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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나리의 골똘한 생각

우리의 학창시절과 80 년대의 고교 평준화의 의미는??

 

    [ 우리의 학창시절과 80 년대의 고교 평준화의 의미는?? ]

 

                                                                                       07.07.21 17:16

                                                                                                

 

우리 동창들이 고교 시험치고 들어간 다음해부턴 뱅뺑이가 시작 되었다.

공부 안 하고 , 시험 안 치르고 학교 다닌다는게 얼마나 좋으련??

 

백년지 대게의 교육정책은 아직 우리나라에선 자리를 잡지 못하였는지 , 그 다음부터는

밥 먹듯이 정책이 갈리고 따라서 학생들 또한 헷갈리는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럼 과연 어떤 프로그램이 한국형 교육제도에 알맞을까??

이젠 학부형이되는 친구들 자못 불만도 있으리라. 

 

그럼 지난 선례를 들춰보고 또 앞으로는 어느 방향이 좋을지 생각해 본다. 

 가장 명답은 5공 정부의 교육정책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우리는 70년대말에  고교를 졸업한 학생들이다.

그 시절엔 밤 10시면 라듸오에서 싸이렌 소리와 함께 청 소년 여러분 야밤이 깊었습니다.

이젠 가정으로 돌아 가십시요.

생각해 보면 자유의 제한이라기보다 국가적 관리가--내 논에 논물대는 것도 국가 관리가 될껴??

 

우리 중 ,고등 시절 표현해볼까 한다

일본 군국 제복 본따서 교복 만들어 입고 다녔다. 그나마 펌좀 잡느라  호끄 채우지 않고 교문

들어오다 걸리면 원산폭격이다.  그 불편한 호크때문에 우린 모두 까딱이가 되었었다.

 

내 ~ 기억 존 놈이다     이 0 0, 박 0 0-- 호크 풀고 교문 들어오다 선배 규율부장 아침 밥이 되어

버리곤 하였지.

또한  머리는 빡빡깍고 --- 훈돗시만 안 찾지 이건 쪽바리 학상이었네.

하얀 에리 아렌 로마자로 Ⅰ,Ⅱ,Ⅲ 학년 빳지 달고 --- 차라리 하나 둘 셋이라 쓰면---

 

동창녀여들 -- 웃지만 마이쇼.

색깔만 다를 뿐이지 치마하메 그게 교복이라기보다 차라리 수녀복이랄까---그 시절 무꾸 다리

감추기위해 그런 풀럭 풀럭한 치마를 채택하였던가-----

아마 요잠 젊은 학생들 그걸 입으라면 그 엄마부터 데모가 난리가 아닐껄...

 

우린 그리 개성이 없는 시절에--- 그래도 청운의 꿈을 꾸었다.

시간이 정지한 그런 환경에서 젊음을 불 사르며 이젠 그런 모습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된다.

 

전제주의의 소산같던 ,너무나 획일적이고 군국주의를 향수하는 듯한 그런 학교 개념이 일시에

무너졌다, 80년 민주화란 기치아래 머리도 좀 자율로, 비싼 교복도 선택적 자율로-- 그 불편한

호크가 네꾸다이로 대체 되었다.일본 사무라이에서 자유 분망한 미국 톰, 쥬디로 말이다.

 

그리고 가정교사는 근절시켯다.( 지금은 그것은 위헌 판결이 났지만--- 이런 미국적 자유는

다음에 한번 보자) 또 일류 이류 삼류의 서울 명문 다 폐기 처분 하였다. 이 얼마나 현명한 처사

이었으리---

 

그 시절을 군사 독재라고 몰고 있지만 ....그때엔 적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 한듯하다.

그 증거로 지금은 아웅산에서 작고하신 대통령의 경제 비서가 밤길에도 넘버 원으로 부터 삐삐가

오면 즉시 가까운 아무 곳이나 들어가 경제 의견을 개진하기도.

 

아니 박통이란 분은 자정이 넘어서도 쓰루 부총리네집을 막 찾아가는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러한 정열의 표증이 문교정책에서도 답을 구한듯 하다,

 

80년 고교 평준화 정책은 그 이후 2-3년 지나 그내들이 대학 진학시 마법의 효과가 나타났다.

명문이란 서울대 합격의 분포가  삼지 사방으로 흐트러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동네에선 현수막을 마을 어귀에 달고 개천에서 용난 것을 마을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진실로의  우리가 나아가야할 교육개혁인 것이다.

 

강남 몇 학군 학생들만 머리가 우수하고 그들은 과외든 무슨 수를 써서 타 학생과 차이가

두두러 진다면,,,, 이건 교육 정책을 필요 없다... 그냥 공부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직 고등학교 교과 커리큘럼은 전문지식이 아니다. 제반 교양과 지식이라면 교육정책으로

균등히 함아 더 좋을것 아닌가?? 

 

위에 말한 바와같이 사상도 철학도 없이 문교 정책의 실수가 연발되는....

국민정부 참여정부 열린 정부  다 죠타---

요즘 골든벨인가 보니 그걸 한문이라고 문제가 나오니 .....과연 그정도가 퀴즈가 될까---

누구의 탓인가???

 

그래도 불행한 우리 시대는 적으나마 그러진 읺았다.

까만 스파이크만 신고 다녔어도, 사지바지 고물고물 주름잡고 다녔어도, 엉덩이가 책상에 민덴

반들반들한 윤이 나는 교복 한벌의 우리들 ,,,,기껏해애 나팔바지가 유행이었지.

 

그것도 교문 들어올땐 원산폭격 감수하고라도 나팔로 맞추어 입곤 하였제.

나팔바지 대명사-- 김 아무개 , 최 아무개 -- 혼좀 만이 당했제. 그래 입고 다녀야 여학생들이

알아주고 우리의 건달 우상이 되어버리는 거니 .

 

참 잘했지--- 당국아 우리에게 원한건 무릎아래가 댕기처럼 붙어버린 일본식 바지를 선호하는데,

그나마 우린 모르고도 반기를 들었네.

 

그리곤 우린 19살 나이에 석굴암을 처음으로 보고 한달간 그 속에서 머무르며 한국 미학을 쓴다던

박중흥 선상이 만든 국민 교육훈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였지.

 

난 지금도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지 않는다. 그것만이 애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 우린  돌이켜보면 우습고 남루한 학창시절이지만, 그래도 그건 우리의 추억이라네.

 

추억 -- 그건 그리움의 향수이다...다신들 돌아갈수 없는 그 시절의  아련한 회상이라네.

인간은 누구나 이 추억 속에선 진정 가식은 사라진다.

 

대꾸 삼천포로 나가는데--- 다시 돌아와서

 

지금의 학생들---우리의 학창시절보다 더 퇴보한 부분이 있는 것은 누구의 탓이리오.

 

지금의 정치 행정 하시는 분들

세금만 흟어서 서규 지름세 비싸게 만드지 마시고

그리 갈팡 질팡 하는 교육정책의 해답은 바로 이 글에서 캐치 하시오

 출처 :평창 22.25동창회 글쓴이 : 후세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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