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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에 대한 나의 이해

설악산 통일염원 사리탑의 감상소견

설악산 통일염원 사리탑의 감상소견

 후세백작 2016.07.25 13:06

 

아래의 사진은 설악산 국립공원 입구를 들어서며 만나는 광장의 소나무 두 그루이다.

그리고 위의 사진은 이 앞이 5층의 아마 신흥사에서 통일염원 사리탑을 조성한 사진이다.

이 두 사진을 비교해보면 위의 탑이있는 사진은 무언가 좀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동 탑이 제법 규모도 커서 시원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탑의 설치 이전의 아래의 소나무 두 그루만 있는 사진이 더 시원한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특유의 석탑 1,200여기의 탑에서 그 기법이 전수되어 내려오며 위의 사진에 보이는 오합지졸의 비 균형적인 탑을 그래도 명색이 국립공원인데, 정문을 들어서며 자랑이라되 하려는듯 건립하였는데, 그것은 결코 자랑이 아닌 수치이다. 우리의 문화는 죽었다. 이땅에 무식쟁이들만 있는줄 알고. 눈뜬 소경들 보라고 이런 엉터리 탑을 만들어 놓았슬까??

 

설악산 산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미적 정통성도 가지지 못한 양식도 없는, 불교문화에 모양없는 탑을 만드는데도 산사의 오직 스님들은 득도만이 만사인지??

서산대사나 사명당의 호국불교의 지도자들도 계시지만 대개들 스님들은 사회참여성은 그리 없는 편이라...

율곡선생의 힐난으론 스님들은 매일 없는 無나 찾고 있으니...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 줄 것인가??

미적 감각이 부족한 탑을 내동댕이 치든 아니면 탑파 뒤의 엑스트라 배경인 소나무를 베어 치우든가 양단간에 어떠한 경우라도 지금의 탑과 소나무가 겹친 상태보다는 훨씬 시원하리란 생각이다.

그럼 탑의 미학적 관점에서 탑의 생명력을 관찰해 보는 공부 한번 해 볼까요??

 

(위) 통일염원 사리탑 2016 (아래) 2009 촬영분.

 

위의 탑의 시각적 부족함은 무엇일까??

동 탑을 볼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곳은 지대석과 기단석이다.

지대석과 기단석은 동 탑의 무게의 2/3을 차지하는듯 균형이 치우쳐 있고, 상륜부와 탑신부도 비례 균형이 없는듯 탑신부는 왜소하다. 한장의 도면이 아닌, 아마 사진 석장을 보고 그대로 모조한듯 하다.

 

기단부의 이해

지대석은 8각 연꽃무늬로 가로 크기는 탑신부의 2/3정도로 4각탑과는 언밸런스이며 또한 하대 기단석은 2단으로 마치 월정사 8각9층탑의 2중 하대 기단석을 연상케 한다.

물론 남한산성내 망월사엔 비구니 절이라 인도의 카쥬라호의 카마스트라같은,,, 마치 성 도착증 사원같지만,,

이 절 경내엔 하대는 8각이며 상대 탑신부는 4각인 규모가 큰 탑도 있지만...

이는 탑의 양식의 짬뽕이며 팔각 하대석 위엔 8각 2중 하대 받침석이 있는데 상대갑석은 4각의 얇은 판 하나 끼운듯 일그러진 모양새이다. 이로서 기단부의 2중 하대갑석과 1단의 얇은 상대갑석의 균형의 미는 언바란스이다.

 

이러한 현상은 탑신부의 탑은 기단의 탱주가 하나인 점이나 각 층의 옥개석이 반전되 올라가는 형상과 옥계석 두께가 얇은 점등,,, 또한 옥개석 하단 층수가 4~3층이 고려계인데 이 사진에선 확인이 불능하지만..이 탑은 이러한내용으로 볼때 고려계 탑의 모방이다.

 

탑신부의 이해

탑신부의 5층 탑은 고려계 형으로 전체 크기나 탑신의 가로크기에 비하여 탑신의 전체의 세로 높이는 좀 작은듯 하다. 쉽게 표현하면 마치 자라목처럼 훤칠한 맛을 구사하지 못한점이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치수로 이 문제를 정확히 증명하여 본다.

