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 이효석의 진부시대(4부)
이효석은 평창 보통학교 시절 방학때 등엔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진부면으로 가는 전령편에 달구지에도 메달리고 산길은 걸어서 백여리 떨어진 봉평 집으로 당도하는 평창초교 시절의 추억과 경험이 그의 문학관에서 향토적이고 낭만적인 서정을 드러낸다. 「메밀꽃 필 무렵」 은 방학을 맞으며 평창에서 봉평 집으로 100여리 산길과 개울을 건너 걸어야 했고, 늦은 밤에 집에 당도하기에 달밤에 비취는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듯한 인상과 작가의 경험이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겠지만 이효석의 문학관은 「영서의 기억」이란 자전적 글에서 보듯이 평창 보통학교시절 이루어지는 어린시절 정서속에 인간의 애욕과 자연, 도덕적 윤리의 모럴에 자연속에 인간의 문제를 심미적으로 다루는 원초적 본능의 사랑을 향토적, 서민적 삶 속에서 표출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작품인 것이다.
이렇게 영서의 3부작이라 일컷는 「메밀꽃 필 무렵」이나 봉평의 농촌을 무대로 하는 「산협」, 개화기 시대의 진부를 배경으로하는 「개살구」 그리고 그의 자전적 글인 「영서의 기억」에서 초교시절의 평창읍의 향토색 서정은 물론 그 배경으로 평창의 역사성을 잘 드리우고 있다.
여기서, 1장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그의 고향상실론을 문학의 이해의 관점에서 다시한번 거론해 봅나다. 효석은 「영서의 기억」이라는 자전적 글에서 영서의 기억이라고 하여도 나에게는 읍내의 기억이 있고 마을의 기억도 있고 산골의 기억도 있으나 가을 기억으로는 산과와 청밀과 곡식과 농산물품평회의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
또한, 나의 반생을 푸근히 싸주고 생각과 감정을 그 고장의 독특한 성격에 맞도록 눅진히 길러준 고향이 없다. 그것은 고향의 관념이 희박하고 세계주의와 또한 초라한 고향은 눅진하고 친밀한 회포가 뼈속까지 푹 녹아들 여지가 없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찾아야 할 진정한 고향을 잃어버렸다 한다. 이러한 글들을 너무나 직역적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은 효석이 서울로 유학 후는 고향엘 한번도 다녀가지 않았다 하는등 급기야는 문단의 비평가들도 이 문제에 해답 찾기에...그런데 이런 이야기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영서의 기억」의 책 전반부엔 여학교를 나온 소녀와 오대산 입구정도로 꿀을 받으러 갔다가 늦었다 하는 대목에서 당시 소녀내 집에는 축음기가 있었고 아마도 '20년대에 다녔다면 서울의 여학교일 것이란 점에서 진부에서는 상당히 상류가정집 여학생이란 점과 꿀 받으러 가서 늦게 돌아로게 되자 머슴이 이등교 아래서 기다리는,, 당시에 신분상으로도 진부에서는 엘리트 계급아닌가 하는 여학생과 효석이 이렇게 친할 정도라면 한 두번의 만남이 아니라 아마도 효석은 대학 재학시 방학이면 진부 집으로 내려와 여러번 친숙하게 된 느낌을 받는 문장이다.
또한 「산협」, 「개살구」 는 평창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이 배경속의 봉평과 진부의 구성에 있어서 소금받이로 문막까지 나가는 공간적 구성이나 당시 봉평에서 진부로 나가면 똑바른 신작로의 표현과 당시 진부의 상업에 박달나무는 목기로 가공되었기에 전기가 들어오고 목공구가 수입되는 효석은 진부의 지리지적, 문화적 생활도 익숙해져 있었는데,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을 가보지 않고는 서술이 불가능하기에 향토적이라함은 가상이 아닌 실제의 리얼한 사실이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스스로 쓴 「영서의 일기」에서 생각과 감정을 그 고장의 독특한 성격에 맞도록 눅진히 길러준 고향이 없다. 또한 친밀한 회포가 뼈속까지 푹 녹아들 여지가 없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찾아야 할 진정한 고향을 잃어버렸다 한다.이 글에대한 해석으로는 진부서 출생하여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던 기억과 여섯살때 부친이 진부면장으로 취임시 봉평으로 이사를 내려오고 봉평생활 2년만에 평창읍의 보통학교 6년을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여 경성고보와 경성제대를 다니는등 수시로 옮겨다녀야 했기에 우리에 일상의 농촌 모습처럼 한 지역에서 대대로 이어 살지 못하여 고향의 추억이 적다는 표현이지 서울 상경후 고향을 한번도 안 내려갔다는 뜻은 아닌것이다.
필자사 이 부분의 고향상실론이;라는 점에 집착하는 것은 전기 작가가 아니라 그의 문학적 이해에 향토적 서정이라하며 기실 그는 고향을 한번도 내려가지 않았다 한다면 이는 그의 문학적 이해에 큰 괴리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러한 향토성이 추상적이라면 그것은 날 무딘 도끼처럼 어렴풋한 가공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그는 방학이면 시골집에서 마을의 풍경을 접하던 추억들이 스며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의 문학의 향토성이란 스스로의 몸으로 체득한 향토적 냄새의 표출이란 점이다.그러므로 그는 고향을 다녀가지 않았다는 소문들에 급기야는 평론가들이 그 원인을 진단한다는것 자체가 모두 오류이란 점으로 돌려야 하는 것이다.
