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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이스 북에서 평창역사

페이스 북 2《평창의 시원 》


《평창의 시원 》

평창에 히늘이 열리고 이 땅에 처음으로 살았던 평창의 선조는 누구일까요?

수 년전 평창읍 하리에 청동기 유적을 강원 고고문화원이 시굴 조사 하였다.

여기서 청동검과 고인골이 출토 되었으며 동아대 고인골 학자 김재현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2,400년전의 20대 여자의 인골로 판명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고조선 말기시대이다.

하리 고인골은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오래된 전신상으로 이후로는 300년 후에 출토된 인골보다도 10cm 더 큰 장신으로 전신상 옆에는 비파형 청동검이 인골과 함께 출토되었다.

우리는 좋은 집 짓고 살면서 조상의 묘도 잘 관리한다. 하지만 평창시공 의 최고래의 이땅의 조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인골의 유품은 고향을 떠나 춘천박물관 창고에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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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는 청동기 박물관도 만들어야 하지만 이러한 평창의 시원을 여는 선조의 능도 만듬이 조상에 대하는 예는 아닐까요?

우리는 지금 평창군 노산 페스티벌 에서 충의제를 지내지만 이젠, 평창에서 출토된 최고의 선조를 모시고. 푸른 창공아래 옛부터 살기좋은 낙원이라는 평창의 기상을 나타내는시원제를 지냄이 더 바르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백일홍 축제는 스토리텔링이 전혀없습니다. 이 축제가 더욱 견실한 기반위에 발전하기 위해서는 역사가 묻어나는 이러한 평창 시원의 스토리텔링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치, 강릉 단오는 국사성횡당에서 시작하듯이 백일홍 축제는 평창의 시공을 알리기 위해 평창 최고의
선조의 능에서 시원제를 열며. 평창은 예로부터 살기 좋은 자연 환경을 예찬하고 또한 이 능의 주인은 유일한 고조선 인골이기에 "고조선인을 만나러 평창으로 가자 "라는 기치의 케치프레이즈를 높이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 글은. 블로그 " 후세백작의 지평"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