 

우리 손금에도 생명선이 있어 처세에 약간 간을 보듯이 본인은 월정사편에서 탑의 생명선을 주창하였다.

탑의 생명선이란 각 층의 옥개석 코너의 모서리점을 연결한 직선의 사선을 생명선이라 하며 이 선이 직선일때, 가장 힘있고 모양새 좋은 정형의 탑이 된다. 여기서 이 사선에 어느 층의 꼭지점이 미달되거나 지나치면 그 탑은 미학적 가치를 잃은 똥탑이 되는 것이다.

 

고선사지 탑이나 감은사 쌍탑, 또는 불국사 석가탑이나 월정사 8각9층 석탑등 이름있는 탑들은 모두들 옥개석의 꼭지점들이 임의의 사선에 일렬로 정렬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탑의 생명선으로 그 탑들의 빼어난 수법을 자랑하고 있는 원동력인 것이다.

 

이 생명선의 사선에서 각 층의 비례크기는 마치 한옥지붕의 곡선을 2차원으로 선의 형태로 표현하는 "파라메트릭 디자인"의 일전 한국 수학자가 밝혀낸 12제곱근의 곡선 디자인 방식처럼 월정사 8각 9층 석탑에 각 층의 기단석과 옥개석의 각 층의 정연한 함수관계는 어떠한 함수관계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걸출한 수학자가 나온다면 이 비례의 수학적 관계식의 공식화되는 수치를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위 사진에서 보는 설악산 입구의 통일염원 사리탑의 생명선은 꼿꼿한가??

동 탑은 미학적 가치를 논할 수 없슬만큼 볼품없는 탑으로 이 생명선은 위로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휘어진 곡선을 하고있다.

마치 전탑(흙벽돌)이나 정선 정암사의 모전탑(석벽돌)들이 재료의 이유로 옥개석이 짧고 윗층으로 올라갈 수록하여 타원으로 오므라드는 현상같이 석조로 이러한 구조를 하고있다.

그 이유는 맨 아레 첫째 탑신보다 두번째, 세번째등 올라갈수록 탑신의 가로비율이 정연하지 못하고 너무 작아져서 시각적으로도 왜소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1층 탑신석이나 1층 옥개석에서 5층으로 올라가며 탑신석과 옥개석은 그 비율이 각기 달라서 5층의 옥개석은 마치 테두리가 큰 밀집모자를 쓴듯 옥개석이 넓게되어있으며 탑신석만 줄어 질서정연함보다는 분잡하게 보이고 있다.

즉 탑신부와 옥개석의 체감률은 다르게 되어있다. 이러한 모양의 비율은 우리나라 1,200여기의 탑중에 단 하나뿐인듯 하다.

 

상륜부

위 사진을 자세히보면 상륜부는 너무나 가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래의 탑심부와 비교해볼때, 또는 기단부와 비교해보면 이 탑은 균형을 무시한듯 하다. 그럼 왜 이렇게 왜소하게

 

표현하였슬까?? 그것은 오륜부의 각 오륜10개를 철심에 꿰어 5층 4층의 탑신부까지 철심을 내려야 하나 이러한 제작이

아닌 오륜위에 요즘 사용하는 접착제로 접합한 것으로 보이며 이럴때 10개의 오륜의 무개를 작게 실리기 위해 꼼수를

쓴것처럼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또한 중요한것은 오륜이 10개이다.

대게 일반적으로 우리의 수에서는 1,3,5,7,9,11,13까지의 홀수위주에 그 의미를 부여하며 사용하는데 10개의 짝수를

사용한 예는 없었다.

 

그러기에 이 10에 대한 설명은 나로서는 할 수가 없다.

 

이로서 동 통일염원탑은 부분부분이 갈라진 탑이라 할 수밖에 없다.

동 탑이 설악산 국립공원 정문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꽤나 대단한것처럼 보일테지만 모든 시민이 그렇게 까막눈은

아니다.

 

우리의 문화는 죽었는가??

 

스님들도 산사를 드나들자면 이곳을 통과하여야 하는데 스님들도 이러한 불교문화를 퇴보시키는 탑파를 보고만

지나다닐 것인가?? 먼 후일 100년후 500년후 후손들은 이 탑을 분석하며 당 시대를 먹고 배만 불리는 문화가 없던

시기라 평을 하지 않을까??

