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에 양녕과 효령대군이》
월정사 불사에 양녕 효령대군이 불사공양으로 소원을 빌다.
양녕대군은 세종(충녕대군)의 형이고 효령대군은 동생이다.
아래 사진에 암막새 기와에 두 형제 이름이 나란히 써져있다.
이 기와는 2003년 월정사 석조보살상 주변 지층 공사시 발견되어 문화재청을 거쳐 월정사로 반환되어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요즘 우리는 산사에 가면 중창공사의 기와에다 자신의 이름을 써서 소원을 비는데. 역사적으로는 양녕과 효령대군이 기와불사에 원조이다. 두 대군 모두 오대산의 정기를 듬뿍 다아갔겠지?
아마 형제 중 중간의 세종이 빠진것은 세종이 왕일때 사찰 건립의 불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현재 세종때 불사 기록은 없다)
상원사 사자암는 이성계가 지으라. 하고 다녀갔고. 다음해 이방원도 낙성식에 다녀가며 원찰로 삼았고. 우리가 잘 아는 세조도 상원사에서 요양을 했다.
우선. 이야기는 세조가 목욕시 문수동자가 등을 밀어 병을 낳게했다는 이야기는 아름답게 꾸민것으로 실상 세종과 세조는 당뇨병으로 세종은 당시에는 영문도 모르는 병을 치유하고자 수안보까지 가면서 당시 학자들은 수레바뀌에 장치를 하여 수안보까지 회전수를 세었더니 150여리 길로 지금과도 거의 비슷한 거리였다 한다.
그럼 다코미터도 우리나라가 최초로 발명한 것 아닌감?
세종은 말년에 집현전에서 등잔아래 혼자 한글 연구를 하는데 문이 삐걱 소리를 내고 열리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신)숙주가 왔는가 하고 알아챘다고 기록하고도 있다. 상당이 심한 중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것은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다.
세종은 육식을 좋아했다 한다. 그래서 태종 방원은 말년에 걱정거리는 내가 죽으면 국조오례의의 궁중 예법에 따라 국상기간(삼년상)에 고기를 금하고 왕족의 혼인도 금지된다. 따라서 아들 세종은 고기를 못먹으면 힘을 못 쓸텐데 큰일이 이만저만...생각다 못해 국법을 바꾸어 국상중에도 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법을 뜯어 고쳐 주고 죽었다.
또한. 세조는 말년에 등에 종창이 나고. 하는 기록으로 볼때 그것은 면역저하로 당뇨라는 점으로 문수동자가 등을 밀어주어도 낳을 수는 없는데.그러면 문수동자는 세존의 화신인데 이야기가 싱겁게 되기에 문수동자가 병을 고쳐주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세조도 석가 세존이 났게 하였다는 특별성을 갖기도 한다.
설화들은 필요성의 미화를 가져야 하는 것이고.어디에도 당뇨이야기는 전혀 없는 필자의 이야기이다
저의 글은 길어서 인기가 없지만..
조금만 더하면 윌정사는 조선 왕들이 찾아 오는 등 그럼 월정사의 위상은 무엇인가?
우리나라 민족의 사상성은 불교. 제자백가 중의 음양오행설과 주자학의 유교와 도가사상과 풍수설이 우리 민족 사상과 문화의 바탕으로 그 정체성을 가진다 하겠다.
여기서 오대산 불교권에는 도가적 사상도 결부되지만 불교와 풍수가 그 바탕으로 오대산 불교권은 모든 백성들이 오대산 문수신앙을 제일의 공양으로 섬기며. 고려 중기때에서 조선조에 오대산은 전국적 위상을 가지기에 우리 문화에 정체성을 도출되는 원류의 불교였다는 점 입니다.
필자는 무교로서 이러한 저의 이야기는 불교 예찬은 아니라 우리의 역사 관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저의 이야기. 즉 오대산은귄 불교는 우리 민족문화에 모태가 되는 정체성을 발현한 곳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장으로 하겠습니다.
저의 글은 다음 장날에는 파리 날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
하나. 더
엇그제는 감지금니 묘법 연화경이라는 불경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그런데 출처가 없었다.
우리나라 국보가 330개정도에서 100개 늘어나며 불경들이 과반수가 차지한다.
그런데 감지금니 즉 검은 종이에 금분으로 그린 화첩이라... 지금 보아도 멋이 날텐데 이는 당장 국보감이다.
월정사에는 1915년 다다시가 찍은 사진에는 있는데 현재는 없기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 이번 필자의 평창역사서 오대산 편에서는 분실됐지만 국보감이라 기록했는데 이게 발견되었구나.
야 ~ 그럼 강원도 국보 12개 중에 오대산이 6개인데 일곱개가 되는 것이다. 이 출처를 월정사 불경책이라고 알려쥐아지하고 얼릉 사무실에 달려가서 확인하니 월정사 분실 불경책은 감지금니 대 다라니경이고 발견된 책은 감지금니 묘법 연화경이다.
다라니경은 신라시대이고 묘법연화경은 후기인 고려 불경으로 월정사 탑에서도 출토되었다.
현 사학계 원로 한사람의 윌정사에가 묘법과 다라니경 구분도 못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역사라고는무엇을 조명할까?
탑에 대해서는 세 분의 박사가 똥박사인지?
본인은 학자도 아니지만 내 고향 윌정사를 구기는 논문들은 못 참습니다. 탑도 구층이 아닌 13층 탑이었다는 점을 증명할 것입니다
사실은 요즘 9층 석조탑을 공사중이라 실측하기 좋은 기회인데 이러한 취지를 전해주어 탑을 한 시간 재어보는 이야기를 월정사측에 전해줄 분은 안 계신지요?
.
위 사진의 교체 옥개석 4개중 9층 옥개석으로 사각 구멍은. 상륭부 구륜 청동 장식의 찰주를 꼽는 찰주공이다.
한쪽 모서리가 가라지고 있었다 아마 후일에는 상륜부가 부서지는 전초이다
필자는 예전 글에서 이러한 문제로 원래 13층 탑이 고려시대에 부서져 9층 탑으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윌정사의 총체적 문제는 논문으로 할것입니다.
한쪽 모서리가 가라지고 있었다 아마 후일에는 상륜부가 부서지는 전초이다
필자는 예전 글에서 이러한 문제로 원래 13층 탑이 고려시대에 부서져 9층 탑으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윌정사의 총체적 문제는 논문으로 할것입니다.
'패이스 북에서 평창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핑씨! 밤새 안녕하십니까?? (2) | 2023.10.26 |
---|---|
< 이성마저도 저버린 X자석들.... 네들도 인간이냐??> (0) | 2023.08.16 |
좌파의 반성문 (0) | 2023.08.14 |
《러시아가 내전으로 간다고??》 (0) | 2023.06.24 |
《동강의 황새여울에서/뗏목 》 (0) | 2023.06.16 |
오대산 적멸보궁의 비는 법신사리이다 (0) | 2023.06.11 |
《한번 쯤 가보고 싶은 휴양지 티니안 섬》 (2) | 2023.06.06 |
《오대산에 이야기들 중..》 (2) | 2023.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