곳을 육백마루나 육백마지기등의 이름값이 있었다는 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모든 지형이나 산 이름이 대부분 한문과 음차의 음으로 표기되는바 육백마지기 명칭은 지방민들이 이름 붙였다고는 볼 수 없다. 조선시대는 유학의 나라이지만 그 속에는 도참사상의 풍수나 제자백가사상, 노장사상등도 활발하게 성행한 시기였다. 따라서 한학과 도학에 능통한 선비들이나 지방에 군수 등으로 부임하면서 음양수와 풍수설에 입각한 지형 이름을 붙이는바 한 예로 육백마지기 아래에는 새골(조동리)이 있다.

새골은 풍수적 용어로 조동리는 고길리와 노론리 사이에 지명으로 마을의 지형, 지세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비조탁목지형(飛鳥啄木地形)이라 한다. 여기서 새골이라고 마을사람들이 새의 현상이라고 먼저 새골로 불렀다고 보기보다는 비조탁목지형이란 용어가 먼저 생겨났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쉽게 새골, 조동(鳥洞)으로 불렀다고 본다. 풍수란 사물의 형태적 상관의 논지로 새골은 비조(飛鳥)란 귀한 길조를 의미하는 것이다.

 

1) 육백마지기의 육백(六白)은 금성을 지칭한다.

우선 육백의 한문으로는 볍씨 육백말 할때는 六百이며, 금성은 六白을 사용한다. 육백마지기에 어원은“육백+마지기”의 합성어로 육백(六白)은 제자백가시대에 풍수가의 음양오행설의 이론에 따라서 아홉별 중에 여섯째를 육백이라하며 금성을 말함이다.

금성은 또는 샛별, 개밥바라기, 계명성, 태백성으로 불린다. 많은 명칭으로 금성을 표현하지만 조선시대에 금성의 이름은 육백(六白)이라고 불렀습니다. 육백이란 우리나라 민속의 음양수에서 태양계 행성의 별자리 구성(九星)의 하나인‘금성’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의 일반 사상에는 음양오행설이 근본 기조인바 음양의 수와 그 아래에 오행으로 태양계를 중심으로 행성들은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라 이름을 정했습니다. 여기에서 음양수는 상위의 이름값이기에 금성을 육백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금성은 우리 민족의 천신사상의 태양숭배 사상에 삼족오는 천, 지, 인의 태양 신이며, 금성의 명칭은 오행 중 하나인 '금(金)'에서 유래하였으며, 태양이 뜨기 전에 여명 속에 먼저 떠오르는 별을 금성, 샛별 또는 계명성이라 하였고, 태양이 지고서 떠 오르는 금성은 개밥바라기 또 태백성이라 하며 개천절도 새로 뜨는 초승달에 금성이 태어난다는 의미로 우리민족에겐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는 별이다.

< "육백"의 뜻 >

◆ 육백(六白) - 음양설에서 아홉 별의 하나인 금성을 이르는 말

◆ 음양설(陰陽說) - 음과 양의 理, 氣를 우주 만물의 생장 변화의 근 본 원리로 하는 설

◆ 구성(九星) - 구성이란 하늘의 별은 음양수로 헤아리는 수.

一白(일백)은 음양가에서 수성을 일컫는 말,

二惑은 토성,

三碧은 목성 ,

四綠은 삼벽과 함께 목성을 말함.

五黃은 토성,

六白은 금성,

七赤은 육백과 함께 금성을 말함.

八白은 토성.

紫白은 화성을 말한다.

이것이 음양수로 말하는 아홉별입니다.

