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진부시대(2부)
<영서 3부작에서 평창의 이야기들,,,>
후세백작 2019,0222 03;57
< 이효석 문학중 평창을 소재로 하는 영서 3부작의 이해>
가산 이 효석은 230여편의 소설중 고향 평창을 테마로 쓴 소설은 「메밀꽃 필 무렵」과 「산협」, 「개살구」가 있다. 이 3점의 소설을 혹자들은 영서의 3부작이라 일컷는데 이들 소설속에 고향에 대하여 깊은 애정의 눈으로 관찰하고 또한 당시 사회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구에게난 고향이란 어머니의 모성인것처럼 효석에게도 고향 평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소설이리라.
◈ 「메밀꽃 필 무렵」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듯이, 이제 단편소설의 대명사가 된 효석의 단편중 백미인「메밀꽃 필 무렵」은 세련된 언어와 시적 분위기 속에서 낭만적 정서의 세계로 독자를 이끈다. 허생원 일행의 봉평장을 마치고 다음날 대화장터 까지의 70여리의 달밤의 길은 삷이 그러하듯 일상으로 걷는 피곤한 산길이지만 현실을 넘어 달밤의 낭만과 환상적인 분위기속에 지난날 사랑의 추억과 자식이란 인연이 어우러지는 정취를 묘사하여서 장돌뱅이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 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거음도 시원하다 자수성공으로 당대에 수십일 갈이의 밭과 여러 섬자가의 논을 장만하고,,,
사시나무와 자작나무도 오늘밤만은 살랑거리지 않았다.
위의 구절은 「메밀 꽃 필 무렵」중에서의 한 장면으로 서정성의 극치라며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이다. 이 글에서는 이효석은 동물적 상상력을 성적 모티브로 승화시켜 성적 본능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한다.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나 "산허리의 메밀밭이 달빛에 젖어 숨이 막힌다"등의 표현은 물레방앗간에서 성처녀와 달밤에 있었던 성적충동을 암시하는 것이다. 효석의 문학에서 개걸스러운 성적 묘사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성의 이야기에 돼지의 울음소리는 고요하고 긴장된 적막속에 여인의 신음소리를 은유한 점이며 여성의 육욕성을 기가막힌 기교로 은유한 것으로 성적본능을 수성(獸性)으로 표현하는 언어예술의 진경을 이루고 있다 한다.
메밀꽃이 하얗게 핀 달밤에 허 생원은 성 서방네 처녀와 딱 한번의 정을 통한다. 평생 처음이요, 마지막 기회였다. 허 생원이 성 서방네 처녀에게 잉태시킨 것처럼 당나귀는 읍내 피마에게 새끼를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당나귀의 까스라진 갈기, 개진개진한 눈은 허 생원의 외양과 흡사하다. 또한 허 생원이 술집에 들어가 충주집을 탐내고 있슬 때, 그의 당나귀는 암놈을 보고 발정을 한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하는 하는 아이들의 말소리는 허생원은 자신에 대한 조소처럼 느낀다. 이 작품의 두드러진 묘미는 인간과 동물의 본능적 애욕을 교묘하게 병치시킨 구성방식에 있다한다.
대화장으로 가기위해 달밤에 흥정천을 건너다 허생원이 물애 빠진다. 동이는 허겁지겁 물에 빠진 허 생원을 업고 등에서 따스한 아버지같은 체온을 느낀다. 허생원과 동이가 제천에 산다는 동이의 母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성처녀를 상기시키는 이미저리를 통해 허생원과 동이 두 사람을 혈연적 연결을 시키려는 의도이다.이러한 구성적 요소에서 글의 짜임새의 재미를 엿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소설에 인용된 시적언어의 어휘들이 우리의 정서와 아주 밀접하고 항상 생활에서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친숙해져 있던 대상들이라는 점에서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미학평론가 김현과 김윤식의 '80년대 비평책에서 가산 선생은 좌경향성의 작가로 좌파적이라 함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비논리적 이상향을 구호적, 선동적으로 나타내는 경향이라 하는데..가산 선생의 「노령근해」에서는 그의 구인회등 이러한경향의 인식을 탈피하고 자신의 자기의식을 표출 하려는 자각적 동기부여를 가진 소설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좌경향성을 떨쳐버리고 그가 안주할 곳은 자연의 순수한 미의식을 담는 고향이란 점이라 합니다(*김현은 미학평론가 출신입니다)
이 작품은 한국 현대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만남과 헤어짐, 그리움, 떠돌이의 애수 등이 아름다운 자연과 융화되어 미학적인 세계로 승화된 단편 소설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사회의식을 지향하고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인간의 순박한 본성을 그려내는 주제의식과 달밤의 메밀밭을 묘사한 시적인 문체가 뛰어나 우리 문학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는데 기여한 작품이라한다.
우리나라 문학이 이만한 서정성의 아름다움이 또 있슬련가??
대부분의 문학에 性의 아름다움을 표출하듯이 " 메밀꽃 필 무렵"에선 허생원의 애틋한 사랑으로 흥정천 개울건너에 물레방아를 은밀한 사랑의 장소로 만들었다. 이것이 작가 본인의 마음을 드러낸 한 단면일 것이다.
