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시민 체육공원을 지나며...
새뜻한 봄날의 아침, 자덩거로 10km를 달려 출근한다.
자가용으로 출근하나 자전거로 통근하는데는 시간적으로 신호 대기등으로 다 따지면 10분 차이가 난다.
그러나, 자전거가 가는 길에는 빨간 불이 없고, 딱지를 끊는 새총도 없다.
그뿐인가, 우리가 살아가는데 어디든, 어떻케든 따라붙는 그넘의 세금도 없다.
자동차는 휘발유를 돈주고 사서 넣어야 달리지만, 자전거는 휘발유대신 물로 간다.
그래서, 자전거엔 물병 걸이가 있다. 거기다가 빵 한 쪼가리 더 얹으면 2-30Km 더 갈 수 있는 것이다.
아침부터 자동차는 클락숀 소리에 잘못한다고 보복운전도 유행이라 하는데..
난 자전거 10년 타면서 싸우는 것은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자전거는 서로 의기 소통이 잘되는 양반들이 타는 모양이다.
자전거로 출근함에는 운동과 시원하고 아름다운 꽃길로 출근함이 경쾌하기만 하다.
모란도 잎보단 꽃이 먼저 피듯, 모든 꽃들은 저마다 이쁘다고 봄철을 시샘하는데 꽃 됴코, 향 조으니,,,
세상에 제일은 꽃밭에 노는 것, 그뿐인가 하노라.
옛날에 한양 상경할제 완행버스가 달달거리며 반나절이 지나도 한양은 커녕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어느 시골동네를 굽 도는데.
아스라한 기억속의 촌동네,,,그곳이 와부읍 덕소리...이젠 나의 고향이 되어 버린 곳이다.
한강중 가장 절경을 이루는 호반의 파라다이스 덕소이다.
德沼란 한강의 큰 소를 이루었는데 아마, 태풍의 이름 붙이듯이, 이를 상쇄시키려는 노력으로 德자의 부드러운 뜻의 반어적인
단어를 사용한 듯하다..
500m 넘게 오르막인 이곳을 자전거 타고 넘는 친구들은 10%도 않된다.
여기가 자전거의 진수를 가르는 등용문인즉, 나도 이젠 여기만 오면 늙어감을 실감한다.
지난해도 악바리처럼 타고 넘었는데, 잔차를 도난당하고 올해 새로 구입했는데, 이젠 끌고 넘는다.
아마 두,서너장 돈좀 더 써서 자덩거가 2Kg쯤 가벼웠으면 넘어갈 수 있슬텐데 하는 마음속 핑계만이..
(싸이클이 대략 백만원 더 비싸면 자전거는 무게가 1kg 더 가벼워 진다. 어느 한계까지)
팅구덜,,, 나보다 더 늙은것 맞제,, 이마에 주름을 도 서너개씩 달구,,,긋도 조각칼로 긁은 것처럼..
그래...손주 아덜이 이번 어버이날 지팡이라도 선물하면 그저 그려러니..고맙게 받거레이. 나보다 더 동안 있으면 나와 보레이,,,
그래두 말이다. 이넘, 하이칼라에 양복 포킷 찍어 올리면 청춘에 40대라...
그런데 이 좀만한 고개가 날 망신스럽게 하는군.이 고개에 다다르면 꼭 귓전엔 " 귀하는 늙었습니다. 잔차를 끌고 올라가시는 편이 건강상 더 유효합니다""라고 말하는듯,,
" 그래 임마" "" 고개 넘다 종아리 근육이 쥐가 나는 바람에, 근육통인지 아직도 절룩거리며 걷지만...4월엔 잔차를 400km밖에 달리지 못했지만,, 한달에 1,000km씩 운동을 해설라문에 가을까지 5,000km를 타고서 알통 좀 맹글어서 보자, 요런 고개 하나 넘는걸 가지구..
뭐 아직 늙었슬라고,,, 마음은 청춘인데..
욕심이야 태산을 짋어지고 싶다만야 부귀영화는 제 팔자가 아닌듯 하건만, 그저 운동이나 열셈히 해서 건강한게 바램이라,,,
고개 길을 넘는데 꽃으로 단장한, 죽어서도 화사한 이 묘는 누구의 묘이라??
