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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의고향 백옥포

평창 "율곡의 고향마을 가꾸기 "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평창 "율곡의 고향마을 가꾸기 "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2020. 12.5, 05;00 平昌歷史硏究者 高 柱 浩

 

지난 12월 3일 용평면사무소 2층 대회의장에서 “평창 율곡마을 역사정립 세미나”를 비대면으로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평창군, 평창군의회, 평창문화원, 평창교육지원청, 용평면번영회, 용평면이장협의회, 봉평농협이 후원하고, 평창군민신문사가 주관햐여 평창율곡마을가꾸기 추진위원회가 개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이곳 판관대에서는 이미 세 번의 세미나가 발표되었고, 또한 평창군에서는 판관대 정비계획까지 만드는등 수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지만 그것은 판관대가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모두 신사임이 율곡을 잉태하였다는 잉태지 설화설을 주 모티브(모체)로 전제하였기에 판관대의 역사적 소명에 제역할을 못한 것이었다.

 

또한, 군 당국의 정비계획안이나 모든 세미나 연구의 연구자들은 유감스럽게도 오죽헌이 위치하는 강릉권 대학의 학자들이기에 오죽헌과 판관대 사이의 관계설정을 모호히 하는 등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도 시사된다. 이러한 내용으로는 박도식 교수의 판관대 리포트엔 신사임당은 결혼후에도 한성에 오를때까지 20년을 아예 전부 오죽헌에서 살았다 한다. 그러나 이런 기록은 율곡이 쓴 “선비행장”에 위배되는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이 오죽헌으로 전이되는 세미나를 하고도 평창으로서는 이를 자각하지도 못하고 고맙다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도 그러한 이미지의 동일선상으로 이해하여 식상한 듯 생각할 수 있으나, 이번 세미나는 외래학자들이 지역적인 특수성의 고찰을 주장을 못하는 점들을 간파하여 지방인들의 자주적인 세미나로 그 취지와 목적하는 바는 잉태지라는 설화적 의미를 넘어서 판관대는 신사임당의 반평생(18년간)의 신혼살림집으로, 또한 율곡의 어린시절 고향마을로 “평창 율곡 고향마을 가꾸기”를 위한 판관대의 바른 역사정립을 하며 판관대는 율곡 이이선생의 고향마을이란 역사유적지로서 문화창출의 시작을 알리는 세미나를 개최한 것입니다.

 

판관대의 역사는 약 450년 전의 일이라 전해지지 못하는 부분에 소명에는 어려움이 많지만 “평창 율곡마을 역사정립”을 위하여 필자는 율곡이 친히 쓴 “선비행장”에 기인하여 판관대의 바른역사를 조명하며 이에따른 실체적 역사물도 여러가지로 규명하고 있다.

 

선비행장에서“혹귀임영 혹거봉평 (惑歸臨瀛 惑居蓬坪)”이라고 서술한바 이는 “혹은 강릉에 돌아가기도 하고, 혹은 봉평에 거하기도 하였다”라고 해석되며 그 다음의 뒷 문장에서 “자당(어머니)께서 임영에 근친가셨다(後慈堂歸寧于臨瀛)”라고 기술한 바, 이 글중에 귀녕(歸寧)이란 친정 강릉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로서 판관대에 대하여 증거사료도 없는 10년설이니 혹은 4년설에 대한 여러서술들을 모두 배제하고 율곡이 쓴 “혹귀임영 혹거봉평”의 한마디로도 평창군 봉평의 백옥포리 판관대(현 용평면)가 신사임당의 신혼살림집이자 율곡의 고향임이 극명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또한 판관대가 실제적 존재하였다는 사실에 기록으로는 1,906년 봉평의 봉산서재 중건에서 사당에 봉안과 배향의 문제에서 의암 유인석은 봉평의 추성구 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판관대가 비어 있다하니 그곳에 율옹(율곡 이이)의 사당을 짓고 봉산서재보다는 그곳에 별도로 모셨으면 하는 편지에서 판관대가 1906년에도 존속되어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1,660년에 현종이 사방 오리의 사패지를 내린 것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전국의 토지 측량조사가 실시되고 1916년에 이곳의 지번이 생겼으며, 토지대장 정보조사에서 약 5만여평이 오죽헌의 권영달 소유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5만여 평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땅이 아니라 사패지란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세미나를 앞두고 연구하고 조사한 결과로 판관대의 실제 존재를 밝힌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유학사상의 최고의 사상가로인 율곡선생을 배출한 봉평의 백옥포리(현 용평면 소재)는 성현 율곡 이이선생을 배출한 고장으로서 햔재유학은 시대말적으로 마감되는 듯 하지만 이러한 어지러운 시대에 요구되는 바른 행동과 올바른 사람으로서의 인륜적 덕목을 가르치는 학문이기에 이 가르침은 시대를 넘어서서 언제나 교육의 기본덕목으로 강조되어야 하기에 율곡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이 고장은 역사문화로서 시대적 사명감을 부여앉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나갈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나 학자들은 흔히 새로운 문화정착에 아이콘으로는 다만 율곡을 스토리텔링화하여 레져와 관광상품을 계발(啓發)함에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려 하지만 그것은 2류의 근시안적인 행위이기에 효과가 작다 하겠으며, 용평에서의 율곡 고향마을 가꾸기는 사회의 지표로서, 자라나는 세대에 교육의 장으로 지향하여 새로운 문화론을 창출해감에는 2류라하는 레져등의 경제성 아이콘들도 부수적으로 동반되어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하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지역민들의 자주적인 세미나는 코로라 관계로 비대면으로 실시한 바 이곳 판관대가 신사임당의 신혼 살림집이고 율곡에게는 고향이라는 내용을 널리 알리지 못하고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또한 판관대의 바른역사의 이해인 동 세미나의 리포트용 책자도 아직 시작단계라 예산 관계로 인하여 일부 프린트용 책자로 대체하였던 바 앞으로 단정한 책으로 발간하여 여러사람이 판관대의 바른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으며, 또한 동 책은 후일에 판관대와 율곡, 신사임당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에게 제공되어 판관대의 바른역사를 인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의 논문 말미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위인으로 성웅 이순신, 강감찬, 을지문덕, 김유신등을 말하는 바 이에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위인은 모두 무인이라 이러한 문제는 문화국가로서 문화창달에 큰 괴리가 내포되기에 이제라도 우리에게 위인으로 율곡선생등 문인 지향형으로 전이되어야 할 시대적 사명감이 부여되는 것이기에, 이번 용평면에서 “율곡 고향마을 가꾸기”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서 전국 모든 국민에게 아우르는 지향점으로 그 범위는 넓고 무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번 “율곡 고향마을 가꾸기” 문화 창출은 보다 밝은 문화국가로서의 미래를 창출하는 시금석으로 그 의의가 크다 하겠습니다.