또한, 소설속에서는 평창의 서정을 잘 표출하고 있는 바 옛부터 평창 땅은 메밀을 많이 심어 왔다. 메밀꽃은 다른 유희적인 꽃들이 다 지고난 다음, 늦 여름에 피어 천대받는 서러움 속에서도 소작 농부들은 자기의 생가 뒷산 화전 밭뙈기에 눌러심어 메밀 꽃이 떨어진 알갱이를 갈아서 묵과 국수로 한 끼를 연명하는, 부자들은 먹지도 않지만 소작농에겐 꽃이 대상이 아니라 곡식으로 사랑받던 가난한 농부의 양식이었던 것이다.
작가 효석은 그의 고향, 평창땅의 어디에나 척박한 산비탈에 심어진 푸성귀같은 메밀꽃을 순백의 하얀 메밀꽃의 시적 감각의 언어를 통하여 농부들의 순박한 마음을 표출하였다. 이것이 그의 고향땅 평창을 향토색 짙은 아름다운 서정의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 효석 백리길
역사적으로는 1912년대에는 읍내장(천변리)과 진부장(하진부리)이 5·10일, 대화장과 미탄장(창리)이 4·9일, 봉평장(창동리)이 2·7일에 개장되어 5개장으로 증설되었는바 이 소설속에서는 봉평장 다음 장이 대화장으로 각색되어 있습니다. 그는 4살때 진부에서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했고 여섯살때 아버지가 진부면장으로 부임하며 봉평으로 이사했습니다. 여덟살때는 백여리 떨어진 평창읍에 보통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하숙하였으며, 방학때 100여리 길의 봉평 집으로 가자면 진부면으로 가는 전령의 우마바리에 실려서 신리쯤에서 내려 봉평으로 걸어갔을듯 합니다.
1870년대 오면 지도에 의하면 성마령을 넘는 길은 대로이지만 강릉가는 길은 험하여 중로였으며, 김홍도의 관동팔경 유람에 정조는 관동의 풍경을 그려줄것을 부탁한 바 화첩 제일 처음 그림이 진부 수항천의 청심대로 당시에 서울에서 강릉 구간의 도로는 현 태기산을 넘는 영동고속도로는 험준하여 안흥- 방림- 대화- 신리- 모릿재- 진부- 대관령을 넘는 길로 봉평으로 가는 지금의 장평은 샛길이었슬듯 하며, 또한 과거 평창에서 대화 가는 길은 뱃재를 넘는 신작로 이전에는 3,1운동시 평창 하일과 대화의 연계나 동학운동시 일본군은 방림 삼거리가 아닌 운교에 주둔하여 후평리 전투로 제압하던 면으로 보면 효석 100리 길이란 아마도 현 주진 다리를 건너 뱃제를 신작로가 아니라 저학년 시절에는 옥고개-다수- 하일- 방림으로 다니던 길인지도 다시 가름해 봐야 되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 이전엔 우리나라는 수운으로 물자나 세미가 운반되었으며 육로는 파발마가 다니던 길로 일제 강점에 약 10년간 우리나라 국토를 측량하여 현재에 쓰이는 지번을 확정합니다. 그리고 사방사업으로 제방을 쌓으며 신작로와 관개수로에 의한 논이 발달되는데 이는 대략 20년대 초반이기에 효석은 1914년에 평창초교의 입학시 봉평까지 그렇게 쉽게 걸어다닐 문제는 아니었던듯 합니다.
♣ 메밀의 유래
메밀은 조선 선조때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였다 합니다.조정에서 궁핍한 백성을 위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곡식이 무얼까 고민끝에 중국으로가는 사신보고 중국에 알아보라 하였다. 그래서 사신은 중국엔 뭐 좋은 품종의 곡식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중국사람들이 선듯 메밀 씨앗을 공짜로 주었는데 음흉한 짱게들은 속셈이 따로 있었다 합니다.
메밀은 독성이 있는 식품이기에 약을 먹어야 하니 메밀먹고 탈이 나는것을 방제하기 위해 약을 먹어야 하는데 이 약을 팔아먹을 속셈에 메밀을 꽁짜로 주었다 합니다. 그런데 조선에서 메밀먹고 아프다는 이야기가 없자 어찌된 일인가 알아보고 오라고 조선으로 사신을 보냈답니다.
함경도 어디쯤을 지나며 민가를 들여다보니 메밀국수를 만들고 단지에서 물을 떠서 국수그릇에 넣고 말아서 먹더랍니다. 올치 필히 이 사람들은 밤새 아프다고 난리를 부릴테니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군 하며 일행은 짐을 내려놓고 밤을 새워 기다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일행은 그 단지 물이 무엇인가 확인해 보았더니 물속에 무우가 들어 있더랍니다. 메밀의 독을 무우 즙이 중화시켜 안전한 식품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 선조의 지혜가 보이는 대목입니다. ( 메밀이 생명에 위험한 식품이 아니라 생선조림에도 무우를 넣어 독성을 무우가 중화시키듯 모든 음식엔 각기 독성이 조금식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의 출처는 '80년대 어느 교장 선생님 서재에 헌책이 있어 집어 들었는데 고책의 한글은 지금처럼 한글이 쉽지않은 언문인듯 읽기 어려워 교장선생님이 풀이해주신 이야기 입니다.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생산성이 낮은 작물이지만 메밀 막국수와 메밀 부치기는 부담없이 제 맛을 즐기는 먹거리입니다. 소뎅이에 얇게 부쳐서 따스한 부치기를 먹거나 막걸리 안주는 물론이고 출출할때 전놀이의 간식용으로도 일품의 웰빙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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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시대 3부에서는 이효석의 영서 3부작중 봉평을 배경으로하는 「산협」속에 평창의 역사를 비춰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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