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기화리 쌍굴유적
GHIWARI TWO CAYE STTE, PYEONGCHANG
2014
연세대학교 박물관
연세대학교 박물관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 산1번지 쌍굴유적을 발굴조사하고 그 성과를 공개하였다.
연세대학교 박물관의 이번 학술조사는 1974년부터 제천 점말동굴 발굴조사 이래로 여섯 번째 동굴조사이다.
연세대 박물관은 동굴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구석기시대 문화와 자연환경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었을 뿐 아니라 동굴유적 조사의 체계를 마련해 오고 있다. 이번 조사는 2007년 10월부터 2008년 3월까지 학술발굴조사로, 쌍굴은 위쪽의 하늘굴과 아래쪽의 땅굴로 나뉜다.
이 동굴은 동강 최상류를 중심으로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활동하였던 사냥과 살림터로, 평창군의 구석기유적이다. 동굴 안에서는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 수십 점과 지금은 한반도에서 사라진 빙하기시대의 원숭이, 코뿔소, 사향노루, 호랑이, 곰, 산달, 고라니, 표범, 갈밭쥐, 산양, 너구리, 오소리, 물고기떼 등 다량의 동물화석이 발굴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퇴적양상과 석기 제작방식 및 분류로 보아 중기구석기(3만년 이전)와 후기구석기(2만년 전후)의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미탄면 기화리 산 1번지 쌍굴엔 적황색 토양 포함 낙반석층은 B.P. 45,000±5,000 ( 탄소측정 연대로 4만 5천년전),북벽 암갈색 토양층은 B.P. 58,000±3,000 년대값을 나타내며 이 굴은 구석기시대 찍개, 여러면석기, 뗀석기와 각종 동물 뼈인 꽃사슴, 사향노루, 고라니, 산양, 코뿔이, 표범, 호랑이, 오소리, 너구리 곰, 새, 물고기등의 20여종의 동물의 뼈가 발굴되었다.
*BP라 함은 Before Present로 탄소 반감기는 5,730년으로 약 6만년까지는 정확히 잴 수 있으며, 1950년 핵 실험으로탄소 반감기가 인위적으로 변경하였슬 수도 있기에 BP는 기준점을 1950년부터 이전으로 잡는 것이다
창리천에서본 유적모습
<기화리 쌍굴 전경>
(리포트 내의 전경사진및 위치지도)
<동물화석>
<구석기 타제석기>
<조사 전 동굴 안 모습>
Ⅲ지층(황적색 토양 포함 낙반석층) 유물 출토 모습
석기 및 굴 바깥돌
Ⅲ지층(황적색 토양 포함 나반석층) 출토 긁게 Ⅴ지층 (암갈샛 토양층) 출토 찍게
Ⅲ지층 출토 꽃사슴 아래턱뼈 Ⅲ지층 출토 코뿔이위어금니
<원숭이 발등뼈와 손등뼈> <불에 탄 뼈>
자른자국(cut marks)을 지닌 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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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유적의 위치와 환경
1. 유적의 위치 및 자연환경
평창 기화리 쌍굴유적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 산 1번지 남쪽 사면 바위절벽에 위치한다.
미탄면에서국도 42번을 따라 동쪽으로 약 3㎞ 이동하면 백운삼거리에이르게되며, 삼거리에서남쪽으로 빠지는 평창 동강로를 따라 약 3㎞ 내려오면 기화2교가 나온다. 다리를 지나 600m 더내려오는 지점도로 왼쪽의 경사가 급한 산사면에 유적이 위치한다(그림1).
이 지역의 지질 구조는 대부분 고생대의 퇴적암류인 조선누층군과 평안누층군의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부고생대(캠브리아기-오르도비스기)의 조선누층군과 상부고생대(석탄기-페름기)에 속하는 평안누층군이 부정합 경계를 보이고, 석탄기 해성층인 만항층과 금천층은 육성층으로 구성되어있는 장성층과 상위층들이 부정합으로 덮고있다(그림2).
유적주변의 암상은 조선누층군에 속하는 영월층군의 영흥층이 상위에 넓게 펼쳐져 있으며 이를 하부는 암회색 또는 담회색 석회암과 돌로마이트질 석회암이 두껍게 괴상을 이루고 있으며, 쌍굴은 영흥층 석회암지대에형성된 동굴이다.유적의 북서쪽에 위치한 평창읍 일대에는 선캠브리아기 화강 편마암층과 정선층군의정선층이 분포해 있다.
