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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항리(수다)사지

논문해제 ) 수항리사지 탑의 제반 설명

논문해제 ) 수항리사지 탑의 제반 설명 

(논문에 대한 문의 댓글에 답을 합니다)

*****본 논문에 생소한 단어들이 이해 *****

<시중의 인터넷 사이트중 탑에 대하여 열의적인 학문을 추구하고자 하는 카페에 본인의 논문을 게시한바 댓글 중에서..>

님이 표현하신 탑 용어

사잇돌.기단의 층급 3
면석의 탑.통석의 탑
양각 생명선 등은 생경한 용어 입니다

기회되시면 설명 부탁 드립니다

**********************

본인의 논문에 생소한 단어인 생명선과 양각에 대해 설명좀 부탁한다는 댓글에 사잇돌에 대한 이해와 양각이 아닌 앙각과 탑의 생명선 그리고 탑에서 흔히쓰는 체감율에 대한 본인의 단어의 이해적인 설명을 하겠습니다.

◆ 본 논문에서 탑에서 일부 부재를 사잇돌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어느 댓글에 보면 이러한 표현이 있습니다.

"탑신을 사잇돌이라 지칭하는 신선함이라.." 이 문구는 어떤 의미의 글인지는 몰라도 본인은 탑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식하지는 않습니다. 시중에 탑에 관한 책이 별로 없기에 본인은 탑의 연구의 학위 논문과 불상 조각의 논문이 아마 2~3 쪽 정도는,, 중요부분은 다시보기위해 믿줄이 전부 그어져있는...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서들이 탑의 조성시기. 조성 여건과 장엄사리에 대한 비교론등의 역사적 고찰이지 논문에서도 본인이 주창하는 조형주의 구조론의 연구에서는 인용부를 찍을만한 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항리 사지(수다사지)의 옥개석이 2개만 남아있는 석탑에 관하여 본인의 논지에 의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필자의 논문에 인용부에 링크되어있는 "강원 고고문화 연구원"에서 주최한 평창 수다사지 활용(*주, 활용이란 정비를 말함)방안 세미나 기록의 리포트 p73 에 "수다사지 삼층 석탑과 석조유물"(딘국대 박경식 교수)편에서 아래 사진의 별석 3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 바 위 리포트 p76에는 '' 강원대학교는 본래부터 이 부재가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는데 *7) 이후 조사에서도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8)

이 부재는 상층 기단 갑석과 이의 상면의 별석으로 조성된 초층탑신 받침석과 묘하게도 비례가 맞아 본래의 부재로 착각하기에 충분한 여건을 지니고 있다. 즉 실측조사를 진행한 결과 각 면의 길이는 상층기단이 154cm, 판석형 부재는 하단부가 132cm, 중단부가145cm, 상단부가 129cm, 초층 탑신 받침부다 97cm인 점을 고려할 때 이 부재는 다른 석탑의 갑석일 것으로 충분한 여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판석형 부재에 조출된 부재의 상면에 조출된 낮은 각형 1단의 받침 길이가 129cm인 반면 초층 탑신부 하단의 길이가 97cm인 점을 고려할때 이 부재는 다른 석탑의 갑석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8)  따라서 상층기단 갑석에 조출된 호각형 3단 받침부중 가장 상면에 조출된 받침 길이가 102cm인 점을 보면, 초층 탑신의 받침부의 길이가 97 cm여서 이 부재가 다른 석탑의 것이 분명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 인용 중략)

7) 주 3의 책  p79  주3)은 강원대학교 박물관 「 평창군의 역사와 유적」1987 pp68~69

8) 주 5와 같음  주5)는 강원 문화재 연구소 「문화유적 분포지도 - 평창군」2004. p363

9)왜냐면 이반적으로 석탑의 구성하는 부재의 수치를 보면, 받침부의 너비에 맞추어서 상면에 놓인 부재를 치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29cm를 가진 받침 상면에 97cm의 너비를 지닌 받침이 놓일 경우 불균형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된다.

