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에게 보내는 나의 답
후세백작 2017.06.19 21:59
나의 친구들은 모일때마다 술 한잔이면 삼국지 이야기를 한다. 벌써 2~3년내 다섯번째이다.
이번 만남에서도 술이 거나해지니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친구는 삼국지 이야기에 벙어리가 되어 무시당할까봐 삼국지 비디오랑 책을 대여섯번 독파했다 한다.
충분히 그의 독서량을 인정한다.
그는 지난번 만남에 나의 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비유적으로 말했더니 그 친구왈,,
그리스가 페르시아 전쟁에 승리하고 이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패권주의 전쟁에 스파르타가 승리하는
요점과 스파르타는 중심 사상에 지혜의 결여로 아테네가 패권전투인 펠로폰네소스 전투에서 지면서도
그리스 문화의꽃이란 점까지 정확하게 독파하는 독서광이라기보다는 문화인이다.
이러한 그가 친구덜의 얄랑한 이야기에 질까봐 80번 비디오를 봤다던가??
물론 삼국지는 영웅호걸의 이야기로 삼국지 세번 읽은 사람의 화술에는 간특함이 있어 따라잡기 어렵다.
그런데 친구들의 삼국지 대화는 기억력의 확인인듯 일방적으로 단조로운 화법뿐이란 점이다.
평창출신 역사작가 황원갑님의 말을 빌면,,,
삼국지에 가장 존경의 대상자는 제갈량이지만 그는 유비가 죽을때까지 군권을 잡지도 못한 실력이다.
제갈량이 위나라 사마의(司馬懿)를 몇 차례나 죽을 고비에 빠뜨리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멀다.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한 유비에게 제시했다는 천하삼분지계도 '삼국지'에서 무능한 인물로 묘사된
오나라의 노숙이 손권에게 제시한 계책이었다.
또한 유비는 친아들 유선의 왕위계승을 위해 양아들 유봉을 죽이고 처자식을 언제든지 갈아입을 수 있는
의복에 비유하는등 유비는 인내심이 깊고 너그러운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길래 삼국지엔 존경할만한
인물이 없다.
삼국지의 삼국인 위, 촉, 오나라는 43년, 46, 59년의 역사들을 가집니다.
삼국지의 주인공들을 명장이고 미래비젼이 있었다면 이러한 단명 국가였슬까 의문이 된다. 그러길래
삼국지는 대망의 야망도 아닌 권모술수로 기회주의자를의 이야기인 것이다.
어이,, 친그덜...
삼국지에 나오는 명장들은 약육강식의 힘센자의 논리로 아프리카 평원의 사자들의 세계인 동물의 왕국
프로와 다름이 없다네.. 그들에겐 인화(人和)의 愛가 결여되어 있고 방법은 무시하고 오직 목적성취의
결과물만 가지기에 비젼제시가 없으며 그러기에 본받을만한 위인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삼국지의 문제를 물을때 나는 엉뚱한 답을 한 것이다.
우리의 6,25 전사엔 미국군인이 평소 듣도못한 코리아에 찾아와 전쟁의 포화속에 진정한 인간애를
나타낸 영웅들,
패튼 대전차군단의 1번 주자인 워커장군. 그는 군인정신과는 거리가 먼 마도로스 파이프가 검은 선글라스의
맥아더 인상과는 대조적인 군인의 본분인 철모를 눌러쓰고 미군의 일본 철수설이 나돌자 죽어도 한국에서
죽는다는 불독이라 불리는 워커장군과 자상한 이웃집 할아버지같은 밴플리트 장군의 한국사랑과 특히
그는 외아들도 공군으로 따라와 북한 공습에 산화하여 한국에 받치는 아픔까지 감수하며 그가 떠날때
환송식엔 수십만 인파가 눈물을 흘리는 대한민국으로선 잊을수 없는 군인이었다.
지금도 금수저 딱지 아새끼들은 방위도 안해서 지 애비 출세길을 망치는 우리네 풍토와는 전혀 다르다.
6,25에는 워커장군의 아들과 밴플리트, 클라크, 아이젠하워 장군의 아들들등 무수한 금수저들이 참전하였다.
우리의 아 새끼들은 누릴라고만 하지만 이들의 젋은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아버지의 후광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노르망디 공수 군단장의 용장으로서도 지적인 면모를 갖춘 릿지웨이 장군.
리지웨이는 지평리 전투에서 자칫 수많은 부하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지평리를 사수하라 명하고, 또한
1,4후퇴땐 서울을 그냥 내주고도 후일의 역사에선 그를 나무라지도 않으며 그의 편에 선다.