이효석 재단은 지난해 연말에 서울에서 그의 고향 진부로 내려왔으며, 참으로 오랜 시간 후에야 효석의 문학은 고향에서 꽃 피게 되었습니다. 그간 봉평은 「메밀꽃 필 무렵」소설의 문학지로서 척박한 땅에 사는 보잘것 없는 메밀꽃을 아름답게 가꾸어 향토색 짙은 문학마을로 가꾸었습니다.
이는 손 쉬운 일도 아니겠지만 그러기에 봉평인들이 노력한 열정의 소산입니다. 봉평은 앞으로도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메밀꽃 향기 짙은 문학의 공간을 아름답게 창출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부로서는 효석의 고향으로서 나아가 그의 문학의 산실로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또한 평창으로서는 「영서의 일기」에서 보이듯 그의 유년 시절에 품평회등을 쏘아 다니며 향토의 풍미와 해맑은 모습을 그리고 있듯이 그의 유년시절의 자아를 형성한 고장으로서 이제, 이 모든 부분은 하나의 효석의 아름다운 향토성의 전원의 문학적 공간으로 연계되고 확대되어 발전되 나가길 기다립니다.
필자는 예전 평창초교 100주년에 앞서 100주년 기념으로 효석의 동상을 건립하자는 취지의 글을 게시하였었습니다.
[평창초교 100주년에 만나는 가산 이효석 선배님은??] http://blog.daum.net/kkks1/361
이번에 우리 동문의 힘으로 모교에 가산 이효석 선배님의 동상을 건립함이 좋치 않을까요??
이는 100년 역사의 한 정표의 기념비로 상징성을 갖추어야 할텐데....혹 정치인이나 경제인의 선배님들이 계시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한 싯점의 일이지만 가산 이효석 선배님은 우리 대한민국이 영유하는 한 언제나 그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는, 시대를 넘어서는 지성으로 국문학사에 영원히 우뚝 서 있습니다.
평창초교의 모든 동문님들은 이 가산 선배님의 높은 업적을 기리는 정표를 마련함도 좋으리란 생각입니다.
우리에게도 선배 위인이 계시는 것은 평창초교 100년 역사의 자랑이고, 후학들에게는 희망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현명하신 선, 후배 동문 여러분님의 중지를 기다리겠습니다. 이러한 글에 의해서 효석의 모교인 평창초교에서는 후배들의 손으로 선배님의 동상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보통학교 시절 그가 뛰놀던 자리인 평창시장에도 만인들에 귀감이기에 높다란 효석의 동상은 세워져 있습니다.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에서 대화 장으로 가는 허생원의 이야기는 흥정천을 건너며 끊어졌기에 독자들이 궁금할 수 있는 대화장을 보여주는 대화장터는 "이효석의 시장" 이라든가 아니면 "허생원의 장터'라는 명칭을 사용하든 키 워드를 이입하여 대화에서는 장날을 맞으러가는 효석장날이란 장날의 모습의 축제도 좋을것 같습니다.
또한, 가산 이효석의 (子) 우현 선생님의 말씀에는 앞으로 부친 가산 이효석 작가의 출생지는 협소적인 어느 지역에 국한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불리듯 이효석도 어디에서나 평창 生으로 기입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은 효석문학의 범위가 영서지방 평창 전 지역으로써의 광역화란 말씀으로, 이러한 하나의 문화권의 주체를 마련하자는 의미인듯 합니다.
이렇게 평창군 전 범위의 이야기를 모델로 했던 효석의 문학세계는 이제 각 지역의 광역화되는 추세에 맞추어 효석 백리길처럼 영서지방의 전반에 걸쳐 횡계, 대화, 평창등에 이르기까지 평창군 전 지역으로 확산되어 하나의 문학 공간으로 이어져 발전하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상으로 가산 이효석 작가의 문학세계와 이에 출생지이고 문학의 전원적, 향토적인 배경지로서 문학에 비추어지는 평창인 역사의 이해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가산 이효석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효석의 진부시대(3부) <영서 3부작에서 평창의 이야기들,,,> (0) | 2019.09.08 |
---|---|
이효석의 진부시대(2부) <영서 3부작에서 평창의 이야기들,,,> (0) | 2019.09.02 |
이효석의 진부시대(1부) (0) | 2019.08.11 |
No. 4423 [수정요청]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의 본관은 전주입니다 <스크랩분> (0) | 2018.04.11 |
평창역사의 재해석에대한 과제는?? (0) | 2017.01.30 |
가산 이효석 선생님의 글에 댓글에서.. (0) | 2014.10.06 |
[평창]이효석 선생 유해 평창 온다 (0) | 2014.09.27 |
평창초교...모교의 교정에서,, (0) | 2012.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