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돌 체험관의 사색
평창에는 박물관이 두 개가 생겼다. 그 하나는 오대산에 오대산사고 박물관으로 일제가 오대산사고에 보관대되어 있던 이조실록을 밀 반출해가서 관동대지진에 불타 없어지고 학자들이 대여해갔던 40여권의 실록이 반환되어 규장각에 보관중이며 원 제자리인 오대산 사고에는 오대산 사고 박물관을 짓고 환수되어온 원본이 아니라 이미테이션의 복사본을 영인본이라 하며 가짜를 보관하고 있다.
참으로 한심한것은 원본이 없다면 몰라도 원본을 프린트한 복사본을 보관하려고 국가 예산 70억을 들여서 오대산에 사고를 지었다.
또 하나의 박물관은 올해 3월에 개장한 평창읍 중리의 돌체험관은 명칭은 체험이지만 그곳에서 돌에 관해 할 수 있는것은 눈으로 감상하는 수석 박물관이다. 수석박물관이라 하면 어감이 좀 이상한듯한 문제로 수석이 박물관학에 꼽힐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박물관의 정의는 인류의 대표적 문화유산을 수집, 보존, 전달및 전시를 하는 항구적 시설 기관으로 특히 그 전시는 일반 대중에게 지식과 교육이란 명제아래 즐거움을 선사하여야 한다.
여기에 본인의 의견으로 수석의 감상법은 수석 자체 본질의 이해나 인식력이 아닌 수석을 감상하며 다른 어떠한 것을 연상하여 매우 멋있다 하기에 그 멋의 관점은 개개인의 차이를 가지는 기호적( 嗜好. 사람이 좋아하고 즐기는) 사안으로 계통학적이나 문명사와는 다르기에 박물관학의 범주에 다다르지 못한다. 그렇다고 자연사 박물관이라 한다면 자연사 박물관은 자연의 희귀 현상을 그대로 보존하고 보여 주지만 수석은 돌 모양 그대로가 아닌 그 돌의 감상에 천태만상의 효과를 가지는 점으로 이는 각 개인의 취향에 따른 기호적인 모습을 이루기에 이를 자연사 박물관에 귀속시키는 문제도 억지 모순이란 점이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에 기인하여 박물관이란 용어가 아닌 돌 체험관이란 명칭이 속출한 것은 아닌가 하며, 수석이란 역사성이나 보존성, 희소성, 계통성등의 박물관학이 아닌점이기에 체험관이라 쓰는 거야 하는등의 빈스런 잡담에 꼬리를 물고 있는듯 하지만 돌체험관이라는 이름은 브렌드 명칭이고 기능은 박물관이다라고 말하면 박물관이 못되어 체험관이라고 말을 돌렸다는 빈정거림은 해결된다..
그간 오픈 후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에 포함하여 그게 박물관인가? 또는 뭐 볼게 있는가?? 아니먄 하루 두 사람 들어온다는데 하는등의 여러 루머들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평창인들은 이러한 수석 박물관을 건립하려고 얼마나 노력 하였던가?? 또한 앞으로 열심히 가꾸면 되지 않을까?? 여기에 열심히 가꾸면 하는 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고져 합니다.
하루 아침에 모든것을 만족스럽게 할 수야 없겠지만 돌 체험관이 그 이름에 명성을 더해가자면 현재에 보이는 현상에 몇 가지 문제는 수정화고 보완하여야 한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수석의 질의 문제이다. 박물관이란 그 양적 요소보다는 질적인 요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선택된 수석을 전시하고 있지만 여기에 한층 업그레이드 노력은 부단히 필요한 점이다.
돌 체험관을 돌아보며 느낀 점은 이곳은 어떠한 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즉 향토성의 수석 전시인지 아니면 세게사적인 수석의 전시인지 그 칼라는 미약한듯 하였다.
평창은 하일과 입탄이 청석의 산지로 질 좋은 경도 2,5의 청석이 출토되는데 이에 따른 평창의 수석의 정체성의 칼라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도 아니었고, 국제 수석대회에 출품되어 견줄 수 있는 수석작품의 전시도 아니다.
수석이 산수화등 여러 이름으로 감상되는데 그 중 뱀이 또아리치고 죽은 희귀한 수석도 잇다. 그것은 화산폭발에 마그마의 용암이 뱀을 덮치자 뜨거워 또아리 형태로 죽고 마치 나무화석처럼 화학적 작용에 의해 돌로 변한 모양이다. 이렇듯 수석의 특별성도 있었으면 좋겠다.