그는 양 가슴에 계급장보다 수류탄을 메고다니는등 솔선하는 명장들의 명 지휘에...
알몬드 군단장의 명령대로 지평리에서 원주로 후퇴하였다면 1,4후퇴로 서울을 내 주고서 서울 재 수복에
탈환의 실패라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를 만들었슬 수도 있다
그러나 유엔군 사령관 릿지웨이는 노르망디의 벌지전투처럼 지평리를 사수함으로서 서울 재 수복과 패전으로
몰릴 6,25 전사를 역전으로 몰고 간 것이다.
(알몬드 10군단은 워커 8군 사령관과는 이분적인 지휘체계를 이루다 릿지웨이 사령관시 10군단은 8군 사령관
아래로 지휘체게를 단일화 하였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분명 알몬드는 지평리 부대를 원주로 후퇴시켰고
10군단과 8군 사이의 지평리는 틈이 생기고 역공을 맏았다면 수원 아래로 후퇴하고 당시 금강선이 무너지면
미군은 전투를 포기한다나,,,,김일성에게 승리를 안길수도 있는 위험을,,)
그들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에 부하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지만 진정한 인류애속에 빛나는 명장들에대한
일화들은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큰 소리하지 않턴,,,
그렇다고 본인은 당시 흥남부두 피난민 10만을 구하는 인류애 정신의 알몬드 10군단장이나 인천상륙작전의
맥아더 장군의 스타일은 찬성하지 않습니다.
팽덕화이의 30만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동부전선엔 12만이 보내지는데...흥남부두에선 알몬드의 휘하의
10군단의 10만 대군이 철수한다.
무수한 군사장비와 화력을 가진 미군은 앞줄만 따바리 총을 멘 중공군의 전술에 밀려 후퇴하는 것은 찬성하지
못한다,,,만약 미군 10 만 대군이 후퇴가 아닌 흥남부두에 진을 쳤다면 중공군은 장전호에서 얼어죽었슬수도,,,
또한, 6,25전사 중 가장 치명타는 동부전선 홍천, 인제의 3. 7사단이다. 이는 알몬드 군단장의 미군과 한국군
연계 배치에 과실로 드러난다, 이러고도 종전 후 알몬드는 도미 유학장교들에게도 전술학을 강의했다 한다.
6,25 전사중 가장 최악의 전투를 한 지휘관의 교육강의라... 어떻게하면 패전과 몰락의 전사를 피하는 길을
가르치는지는 몰라도 승리도 못해본 그의 전술학 강의는 승리할 수 있는 강의일까??
또한 인찬상륙에 맞추어 서울진입에 병력을 대기 위해 교착상태이던 낙동강 전선에선 다부동 전선을 뚫고
진격한다. 그러기에 인천상륙전은 성공에 의하여 낙동강전선의 뚫는 인천상륙작전이 낙동강 전선의
탈출구는 아니다.
오히려 낙동강 전선은 맥아더에겐 무시되고 인천 상륙작전 구상에 역 이용되었다라는 생각이다.
그것은 모택동이 북한에 보낸 메세지에 예비 사단을 빼지 말라 하였지만 눈 앞의 낙동강만 건너면 적화에
한발짝 다가가는듯한 느낌에 후방의 예비대도 낙동강 전선에 투입하게 유인했슬 것이란 점이 맥아더의
전술이지 않았슬까 하는 생각이며 낙동강 전선에서는 미군의 비호를 받는 국군 1사단, 그의 군단장 밀번과
1사단을 지원하는 켈리 전차부대 (캘리는 후일 4성장군으로 주한 미 사령관 역임) 이들의 수훈에 힘입어
낙동강 전선에서 방어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밀려 데이비드 라인까지 밀리면 유엔군 지휘소들은 일본으로 철수한다
하지만 이럴경우라도 워커장군은 한국에 남아 지휘하였슬 것이다.
이런 생각이 내가 읽은 6,25 전사의 이해이고 알몬드와 맥아더, 두 장군 모두 남의 나라일에 목숨을 걸고
참전했기에 굳이 이 부분을 자세히 비난할 생각은 없다.
아마 이 6,25 전사는 책임과 미래 비젼을 위한 인류에 정신은 명장들의 한판으로 삼국지보다는 우리에게
더 가슴깊게 와 닿는 것이다.