금성이 떠오를 때나, 서산으로 넘어갈 때도 달 가까이에 있으며 미탄읍내서 볼때는 산이 높아 산 등선에서 마치 떨어질듯 보이기에 청옥산 고원의 평탄지형은 이러한 금성을 받아 앉는 마루, 또는 금성을 맞이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옛날에는 청옥산 정상의 고원을 육백(금성) 산마루로 불렀을듯 하며, 이러한 육백산 마루가 변화되는 것으로 이러한 "육백마지기"에서 "육백마루"에서 "육백(금성) 맞이하기"란 뜻에서 "~마지기"란 "~맞이하기"의 구개음화된 "~마지하기"가 다시 준말이 되어 "~마지기"로 불리는 것이다. 그래서 육백마지기는 금성을 맞이하기가 구개음화로 육백(금성)을 마지하기 → 마지기로 변한 것이다. 마지기는 금성이 뜨는 마루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

◆ 성마령(星摩嶺)이란?

성마령은 미탄에서 정선을 넘는 고개로 조선시대 1,870년대의 해동지도에서는 대관령은 중로(中路)로 표시되어 있지만, 성마령은 가마를 타고 넘을 수 있는 도로로서 大路로 표시하고 있다.

성마령은 해발 970m로서 지명이름으로 성마령(星摩嶺/ 별 성. 닦을 마)이란 성마령의 유난히 밝음을 표현하는 의미를 가진다. 과거의 선인(先人)들이 먼 길의 여정에 밤에 이곳 성마령을 넘기에 밤하늘에 총총거리는 별빛의 감흥으로 성마령이라는 지명으로 남겼다. 성마령(星摩嶺)이란 전국에 유일하게 별을 지명으로 하는 곳이다. 또한 그 옆의 청옥산(1,256m)의 밤 하늘에 능선은 일자형으로 그 위로 떠 오르는 육백星(별)의 마루처럼 보이게 된다하여 육백마지기란 이름으로 전래되는 등 청옥산에서는 유백마지기와 성마령에서 별에 관한 이야기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성마령 고개마루로 호식총과 정선 아라리 비석이 있다.

성마령은 1870년대 해동지도 주기에서는 大路로 기록되 있으며 대관령은 中路라 하였다. 대로는 가마가 태우고 갈 수 있는 길로서 이 길은 현재도 폐쇄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길을 막고 폭판에 세워놓은 비석은 참으로  세상에 자기밖에 모르는 바보들의 행진인 정선아라리의 돈키호테들의 표시이이다.

비문의 내용은 이곳 정선에서 아리랑이 발생하여 성마령을 넘어 서울로 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어마어마한 거짓말을 기록하였다. 시인이라는 구성달은 돈키호테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 위치는 평창땅이기에 정선쪽으로 이전 바란다.

정선아리랑에 대해 떠드는 아류적인 아리랑 예찬자들에게 필자와 정선아라리 제이론의 허구에 대하여 논쟁을 바란다.

◆ 청옥산의 유래

16~18세기의 의 고지도를 통해 보면 산 이름도 없으며 성마령만 표기되다가 조선 말기시대에는 두만산으로 표기되고 있다. 필자의 평창 지명 변천의 글에 의하면 평창읍 마지리가 마지리로 표기되듯이 두만산(斗滿山)으로 표기되다가 조선 말기에는 그 뜻이 바른 두만산(頭滿山)으로 표시된다.

청옥산이란 어원은 세종 때쯤 실록에서는 북한의 단천과 이곳에서 옥이 출또되는데 옥은 임금의 소유물로 제한되기에 일반인들은 캐지 말라는 어명이 두 번 실록에 기록되었다. 여기서 청옥산의 유래는 시작된다.

<성마령 고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별을 지명으로 사용하는 성마령을 넘는 선비들의 아름다운 성마령의 서정 !!

<한글 번역 - 평창의 시인. 향토사학자 엄 기종>

선비들의 성마령의 詩

關東行錄 관동행록    저자 李堣 (松齋集卷之一) 송재집 1권

魯山東起嶺    노산 동쪽에 솟은 봉에서

聳處可星磨    우뚝 솟은 곳에서 별을 잡아

馬足騰松杪    말 발은 소나무 신초 위로 뛰어 오르고

天河泄磵阿    하늘의 강은 산골 언덕으로 흘러내려

風敲樹曾禿    바람은 나무 초두를 흔들고

雲近雪先多    만설 실은 구름은 다가와

陰壑日將夕    어두워지는 골엔 곧 석양이 물들어

回頭客路賖    돌아보니 객의 길이 아득도 하네.