하천 주변 낮은 지대에는 신생대 4기의 퇴적층이 기반암을 부정합으로 덮고 있는데 퇴적산인 가리왕산(해발 1,561m)에서 시작되는 산릉선은 남쪽 중왕산(해발 1,376m), 청옥산(해발1,277m), 백운산(해발 883m)으로 이어지면서 높은 산지를 이룬다.창리천은 유적에서 남동쪽으로 약 4㎞ 떨어진 마하리 진탄나루에서 남한강 상류인 동강과 합류한다. 유적 동쪽 맞은편에는 재치산(해발 750m)이자리한다.
동굴의 해발 높이는 약 300m이며 현재 하천에서약 50m 높은 곳에 자리한다. 쌍굴은 입구가 두개이며 위쪽 하늘굴과 아래쪽 땅굴로 나뉜다. 동굴 아래에선 용천수가 솟아 창리천으로 흘러드는데 이로 인해 추운 겨울에도 하천이 얼지않는다.동굴은 선사인류의 중요한 생활공간 중 하나였고, 지금은 선사시대 문화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석회암동굴은 동굴 안 쌓임층이 알칼리성을 띠고 있어서, 뼈유물을 화석화하고 오랫동안 보존하는데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동굴유적에서는 많은 수의 뼈유물이 출토되며 이를 통해 과거의 기후와 동물상을 비롯하여 인류의 기원과 이동과정 그리고 문화 행위를 살필 수있다.
연세대학교 박물관은 1973년부터 1980년까지 7차에 걸쳐 제천 점말동굴에서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구석기시대 동굴유적을 발굴조사 하였다. 그리고 1976년청원 두루봉동굴,1981년 단양 상시바위그늘,1983년~1985년 단양 금굴, 004년에는 영월 피난굴(쌍굴) 등 여러동굴 유적을 조사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사들을 통해 우리나라 신생대 4기 갱신세 동물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고,
2008년 1월 혹한기 동안 조사를 중지하였고, 2월 중순에 재착수하여 3월 14일까지 조사를 진행하였다.
총 조사일수는 80일이고, 조사면적은 약 36m2이다
( 동 리포트 원문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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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역의 중·후기 구석기시대 자연환경
최 승 엽
(강원문화재연구소)
<일부 요약한 글 입니다>
오늘날 선사시대의 문화를 연구할 때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고고학 관련 서적들의 첫 장은 당연히 자연환경에 대한 서술이며, 발굴 현장에서는 고고학적인 발굴조사와
아울러 발굴지역에 대한 옛 자연환경 조사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어떠한 자연환경 조건에서 살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중요한 자료 중의 하나가 바로 동물
화석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동물 화석은 산성토양의 야외유적보다 알칼리성 토양으로 구성된 석회암 동굴에서 월등히 보존율
이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나라 구석기유적의 동물화석은 거의 대부분 석회암동굴에서 출토되어진 것들이다
영월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은 구석기시대 문화층(VI층과 VII층)은 후기 갱신세 늦은 시기에 해당됨을 알수 있다.
이 유적에서 밝혀진 동물의 종은 20여종에 이르는데 영월 연당 피난굴(쌍굴) 유적의 동물 구성과 종의 수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중원지역의 제천 점말 용굴, 단양 도담 금굴과 구낭굴 및 청원 두루봉2굴 등 이미
조사된 후기 갱신세 늦은 시기에 속하는 동굴 유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절멸동물의 종류와 종수도 거의 같다. 이는 이들 유적이 서로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으며, 당시의 자연환경도
유사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강원지역에서 동물화석이 출토된 석회암 동굴유적은 영월 연당 피난굴(쌍굴)과 평창 기화리 쌍굴4)이 있다.
약 5만년 이후 후기 갱신세 늦은시기(MIS 3시기에 해당될 가능성이 큼)첫째, 기후 환경과 관련하여 온대성 동물군인 노루, 사슴, 꽃사슴, 멧돼지, 소,너구리, 표범, 삵, 곰, 호랑이/사자, 여우, 토끼 등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일부는
기후 여건이 서로 상반되는 추운(털코뿔이, 동굴하이에나) 혹은 더운(원숭이) 기후의 절멸종이 섞여있어 지금과 당시의 기후가 분명히 달랐음을 보여준다.
