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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에 대한 나의 이해

월정사에 붙이는 나의 글

월정사 8각9층탑의 원형의 복원은 ??
 

                                                                                      글쓴이 ; 후세백작 작성일 : 13-06-03 13:46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국보 48호 월정사 8각9층탑이 역사적 문헌에 13층 탑이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동 탑의 제반

문제로 보는 이해로 원형이 13층 탑일 가능성을 유추 해석하고 있습니다.

 

월정사탑이 처음 제작시는 9층이 아닌 13층 탑이었다는 기록들과 '70년에 동 탑의 해체, 보수 감독관이신

정양호(교원대 명예교수)선생이 논리에도 맞지않게 일축한 이후는 9층탑으로만 여겨 왔습니다.

 

이에 월정사 탑이 9층탑으로는 탑파의 전통양식에 맞는 제작원리에 미달되는 점을 파악하여 현 9층탑과

가상의 13층탑의 이미지를 통하여 보는 것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도 하며 또한 이와 아울러 모든 탑파의

임의의 생명선으로 보는 월정사탑의 문제와 그 이해를 주장합니다.


아마 저의 글이 완성되면 국보 48호 월정사 8각9층 석탑의 원형은 8각13층 석탑이란 학계의 검증도 필요

듯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월정사탑의 모든 사진은 위로 찍었기에 9층 옥개석 위의 면과 상륜부 받침인 노반의 밑면의

접합부위가 얼만큼 오차값인가 하는 정확도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문화재라 만져보기는 어렵지만 저의 이 연구를 위해 월정사 경내에 1톤 크레인이라도 진입하여 9층

옥개석 위의 수평적인 사진이라도 정확히 찍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한 70년 동탑을 해체, 보수시 홍사준씨(전, 부여 국립박물관장)이 탑의 실측을 하였다는데 그 기록이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지, 혹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저의 이 노력은 월정사탑의 처음 제작시의 석공스님들의 노력으로 이형도 아닌 우리양식의 우리나라

최고의 걸작 탑을 건립하고도 지금은 이형(異型)이니 북방계니 하며 더 이상의 찬미도 없이 홀대받고

있습니다.

저는 제작당시의 역사적 배경으로 신라말 귀족적 교종에서 고려초 의천의 호국불교는 보조국사 지눌에

의한 선 사상의 전국적,지방 호족적 의미가 부여되는 점과 월정사탑의 상륜부는 상당한 역사적 이해를

하여야 하나 위 정양호 선생은 금속공예적인 수법이라고만 일축 하였다.

 

그러나 그 철재장식은 송나라의 주철의 철기문화의 꽃이었다는 이해로 장엄하고 화려하며 스케일도

장대한 이 월정사탑에 최고의 미학적 이해의 글을 쓰고져 합니다.

우리나라 탑파문화의 결실인 월정사 탑의 미학적 찬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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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탑이 13층 탑일 경우는 지금 9층 옥개석위에 노반의 아랫부위를 올려 놓았는데 이 탑의 체감의 기울기

값 7도이니 9층 탑신에서 노반도 7도 기울기 값으로 따져서 닿는 면적의 값이 나오는데 현 사진들로는 이

값이 모자라는듯 합니다.

그러기에 이 탑의 실측이 중요하나 그러지 못할 경우엔 9층 옥개석과 수평에서 투시의 경사값이나 피사체의

휨없이 찍은 사진이라도 필요한 것입니다.

이해 되시면 저의 이 사진한장 찍기위해 월정사 경내에 크레인 한번 들어가록 허락 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또한 앞으로 저의 글이 완성되면 그 내용을 게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역사에 월정사 탑을 국보로 지정하고도 북방이니 이방이니 하며 더 이상의 수식어들이 없기에

동탑에 대한 시대사적, 종교적 이해와 미학의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것 또한 나의 두고온 고향, 평창사랑인 것입니다.


기다려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