○ 關東錄 (○관동록)

(企齋集卷之五) 저자 申光漢 기재집 5권 신광한

緣雲躋石路逶遲      구름 오르고 구불대는 돌길이 더뎌

獨鶴高飛羽翮垂      홀로 높이 나는 학은 날개를 드리워

莫道星磨天下險     천하에 별 잡는 이렇게 험한 길은 없어라

世間何地是平夷。     세상 어디에 평등한 곳이 있단 말인가

 

(九畹先生集卷之一 )   구원선생집 권 1.저자 李春元 이원춘

迢遞星磨嶺    높이 이어진 성마령

蕭疏雨送秋    소소리 내리는 비는 가을을 보내

千林紅葉盡     우거진 단풍은 다 지고

萬壑白雲愁     골마다 흰 구름에 수심이 차

上上高無極     높고 높은 하늘은 끝이 없어라

回回勢不休     돌고 도는 권세는 멈춤이 없어도

人間有平地     인간세상은 평등한 곳

何事獨冥搜     어찌 홀로만 어둠을 쫓으리요

踰星磨嶺。 성마령 넘으며

(寓軒先生文集卷之二) 제 2권 유현선생 문집 저자 柳世鳴 유세명

踰星磨嶺     성마령 넘으며

小憩平安驛            평안역에 잠시 쉬어

有感於村名 書一絶            이 마을 이름에 느낀 바를 쓰다.

世路莽馳幾險艱               우거지고 험난한 세상길 몇 번 넘었지

人生無事是平安            인생이 이렇게 평안함이 없어

一年三過星磨嶺                일 년에 세 번씩 지나가는 성마령

贏得霜毛兩鬢寒             얻은 것은 서릿발과 차가운 머릿결이라네

星磨嶺 (성마령/ 별의산길)

(浣巖集卷之一) 저자 鄭來僑

奉次使君韻 다음 차례 분의 운을 담아

詰屈星磨嶺 굽신거리며 성마령길을 물어

纔通一小籃           겨우 작은 작은 바구니 하나만큼 알아

林風吹鬢髮         숲 바람이 귀밑머리 흔들고

嵐翠滴衣衫         푸른 산바람이 적삼에 스며

野色晴方遠            맑고 푸른 들이 멀리 펼쳐져

禽聲暖欲酣           정겨운 새 소리가 흥겹구나

暮應寧越到           해 지니 평안이 넘쳐들어

衮衮向西南             임금 계신 서남방으로 향하네

 

星磨嶺 성마령

(河陰先生文集卷之二) 저자 申楫 2권 하음선생 문집 신휘

歷井手撫膺       우물이 가슴을 어루고 손으로 지나듯

貫魚足履頂         꿴 물고기가 정상으로 발걸음 하듯

難於上靑天          하늘 오르기 어려워

名曰星磨嶺         별 잡는 성마령이라 부른다

 

踰 星磨嶺 성마령을 넘으며

(晦谷先生集卷之三) 제 3권 화곡선생집.