----------<인용 끝>----------------

본인의 논문에선 위 리포트의 김경식 교수의 연구와는 달리하여 논문에 게시한 본인이 작성한  도표에 의하여 초층 탑신 부재의 하변이 98cm이고, 여기에 중간 부재를 빼내면 하층 부재의 상면은 102이기에 이것이 서로 맞아야 하며, 또한 하층 부재 아랫변이 124cm이기에 상층 기단 면석의 폭 124와는 알치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중간 부재는 아래 1층 가단석의 갑석으로 사이즈가 맞음을 볼 수 있다.

 또한 2중 가단석일 경우 갑석과 받침석의 크기 순은 하층 기단 갑석이 가장크며 그 크기순은 하층기단 갑석> 하층기단 받침>. 상층기단 갑석.>상층기단 면석인 점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박경식 교수는 탑신 받침석이 타 부재라고 문제삼고 있지만 본인의 논문에선 중간 판석이 아래 하층 기단 갑석으로만 가면 정상이라고 주창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분되지만 그 답은 하나이기에 어느쪽일지는 본인의 주관으로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다만 이 관계를 설명코져 위 레포트를 스크랩할 수도 있지만 본인의 양해없이 그냥 인용한 점은 양해 바랍니다.

필자의 논문에서 "사잇돌"이라고 표현한 점에 대하여 설명 드립니다.

 어느 댓글의 문의에서처럼 탑신을 사잇돌이라 하지 않았으며, 2층 기단석과 탑신석 사이에 부재 3점을 사잇돌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표에서는 별석이라고 지칭하였습니다. 이 3점의 부재에만 한정적으로 사잇돌이라 표현하는 것은 왜 그럴까?

 이해의 에를 들면,  미국에서 미술전시회에  출품준비에 화가들은 밤을세워 작품을 손질하는데 뒤상이란 화가는 폐기물장장에서 다 쓰고 버린 소변기를 주워와서 잘 닦어서 이를 작품이라고 전시장에 꺼꾸로 걸고 제목을 "샘" 이라 붙였다.           감상자들은 이를 보고 미술 전시회에 왠 변기가 나오냐고 의아해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용이 종료되어 폐기물장에 버린 소변기는 그 용도에 쓰이지 않기에 더이상  변기가 아니란 점이고, 지금은 새롭게 전시장에 작품으로 전시하고 있기에 이 기능은 작품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뒤상을 보고 백남준은 사깃꾼이라 하지만 그것이 논리상으로 통용이 되는 것입니다. 즉 이문제는 우리의 사고관에 의한 관념적 인식을 타파하는 문제입니다.

이렇듯  본 탑의 별석 3점이 한 부분에 들어간 상태에서 기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데 이를 갑석이니 받침석이라 어떻게 지정할 것인가.

 지정하였다면 이미 문제를 풀어 답을 알은 상태가 된다. 하지만 답을 알기 전에는 함부러 명칭을 붙일 수 없는 것이다. 즉 이는 모두 각부재가 제자리에 있슬때는 갑석이고 받침석이지만 여기서는 그 기능을 상실하였기에 갑석이라 부르면 곤란한 점이다 그러기에 별석이라 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별석은 아니기에 별석이라 할때문 부연 설명을 하여야 한다. 그러기에 순수 우릿말의 사잇돌이라 지칭하였다.

이 문제는 사잇돌 3매는 각기 제자리에 있슬때는 갑석으로 또는 받침석으로 그 효능을 다하지만 이곳에 잘못와 있슬때도 갑석이고 받침석이라 한다면 가운데 사잇돌은 또 받침석이나 갑석이라고 해야 합니까?? 만약 갑석이 이탈하여 다른 곳에서 받침석으로 쓰인다면 그는 갑석이란 고유명칭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잇돌 3매는 그 고유 기능을 상실하고 있기에 사잇돌이라 표현하였으며 그 위치를 찾아가서 제 기능을 할때는 사잇돌이라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어떤 스크랩분 게시글 처음에 사잇돌의 폄하는 무지의 야유이지 학술적 논쟁의 댓글이 아닙니다.