 

용평면과 평창군은 그간 잊혀지고 밝히지 못했던 잃어버린 율곡의 고향을 찾아서 율곡의 고향마을로 가꾸어 참신한 문화를 창출하는 것으로 이에 군민 모두가 힘을 모아서 밝고 도전적인 미래로 지향하는 노력을 경주할 때입니다.

 

이번 세미나에 판관대의 바른 역사 조명을 위해 멀리까지 찾아오셔서 판관대의 미래가 밝은 연구발표를 해주신 한국외국어 대학교의 박치완, 이영미 교수님. 그리고 강병수 하빈 연구소장님(전 중앙학연구원 정책실장)님에게 감사인사 드립니다.

끝으로 율곡고향마을 가꾸기에 노력해주신 용평면민들과 이를 주관한 평창군민신문에도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욱 힘써주셔서 밝은 평창의 역사문화로 자리돋움 하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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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율곡마을 역사정립세미나 열려(평창군민신문 기사)

-신사임당은 18년간 평창에 거주했다
- 판관대는 율곡의 고향마을이다.

 

전형민 승인 2020.12.07 13:12 | 최종 수정 2020.12.07 13:13 의견 0

 

지난 3일(목) 용평면사무소 2층 대회의장에서 ‘평창율곡마을 역사정립세미나’가 비대면으로 개최되었다. 평창율곡마을가꾸기 추진위원회가 개최하고 평창군민신문사가 주관한 이번 세미나는 평창군, 평창군의회, 평창문화원, 평창교육지원청, 용평면번영회, 용평면이장협의회, 봉평농협이 후원하여 개최되었다.

이날 세미나는 발표와 토론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제1발표는 “율곡고향에 대한 바른이해”라는 제목으로 고주호 향토사학자가 진행하였는데, 신사임당이 1524년부터 1541년까지 평창군용평면백옥포리 판관대에서 거주하였으며, 강릉의 오죽헌은 율곡의 외갓집이었으며 외갓집에서 율곡이 태어났지만 율곡의 고향은 여섯 살까지 자라난 평창군 용평면이라는 사실을 역사적 기록을 들어 논증하고, 1916년 토지조사부를 제시하며 판관대 일대의 5만여평이 오죽헌 일대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제2발표는 “율곡고향마을 인문지리환경 : 판관대 위치비정”이라는 제목으로 정원대 시인이 발표하였는데, 주로 강릉과 봉평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역사지리서에 나타난 자료들을 제시하며 설명하였고, 판관대 근방 거주자의 증언을 통하여 판관대의 정확한 위치를 비정하였다.

 

제3발표는 “율곡의 고향마을(백옥포리) 컨셉트 정립과 발전전략” 이라는 제목으로 박치완 한국외국어대 GCIC 센터장이 발표하였는데, 율곡의 고향이 평창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못하고 잊혀져 온 사실은 역사왜곡이라고 할 만큼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율곡의 생애와 관련된 파주, 강릉, 평창이 문화다양성에 기초해 각 지역이 보유한 율곡의 문화자원을 역사적 진실에 기반을 두고 차별화하여 지역문화콘텐츠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율곡마을을 전통유교문화교육과 결합해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킬러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평창의 과제라고 제시하였다.

제2부의 토론회는 강병수 하빈연구소장, 이영미 GCIC 선임연구원, 윤일구 평창군청 학예연구사가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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