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과 평창의 인연]
후세백작 2019.04.16 23:31
한진 선대 조중훈 회장님과 조양호 회장님과 평창의 아름다운 인연을 본인의 블로그에서 스크랩하여 올립니다.
******* 2011,02,14**************
오늘부터 동계올림픽 심사단이 평창 실사를 한다는데. 우리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2018 평창동계 올림픽 유치가 잘 되길 기원합니다.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친환경 건설이란 캐치프레이즈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저의 글" 예스 평창"을 읽어 보시면 스포츠에 어려운 문구는 필요없습니다.
그 문구는 보조적 작용에 지나지 않는, 또한 서구에서는 친환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은 설정이 않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의 케치프레이즈는 동계 올림픽이 북구권 전유물이 아닌 북위 35도의 평창에서도 과학적힘으로 올림픽을 치를수 있고 나아가 북위 30도까지 저변을 확대하는 세계인의 스포츠의 기수를 자처하는 내용이 더 효과적이리란 생각입니다. 한진 조양호 회장님이하 관계자 모든 분들의 노고에 응원을 보내며 우리 모두 열심히 준비 합시다.
그리고, 한진이 우리 평창과의 인연은 선대 조중훈 회장님이 월정사 불사 적광전 건립때 부터 인연입니다.
장만허 스님과 당시 조 회장님의 우연찬은 만남의 이야기를 아래에 스크랩을 게시 합니다.
월정사는 한진그룹의 원찰같은 느낌도....
그런 월정사 이야기는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과의 인연<스크랩분>
후세백작 2009.11.05 08:13
<사진설명>월정사 불사에 큰 공헌을 한 한진그룹 조중훈회장 공덕비가 경내에 서있다. 탄허스님이 비문을 썼다.
월정사 불사는 지난해 작고한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 시작은 월정사 중건주 만화스님과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됐다. 만화스님은 적광전 불사를 계획해놓고도 자금이 없어 몇 년을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날 스님은 서울로 화주를 떠났다. 딱히 아는 사람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자가 많이 사는 서울에 가면 무슨 길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무작정 떠났다.
조계사에서 밤을 지낸 만화스님은 다음날 새벽 일찍부터 탁발을 돌다가 한 부잣집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장집이었다. 바로 조중훈 회장 집이었다. 회사 사정은 아직 어렵고 규모도 크지 않아 고민이 많았던 당시 조중훈 사장은 전날 밤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한 스님이 찾아와서 시주를 청할 것인데 시주를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예사로 여기며 새벽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있는데 밖에서
염불소리가 났다. 집주인이 나가자 그 스님은 “오대산 월정사 사는데 불사를하기위해 탁발을 왔다”며 시주를 청했다. 꿈에서 본 그 스님 얼굴이었다.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월정사가 6.25때 불타 대웅전을 지어 부처님을 모셔야하는데 돈이 없다”.
“시주하면 좋은 일 생길 것”
꿈에 본 스님 다음날 나타나
불사 시작된 뒤 사업 번창
아무리 꿈에서 보았다고 하지만 쉽게 믿을 수는 없었다. 조 사장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아침 밥을 차려 먹고는 곧바로 월정사로 갔다. 사실이었다. 집주인은 돈이 얼마가 드냐고 물었다. 조그만 기업체 사장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되든 안되든 지원을 약속하겠다”고 했다. 불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꿈의 영험인지 불사가 시작되면서 조 회장의 사업은 날로 번창해졌고 갈수록 시주금액도 늘어났다. 이제 고인이 된 조회장은 계속해서 월정사와 인연을 맺어 적광전 불사 뿐만 아니라 월정사 범종, 박물관 등 많은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만화스님의 상좌로 은사스님의 뒤를 이어 조회장과 인연을 맺은 현해스님은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꼼꼼하며 검소했던 조회장이지만 월정사 불사에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해스님은 “적광전 단청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견적을 3곳에서 받아오라는 거야. 1억5000만원 가량 드는 불사였는데 내가 비싼 걸로 하겠다 하자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 그래서 싼 것은 공해물질일 뿐만 아니라 곧 빛이 바랠 것이라고 하자 돈을 직접 주더라고” 일주문 근처에 조회장의 공덕을 칭송하는 비가 서있다.
[불교신문 2302호/ 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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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적광전 불사 완공은 '65년도 쯤이니 '60년대 초의 일일듯 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 시절에도 어느 업자가 공해라는 말에서 친환경적이라는 , 요즘말로 에코(친환경)을 이야기하여 더 많은 금액으로 수주하는,, 세련된 업자가 이야기한듯 합니다.
위 두가지 사실의 스크랩분에 한진그룸의 역대 두 회장님은 평창과 각별한 인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지난 글에서 월정사는 마치 한진그룹의 원찰같은 느낌이라 멘트하였지만 기실 이번 조양호 회장님도 평창동계 올림픽의 유치 위원장으로 각고의 노력을 하셨습니다.
이 점에 감사를 드립니다.평창인들의 조문은 알 수 없습니다만,,조양호 회장님.부디 영면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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