蓮幕錄, 저자 曺漢英 연막록/ 조영한

自寧越向㫌善 영월을 떠나 정선으로 가려네

踰 星磨嶺 성마령 넘어

嶺極險絶 극히 절험한 봉을 넘어

越到㫌善 정선 도착

有嶺近星辰 성마령에는 별들이 가까이 있지

鳥道疑通蜀 촉나라 지나는 새들의 길 같아

人居似避秦 사람 사는 게 진나라 피난처 같아

我行驚險絶 나는 절험한 길에 놀라

欲進却逡廵 돌며 뒷걸음치면서 나아가

獨立看斜日 홀로 서서 기운 해를 바라보니

秋風動遠旻 가을바람에 먼 하늘이 흔들리네

午上星磨嶺、 정오에 성마령 올라

(月灘先生文集) 월탄선생문집

星磨嶺一絶 험하기로 세상 제일의 성마령

午上星磨嶺 정오에 성마령 올라

坡陀俯衆岡 산등성에서 굽어보니 비탈진 파도

水聲西去遠 물소리는 서쪽 멀리로 흘러가고

山勢北來長 산세는 북에서 와 남으로 길게 이어진

鳥道危艱狀 위험하고 험난한 새들의 길

羊膓險可方 양장처럼 굽은 길 방향잡기 험해

明朝百曲坂 아침이 벍아오면 백 번 굽이돈 언덕

頭髮也添霜 머리카락에는 서리가 서렸구나.

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N
 

<요약>

육백마지기는 본인 이외에 모든 사람들은 볍씨 육백말을 뿌릴 공간이라 한다. 육백마지기에 어원은“육백 +마지기”의 합성어로 육백은 제자백가 시대에 풍수가의 음양오행설의 이론에 따라서 아홉별 중에 여섯째를 육백이라하며 금성을 말함이다. 육백마지기를 어느 농부가 산 넓의 공간을 볍씨 육백말을 뿌릴만한 공간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제는 내 말을 믿든 않믿든 맘대로 무식하게들 하시고..인터넷에서 백과사전 한번 찾아보시면..

<인터넷 사전 검색>

◆  육백(六白)  - 음양설에서 아홉 별의 하나인 금성을 이르는 말

◆   음양설 (陰陽說) - 음과 양의 이, 기를 우주 만물의 생장 변화의 근본 원리로 하는 설

◆  구성(九星)  -  一白은 음양가에서 수성을 일컷는 말, 二惑은 토성, 三碧은 목성, 四綠 삼벽과 함께 목성을 일컷는 말. 五黃은 토성, 六白은 금성, 七赤은 육백과 함께 금성을 일컷는 말. 八白은 토성. 紫白은 화성을 말한다. 이것이 음양수로 말하는 아홉별이다.

이렇케 일반 사전까지 들춰주는데 나에게 자꾸 딴 말들 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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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군 미탄면 소재 청옥산은 해발 1256m로 신생대 3기의 고위도 평탄면이 융기되어 고원을 이루는 지형으로 정상부엔 육백마지기로 잘 알려져있다.(신생대 1, 2기는 없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금성 또는 샛별, 개밥바라기등 많은 명칭으로 금성을 표현하지만 조선시대에 금성의 이름은 육백(六白)이라고 불렀습니다. 육백이란 우리나라 민속의 음양수에서, 태양계 행성의 별자리 구성(九星)의 하나인 ‘금성’을 이르는 말로서 그 자리는 건방인 서북쪽이라고 하였습니다.

六白의 白자는 휜 백자로 금성의 밝음을 표시한 백자 입니다. 여기에 혼돈하는  면적의 단위로 600은 六百이라 씁니다.

당시에는 음양오행설이 대두된 바 음양의 수와 그 아래에 오행으로 태양계를 중심으로 행성들은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이라 이름을 정했습니다. 여기에서 음양수는 상위의 이름값이기에 금성을 육백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청옥산 정상부는 고원부는 평지입니다. 이러한 평지는 평창읍 유동리에서 저멀리 동쪽하는과 맏닿는 청옥산의 산세를 보자면 눈이 쌓인 청옥산을 바라볼때 확연하게 볼 수 있습니다. 

금성은 지구에서 볼때 태양, 달 다음으로 크게 빛나고 있는데 초저녁 산 위로 조금 올라뜨며 유난히 밝아서 금성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떨어질듯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떠 오르는 높이보다 미탄읍내서 몰때는 산이 높아 조금만 떠 오르고 마치 떨어질듯 하기에 청옥산 고원의 평탄지형은 이러한 금성을 받아앉는 마루, 또는 금성을 맞이한다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옛날에는 청옥산 정상의 고원을 육백(금성) 산마루로 불리었슬듯 하며, 이러한 육백산마루가 변화되는되 것으로 전 글에서는, 이러한 "육백마지기"에서 "육백마루"에서 "육백(금성) 맞이하기"란 뜻에서 "~마지기"란 "~맞이하기"의 구개음화된 "~마지하기"가 다시 준말이 되어 "~마지기"로 불리는 것입니다라고 논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육백마지기는 금성을 맞이하기가 구개음화로 육백(금성)을 마지하기 → 마지기로 변한 것입니다.

