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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평창 - 난 그곳에 가고싶다

요즘 나의 생각은 기우[杞憂]일까??

요즘 나의 생각은 기우(杞憂)일까??


  기우[杞憂]라 함은 옛날  ()나라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봐 걱정을 하다가 급기야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는 얘기에서 유래합니다. 바뀐 뜻 지나친 걱정이나 쓸데없는 걱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 출전 열자()》의 <()>에 전한답니다.


이야기 하고 싶은것은 지난 1일부터 보름간 싸이월드는 접속이 않되었다 합니다. 싸이월드는 어제 겨우 도메인 주소를 1년간 연장했지만 아직 100%의 기능을 찾아가지 못한다는데,,월급도 밀려 부도가  되었기에 종업원수가 격감되어 일손이 모자라는 탓인지??


대한민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대표주자였던 싸이월드(cyworld.com) 는 한때는 가입자 3,200만명, 월 접속자 2,000만명을 기록했던 명실상부 국민SNS였습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지난해 월평균 이용자수(모비데이즈 조사 기준)가 각각 910만명, 880만명인 점에서 볼때 2,000만명이라면 이는 우리나라가 컴의 일등국가였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기록아닌가 합니다.


싸이월드는 디카가 보급이 되며 1인 계정 중심 미니홈피로 SNS 전성시대의 장을 열었다. 사이버머니 '도토리로 캐릭터, 음악을 구매하여 장식하던 미니홈피는 3040 세대’의 추억 저장소였다. 지금의 기성들은 약 20년전부터 학창시절에 미니홈피에 자신의 사진을 기록하였는데 당시로서는 사진 저장에도 절대적인 공간으로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1인 SNS 시대 맞물려 10년간 전성기였던 싸이월드는 해외진출 실패와 모바일시대에 빠른 대처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프리첼이 인수하여 유로화 하게되자 고객의 이탈이 많아지며 종내엔 부도를 맞게 되었다.


그로 인해 예고도 없이 이달 1일에 접속이 않되자 가입자들은 자신의 사진등 백업을 위해 몇일 간이라도 재개통을 요구하는등

이에 15일에 도메인 주소 ‘cyworld.com’은  인터넷 주소 소유권을 1년 연장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기능이 완전 복구되지는 않은 상태라 합니다.

  

 과기통신부에 의하면 싸이월드에 올린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이용자에게 있고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기때문에 싸이월드 측에서 일방적으로 사이트를 폐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윌급도 못 줄정도로 부도가 나는판에 어떻게 보호할 수 있슬까 하지만 만약 부도처리 될때는 개인정보 유출등엔 보호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을 볼때 인터넷시대에 모바일 혁명으로 정보 만능시대에 일상을 풍족하고 원활하게 해 줌은 틀림없지만 때로는 개개인의 정보가 유출되어 참혹한 변을 당하기 쉽상이다. 우리는 흔히 저금리로 은행 융자를 해 준다는 멧세지를 종종 받는다. 하지만 이것은 쌍팔년도 방식의 구닥다리다. 여기에 속아 넘어갈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엇그제 뉴스에 아이들에게 보이스 피싱의 대체 방법도 가르쳐 주던 교사가 3억을 보이스 피싱 당했다 한다. 범인들이 주는 앱을 깔게 되고 또한 건보료를 기준으로 시중 은행 대여섯 곳에서 그의 이름으로 융자를 해갔다 하는데 시중은행은 최소한 당사자의 도장, 싸인으로 본인의 확인절차도 없이 융자해 주는 시대에 이러한 잘못이 되기 이전에 스스로가 지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보이스 피싱도 진화하여 고등 사기의 마술을 부리기에 이를 지키기엔 쉽지 않키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본인으로서는 기우(杞憂)일지 모르지만 요즘 흔히 어떤 포털 사이트에서는 카카오톡으로 모든 로그인을 통합할 수 있다. 모바일 혁명에 자신의 스마트폰에 카카오 로그인 하나로 통장이나 G.P.S 까지 연결되어 각종 주문이나 배달 금융까지 용이한 써비스 시대가 되엇지만 본인은 그렇게 통합 로그인을 하지 않고 조금 불편해도 각자에 별도의 로그인을 하고 있다.