이는 600여년 전 방원, 태종과 세종시절에 장원급제로 정계에 입문한 울 나라에 몇 손가락에 꼽히는 유능한 정치인 조 말생의 묘이다.
600여년 후에도 후손이 이렇게 아름답게 가꾸는 선비들의 묘가 몇개 있겠지만 죽어서도 유능한 듯.
철쭉이 윗 사진엔 빨간색만,, 3~4일 뒤엔 꽃도 쉬었는지 하얀색 꽃도,
명당처럼 보이는듯한 이 묘에, 지관 흉내 한번 내 볼꺼나??
이 묘는 미움나루 곶 한쪽의 겸혈인듯 듯한데, 시조산은 저 멀리 천마산이라야 좋을까??
향은 동남향이라, 밤새도록 달려 내려온 용이 한강어귀 미움나루 곶에서 멈추고 승천하려는 형상이다. 용의 모든 것을 다 놓고가는 자리인데, 이 세상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전순은 아취형으로 아름답게 화사한 꽃으로 떨어지는데, 꽃보다 더 미인은 없슬 듯. 그런데 입수의 조종산은 그 과혈의
용이 좀 약하게 날라오는듯 하지만 대 명당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죽어서도 5백년, 맑은 태양과 아름다운 꽃밭의 영화를
누리는 묘이로다.
더구나, 그는 영의정 출신인데, 위 사진으로 보면 그의 묘앞에는 문인석인지 아마 무인석 하나가 조각되있다.
이것은 예법상 이치에도 맞지않는,,, 왕이나 문, 무인석을 하는 "국조오례의"의 왕의 예법을 무시하는 듯, 임금도 아닌
사람이 아래에 무인석이라..임금 흉내낸다고 죽어서도 또 한번 귀양가고 싶은 듯하다.
조말생은 태종때 문인으로 장원급제하고 세종의 스승으로 일인지하의 영의정 자리까지 오르는데엔 능력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재산을 모으는 이재의 능력도 겸비하여 부자였다고 한다.
내물을 너무 심하게 받았으니 즉 교수형감에 처해야 하나, 세종은 그의 능력을 보고서 형을 감하여 귀양보내니 당시
선비들의 항소가 빗발쳤다고 한다.
그러지만 그의 역량을 잘 아는 세종은 노년에 그를 다시 불러 조정일을 다시 맏겼다 한다.
내물은 요즘뿐만이 아니라 옛날에도 병적인듯, 글쎄 공주갑부 김갑순이는 아전출신으로 이완용에게 당시 돈 천원을 주고
강원도 고성군수로 나가니 지방 향리들은 상놈이 군수가 되었다고 돌아앉다가 불려나와 곤봉으로 쳐사 그 땅을 빼앗아
부자가 되었다는,,,소원을 넙죽 받으며 현금과 현물 안 조아할 사람 하나도 없지...
오백년전 조선사회도 내물이 얼마나 만연되었는지 조말생은 교수형감이란 극형의 이야기도...
요즘도, 교수형의 단두대의 이슬로 보낸다면, 겁먹은 정치인들 깨끗해 지는것 아닐까??
그리고 이왕 할려면 조말생처럼 정치적 능력을 겸비해 왕이 내물보다 그의 정치적 역량을 더 아까워 했듯,,,
조말생, 그는 요즘 정치인들의 모델감이라... 국가를 위해서 이런 정치인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도...
요즘 정치인들도 조말생의 정치역량을 따락ㅆ으면 하는 바램이며 혹, 정치인들이 모를까 한마디 하고 갑니다.
갈때 가더라도 빵에는 가지를 않는 것이 더 좋고, 할때엔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가 보이는 정치를 국민은 바래는 것이다.
\\\\(퇴근길에..)\\\\\\\\\\\\\\\\\\
마을에 다다랐슬땐 하루살이 태양도 한낮에 실컸 놀았는지 황혼으로 사라지려는데...
저 멀리 인수봉이,,
위 석양에 사진들 중엔 태양이 사진에 걸리고 않 걸리고는 시간의 차이가 아니라 , 모드을 변경해서 찍은 것도 아닌 ,,,
이 사진들은 동일한 시간들에 디카를 숙이고, 눞히는 장난으로 각 사진이 항혼이 지는 시간차의 사진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건강상에 아무 지장은 없으나 따라하진 마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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