또는 해방 이후 화전민들이 이곳의 어원이 "육백마루"라 하는 점에서 밭은 단위인 마지기로 변용하여 오용하여 이 밭에 육백마지기란 명칭의 단어를 사용하였던 점으로 "육백마지기"라는 단어가 창출 된 것이라고 추정 사료합니다. 여기에 원음 육백이란 밭의 정확한 넓이 개념이 아닌 금성이란 단어를 잘못 사용한 점입니다. 그리고 원음 "육백마루"가 이러한 오용사례로 인하여 "육백마지기"라고 변용되어 불리어지고 있다.

마지기는 금성이 뜨는 마루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육백마지기의 육백은 아래에서 성마령과 똑같은 뜻입니다. 성마령(星摩嶺)은 별성, 닦을마의 의 뜻을 가졌으며 이러한 성마령의 성마가 지칭하는 별은 육백(금성)이란 점입니다.

이곳 미탄면 일대에 현재 회자되는 이야기로 육백마지기 뜻은, 화전민들이 밭농사를 지으며 청옥산 고원부에 밭의 넓이는 볍씨 600두락을 뿌릴 수 있는 넓이라 하여서 육백마지기가 되었다 한다. 1960년대에 산 정상에 정착한 화전민들이 약 59만㎡에 이르는 거친 땅을 개간해 한국 최초의 고랭지 채소밭을 만든 것이 시초다라고 라고 한다. 그러기에 화전미들은 이전에 육백마지기란 말을 들어본적도 없이 우리가 만들어 전하는 단어라고 합니다.

이러한 화전민들이 개간한 토지가 600마지기라는 설에 필자는 이해할 수 있으나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화전민들이 처음으로 육백마지기라고 단어를 만들어 서로 육백마지기로 의사소통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육백이란 이미 이곳에 존재하여 왔던 단어로 금성이 조선시대에 이름값으로는 육백이라 지칭하였기에 이곳을 육백마루나 육백마지하기등의 어원적 이름값이 있었다는 점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육백의 어원을 뒤에 마지기란 경작 단위를 붙여 "육백마지기"라 불렀다고 한다면 이곳은 육백마지기의 공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금성이란 뜻의 육백에 마지기를 붙여쓴 잘못된 오용사례임을 지적합니다.

위의 개간 기록에서 육백마지기는 약 59만㎡은 환산지수로 볍씨라 하였기에 논의 면적을 구해봅니다.

논은 남부지방에서는 200평당 한마지기라 하지만 이곳 강원도 일대는 120평을 한 마지기 단위로 삼는다. 그러면 약 59만㎡는 590,000÷3,3(1평당기준)÷120(평) =1,489마지기 입니다. 200평 기준으로 잡으면 약 900마지기로 됩니다.

만약 600마지기는 몇 ㎡인가 환산해 보면 600×3,3×120=237,600㎡으로 600마지기는 이곳에 보이는 59만㎡의 절반정도 넓이를 가지면 되는 바 이곳을 육백마지기라고 어림잡은 것은 틀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약 59만㎡라 함은 화전당시의 실측하고 도면을 띄운 것이 아니라 이후에 계산된 수치로 보입니다. 그러기에 화전민은 눈으로 얼추보는 값을 이야기한 바 가령 10진법에 절반인 오백 마지기 천 마지기 한다면 자연스러울 것인데, 눈으로 본 얼추 느낌을 육백마지기니 구백마지기라고 표현한다면 이는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다.