 

( 탑의 받침석과 초증 팁신석 사이에 3매의 판석이 들어간 탑의 양식은 없다. 두번이다 답사한 박사님은 위에 인용한 세미나 리포트에서 탑의 조형적 양식을 모르고 있다)

체감율(遞減)이란??

체감율이란 사전적 의미는 단계적으로 그 비례에 의해 점차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탑에서 채감율이란 단어를 볼 수 있다. 이 단어를 사용하면 고급문장처럼 보일 수 있으나 필자 본인은 이 단어가 부정확한 단어이기에 그리 반기지 않는다. 그럼  탑에서 체감율이란 어떤 의미인가 하나의 논문속을 인용해 봅니다.

정주성  "한국 석탑의 백제양식에 관한 연구" 잔남대학교 대학원  1989 (학사학위 연구논문) p58 표 3.

백제 양식계 석탑의 체감비 예(例)

  1층 2층(체감율) 3층(체감율) 4(체감율) 5층(체감율)
탑신 高 146,5 46,5(68,3) 39(16,1) 39(0,0) 37(5,1)
탑신 幅 261,5 231,5(11,5) 206,0(11,0) 179,5(12,9) 146,5(18,4)
옥개 幅 495,5 421,6(8,4) 373(11,4) 349(6,4) 315,5(9,6)

* 이 도표는 19개 탑의 도표중 3번째인 "왕궁리" 탑의; 예만 인용하여 별도 작성한 것임.

모든 예가 이 도표와 비슷한 비례관계를 나타내고 있는데 여기서 옥개석 한 부분의 체감율을 보면 1~2층 사이의 체감율이 8,4%, 2~3층 사이는 11,4% , 3~4층 사이는 6,4% . 4~5층 사이는 9,6%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각 층의 체감율 비율은 존재하지만 1에서 5층까지의 하나의 통일된 체감율은 존재하지 않는다. 체감율 제로의 예를 하나 더 본다면 위 도표에 3층과 4층의 탑신 높이는 동일하게 39cm이다. 그레서 이 부분의 체감율은 제로(0)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흔히 어떤 탑은 체감율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하는데 기실  감소하는 그 체감율이 비례적이지 못하기에 이에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기에 본인은 이 단어는 탑에서 사용하기엔 문제란 지적이다. 아무리 잘 짜여진 탑이라도 1층 탑신석이 크기에 탑에서 체감율은 비례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앙각(仰角)이란??

탑이 상륜부로 올라갈수록 점차로 체감되는 현상을 어떻게 나타내어야 할까??  그것이 앙각(仰角)이다.앙각이란 관측자와 수평을 재는 각으로 올려다보는 고각을 이야기 하지만 포열에 포신의 각이나 건축에서는 앙각을 사용하지만 아직 탑에서는 앙각이란  생소한 단어일 것이다.

문의의 댓글에 보면, 생명선이니 앙각이니 생소한 본인은 탑의 용어도 모르는 문외한이 탑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본인은 위의 체감율이 탑에서 작용을 잘 모르고 사용하며 그 체감율의 바람직한 방법인 앙각이란 용어가 생소한듯한 현  탑의 학계가 더욱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럼,  탑에서 앙각은 무엇일까??  앙각의 뜻은  지표면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올려다 보는 각도이다. 그러기에 그 각도는 탑에서 옥개석 전각들이나 전각과 전각이 만나는 합각도 동일 값의 기울기 경사각도를 가지는 것이다. 이 앙각은 전각의 앙각과 탑신석의 기울기 값은 차이가 난다.

◈ 본인이 주창하는 탑의 생명선이란?

( 본인이 게시한 글 스크랩분 게시합니다)

http://blog.daum.net/kkks1/7093) 월정사 8각9층석탑의 諸 문제 (본론 2)

 (2) 탑의 제작기법의 생명선(앙각)과  월정사탑에 적용

신라 3층 석탑이든 고려 다층 석탑이든  각 층별의 탑신과 옥개석의 길이의 분할은 어떻게 하였슬까?? 신의 1,2,3층의  비율이 1;2;3이 아닐테고, √ 를 도입할 것도 아닌데 어떤식으로 분할하였는지 자못 궁하다. 아래의 사진은 신라의 대표적인 두 탑 감은사 탑과 고선사지 탑의 이 두 탑을 비교 분석해 보기한다.