 

이러한 왜곡된 문화로 관광객들을 매료 시킬것인가??

이것이 허상이라고 느꼈다면 통일이 되기 전이라도 얼릉 파 딩겨라.

 

 

 

<계조암 입구의 "신통제일나한석굴(神通第一羅漢石窟)" 현판석>

 

 

 

<계조암석굴 내의 신중담 전경>

 

위의 사진은 울산바위옆 계조암이다.

아마 50년전쯤 초교 2학년때 다녔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때는 계조암을 두 사람이 지나칠 수 있는 터널을 왼쪽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나오며 중앙부에 조그만 감실정도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양쪽에 촛불 하나씩 켜져있던...

지금으로 보면 초라한 모습인데 이제는 동굴 공간이나 현판도 거창하기 짝이 없다,

 

얼추 본다면 글씨만 붉은 색을 띠면 중국의 석굴처럼 느껴지는 현판이다

거울 테두리 플라스틱에 그 흔한 조각같기도한 입구조각은 원래 여의주를 중심에 두고 좌, 우의 용이 구름사이로

보이는 조각인데...너무나 도식화되고 우리네 문화는 아닌것 같은...

 

그 아래 사진은 조계암 아미타불 불상 옆에 신중담이라는 아마 나한상의 모습인데..

늠늠한 장수모습은 좋은데 그를 배경으로 있는 나한들,,, 모두가 같은 얼굴의 그라데이션의 복사판들,,

그들은 8 쌍둥이들 입니까?? 있슬 수 없는 일이죠.

 

로댕의 칼레의 시민 6인의 동상에 그 여섯사람의 고뇌의 표정이 전부 다른데 만약 똑 같은 사람 6명을 조각하였다면

사람들은 그건 외면할 것입니다.

 

그보다 토함산의 석굴사 본존불 뒤의 39구의 조각중에 십일면 관음 보살상 10구의 화려한 표정은 모두 다른 특징을

담고 있다.

이렇게 비교해보면 그 허상의 졸작을 당장 이해할 수 있다.

 

 

 

<계조암석굴 내의 본존불 전경>

 

 

 

<신흥사 극락보전 전경>

 

 

신흥사나 경주 불국사.근래의 중창이전의 월정사도 석등은 한기식 천년의 전통양식을 따르고 있다.

 

 

<

현우경>에 의하면 권세있고 돈 많은 부자가 화려한 등 여러 개를 하는것 보다, 헐벗고 가난한 자들

이라도

진실한 마음의 등불 하나 하나가 끝까지 어둠을 밝혀주는 불타의 진리의 불빛으묘사되 있다.

 

이는 가난한 자들이라도 골고루 한개씩 하는게 좋다라는 부처님의 생전의 말씀에 의하여 세존을 모신 법당 앞 계단중앙에 한개의 석등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고 그것이 신라 석등에서부터 근래까지 전통으이어오고 있으나 80년대부터는 쌍으로 하는 유행이 생겼다.그것은 재력과 공사비 부풀림등 과시성 놀음이랴...

 

 

월정사 8각9층 석탑과 그 쌍동이들,,

 

 

월정사 8각9층석탑                                          연화사 8각9층 석탑

 

제작년대- 12C 후반으로 추정                                          최근래에

 

 

 

하동 쌍계사 8각 9층석탑

10여년 전쯤 제작

 

월정사 8각9층 석탑을 모델로한 탑들,,,

상륜부에 좀 변형을 주지만 월정사 탑과는 판박이의 짝퉁들이다.

 

월정사 탑은 국보 48호이고 그외의 탑들은 이미테이션이기에 지방 문화재라도 된다면 우서운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카피했다고 요즘에 미술품들의 위작같은 위작사례는 없슬듯.

 

그런데 이 짝퉁들도 탑 조성의 격식은 충분히 잘 따르고 있다. 그래서 외관이 손색이 없는 탑들이다.

하지만, 월정사 탑은 그 옛날 석공 스님들이 정으로 다듬던 손맛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정감이 있어 좋다.

월정사 탑이 손맛이라면 연화사나 쌍계사에 새로 조성한 탑들은 기계적인 경직함에 냉랭한 칼맛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