블로그 로그인이나 카카오 로그인이나 심지어 앱에 만보기나 G.P.S 를 이용한 싸이클 거리등은 필요한것 제각각 로그인하고 있는데 만약 이의 예에서 보이스피싱당한 교사도 본인과 같은 방법을 택하였다면 3억을 보이스 피싱 당하고 집을 필아야 갚을 수 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슬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과거에는 은행은 자산관리를 해 준다고 열심히 선전하였다. 물론 지금도 실행하는지는 모르지만 자산이라하면 동산과 부동산인데 대게들 부동산이 훨씬 값나갈 것이다.  어느 부자가 은행에서 편하게 알아서 자산관리를 해 준다하니 얼마나 고마울까? 그래서 시중 은행의 저금통장 번호와 부동산으로 여기 저기 땅의 주소등을 모두 기재하였다. 그래 이제 혹 누가 내 땅을 가짜 등기로 팔아 먹지도 못하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날 어음의 배서 3번째인데 이 어음이 부도나자 줄줄이 알사탕에 모든 배서자중 유일하고 본인만 재산가라 자산관리의 물건 모두가 압류 당했다.

정신을 차리고 할 수 없는 마음에 땅이라도 팔아서 뭘 해야지 하고 땅을 알아보니 이미 딱지가 다 붙었다. 한톨의 땅도 속일 수 없었다 하는데 이것이 은행으로서는 빈틈없이 자산관리를 잘 해주는 예일 것이다.


이제 모바일 사회에서 자고나면 오늘도 먼 과거로 돌아서는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IT 현실의 사회에서 살아나가자면

국가가 나를 보호해 준다는 생각 이전에 진정 나의 정보는 불편한 방법이라도 최대한 내가 지켜나가야 더욱 현명함이다. 인터넷이나 모바일의 무한 과속 경쟁의 시대에  다 믿지 못하는 나는 정녕 하늘이 무너질까 무서워 집에 들어가니 이제는 천정이 무너질까 무서워 했다는 말처럼 인간으로서는 IT 혁명속에 어찌 할 수 없다는 것은 기우는 아닐가 합니다.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만 하고싶은 이야기는 본인의 블로그에는 약 400만자 정도의 글이 있습니다. 물론 누가 읽어주기는 아마도 이번 평양축구관중보다 더 관객은 없지만 대부분의 글은 매일 자정에서 새벽 3시에 쓰는데 어떤 정보의 데이타나 인덱스를 정하고 합리적으로 써야 되는데 그렇게 한 것은 한점도 없이 제목만 설정되면 쓰면서 생각하기에 쓰면서도 한 페이지 앞을 모르고 또한 분량이 얼마큼 나갈지도 모르고 쓰는 엉터리들이라, 그것도 오자의 교정과 탈고를 한다면 시간이 걸려서 그냥 게시하는등,,, 성의도 없었지만 그래도 400만자는 단위 시간당으로 환산해 보면 이조 실록보다 더 만은 분량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 안팍의 일들을 모조리 기록한 이조 실록은 이조 600년간에 1억 오천만자라 합니다.  그러면 600년으로 환산하면 년당 25,000자 기록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블로그 10년 좀에 년간 4만자이니  단위 시간당으로는 혼자 쓰는게 실록보다는 더 많은 분량을 가지고 있다고 끙 하는 자부심이나..

그런데 지난 봄에는 다음(주)에서 블로그의 기능중에 희망자에 한해서 C.D로 만들어주는 불로그 북이란 앱 기능과 몇 가지 사항을 종료시켰다, 그 중 중요한 것은 배경음악 입니다. 