 만약, 새로 탑을 하나 축조한다면 그 설계도에서 맨 처음 할일은 무엇일까??  그리고 1,2,3층 탑신과 옥개석높이를 얼마큼씩 잡을까??  각 층의 옥개석 크기의 그 비례들을 알 수 없고 임의대로 대강 주무른듯 하지만 그 값은 질서를 가지는 듯 하다.기존의 모든 탑들에서 가장 공통된 점은 각 층의 옥개석 위의 전각의 코너를 위, 아래층을 사선으로 이으면 탑의 심축에 비교해서 보이지 않는 임의의 사선(앙각)을 만들 수 있다.

이 앙각의 임의의 사선이 일직선이며 옥개석의 경사도 기울기를 가지는 탑의 생명선이다. 

모든 탑들의 이 임의의 사선의 기울기 값의 앙각이 대략 90˚ - (7~15도)를 뺀 83~75˚이다다만, 이 사선이 전각이 닿지 않거나 넘어서는 탑은 모양새가  떨어지는 정교한 탑이 아니기에 본 논제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그러기에 전각 코너점이 앙각에 일직선으로 정렬될때 가장 안정적이고 표준적인 탑이 됨을 볼 수 있다. 

 그러면, 하나의 탑을 만들고자 할때 그림에 제일 아래에 1층의  탑신과 옥개석의 모양을 만들고, 이 임의사선을 긋고 이 사선에 2, 3, 4, 5층들의 꼭지점을 따면 되는 것이다.대부분 빼어난 조형의 석탑들은 이 꼭지점들의 사선이 앙각의 일직선상에 있으나 좀 어둔하고 떨어지는 탑들은 (탑신 길이 비례와 옥개석의 크기를 못 맞춘 탑들은) 그 꼭지점이 임의의 사선에 들쭉날쭉 거린다.


 (위 사진의 설명 )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두 탑을 비교하여 분석해 본다. 그  하나는 감은사 탐이며 나의 느낌으로는 언제나, 어떤 사진을 보아도 감은사 탑은 도도함을 느낀다. 상륜부모두 생략해 버리고 약 5m의 철간을 꼽아서 탑을 더욱 단순화 하였으며  여기에 경사도 값도 런 도도함의 분위기를 맞추려고 10도의 급경사도 값을 가지며 이로서 이 탑은 어디를 더 보태거나 이 없는 탑으로 나에가오는 느낌은 어떤 도도함의 위압감마져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오른편엔 고선사 폐사지에 남아있는 탑이다. 이렇듯 목조건축의 고선사는 없어지고 스님들은 간데 없지만 그러나 화강암의 돌로 된 탑은 천년이 넘혼자 남아서 우리에게 언제보아도 친근한 균형의 미로 통일신라 정형의 빼어난 미를 자랑하고 있다.

 이 탑은 탑신의 길이에 옥개석 넓이까지도 가장 안정적 균형의 길이를 가진 일반율의 아카데미적인 탑이다. 여기각층의 임의의 사선의 값을 완만한 경사도로 15도의 경사값을 가진다.

 이렇듯 이 임의의 경사값(앙각)은 탑의 특징을 자아내고 있는 숨어있는 비밀의 생명선인 것이다.

 그리고 또한 위 사진의 오른쪽 노란 선들의 값은 1층의 탑신과 옥개석을 100으로 기준 잡았슬때 2층,3값이다.  각층의 탑신과 옥개석의 합의 거리  감소비례의 체감률과 더블어 층별 탑신과 옥개석간의 상간 거리감비례의 상수가 있는것인지 아니면, 마치 과학에서 실험 물리학자의 의뢰로 천재소년 이 전자파동 식을 만들었듯이 탑신과 옥개석의 층별 축소비례에 어떤 새로운 수학적 함수의 운 창출할지도 알 수 없는 기묘한 비례로 이 연구는 과제로 남기겠다.( 단, 위 사진은 사진을 통해서 보는 투시도적인 값으로 실제 거리보다 투시도의 거리값은 작게 나타나임을 공지한다)

