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허에 세운 적멸보궁의 비 》
적멸보궁 뒤엔 1m가 채 되지 않은 비 하나가 서 있었다. 자장율사가 부처님 정골사리를 봉안한 장소라는 비석이다.
비석엔 5층 마애불탑과 사리를 모신 그릇 형상이 앞뒤로 새겨져 있다. 이 탑비를 사자암 감원 해량 스님은 불뇌보탑(佛腦寶塔)이라고 했다.
「봉안사리개건사암제일조사전기 」에서 아래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려 말 학자 민지(閔漬 )
“오대산을 찾아가 지로봉에 올라 부처님의 두뇌사리와 정골사리를 봉안하고 가라허 (伽羅墟)에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그 사적을 기록하고 이어서 월정사를 창건하고 13층 석탑을 세워 사리 37매를 탑심(塔心)에 봉안하였다.(오대산 본전기)”
<민지는 오대산. 1차 사적기에서 월정사에 고기록의 이두음 문헌을 한문으로 번역하였고 똑같은 기록을 일연의 삼국유사는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서 썼기에 민지는 문헌기록대로 13층 탑이라 기록하였고 일연스님은 당시 보이는 9층 탑이라고 그 시점에서 쓴 것이라 필자는 해석합니다 >
탑의 내용으로는 5층 마애불탑과 사리를 모신 그릇 형상이 앞뒤로 새겨졌다. 이 탑비를 사자암 감원 해량 스님은 불뇌보탑(佛腦寶塔)이라고 했다.
현재 적멸보궁 뒤 봉분에 세워진 비는 땅 속에 묻혀 있던 비를 한암 스님이 찾아내 다시 세워 놓았다.
일연 스님은‘삼국유사’에서 풍수지리가 말을 빌어 “국내 명산 중에도 이곳이 가장 좋은 땅이므로,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라 오대산은 문수성지라고 극찬했다.
특히 오대산은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호령봉, 상왕봉, 동대산, 두로봉 등 5개 봉우리가 연꽃을 닮았다. 부처님 정골사리가 있어 법신이 충만한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산허리엔 보살들이 현현하는 다섯‘대(臺)’가 있다.
동대 관음암에는 1만 관세음보살, 서대 염불암에는 1만 대세지보살, 남대 지장암에는 1만 지장보살, 북대 상두암도 1만륵보살이 머문다. 중대사자암은 1만 문수보살이 있으며 주불로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문수보살은 날마다 이른 아침 상원사에서 36종 형상으로 변해 나타난다고도 했다.
이 부분에서도 오대가 명산중에도 가장 좋은 땅이라하고 풍수적으로 기술하는데 풍수는 도선국사가 처음으로 중국에서 들여와 습곡산지의 한국적 풍수로 발전시켰으며 도선은 왕간 17세때 직접만나서 많은. 풍수적인 가르침을 하였다.
그 증거로는 훈요십조 8조는 풍수사상에 의하여 차현이남 즉, 전라도는 배역할 땅이라 후손 왕들에게 지침하고 있다.
따라서 10세기 이전에 자장율사 시기에는 오대를 풍수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시기이기에 삼국유사의 오대에 대한 예찬은 고기가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쓴 것이다.
적멸보궁은 도선국사에서부터 명당론이 나온 이후에 역사로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고려사 기록에는 왕건때 도선은 신라는 사찰이 남발하여 나라가 망하였으니 앞으로 내가 지목하는 곳 이외에는 사찰을 짓지 말라고 기록한바 그럼 사찰을 지을 곳은 풍수적적인 이해란 점으로 아마도 도선에서부터 오대의 풍수론은 회자 되었슬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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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글에서 인용한 일본 책 諸橋轍次, 「佛舍利」, 漢和大辭典권3, 大修館書店, (1985)에서 사리에는 하얀색의 骨舍利, 검은색의 髮舍利, 빨간색의 肉舍利라 하는바 적멸보궁외 골(뇌)사리로서 백색이며 월정사 탑에‘70년 해체 보수 공사시 출토된 사리는 朱色이라거 기록한바 육신의 사리이다.
6.25. 전에는 오대의 오대불을 모셔서 칠불보전이라 했으며 현재는 비로사나불만 모신 대적광전으로 탄허스님이 개명했다
.1970년도에 탑이 기울어 해체 복원공사를 하였는데 이 사진은 일본서 1918년 출간된 "조선고적도보" 4편에 실린 사진으로 이때도 이미 탑은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런데 6,25때의 일이라 파악하고 공사를 했으니... 2001~5년 탑 지반 작업시 하부 구조가 옛날 물이 흐르던 천으로 보래바닥의 취약점을 갖고 있다하는데.. 당시 공사감독 단국대 정영호 박사의 월정사 탑에 대한 논지에 일반인인 저로서는 많은 부분이 상반됩니다. 현재 탑계의 미학자 그릅들은 후학들로서 反하는 목소리가 없지만 모든 학자들의 여러부분 잘못들은 확실하게 바로 하는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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