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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에 대한 나의 이해

정암사 수마노 탑의 감상

 

 

 

 

 

                                                                             2013: 05:15 22:41    후세백작

 오랜만 입니다.
정암사의 수마노석탑 사진들중 제일 잘 볼수 있는 사진 잘 감상합니다.
수마노탑이라는 뜻은 수마노보석으로 우리나라엔 없고 중국의 곤륜산 어디엔가 있슬듯 한 돌로 이를 당시

중국에서 배로 날라서 전탑을 새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태백산을 오르고 정선까지 운송하자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을텐데 .... .

이 사진들을 보니 .... 일전에 나의 생각을 다시금 추리해 볼 수 있습니다.


 주변에 화강석이 널려있는 강원도에서 그다지 특색이 있지않은 마노석이란 돌을 중국서 들여자면 비용

문제는 사찰의 신도들의 시주와 직결될텐데 과연 정암사는 이 부분을 충당할 수 는 규모의 사찰이었

하는 의문도...

정선군 사북면 고한에 위치한 정암사는 그간 교통도 힘들고 탄광들이 폐광되며 지역경제도 좀 침체되는등

이곳에 위치한 정암사는 아마 전국적인 신도들은 그래 많치 않을거란 생각도..

 

 정암사는 천년 고찰일지라도 우리 시민들에겐 유흥준의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책에서 자장율사가 석가니의

화신인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서 태백산 갈반지 처란 곳에서 기다리는 내용이 소개되어 정암사널리

알려진것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100여리 근방의 임계 대리석같은 돌의 산지를 찾아 원석이 작은 돌들을 운반도 쉽고 도가 화강암보다

무른 탓에 연마도 쉬워 벽돌식 쌓아올리기의 전각탑을 만들기에 그 비용이 히려 작게 들었슬 것이다.
이 돌들은 대리석보다 좀 약한 방활석의 정선군 임계 대리석인듯한 나의 생각을 한층 더 굳게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석탑의 옥개석은 5층인데 비해 이 전각탑은 7층을 쌓아 각 층의 옥개석을 볼때 지루한 감이 있지만

탑신 전체적 비례의 균형을 맞추고자 함 인듯 하다.

그리고 이탑은 전탑으로 특색은 배 불뚝이 형태로 형태로 위로 올라가면서 급격히 감소되어 지는데 그래도

전체적인 균형의 안정적 미를 살리고 있다.


여기서 급격히 감소란 제작자의 고민이 스며있다.
산술적인 자동기술적 감소는 수치대로 만들면 되지만 급격한 감소의 마무리란 자칫 촌스럽게 현될 수있어

어떠한 비율로 할 것인가는 제작자의 손맛에 따른 것이다.

 

이 탑에선 통일신라 3층석탑의 장중미와 저돌적 인상의 감은사탑의 위상을 찾아볼수는 없지만, 또한 월정

팔각구층석탑의 섬세하고 수려함을 맛볼 수도 없지만 그래도 크기의 규모가 적지않역작의 훈훈한 맛

보여주며 불자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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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생명선]

여기서 몇년전 "월정사 중창의 허실"이란 문화사적 글에서 팔각석탑의 미학과 석탑의 멋의 비밀에 대한 나

생각을 쓴다는게 아직 정리하지 못하였는데...
우리나라 모든 석탑들의 통일된 숨은 규칙하나는 각층의 옥개석과 받침의 탑신의 거리 비율이
정한 방식

아마 공식을 발견할 수도 있다.