나의 블로그에서도 배경음악의 각 글의 내용에 알맞게 선택되어 있었다. 팜송은 가락의 아름다움도 다양하지만 가사는 詩적 언어로 되 있는 것이 많다. 가령 평창의 임란사라는 게시글에선 스탈린 호위병으로 이름을 날린 코카셔스 지방 출신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강한 기질에 용병들로서 그들의 죽으면  한 마리 백학이 되어 돌아 온다는 "백학"이라는 쏘제 음악과  두고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글엔 "매사추세츠"라는 곡으로 그들이 뛰어놀던 매사츠세츠를 그리워하는,,,"어머님전상서"에는 요단강 저 넘어에서 언제라도 돌아올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의 팝송등 약 1~2백곡이상이 그 분위기를 잘 맞추고 있었는데 이도 종료되었다.


 물론 음원의 소유권은 본인에게 평생권이지만 지적 소유권의 대상체라 여러 이유에서 할 수 없었기에 배경음악은 더욱 연구하겠노라 하면서 일방적으로 종료 시켰다. 지금으로선 동영상으로 음악등을 올리는 방법은 있지만 대부분 저작권에 말린다. 그로 인해 다음의 카페나 블로그는 시청각이라는 종합예술에서 귀로 듣는 음악이 빠지는 절름발이 신세중이다.


이렇게 지난 2월 배경음악이 종료되었슬때 블로그는 반이 망가진 기분이라 아차 내가 기술을 믿으면 안되는구나, 과학적 방법은 나를 편리하게 해 주지만 그곳에 안주해서는 안되는구나 마치 카카오톡 로그인의 통페합처럼 편리함만은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 블로그의 천여 개 글(비 오픈까지)을 USB로 일일히 저장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 기회에 글을 탈고하여 책으로 만들어야 겠다는 계획으로 글을 수정을 하여 저장을 하는데 USB에는 인터넷 글을 워드로 전환해야 하는 불편으로 워드는 호환용이 아니기에 막대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기에 평창역사의 정립이란 글들만 모아 보았더니 이도 백만자가 넘기에 이를 책으로 만든다면 A4용지 한 장당에 11P글체로는 1,100여자이니 약 천여 페이지가 소요되고 이는 금액으로 두 장쯤이라 만만치 않은데 더욱 문제는 누가 읽어볼까 하는 문제로 인지세도 아닌 비매품으로 개인이 만들어서 관에서도 영구히 보존될까 하는 문제도 따르는 것이다.


본인의 글들은 과거의 역사의 왜곡내지는 굴절된 모습의 바른 정립의 이해이기에 다소 길어 보통 읽기에는 다소 곤혹스럽지만 언젠가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는 바른 설명의 되기 위함으로 그 예를 들면 영월은 지난 8월 14일에 고씨동굴에 10여년전 본인이 쓴 글의 역사를 찾아서 임진왜란당시 의병장 고종경의 창의비를 세웠습니다. 요즘은 지적 소유권 시대라 또한 본인의 글에 더 보탤것도 없이 원문 그대로 관제 보도하며 5m의 의병탑을 세운 것입니다.


이로서 영월은 유인석 의병장(춘천과 제천에 널리 알려진 의병장이나 춘천 태생에 제천서 의병 활동을 많이 하였지만 원래는 영월애서 의병을 창의하여 아마 이때 기록은 없지만 평창 사람들도 다수 의병으로 참가하고 이 증거가 현재 봉평의 봉산서재에 이항로 선생의 위패를 모시게 되는 동기입니다) 으로 영월은 의병의 문화, 예와 충절의 고장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만 평창은 저의 글을 자세히 보시면 이보다 더 충만한 자료가 많기에 아직 평창은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필자는 평창 역사의 전방위적인 역사를 아우르는 향토사가는 못됩니다만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정립해야 오늘의 역사로 바라 볼 수 있기에 역사 정립을 통하여  이 땅의 정체성을 그려 보이며 이러한 연구로 즉 오늘에서 과거의 역사와 교류는 미래의 도전이란 점입니다. 곧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들추어 오늘의 좌표를 더욱 밝은 곳으로 향하게 하여 먼 미래를 희망으로 이루자는 것으로 어쩜 본인은 자그마한 역사 계몽을 하는 것입니다.