둘째, 서식 환경과 관련하여
삼림성 동물군(돼지과, 곰과, 개과, 호랑이과, 하이에나과, 사슴과)과
초원/늪지형 동물군(말과, 소과, 코뿔이과) 혹은 양쪽을 넘나드는 동물 종이 어울려 있는 모습이다.
산양, 노루, 고라니 등은 산지성 환경을 대표하는 동물이고, 여러 종류의 사슴들과 식육류 짐승들은 숲이 무성한
혼합성 지역에잘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유적 주변에는 식육류들이 서식하기 적당한 삼림지대와
풀먹이짐승들을 위한 낮은 산지가 적절히 어울려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주변의 낮은 산지에는 사슴과
동물들이 많이 서식하여 구석기 인들의 선택적 사냥의 대상이 되었고, 동굴에 주로 옮겨졌다.
셋째,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이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현생 종들인 가운데 후기 갱신세 늦은 시기까지 살았던
절멸동물로는 원숭이, 코뿔이, 동굴하이에나가 있다.
이러한 절멸종들은 갱신세 시기까지 살다가 현재는 없어진 동물들이며, 유적의 연대 추정과 자연환경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를 통해 지금과 당시의 기후가 분명히 달랐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영월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제천, 단양 지역의 구석기시대 동굴 유적은 점말용굴, 금굴, 상시 바위그늘,
구낭굴 등으로, 강원 남부지역의 구석기시대 자연강원지역의 중·후기 구석기시대 자연환경 _ 309
환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제천 점말용굴 유적
퇴적은 모두 7개층으로 구분되며, 3층이 중기 갱신세, 4~6층이 후기 갱신세에속한다. 보고자에 의해 5층의 연대는
66,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6). 중기 갱신세 층에서는 사슴, 노루, 사향노루, 말, 하이에나, 대륙족제비, 오소리,
표범, 여우 등 9종의 대형 포유류 동물화석이 출토되었다. 한편 후기 갱신세층에서는 사슴, 노루,털코뿔이, 말,
하이에나, 큰 원숭이 등 21종의 대형 포유류 화석이 출토되어 좀 더 다양화된 종적 구성을 보인다. 특히 추운 기후를
지시하는 털코뿔이와 말, 사향노루들이 찾아져 춥거나 서늘한 기후였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단양 금굴과 단양 상시 1바위그늘 유적도 비슷한 양상을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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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논문으로 볼때 평창 미탐면 기화리 쌍굴 유적과는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지역의 공간성에 유적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기화리 쌍굴 유적은 구석기 후기시대로 꽃사슴등의 동물은 사냥을 하였겠지만 본인의 생각으로 호랑이, 꼬뿔니등은
사냥을 하였슬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본인은 요즘 뉴스도 식상하고 TV는 그저 동물의 세계를 봅니다. 사자가 누우를 잡아먹어야 끼니를 해결하는 양육강식의
자연게는 인간보다는 진실하지 않습니까?? 이를 보다본 동물세계를 좀 이해할 듯 하기에..당시 구석기인들은 도구도
없이 호랑이나 멧돼지도 잡지 못했슬 것입니다.
가끔 똥누고있는 사슴이나 어떻게 잡아볼련가..그래서 호랑이등 맹수들이 잡아먹고 남긴,,아니면 다쳐서 동물을 잡아먹지
못하고 병들어죽게되는 사체의 고기나 가죽을 필요로 했슬 것이고 석기 도구중에 긁게란 도구는 가죽 안쪽의 고기 떼낸
자리의 손질등에 사용되었슬 듯 합니다.
석기인들은 불을 사용하였고 기화리 쌍굴의 장점은 그 60m 산 아래는 카르스트 지형의 용천수가 올라와 겨울철에도
얼지 않기에 식수가 용이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기화리 쌍굴은 구석기시대에 여름철에는 냉방, 겨울철에는 온방이 조금 자동으로되는 고급 맨션임일테고 그들의
이불은 사슴 가죽이나 호랑이 가죽일 것이고 동굴속 생활에 서늘한 날씨에는 사냥을 한 사슴을 동굴속에 몇몇일 놔두고
주식을 하였겠지만 냄새에 밝은 손님들, 맹수들이 찾아올 수 있기에 늘 걱정인듯 하였슬 것이다.
