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논문 2편을 재 탈고하여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율곡의 고향마을 가꾸기 세미나는 12월 3일 열립니다.
본 군에서는 만류하였으나 이제 계속적 지원아래 율곡의 문화는 탄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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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에서 그간 학자들에 의해 판관대 세미나는 3번정도 열렸는데 전부다 바른 이해로 다가서지는 못했고 또한 평창의 주장을 펼치지도 못했습니다. 세미나는 일반적인 이야기들만 치중하지 10년설이나 4년설이 잘못 논고된 점이나 서울대 교수들이나 여러 학자들 모두 조운에 대해 깊이 알지도 못하고 남의 것만 베께 관서를 대동강이라만 하는 학문적 오류들,, 이런 오류들에 휩쓸린 판관대의 입지적 재 소명등은 일반 학자들이 주창하는 예는 없엇습니다. 그렇다고 평창에 향토사학자들도 전무하여 부득이 필자로서는 이에 연구를 하고 가장 평창적인 이해의 글을 남깁니다.
현재 국민들은 상반되는 이데올르기에 아래 정치성에 강요당한듯 합니다.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쪽이 집권하면 다른쪽이. 그러면 다른쪽이 집권하면 전자 쪽으로 갈라지는 국민의 동요. 한 국가가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이러한 원인은 무엇이겠습니까?
다름이 아닙니다. 국민이 선망하고 따르는 국민적 대 학자의 부재입니다. 어떤 살람은 자신이 대 철학자라하며 자신의 혼자 생각이 뉴스될 이유도 없이 뉴스에 실리어서 어는 현역 대통령을 쥐새끼라고 표현하며 쥐새끼는 잡아야 된다고 하는 이 나라, 이래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국민은 여, 야라는 정치판에 윷의 걸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엣나에는 임호등 논객들은 문학과 푸유등을 화두로 삼았건만 요즘은 세치 혀만 나불거리는 정치 논객들이 벌 싸움 하는 시대인듯,, 이러한 놀음이 국민의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은 정치인을 따르기 보다 학자를 선망하고 따라야 합니다. 또한 국민을 헤아리는 학자들은 현 양당 정치체게를 서로 아우룰 수 잇는 묘얀도 만들고 하여 국민을 융합하여야 모두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학자들이 존경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논문에서도 일본의 명치(메이지)유신이 성공하여 국민이 존경하는 4대 학자가 메이지유신을 찬성했기에 국민이 학자들을 믿고 따라서지지함 일본은 근대 국가체제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령 친구들에게 위인이 누구라 생각하냐고 물으면 세종대왕, 다음은 이순신, 강감찬, 을지문덕, 김유신등 죄다 문인만 거론 합니다. 이리는 이러한 무인 국가는 아닙니다. 물론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사운 것은 시대를 지나서도 이 땅에서는 영원히 기려야 하지만 우리는 무신 국가가 아니고 문치국가 입니다.
한 나라가 발전하고 융성헉엔 문인이 숭상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번 평창에서 율곡의 고향마을 가꾸기의 미래는 밝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율곡의 고향마을은 문화마을로 가꾸아 나가 젋은 세대에 귀감이 되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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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향토사학을 전부 아우르며 관장하는 향토 사학자는 아닙니다만 평창에 사학자라곤 없습니다. 이번 어떤 평창 사학 책이 출간되었지만 참으로 애석한 점도 많아서 저자 당사자에게 동 책 400페이지 논고가 전부다 틀렸다 하여도 바쁘다고 횡하니 가버리고, 후일에라도 무엇이 잘못이냐고 따지는 반론도 없고. 물론 그간 평창사학을 위해 고생한 점은 가장 잘 알고 있지만 역사의 정의를 위해 말로 안 된다면 글로 조목 조목 피력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평창역사를 위해 누가 되는 점에 고민은 깊습니다.