엇그제 단양군은 인구 2만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29,900명) 앞으로 이에 준하여 여러 군들이 줄줄이 같은 궤도로 행진할 듯 한데 평창군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금 4만의 인구이지만 청년들은 도시로 떠나고 실버세대들만 남아 불과 몇 년 후면 산간의 경작지는 농부도 어ㅏㅄ고 채산성도 없어 자연으로 돌아갈 듯 하고 우리도 일본처럼 시골을 버려야 할 경우도 다가 옵니다.

 이에 아마도 멀지 않은 10년내로 일전 필자의 게시글처럼 정치보다 행정의 개편이 시급할 듯 보입니다.


http://blog.daum.net/kkks1/493  군수 나으리들이란 단어는 이젠 먼 옛말로 들렸으면,,,


문명과 문화는 이제 같은 동일선상의 횡으로 교류는 필요치 않은 시간대로 진행하여 종으로 서울, 원주로 치닫는 축으로 상승 합니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 강릉- 평창- 영월- 제천으로 다니는 버스는 과거엔 하루 열대가 넘게 있었으나 한 대도 없다 합니다 물론 패밀리 카도 아닌 마이카 시대에 따른 변화이지만 문화적 지향점은 상급 도시 집중화 현상에 이젠 시골을 이틀 내려가려면 서울서 ktx 출퇴근이 편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문화와 세태는 바뀌었으며 위 링크의 글에서처럼 郡은 서울 한 洞의 인구보다 못한데 군수는 각종 회의. 시상식등 연일 제일 바쁜 사람이지만 서울의 동장은 그렇치는 않은듯 보입니다. 그럼 서울의 洞은 문화가 저조하다는 논리일것 같지만 오히려 시민들은 더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것은 아닌가 합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인구 2만 시대의 각 군들은 주민에게 좋은 서비스를 하자면 연합 컨소시움의 광역시로 규합할 수 있는 지점도 다가 옵니다.


만약 이러한 광역체제의 도시화 현상이 유발되면 평창은 인근 영월, 정선, 횡성과 같이 영서의 강원 중부권 광역단체에 소속될 수 있는데 평창으로선 모든 문제에 기차타기 한다면 맨 꼴찌칸으로 밀려 예산도 꼴찌가 될 수도,,, 이러한 예상치로 가늠해 볼때 평창은 스스로의 입신을 위해 흔들리지 않는 역사를 갖추고 그들보다 영서의 박물관도 먼저 갖추어 영서의 가치관을 선도하는 문화를 가진다면,, 아니 지금에서도 주변 郡들보다 앞서가는 문화를 창출하자면 그에 공통에 기준은 청동기 역사 박물관 이란 점입니다.


평창의 하리 고조선 시대의 인골,,, 기화리 상굴의 5만년전 선사 유물,,후평리 토기등 모두들 춘천, 강릉 박물관에 전세살이 하고 있는데 이는 문화재청의 국가 자산이기에 어떻게든 평창으로 돌아와 이땅의 얼을 빛내야 하지만 평창이 영서의 청동기 박물관을 먼저 건립하면 같은 그룹의 비슷한 문화여건에서 타 군들은 똑같은걸 만들까요?? 그러기에 정선에서 출토되는 유물들도 영서권의 테두리안에 평창 박물관에서 빛을 발하여야 할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이제 인구 2만의 시대로 접어들면 평창의 범위를 넘어 인근 영월, 정선등이 평창의 문화권으로 흡수되어야 하는 그것이 역사를 통한 선도 문화권이란 점입니다.

이제 평창은 아리랑도 김삿갓 묘도 팽개쳤지만 다시금 역사를 다듬어 스토리 텔링의 문화를 만들어야 소재는 충만해 있습니다.