잔곡리 구석기인들을 이야기하면 미군 상병이 전공이 고고학인데 학비를 위해 군 입대후 전곡리에 와서 한국여성과
데이트도중 강돌 하나를 집에 던지려다 순간에 그것이 돌도끼임을 알고 휴가때 미국의 스승에게 찾아가 보이자
구석기시대 애슐리안 돌도끼 양식이란 점을 간파한 스승은 서울대에 전문을 보내 고, 김원룡 교수가 그곳을 답사합니다
당시 서구의 사학계는 돌 도끼는 서양에만 존재한다는 우월주의적 입장에서 동양에도 존재한다고 한국의 돌도끼에
한방 찍혀버린 사건입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권위자가 인정해준 구석기 유적이며, 이번 연대 박물관의 답사는 이후
연대의 손보기교수의 석장리 구석기 유적이 발굴됩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사학계의 구적기 발굴의 인정은 힘듭니다만,,,본인은 전곡리 구석기유적지 일대를 만이 다녔기에
잘압니다만 지형적으론 마치 평창 도돈리 다리아래처럼 굽어도는듯한 강변의 구릉지에 물이 용이한 지역으로 이후
부변에서 몇 점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됩니다만 이번 연대박물관의 강원도 카르스트 동굴의 구석기 유물 발굴은
전곡기의 유물보다 후대인듯 하지만 구석기인의 불의 사용과 주거 생활지까지 명확한 점이기에 전곡리 유적보다 더
각광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돌도끼가 클수록 상위연대이고 작을수록 하위년대이기에)
유명한 역사학자 E.H카는 과거의 사건들은 현재의 역사에서 사용되어야 역사라고 합니다. 즉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역사에서 취급받지 못할때엔 과거의 역사는 잊혀지고 역사가 아니란 점입니다.
그러기에 기화리 쌍굴의 구석기 역사는 현재에서 역사의 소명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또는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은 우연히 발견됩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지금껏 생생한 이유는 동굴 앞이 무너져 잘 보존된 탓이고 라스코 동굴은 개를 잊어버린 동네
아이 네명이 개를 찾다가 발견되는데 이 유적들은 15,000년 전쯤으로 기화리 구석기인들보다는 많이 진화되어 라스코
동굴 천정의 소 그림은 다른 사람이 보라고 그린 회화성보다는 소의 앞 부분에 사람은 좀 불안한 형태로 주술적 의미가
더 강합니다.
여기에 비하면 기화리 구석기인은 겨우 불을 사용하는,, 제천 점말용굴에서 코뿔니의 뿔에 겨우 사람의 얼굴 형체가
세겨지는..그리고 위 노문에서는 뼈속의 골수의 진미를 알고 곬수까지 파내 먹얶다고 하지만, 아마도 식량이 귀해
골수를 파내먹은 것은 아닌지??
이 글을 쓰면서 이 동굴들의 가원도는 옛날에는 좀 더 추운 지방이라 하는데, 오끼나와 해저 유적을 보면 그곳의
조각상은 남방게열(태국위주)가 아니라 북방게열 스키타이 문화란 점은 명백합니다. 남방의 조각에 인물의 눈은
돌하루방처럼 퉁방울로 강조하여 조각합니다만 북장 스키타이 문화권,, 언젠가 이야기하던 예. 맥족들도 눈은 눈알을
파낸듯 움푹 들어가서 그림자의 음영으로 표시하는 전통에 오끼나와 두상 조각도 스키타이 문화권이라 추운 지방은
사실인듯 합니다만 원숭이는 홋가이도 원숭이도 있지만 남쪽 따뜻한 곳이 고향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꼬뿔리는 가죽은 두꺼워도 털이 없는 동물로 아프리카 응고롱고 초원에 사는 동물이고 가까이는 자바섬의
체구가 좀 작은..평지가 아니기에 그러지 이런 스마트라 꼬뿔소들은 적도지방의 생물일텐데 추운지방에도 살았는지는
모르기에 머리가 좀 혼란스럽습니다.
북한에는 약 70만년전의 구석기인 유골이 발견되는 검은모루 동굴도 있는데, 우리로서는 지금 기화리 쌍굴괴 강원,
충북선의 구석기 동굴유적들이 그에 타당하는 대접을 받아야 할 때는 아닌가 합니다.
< 平昌歷史 定立 2> 기화리 쌍굴의 구석기 유적의 이해
< 平昌歷史 定立 2> 기화리 쌍굴의 구석기 유적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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