더군다나 미탄은 지형상 논이 만치않아 초가지붕도 적다고들 합니다. 물론 이곳이나 평창읍 조동리 일대는 영흥층과 평안 누군층아라 2억년의 압력을 받은 천연 슬레이트(돌기와)가 생산되는 곳이기에 초가지붕보다는 천연 슬레이트가 선호되었는지는 모릅니다만, 이렇게 미탄에 조선시대에 보(洑)를 들춰보면 서천보, 회동 상, 중, 하보, 천등으로 이 모두 합계한 논을 추정해보아도 백마지기가 않될듯한데, 지역적으로 큰 영향도 주지 못하는 논의 마지기로 환산해 이름붙였다 함은 이해가 곤혹스러운 점입니다.

또한, 민초들은 일년이 가도 쌀밥 한 번 먹기 힘들 당시에 볍씨로 한마지기 단위 경작을 눈어림하고, 비뚤어지고 경사진 밭을 600평도 아닌 600마지기를 어림잡아 이야기한다면 그 이해도 곤혹스러운 점입니다.

위에서 보는 육백이 금성이 아니라 토지 넓이로 시발했다면 성마령도 의미없어지는일로서, 역사에서 하나의 안건에 여러 문제중 단 한 문제가 잘못되어 부족하다면 그것은 역사를 충족치 못하기에 인정하면 후일 오류가 되며, 성마령도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피해를 양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필자로서는 이러한 부정확한 가설은 아니라고 부정합니다.

그러면 좀 먼 시각에서 우리나라 모든 지형이나 산이름이 대부분 한문과 이두음으로 표기되는바 이것은 각 지방민들이 이름 붙였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한학과 또한 도학에 능통한 선비들이 각 지방에 군수등으로 부임하면서 음양수와 풍수설에 입각한 지형이름을 붙이는바 한 예로 횡계의 발왕산은 요즘 떠드는 팔왕지지가 아니라 모든 고지도에는 낭(囊/ 배낭낭, 주머니 낭)자를 쓰고있는바 발왕산이 아니라 발랑산이 원음으로 이러한 표기도 어떠한 풍수사상에 입각한 형태적인 묘사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만 이러한 어려운 한문까지 지방 민초들이 알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기에 평창도 조선시대에는 정도전, 허민수(허목)등 무수한 학자들이 다녀갔고 율곡 이이도 판서시절에 평창에 봉산동계의 문제로 출장을 다녀갔듯이, 100여명 이상의 한학에 능통한 군수들이 부임한바 일전 필자의 글 " 평창의 지명변천"에서 미탄의 어원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 예로는 미탄의 탄자가 여울灘, 삼킬呑 등으로 이해하기 곤란한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바 이것은 한학과 풍수설에 능통한 조선선비( 지방 태수가 빠를듯)들이 지방을 둘러보며 어떤 현상에 연유해서 이름 붙여진것으로 추론합니다

(* 필자의 발표글 중 "평창의 지명변천"이란 글에서는 미탄과 입탄의 탄자를 인용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혹자가 말하길 이 글은 평창에 있는 글이 아니랍니다. 그것은 필자가 글을 쓰면서도 인용할 글들이 없었지만 우리 말, 우리지명의 이두음화에서 한문전용, 한문과 한글혼용, 구한말의 풍수에 입각한 지명 구분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글로 본 글에서 평창의 예를 한양의 유사한 지명으로 바꾸면 한양을 위한 글이 될 수 있는 보편적인 우리나라 지명변천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척시 도계의 강원대 분교가 위치한 곳은 육백산입니다. 육백산은 삼척사람들에세는 관심도 없어 버려진 산이라고도 합니다만, 이곳에서도 육백이란 의미를 볍씨 6백 두락을 뿌릴 수 있는 넓이로 설명합니다. 육백산도 청옥산, 대관령과같이 산등성이로 표현되는 고생대 평탄면의 지형이 융기된 고원으로 지방민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산에 볍씨 600두락을 뿌릴만한 평탄 고원이란 해석에 필자로서는 이해가 불가합니다,

(* 상등성이의 표현은 과거 조선선비들의 금강산 유람록에서 대관령을 오르며 "산등성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물론 한문으로,)

◆ 성마령(星摩嶺)에서 별의 관계는?