필자의 블로그는 역사의 범위를 넘어서 정치든 경제든 인간의 삶의 범위내에서 내가 속고있는 점의 굴절, 오류등을 올바른 이해로 다시금 논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평창 역사의 전반에 걸쳐서 향토사가들의 논지와는 대별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간 저는 평창역사의 정립에 참으로 많은 논고를 하였습니다
평창의 진산 노산성에 국행 성황사와 임진왜란당시 노산성 전투는 없었다.
찬동의 도마치 골에 김삿갓, 가산 이효석 작가의 생애사. 하다못해 여만리 강변의 돌 누적단을 적석총이라 하공담, 왜담이라 알려졌지만 그것은 서낭단이라는 점이나 성마령 육백마지기의 여러 논고들,,
이러한 여러 논고보다 더 중요한 점은 기화리 쌍굴의 구석기말 선사인과 하리 고조선 청동검과 함께 출토된 20대 여자의 전신상, 후평리 , 종부리등지의 철기 역사등, 이러한 중요한 평창의 상고대사는 고고연구원의 리포트들이지만 평창 역사엔 평창 군지나 문화원의 역사책앤 단 한줄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점에 많은 논고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어는 책 전체가 평창 역사를 저해하는 것이기에 저자롯는 응당 이에 입장 정리를 하셔야 할 것이며 그렇치 못하다면 약 30여쪽으로 각 부분에 대한 바른 서술을 시도할 것입니다. 물론 평창에서 말이 많은 지명지에 대해서도 그 잘못의 전반적인 개요를 짚어 논고하였지만 참으로 할 수없는 동 책에 대하여 양심이 우선이기에 바른 이해의 논고를 하여야 하는 깊은 고민에 빠져 듭니다.
동 책은 지금까지 필자의 글을 보면서도 이에 반하는.. 그 얘의 하나로 동북 오층 석탑이라 하는데 이는 1915년쯤 다다시가 다녀가며 찍은 사진으로 이를 확인도 없아 잘못 논고한 점에 필자는 동북 오층도 아닌 동북 오중 석탑과 평창에 관한 기록을 찾기위해 다다시의 한국 역사 사진인 낙랑에서 조선까지 4천매 사진을 세번이나 일일이 검토 하였으며 동북 오중 석탑이 중리 노람뜰의 노암사라는 절에 있던 탑인가 하는 점에 동북 오중 석탑 사진의 뒷 배경이 여만리산을 향하는듯 하기에 G.P.S는 물론 시골갈때 여러멉 이른 새벽에 노암사 절터 내려가서 긔 배경을 수십장 찍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이를 경찰서 탑이라 하기에 경찰서 탑에 제 문제도 이미 고하였건만 참으로 힘빠지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까지 본인도 비참해 진다면 이제 율곡의 세미나 이후 수항리 사지가 수다사지 였다는 기록들을 찾아 조명하고 여기에 있는 탑에 대한 논고를 다시금 할 것입니다. 일전 수항리 탑에 대한 리포트는 너무나 오류이기에 이에 대해서 필자는 탑의 조형성 이론을 구사하며 동 탑의 원형까지 추론하여 어떤 상을 하나 받기도 했지만 자랑보다는 탑의 바른 이해에 대한 논리 증명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평에 탑 하나, 어디라 지적핮 않아도 아마도 부근의 삶들은 잘 알고 계실 것인데, 일전 신문사 편에 그곳을 갔습니다. 보자마자 동 탑은 발표다면 이는 국보는 힘들수 있으나 그냥 보물로 지정돌 수있는 범위는 있기에 이에 발표로서 이제 평창 역사의 정립을 마감할 것입니다.
남의 연구를 탓하며까지 더 이상은 머무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며 이후로는 후렴이 없는 평창 아리랑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까지의 아리랑 이론자들의 모든 학설을 뒤집는 아리랑 설을 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이미 아시아 음악의 이해. 아시이 음악의 연구, 융과 에른, 프로이드의 심리학등 읽어야할 여러 책들이 책장에 꼽아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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