위에서 뭐 그게 박물관이오 하며 핀잔조로 힐난하듯 돌체험관을 폄훼한듯 하지만 그럼 박물관은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나하면 박물관은 구경을 마치고 나와는 출구에서 감상자는 난 오늘 멋진 작품을 봤다. 또는 그런 느낌은 평생에 처음이야 하는 등의 감탄사가 연발될때 그 박물관은 폄훼가 아닌 모든 시민이 사랑할 수 있는 박물관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점에 양질의 수석을 대거 기증 받기에 노력이 있어야 하며 여러 사안에.한 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 그 특유의 색체를 제시하여서 이곳을 알리는 광고보다 더 빠른 입소문이 천리를 버져나가는 관광의 메카를 다져야 한다.
이러한 점은 어려운 점이지만 그 보다 박물관의 모양새에 절대 필요한 것은 감상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다. 가령 그 에를 하나든다먄 돌 체험관에 관람시 수석 작품에 "곰같은 형상이다"라는 글귀가 보인다. 만 사람 모두 얼추 곰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러한 글귀는 유치원생들에게나 필요한듯 하다.
감상은 이를 곰으로 봐 주십시요하고 부탁하여 천편일률적 감상법을 유도하는 것은 동일한 효과를 보자는 전제주의적 발상이란 점이다. 감상이란 각 개인의 학습능력이니 지적 수준등 다양한 문화적 차이로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이다. 그러면 난해한 작품을 감상할때 그 수준에 못 미치는 일반인들은 감상을 하지 말라는 제한적 이야기는 아니다.
감상이란 누구든 자기 작품을 감상하여야 하며 감상자의 지적 수준에 약하다 하여도 그것은 감상법에 문제는 아닌 것이다. 감상이란 작품을 처음보고 이건 곰이야, 아니면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덩치큰 개가 곰으로 보이는 느낌이야 하고 감상자의 느낌이 감상법이지 이를 곰으로 보입니다 하고 곰으로 봐 달라고 할때 그것은 이미 곰으로 지정되었기에 감상법은 아니란 점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렇듯 작품의 감상법이란 누구든 작품을 감상화고 느끼는 바의 각자의 천태만상의 감상의 감흥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곰으로 봐 주십시요 하는 문구를 보고 곰으로 볼 때와 그런 문구가 없을때 이를 보고 난 곰처럼 보이더라 하는 감상은 동일한 감상이 아닌 것이다. 곰처럼 봐 주십시요 하는 문구를 보고 곰으로 인식했슬때와 그런 문구가 없이 이 작품은 곰처럼 보인다라고 감상할때의 감정의 차이는 극과 극의 대조를 가지기에 이렇게 감상이란 본인의 눈 높이에서 본인 스스로 작품을 보고 사유적 사색으로 미지의 세계에 돌입해서 솟구치는 감흥이 우선이란 점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박물관학이란 역사석, 보존성, 특수성등 다양한 갈래를 가지지만 여기에 수석의 산지로 구단양과 평창에만 잇는 청석의 산지로 태백산아래의 영서적인 특유의 향토적인 색체를 가미하여 정체성을 가져야 함도 좋을 것이다. 그러기에 돌 체험관이 오픈되엇다고 준비가 끝난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인 것이다..
앞으로 무한 경주의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 앞으로 평창의 수석 박물관은 평창수석의 대명사를 앞세우는 이러한 일류박물관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돌 체험관을 알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이곳이 돌체험관이라고 펜스에 수십번 번복되는 일차적 표현의 데자인의 어지러움보다는 고차적, 심볼적 상징으로 하는 문제에서 부터 야외 돌의 조각의 문제까지 본인으로서는 마음도 없더. 돌 체험관 야외 뜰의 조각은 공의 원형으로 이러한 둥근 공은 삶의 우주론에 입각한 고승, 선사들의 부도비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지구본과 같은 오브제는 도약적인 세계화를 추구하는 이미지로 이곳 돌체험관의 색깔과의 매치는 좀 어색한 듯한 감상이다.
이러한 본인의 평창 돌 체험관의 사색에서 돌 체험관은 전국에서 아마도 두번째의 공립 수석 박물관인듯 하지만, 앞으로 여러 시행착오 속에 어려움이 많을듯한데 이에 혜안을 가지고 이제 시작이라는 관점에 더욱 노력하여 수석학의 전국적인 메카로 자리돋음괴 지향적인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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