이렇게 분석하여 볼때  월정사 8각 9층탑은 다층의 탑이기에 임의의 사선의 값이 현저히 줄어들어 7도을 가지기에 앙각(仰角)은 73도이다. 일반적으로 3층 탑일 경우는 옥개석 기울기 값이 13~15˚를 나타내지만 5층및 다층탑의 경우에는 7~9˚의 경사도 값 분포를 나타낸다. 이것은 즉 3층석탑의 경우 일반적인 앙각은 77~75도이며 5층및 다층석탑의 경우에는 83~81도의 앙각을 가짐을 알 수 있다.

--------------------,인용부 끝>-------------------

즉 秀作의 탑은 전각이나 전각의 합각이 임의의 사선에 일렬의 직선으로 정렬되는 것이다. 옥개석의 전각이 하나의 꼭지점으로 앙각에 함일 하는 것으로 이렇게 정확할때 일층의 탑신석을 빼고는 완벽한 비례의 체감률을 가지는 수학공식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체감율의 단서에 1층 탑신석 크기때문에 정비례의 체감에는 위배된다.

현존의 탑은 이런 완벽한  사선의 정렬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길을 가다보면 채석장에서 요즘 상품으로 만드는 탑엔 앙각의 임의의 사선이 직선으로 정확함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탑을 하나 만들고져 할때 무엇을 먼저 할까요?? 우선 그래픽을 할텐데 이때 기단부의 저석부터 그립니까 탑신부부터 그려야 하나요.. 아마도 여기서도 탑의 생명선인 사선을 긋고 가로로 탑신의 탑신석과 옥개석의 상관관계의 비율에 의한 단위별 가로 축을 설정하고 그래픽화 한다면 가장 정확하고 가장 쉬운 그래픽을 할 수 있슬 것입니다. 그레서 옥개석 전각이 합일되는 앙각을 탑의 생명선이라고 본인은 주창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현존 탑의 잘 조성된 탑들을  골라 옥개석의 기울기 값을 체크하여 보니 대부분의 공통점으로 3층 석탑의 앙각은 90도에서 13~15도 기울기 값의 앙각 87~85도 사이에 정렬되며 다층탑은  7~9도 기울어진 앙각 87~89도의 값을 가지고 잇슴을 알 수 잇었다. 물론 이 각도를 넘는 탑도 존재하지만 의의 사진은 이러한 표준의 신라 "정형탑"인 아카데미적 탑의 모델인 감은사와 고선사지 탑을 샘플로 한 것이다.

계속되는 댓글에 답은 안했지만 그곳에선 무단 복제하여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본인의 글이 오류라 하며 체감율을 존중하는 구태의 사관의 향수자들에게 내가 그곳에서 이미 오류라 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쓴들 항변하자는 것이기에 노 멘트하고 필요시엔 법으로 다투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

부연이란??

부연의 사전적 의미는 아마도 부연착고 (附椽着固) 즉  부연과 부연 사이 막아서 판판한 널조각이란 뜻에서 그 의미를 따온듯 하다, 그리고 탑에서 부얀의 기능적 의미는 자리맞춤 돌기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이러한 부연이 신라시대엔 정확하게 표출되고 또한 때에 따라서는 부연의 높이가 3cm이 되기도 한다.

탑의 조성방법론에서 신라 정형탑이 고려로 넘어오며 변형을 가하고 있지만 , 여기서 이형탑이라는 다층탑이든 삼층 탑이든 모든 고려 탑은 옥게석 받침의 층급이 신라의 5개에서 4개 또는 3개로 변형되며 옥개석이 반전되어 위로 올라가지만 옥개석 절단면도 수직에서 차츰 사선으로 옮겨감도 볼 수 있지만 일부 사가들의 기록엔 고려 탑에서는 부연이 생략되는등 마치 고려탑은 규칙이 없으며 방만한 태도라고 느낄 수 있지만 본인은  그 반대로 생각한다.