 

 모든 탑들이  옥개석 상층의 전각의 면 귀의 점들을 이어보면 임의의 직선임을 알 수있다.
여기서 이 직선에 도달하지 못하는 전각의 귀가 있는 탑들은 하나도 업지만 만약 도달하지 못하는 면귀의

층이 있다면 그 탑은 불안정적으로 흉물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러면 하나의 탑을 만들때 도면작업에 첫번째는 탑의 크기에 맞는 사선을 긋고 이를 중심으로 각탑신

전각면 귀의 꼭지점을 이 이 임의의 사선에다가 잇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탑들은 그 임의의 사선의 값이 대략 경사 10도 내에서 그 값이 모두들 틀린 값을 지니있다.
그래서 탑의 제작 도안에는 첫번째가 이 사선을 긋고 각 층마다 꼭지점을 사선에 찍고 또한 그 꼭
간의

거리에서 일정비율로 탑신과 옥개석을 분할하여 도면을 만드는 것이 손 쉬운 방식이다.


 각 옥개석간의 거리 공식엔 그 속에 탑신가의 거리의 복합적 계산방식을 수학적 공식으로 나타낼 있슬까는

 미지수이지만 아마 모든 석공들은 위에서 말한대로 꺼꾸로 사선 하나를 긋고 탑을 만드는 듯 하다.

이 전각 면귀의 임의의 사선의 직선이 모든 탑의 비밀의 함수인 것이다. 이 사선의 각도에 따라 탑의 이미지를

표출할수 있는 것임을 확언하며 만약 내가 박사과정의 역사라면 이 사선의 값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고

싶고 앞으로 나로서는 숨쉬는 그날까지 시간나는데로 사선으로 우리나라 모든 석탑을 비교 연구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앞으로 노년에 시간나는데로 추구하고 싶은 일련의 평창아라리의 이론적 형성과 또한 꿈에대한

나의 이해적 생각과 한국 석탑의 분석적 이해 입니다.


위 전각탑의 벽돌식 쌓아 올리기로 인해서 탑의 숨은 비밀의 미학인 "임의의 사선"이 직선이 않되고

궁(弓)의 안쪽으로 휜 곡선으로 되어있다.

 이 점이 세련되지 못하는 탑의 미를 나타내며 오히려 그런것이 또다른 정감의 맛을 자아내고 있다.

 

                                                        ------------ 이상  <" 도리천"의 문화유산 답사>의 사진을 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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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탑의 생명선이란 나의 주장이론은 탑파 이해에 참으로 중요한 설명이론이다.

이 논리를 바탕으로 월정사 8각9층 석탑이 원래는 13층 석탑이었슴을 밝힌다.

나의 블로그 카테고리 월정사편에는 70년대에 국보 48호인 월정사 8각9층 석탑의 해체 복원시 감독관인 

정양호 교원대 명예교수의 해체당시의 리포드가 스크랩 되어 있다.

또 하나는 1918년 이능화 선사가 쓰고 육당 최남선이 감수한 "조선불교통사"중 석가사리가 10곳에 나누에

보관되는 절의 이름이 스크랩 되어있다.

 

 여기서 이능화 선사는 월정사 8각 13층 석탑이라 하였고, 정양호 선생은 월정사 리포트에서 신라때 월정

중창의 기록에13층 석탑이란  기단까지 층수로 셈할수있는 오류라고 지적하고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이능화 선사의 조선불교통람에서도 13층 분명 13층 탑이라 기술되어 있다.

 

  누구의 주장이 옳을까??

이를 나의 주장 탑의 생명선으로 보는 이해의 13층 월정사탑의 시물레이션을 보면 이해가 가게 될것이다.

또한 정양호 선생은 다층 다각의 탑은 고구려로 상한선을 잡지만 중국의 르네상스 시기인 송나라 선진문화의

차입이고, 이를 예술이란 무엇이고 이즘(ism)이란 어떤 개념인가 이해로 보는 월정사 팔각13층 석탑의 이해의

글을 완벽하게 쓰고 있습니다.

나는 신자도 역사가도 아니지만 두고온 고향 평창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글은 앞으로 학계의 승인과 문화재청의 국보 48호 월정사 8각9층 석탑의  설명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어는 개인의 블로그에서 취미활동으로 국보까지도 그 재원이 수정되길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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