성마령은 미탄에서 정선을 넘는 고개로 조선시대 1870년대의 해동지도에서는 대관령은 중로(中路)로 표시되어 있지만, 성마령은 가마를 타고 넘을 수 있는 도로로서 大路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성마령은 해발 970m로서 지명이름으로 성마령(星摩嶺/ 별성. 닦을 마)이란 별과 관계되는 이름입니다.

즉 성마라고 표시한 별은 육백(금성)이란 점입니다. 유난히 광채가 나기에 닦는다는 의미의 摩(갈다라는 뜻의 갈마)자를 쓰고있는 별입니다.

 이렇듯이 이제 육백별(금성)은 성마(星摩)라는 사실을 이해하였습니다

과거의 선인(先人)들이 먼길의 여정에 밤에 이곳 성마령을 넘기에 밤하늘에 총총거리는 별빛을 감흥으로 성마령이라는 지명으로 남겼습니다. 또한 그 옆의 청옥산(1,256m)의 밤하늘에 능선은 일자형으로 그 위로 떠 오르는 육백星(별)의 마루처럼 보이게 된다하여 육백마지기란 이름으로 전래되는 등 이 두 산에서는 별에 관한 이야기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4~6년전 (평창 남부권 두가지 案-2)에서 별에 관한 해석과 이에 관해서 전개하면 좋을 이야기들을 서술 하였습니다. 그것은 평창은 이제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그간 10여년간 평창군 예산은 동계 올림픽 준비과정에 높은사람들 다녀가는 횡계에 도로정비, 청소하기등 잡역으로 북부권에 치중하여 예산을 쓰게 되었으며 상대적으로 남부권 읍, 면은 타 군보다는 레져시설 발달이 상대적으로 미약하였기에 이제 평창읍, 미탄, 대화, 방림등의 균형발전을 지향하여야 하는 점에서 미탄의 발전방향을 그려보았습니다.

아래에 링크되어 있는 남부권 계발안에서는 미탄발전방향으로 청옥산에 캐리반의 오토 캠프장과 천문대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이해도가 미미한듯 합니다. 필자의 글은 영향력이 하나도 없지만 역사 좀 한다는 자들이 남의 글 셉쳐가 자기글처럼 고쳐쓰는 점에서 오류를 만드는,,, 나쁜 버르장들 열개라도 밝혀볼 수야 있지만,,

<아래 링크된 주소는 예전에 육백마지기 어원에 대한 두 개의 글입니다>

2)"청옥산 육백마지기"의 어원 의미의 고찰<평창아라리의 이해>

육백마지기 어원에 대한 문의에 답을 드립니다.

남부권 개발안에 육백마지기에 천문대와 오토캠프장 신설의 제안을 하였는바 이러한 내용은 언재라도 육백마지기에는 필요한 사항이고, 또한 두가지 모두 전국 최고의 렌드마크를 찍을 수 있는 우리나라 제일의 문화란 사실을 다음장에서 기록하겠습니다.

◆  고위 평탄면의 형성

고위 평탄면의 형성은 오랜 침식 작용을 받은 평탄면이 융기하여 높은 고도에 위치하여 평편하게 나타나는 지형을 말한다. 우리 나라의 고위 평탄면은 신생대 제3기 요곡 운동에 의하여 융기되어 현재의 지형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 산맥의 오대산~육백산~태백산 사이에서는 한반도가 요곡 운동을 받기 이전의 지형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 지역에서 잔구성 산지들이 1000m 내외의 동일한 고도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형이 융기한 후 침식을 적게 받은 단단한 지형이 평탄하게 남아있는 지형으로 대관령 정상부 고원과 도계의 육백산. 미탄면 청옥산의 육백마지기 고원등이 이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