신라탑에서 형식에 맞추는 부연이 높이가 3cm짜리도 잇는데 이는 멀리서 보면 탐에 가로ㅡ의 종선을 긋는 지저분함으로도 느낄 수 있다. 그러기에 고려 양식에서는 부연이 생략되기도 하며 탑마다 제각각으로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곳도 있긴 하지만 필요한 부분엔 부연이 정확하게 존재한다. 여기에서 필요한 부분이란 기단부 받침석이나 갑석은 폭이 길게 뻗어나오고 위는 처머선의 경사각을 가지는데 이쎄에 상대 부재와 맞물리는 위치는 안쪽으로 때로는 10여 cm들어가 있으며 여기에는 그 위치 값인 부연이 정확하게 표식된다.

 이렇듯 고려 문화는 신라의 형식미보다는 내적 충실미로 본 수다사지 탑에서 약식처리가 되는 노반과 복발은 얇고 납작하여 감은사 탑이 도도함을 느낀다면 수다사지 탑은 온후한 정감을 자아내도록 노력 한 것이다.... 이상

 

바닥의 탑재에 관한 문제( 탑 옆에 별개로 놓인 옥개석과 탑신석 각 한점)
 수다사지 탑에서 바닥에 놓여진 옥개석과 탑신석 한 점씩의 문제는 물론 그 사이즈 값으로 현 탑의 3층에 올려보면 옥개석의 앙각의 값이 틀려짐을 볼 수 있다 , 이는 탑신석의 높이가 문제이지만 탑신석의 가로 세로 비율이 현 수다사지 탑 탑신석과 맞지 않는 비율값을 가지기 때문이고 옥개석 또한 그러기에 이는 다른 탑의 부재임은 확실한 답이다.                                  

논문에 이것이 명시되어 있기도 하지만 나의 답사기준이라는 글에 이러한 점을  다시 개진하니 그럼 2층 옥개석이고 그 구멍은 사리공 아닌가 추정한답니다. 여기서 우리는 늘상 주관적 견해로 이치 작용을 파악하려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탑의 각 부분의 치수를 밝히고 어떤 부재가 그 데이타 값에 만족해야하는 객관화의 관점에서 본인의 주관없이 고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위의 바닥의 옥개석의 싸이즈를 현 2층 옥개석과 비교해보면 그 값으로는 이층 옥개석이 아니란 점을 쉽게 구분할 수 잇는데 이러한 객관화를 취하지 못한 예란 점이며 이러한 문제가  비일비재한 것이란 점입니다.

그러기에 바닥에 놓여진 부재 두 기는 모두 사이즈 관계상 본 탑재가 아니란 사실이며 그곳이 사리공이든 본 논문과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 입니다.

( 박경식 단국대 교수의 세미나 리포트에서는 이 것은 주워 올리면 된다 하는데 줄자로 실측 한번 했으면 두께와 크기가 다른 탑임을 알 수있다.

박경식의 본 세미나 리포트에서 이 찰주공의 사이즈를 10정도 *10* 깊이 19라 적고 있습니다만 아마 이 옥개석 포이는 16인가 하면 구멍을 내고도 저 뒤란,,, 그건 글이 아니기에 아마도 이는 인쇄의 교정적 오류가 발생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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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논문도 처음이고 직업도 학문과는 거리가 있지만  나의 두고온 고향 평창에 문제로 본인의 블로그에서 보면 탑만이 아닌 모든 문제를 쓰고 있습니다.그러기에 본인은 지금까지 약 3백만자의 글을 쓰기에 어떤 구상이나 인덱스 조차도 생각치 않고 쓰면서 구상을 하는등 꽤나 머리가 복잡합니다 그래서 수정이나 탈고 시간도 없이 게시하는 바 혹간 글자의 오기가 발생하기에 이를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논문해제 2) 는 본제와는 다른 내용으로 논문에 수록치 못하는 안건들,,, 예를 들어 위 논문은 한사간 반 가량의 처음 답사 이후에 쓴것이며 두번째 답사는 1943년 총독보 발행의 고적도보 자료집은 영인본도 아닌 총독부 논산국 삭산과에 있던 자료들을 모아 문화재 약탈의 목록을 만든듯 한 것으로 여기에 수항리라는 지명 하에

석불 3점은  입상 좌상등 사이즈까지 동반하는데 어쩜 이는 논산 개타사지의 석불 3점과 유사하단 생각이다.

