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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문학인대회를 생각한다.
- 글쓴이: 엄기종
- 조회수 : 14
- 07.09.18 07:41
제9회효석문화제의 가산 이효석선생탄생 100주년 기념 2007봉평문학인대회가 2007년 9월 8일 오후
2시에 가산문학심포지엄을 시작으로 이효석문학관에서 있었다. 모처럼 그 심포지엄에 참석하였더니
평창의 문인들은 보이지 않고 알지 못하는 젊은 분들이 40여명 모여서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가운데
선생님 작품에 대한 친일 여부를 논하는 걸 보고 너무도 놀랐다.
이효석선생님을 기리고 선생님의 문학과 지역의 문화가 한데 어울려 축하하는 축제의 심장인 이효석
문학관에서 몹시 불경스럽게 느껴지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어 효석문화제의 문학행사의 의도
가 염려스러웠다.
가산 선생님이 이 심포지엄을 들으셨다면 벌떡 잠에서 깨셨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불손스런 일이 벌
어지는지 이 축제를 그토록 어렵게 일구셨던 박동락 선생님은 무덤 속에서 무엇이라 꾸짖으실가.
이효석선생님의 명성과 그 작품의 혼으로 지역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ISO
9001품질경영시스템인증을 획득하여 평창효석문화제가 명품축제로 국제인증을 받은 이 영광을 우리
는 자랑하고 있다.
이 영광을 축하하고 더욱 발전되는 축제로 나아가야할 문학행사에서 주제발표에 따른 지정토론자의
질문에 선생님의 작품인 일본어로 쓴 ‘녹색탑’에서 이국인간의 결혼을 소제로 한 소설 내용이 조선총
독부의 내선일체실행에 동조했느냐 여부에 대한 발언이 있었으며, 나라 없던 아픈 과거를 왜 이 시점
에서 끄잡아내 친일이냐 아니냐를 논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할 일이다.
작금의 빈번한 국제결혼을 접하면서 ‘반미는 어떠냐, 친미는 어떠냐’ 갈라서서 세계적인 대흐름에 부
응하여 세계를 나를 수 있을까.
이 축제가 우리군의 예산이 지원되고 축제가 성공적으로 발전하기를 염려하는 각처의 지원금으로 이
룩한 봉평면 나아가 평창군의 장인데 어째서 우리의 장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심포지엄이란 여러 각도의 논제를 다루고 토론하는 장임은 이해를 하나 그 주제를 축제 분위
기와 지역이 나아가고자하는 방향으로 진행하여야 함은 자명한 일이다. 혹여나 가산 선생님의 치부를
흠하고자하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문화제에 연관된 문학인의 밤이나 이어지는 행사에도 축
제가 의도했던 이효석선생님의 문학 선양의 목적과 괴리되는 일은 없었는지 재고해 보아야할 일이고,
장차 재발되지 않도록 방지책이 마련되어야하는 마음이다. -嚴基宗
저는 종교인은 아닙니다만, 사랑이란??
좋습니다... 어느 분인지 저와 양식의 논쟁 한판 붙었으면 합니다.
마치 초의와 벽파, 추사의 조사선 논쟁이아, 루카치의 표현주의 논쟁 같은....
평창을 해하려 한다면 그것은 고향을 잃은 자입니다. 고향을 잃은 자는 자신을 버린 자 이기도 합니다....
언제든지 논쟁이란 발전적 계기이겠지요, 가산 선생에 대한 논쟁이라면 한번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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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고 있
는 이효석은 진부면 출생이고 아버지 이시후씨는 진부면에 근무하다 서울에 교편을 잡아서 수송동쯤으로 이사 왔다가 2년 만에 진부면장에 취임하셔서 다시 평창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이때 봉평면 창리에 집을 장만하셨고 계모와 살으시며 이효석은 평창읍에 하숙하며 평창
초등학교에 다니게 됩니다.
아버지가 진부면장이면서 봉평에 집을 마련하였으면 주말만 집에 다녀갔슬 까??
이 봉평에서 진부면까지는 50여 리길 일 텐데...
그래서 이효석은 실은 평창에 하숙하기 이전 2년만 봉평에 의붓어머니 밑에서 자랐던 것 밖에는...
그럼 이효석 선배님이 봉평을 위해 무얼 했슬까요??
가산 선생께선 평창읍에 초등시절 6년보다 작은 ,그것도 유년시절 2년의 봉평생활을 ....
그것을 마치 봉평에서 무언가 했던것처럼 크게 이용하며 논리모순의 의견만....
가산 선생께서 일제에 내선동조하였다면 그가 다닌 모교 평창초교보다 그를 이용하는 봉평에서
먼저 배격해야 되지 않는가??
이 후세백작은 가산 선생님의 초교 먼 후배로서 봉평 가산 문학관에서 세미나에 "내선동조"라는
논란의 의견으로 가산선생의 모교인 평창초교에 가산동산 건립문제에 쐐기를 박았지만
그럼 봉평은 선배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돌아서서는 메밀국수 한 그릇 팔아먹으며 가산선생님의
문학까지 이용해 먹는 그러한 작태는 눈 뜨고 볼 수 없사와 봉평은 양심과 이성이 있으면
장터거리에서 가산 선생님을 팔지 마시길 바랍니다.
봉평은 가산 선생의 험구로 그의 모교 평창초교에 동상지원을 끊었다면 그와 아울러 봉평은
메밀꽃 필무렵의 가산 선생의 모든 이용을 금해야 정상이고 옳은 일이다. 그러기에 봉평은
가산선생의 이야기를 모두 뿌리뽑아 던져야 상식으로 납득이 되는 것이다.
가산 선생의 모교인 평창초교에 동상제막 지원금은 끊었으나 봉평의 페스티발엔 가산 선생을
계속 팔아 이용하고 있기에 이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때거리가 아쉬워 아시워 이율배반적
모순속에 비겁하게 양심을 팔아먹는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하시라도 격론할 사람 있으면 아래에 댓글을 다시오.
09.02.1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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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습니까??
만약 그대는 이 평창을 위함이 무엇이였고 무엇을 위함인지 말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