정선은 미탄 아라리를 들고가 아리랑 우물을 파고 영월은 동강 이벤트에서 김삿갓 문화에 이젠 그로도 충족치 못해 의병의 문화시대를 열고 있는데 항간의 말로는 평창 백일홍은 횡성 축제의  반도 안된다하면  그 중 가장 꼴찌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의 타계책으로는 평창은 영서 문화권의 기치를 드는 청동기 박물관을 비롯하여 평창 남부권의 천혜의 자원인 청옥산의 레져 문화 개발등 본인의 글에는 여러 안들이 있습니다


청옥산 육백마지기는 이번 여름 주민들이 관광객의 쓰레기에 골머리를 앓아서 관광 차들의 통행을 막아달라는 우습지 않은 안건에 그게 어디 삼팔선 넘어 북한 땅입니까??  이는 관객이 몰리면 이에 맞는 시설적 보완이 옳음이라 일전 저의 글에서처럼 청옥산은 평창아라리가 살아 숨쉬는 평창 남부권의 명산으로 여기에는 평창아라리릐 상징체와 오토 캠핑의 위락 시설과 나아가서는 천문대를 지으면 해발 1,250m에 단연 국내에 으뜸가는 천문대로 이에 도로망과 청옥산의 고원의 넓은 주차 요건등도 부대적으로 일급이기에 전국에 제일 각광받는 레져 타운이 될 것입니다.


 평창은 이러한 광고도 필요없는 문화 레져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1,250m의 고원위에 현재 약 600대 주차 용량과 완만한 왕복차선등,,부수적 여건까지도 충족한 육백마지기 고원 정상부에 오토 캠프장은 단연 국내 최고 수준으로 부상할 수 있으며, 캠핑카의 수익금도 만만치 않은 금액입니다.

 여기에 천문대를 건설하면 영월의 850m급과는 차별성을 가지며 단연 국내 최고위의 천문대로 각광 받을 것입니다.


또한 평창 중리의 수석박물관은 항간에 말로는 백 억의 건물이라 하는데 수석 몇 점과 기증자의 안면 마스크의 부조를 설치하고 있는데  박물관 學이란 그것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점은 다음으로 기고하겠으며 이러한 안면 마스크의 부조를 만들어 기증자 자랑을 하는 것은 박물학에도 벗어난 수석을 기증하고 그 수석이 평창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기에 그러한 밀납 인형을 만들어 걸어 둡니까?? 마치 북의 공회당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이것은 문화가 아닙니다.


유명한 간송 미술관장 전형필은 선대의 부유한 가산을 다 털어 문화재를 수집하여 정말 국보도 다수 있습니다만 그러한 전횡필이 스스로 자기 조각상을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후대인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모뉴먼트적인 사업에 일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수석 돌멩이 몇점 기증햇다고 자신이 자신의 얼굴을 밀납인형을 만들어 건다면 그것은 돈키호테적 우상이요 이를 어디 외지인들이 보고 간다면 평창 참 무지하다고 평도 할듯,, 그것은 당사자들만 욕을 먹는다면 이해할 수 있겠으나 왜 평창이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 불만입니다.

박물관 학과 수석이란 점에 어렵더라도 미학적 가치관에서 그 논리를 한번 써 드리겠습니다.

 

일전 월정사 사고본에는 박물관을 짓고 일본서 돌아온 이조 실록의 영인본을 전시 하는데 이는 70억 예산이 소요되었다 합니다.  그럼 수석 박물관은 백 억을 들이고 이러한 개인의 밀납인형 놀이를 해서야 그 취지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기에 이 건물의 평창의 청동기 역사 박물관을 탈바꿈 하고 이러한 박물관이란 국보 하나 없는 역사물 보존의 과제를 수행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이 땅의 삶의 정체성의 고리를 만들고 새로운 역사 인식속에 미래로 나아갈 기치를 들어 문화, 관광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자는 제안 입니다. 이러한 평창으로서의 소재는 저의 많은 글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두고온 고향 평창을 바라보는 저의 소견입니다.


고향을 잃은 자는 거울을 잃은 자 입니다.

거울을 잃은 자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버린 자 입니다.

그러기에 거울은 모든 것을 잘 비추어 보이도록

언제나 맑고 투명하게 닦는 노력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