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文鄕) 봉평 1》
봉평은 문향으로 조명되어야 합니다.
평창의 명가로는 봉평 원길리의. 영월 신씨 신교선님 가문입니다
가문의 선조로서 명종 때 신경진은 영월 신씨 로 부제학 신응시의 아들로 강릉 부사, 충주 관찰사, 대제학을 역임했으며 청백리에 녹선됨. (동시대 영의정까지 오른 신경진은 동명이인으로 신립 장군의 아들로 봉산 신씨이다)
원길리 신씨가문은 율곡의 문인인 신경진의 후손으로 구한말 신석우 선생의 해장집에서는 김삿갓이 20대에 과거공부에 한양으로 올랐다고 유일한 기록을 하였으며, 신석우의 자, 봉서 신범선생은 화서 이항로의 문인으로 김평욱, 유중교, 서응순 등과 교유하였다.
신범 선생이 회서 유림이기에 이후 봉평은 유학의 피난처로 많은 유림들이 몰려오고 후학들이 의병으로서 학문의 실천적 의지로 목숨을 담보로 구국의 길로 나서게 되는바 이로써 봉평은 실천적 유림으로서 문향으로 널리 알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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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선 생의 문집 <봉서 유고>는 평창에서는 유일하게 규장각에 보존되는 책입니다.
동 책에서는 주기론과 주리론에 대한 논제는 후학들의 학문이 모자랐다는 비판과 명리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학자들에게는 중요하지만, 동 책, 봉서 유고에서 봉평 역사에서 중요한 점은 판관대기와 팔석정기 입니다.
이러한 신범선생은 조정에 나가지 않은 화서학자로서. 또한 초야에 자연과 벗하며 노비들과 함께 나무하고 일하며 노비들에게도 글도 가르치며, 봉호재와 조사정을 지어 그곳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후학의 학문들에게 강론도 하였다.
봉평이 동학항쟁. 을사의병의 한 기운데 있는 점도 유림의 실천적 노력으로 이러한 화서학파의 봉평 문향에는 신범선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문향 봉평 2부에서는 을사의병시의 유림등을 조명합니다.
지금까지 평창역사에 지난해 발간된 몇 권의 역사책들 예산도 억대가 넘건만 오류와 오 논술 등으로. 평창역사를 자해하는 책으로 여기서도 추성구선생이 참모 종사란 언급뿐인데 다음 글에서는 엄밀히 밝히고. <봉평 문향>이라고 주장하는 생소한 단어에 더욱 이해를 설명합니다.
《문향 봉평2》
이어서 전 글 신범 선생 이후 봉평의 유림 문화와 역사를 필합니다.
한말 봉평의 유학자 홍재홍 선생은 상소를 올리고 1903년에 지방 유림의 태은 추성구. 황문진. 여정 김상섭 등 8인이 면암 최익현. 의암 유인석의 자문을 얻어 강수재((講修齋), 현 봉산서재를 창건하였으며 지방 유림이 매년 춘추로 제사를 봉행한다.
여기서 봉산서재의 문제를 거론 합니다.
의암 유인석의 친필로 강수재의 헌액을 쓰고 이후 봉산서재로 변경하였으며 강수재의 헌액은 이후 고창식 평창문화원장실에 있다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들에 필자의 율곡 세미나시 만난 적있는 군 학예사 에게 문의 하였더니 잘 포장하여 보관한다 합니다.
평창인들은 그 가치를 몰라도 역시 학예사는 유인석의 친필이란 점에 문화재 등재만 하여도 바로 지방 문화재가 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는 듯 합니다. 문화재가 된다면 외지 박물관으로 셋방살이 보내야 하나요. 이 점은 다음 봉평 문화의 미래비전에서 피력합니다.
봉산서재는 율곡 이이 선생과 화서 이항로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나란히 놓이지 못하고 곡각으로 놓여있어 평등에도위배되는 참으로 부자연스런 모습이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발생한 문제로 의암 선생은 봉평의 태은 선생에게 1906년 편지에서 판관대가 아직 빈 집으로 있다하니 그곳엔 율곡 이이 선생의 사당을 차리고 봉산 서재는 화서학파의 화서 이항로. 성재 김평묵. 중암 유중교의 위패를 모시기에도 한 동리에 두개의 사당이란 점에서 이이와 화서 두 분을 모시는데 그럼 이이의 방계로 경림의 후손분 이학사가 싫어할 것이기에 곡각으로 놓인 점입니다. 평등치 못한 점의 해소는 판관대론 에서 언급하겠습니다.
봉산서재의 통문은 진부에서 발견 되어 현재 율곡 박물관에서 보존 합니다만 강수계는 아마도 계 납입 장부 3귄이 금곡의 화서 박물관에 있는듯 합니다.
당시 한말 여러 의진들은 한 곳의 주둔지가 아니라 일제의 감시를 피해 소규모 단위로 영서 산간 마을을 이동하였기에 창의문 격문등은 당시로서 보관장소가 마땅치 않아 이항로 선생의 유택에 보관하였던 듯하며
다음 글은 지난글 봉평 문향의 을사의병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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