그래서 이의 증언은 하신 김종근 옹을 방문하여 개타사 조각상과 일반적 불상등 여러 장의 프린트 물을 보여서 구분이 가능한가 하는 점을 시도하려 하였고, 또한 당시 초교생이라 탑에 오르고 놀랐다는데  꼭데기까지 올라 갔습니까에서부터 게획된 물음을 시도하려 하였건만 연루하셔서 기억력도 좀 문제라는 전갈에 포기 했었다.   하지만 개타사 석불 3점은 보살상의 시초로 이에 명주권 문화의에서 보살상이 나오며 수다사도 3존붕ㄹ이 아닌 석불 3점이기에 이러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요즘 북환문화 유적중 왕건의 청동금제 전신상,,,               마치 이짚트 중왕조 시대의 아부심벨 신전의 람세스 2세상과 같은 앉아있는 전신상을 만든 왕건이 후 백제 쟁취의 건승기념(아마 문명대의 논문인듯) 인 개타사에 우슬착지의 보살상이 월정사등지에 나타나지만 아마 수다사지엔 원본 그대로인듯,,,


이러한 추정을 가능케 하는 것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이다.고려 초 왕사나 국사는 개성의 헌화사에서 많이 배출 되지만 다음으로는 원주권 불교문화이다. 여기에 헤린은 지국광국사가 되는데 그는 한때 수다사에서 10년간 수행하였다는 기록이 탑이에 있다하는데 지광국사 사후에는 이자겸의 아들이 지광국사의 제자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다시 돌아와 경복궁 서문 공원에 있는 지광국사 현묘탑비를 감상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경천사지 탑이나 원각사탑은 우리나라 탑은 층수가 홀수인데 이는 10층이라,,, 이 탑은 대리석이기에 조섬세한 조각도 가는하지만,,,지광국사 현묘탐은 화강암을 그렇게 다듬을 줄이야... 이런 면에서 감탄을 금치 몰하는데 이러한 지광국사가 한때는 수다사에서 주석하였다는 고리 작용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석불 3점은 도괴되고 역사의 구리가 끊어진 듯하다. 이것 또한 수다사 연구에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왕건의 불교관에서 철 전신상을 미루어 볼때 왕건은 고구려의 복귀가 아닌 스스로의 제국이라는 야망을 가지고 잇엇다는 점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탑파 양식에 정영호 선생의 월정사 9층탑이 고구려 계통이라 하는 점에 다른 견해와 지난해 경찰 임용고시에서  고려 탑에 영향을 준 것은 정답은 고구려가 아니라 송나라이다.
송나라의 역사는 시중엔 구법당, 신법당 밖에 없지만 송 문화는 중국의 로마란 점을 본인은 역력히 피력한 바 본인은 이제 월정사 8각9층 석탑의 미학편을 완성하려할 것이다. 이상,,,

  홀수탑과  짝수탑 

최근에 조계종 마당에 10층 탑을 세우고 언 스님왈 쩍수나 홀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매듭을 하는 10진법 단위로 10층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럼 10에도 의미를 붙이면 안된다. ... 전혀 상식 이외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천,지,인의 3의 숫자에 제사때도 과일을 홀수로 젯상에 놓는 홀수를 기준으로 하기에 탑에서도 13층 탑까지 모두 홀수의 탑이다. 파고다 공원의 10층탑은 중국인이 제작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형탑 양식은 아니다.

 중국인은 젯상에도 과일을 짝수 단위로 올리기에 황제 잿상에서도 짝수로 올렸지만 동북공정이라하고 염제와 치우의 동상도 건립하여 놓고 제를 드리는데 우리나라 성균관에 와서 배워가서 현제는 3개의 홀 수의 단위로 올린다. 이렇듯  우리의 생활 전반은 홀수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