그러기에 본인은 삼국지는 몰라도 6,25전사엔 노르망디 전투에서 갈고 닦은 명장들,,,
그외 노련한 "밀번"장군과 "게이 "미 1기갑사단장의 한국판 이야기들,,, 아마 내가 읽은 책보다 더 진하게
이야기 해 보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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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친구덜,,,
나의 블럭이 10년정도되니 이제 좀들 읽어보는 모양이로구나.
그런데 글 하나에 만자씩도 되어 흐지브지하니 1,800자로 줄구고 18자로 요약하라는데...
그럴 마음은 없다네..
언 친구가 詩처럼 요약하라던데,,,그러면 나의 글은 생명을 잃는 것이라네.
나의 글의 대부분은 우리가 옳다고 믿는 인식론에 반기를 드는 글이라 제목만 가지고 이하 해석은
읽는자의 편의의 해석이 되고 나로서는 반론이라는 타이틀만 가지는 이단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점만 이야기하라는데...
글씨요, 나의 글을 많은 사람이 읽을 필요는 없다.
누가 많이 읽던 아니면 한번도 안 들춰 썪던간에 그것으로 인하여 나의 생각과 나의 생활의 변화는 있지 않키
때문에 구지 그럴 필요도 없고 블로그에서 약장수 광고를 많이 팔면 통장에 쩐이 자꾸 들어오지만 나의 글은
그런 인기종목도 아니기에 그저 뉴스가 나를 속이고 역사가 그 역사자체의 본심을 방해한다면 본인은 그렇게
믿지 않고 답백하게 나의 생각을 통한 진실을 믿을 것이며 이로써 본인의 사유의 세상을 그려 보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나의 예를 들어본다면,,,,
일전 김삿갓 이야기로..김삿갓은 천재적 시인이라 한다. 그리고 또한 그렇게 보인다.
그러한 그가 여섯살때 조부는 사형당하고 멸문지화가 될까봐 노비네 집으로 도망가고 그곳에서 서당을 다녔고
멸족이 아닌 폐족으로 결정나자 이리저리 이사하며 영월 삼옥리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20살 되던해에 영월 향시(지방시)에 나아가 장원급제 하였다는데... 여기서 대역죄인들의 자손은 과거에
응시할 수 없다. 또한 속일수도 없지만 만약 그가 과거에 응시했다 한다면 여섯살때 할아버지가 사형당하던 일을
몰랐슬까??
당시 그의 형은 여덟살인데 형제는 그런 기억은 둔재이고 서당 공부는 천재란 말은 어패이고 영월 동헌에서
향시에 鄭가산 군수와 선천부사에 대해서는 언제 역사 공부를 하면서 김익순이 조부란 사시은 모른는 천재라고
나에게 말하는 자들이 짱구이지 그런말에 속을 내가 짱구는 아니로다.
그러기에 김삿갓의 영월 향시 장원급제 이야기는 김삿갓의 역사를 거짓으로 조롱하고 김삿갓이 조부를 탄했다고
김삿갓을 바보로 만드는 역사자체의 진실을 왜곡하는 이야기로다.
또한 이에 속는 모든 궁민을 바보로 만드는 고약스런 행위다.
이것이 나를 바보로 만드는데 당하지 않기 위해서 당 시대의 역사까지 장황스럽게 썼지만 이를 열 여덟자로
줄궤쓰면 이것에 일반적인 이해는 속는사람들의 이해이지 안 속으려는 사람의 이해가 아니기에 일 만자가
아니라 이 만자라도 새롭게 고쳐 이해하여야 할 부분은 모조리 쓰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블럭의 모든 이야기는 오류에의한 역사모독과 독자모독으로 점철되어 있다.
정선 아라리나 봉평 이효석도 월정사 탑파와 중창의 문제 모두들 나의 견해는 사뭇 다른 생각이고 "황사는
천재의 변인가 인재인가"라는 글은 어느 역사책에 단 한줄도 없는 나의 생각이고, 플라톤의 이데아 론의
오류와 키케로의 웅변은 선동이기에 시인 추방론은 서양 중세 역사 천년간의 암흑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어디에도 없는 나의 생각이다.
언젠가는 진부 수항리의 2층 옥개석만 남은 수다사지탑의 사진을 보며 보수공사시 잘못쌓아 올린 것을 마치
퀴즈맞추듯 옳은 보수공사로 다시 쌓아야 한다고 주창하엿다.
그리며 몇 삼년후 지난번에 이에 관해서 평창군이 수다사지 재 조명이란 학술세미나를 개최한 리포트
100쪽분을 찾아 보게 되었다.
그 리포트 70페이지쯤엔 현 단국대 박경식 교수의 동탑 조성양식에 관한 리포트가 있는데 동 탑이 쌍탑인가
또 어떤 이상한 점을 이야기하면서 동 탑의 보수공사의 오류는 지적하지 못했다.
그러면 결론은 그의 세미나 보고서의 레포트는 ...........
그것은 다름이 아니다.수다사지탑의 기단석엔 3장의 면석이 나란히 끼워져 있는데 이것은 탑파 양식에
위배된다. 이중 기단석이라도 기단석 아래는 면석 하나와 그 위에는 갑석 한장의 두개의 면석만 있어야
하는 것이기때문이다.
그에 쉬운 이해로 기단석의 위 아래의 마구리석 같은 현대식으로는 몰딩재로서 마구리 받침을 두개 아니면
갑석을 두개 끼우는 것은 양식적 위배이기에 석장중 한 장은 빠져야 한다.
그러기에 동 탑에 기단석 면석의 크기순서로 나란히 석 장 끼워져 있는데....
이것중엔 갑석이 아래의 기단석 면석보다 크게 되는 순으로 두장만 다시 쌓아 올려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본인인 밝힌 글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으며 동 리포트에서 무슨 오류인가는 본인이 수다사지를
다녀올때 동탑의 갑석과 면석의 아랫부분을 위로 올려 찍은 사진을 제시하며 정확한 기록을 다시 할 것이다.
이 수다사지의 탑 조성양식을 이야기한 박경식 선생의 스승은 정영호로서 70년 월정사 8각9층 석탑을
해체, 보수공사시 감독관으로 그의 리포트엔 동 8각9층 양식의 석탑은 이단형으로 북방형이고 고구려
형이란 리포트를 남긴다.
또한 당시 실측자인 홍사준 (부여박물관장 역임)도 두 사람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조선불교통사"에서
월정사 8각 13층 석탑은 바닥 기단석까지 잘못 셈하는 것이라 두 사람의 레포는튼 동일한 글을 쓰고
있는데 이는 이능화 선사가 어떤 오류든 진실이든 간에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아집에 의한 편견적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들이 역사를 이렇게 남은 잘못 헤아렸다고 단정은 오류란 점이고 이러한 글중에 어떤 한 쪽은
표절한 리포트란 점이다.
이는 본인의 주장이 아니라 두 사람의 리포트를 보면 이렇게 이해가 가는 사항이다.
정영호선생의 월정사텀은 이단형이고 북방형으로 고구려 양식이라 표현하는 오류적 해석때문에 동
월정사 탑은 홀대받고 있다.
이러한 나의 멘트은 3-4년 전인데 언제 이점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잇는 한계내에서 명확하게 규명하겠다.
월정사 8각 9층 석탑은 우리나라 1,200여기의 탑중 가장 아름다우며 또한 가장 요원한 불교관의
극치란 점의 새로운 해석을 가하겠습니다.
본인은 이러한 전문가들의 오류에도 속을 수는 없다.
그러기에 이러한 이해에 열 여덟자로 쓸 수는 없다.
그러길래 친구들의 조언은 고맙지만 나의 생각을 이해들 해 주시게...
어느 친구는 날 보고 책 많이 읽고라고 표현하더만,,,이번이도 웬만한 책은 버리고 다시 찾아 보아야 할 책만
한 책장만 남겼다. 그렇게 본인은 책을 중시하지도 못하지만 나의 글은 책에 의존이 아리라 어떠한 현상에
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는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식력의 이해에 관한 재해석이지 책을 많이 보고 학식이 풍부한 학자적 인간형은 아니란 점이다.
세상 사람들은 속는게 정상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상이 아니고
본인으로서는 다시금 해석하여 정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본인의 사유적 사색이고 이해인 것이다.
그러기에 본인은 글의 조횟수에 연연하여 18자 글로 줄그지 않을 것이며, 읽는 사람에게 읽는만큼
새로운 좌표로의 전이에 대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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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1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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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믿는 神은 "나는 존제하는 모든것의 법칙적 조화에 의해 드러나는 스피노자의 神은 믿지만,
인류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神은 믿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답니다.
여기서 스피노자의 유신론 관은,,
스피노자는 범신론자입니다.
범신론이란 '자연의 밖에 존재하는 인격적인 초월자를 인정하지 않고, 우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이며, 신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고 있는 그 자체다'라는 관점이랍니다.
고로, 스피노자는 모든것이 하나라 보며 우주는 곧 신이라 하였습니다.
인간은 초월적 대상으로 신이 아니라 바로 "神"안에 살고 있다고 말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