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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에 대한 나의 이해

Re:월정사탑에 대한 나의 미학과 예견 - 답글 감사합니다.

 

 

 

일전 저의 월정사에대한 10편이 넘는 글,,

 

* [월정사중창에 대한 나의 상식적 이해는?? ]

1) 월정사 8각9층 석탑의 역사적 소명과 나의 이해 

2) 월정사 8각 9층 석탑의 경계석에 대한 나의 이견(異見)

3) 보물 제 139호 석조 보살좌상의 조형적 의미는??

4) 월정사 8각9층 석탑에 대한 석등의 허상은???

 

이러한 글들을 통하여 월정사 중창의 허상이란 점을 상세하게 그렸습니다.

대체, 월정사 아니 불가의 사람들은 불교 문화론이란 무엇을 생각했는지 아니면 몇푼으로 사업계획서 내고 공사

시작하면 국가의 문화재 지원금이 풍족해서 다른곳도 아닌 천년이나 동일한 모습으로 존속하던 고즈넉스럽고 풍취

넘치는 경내에 서로의 요사체들이 마주치는 미로를 만들고 있는 점입니다.

즉, 문화는 없고 돈 잔치만 벌리는 점의 허구 입니다.

 

지난번 저의 글에서 올바른 모습의 월정사 중창의 가람배치에 대한 글은 생략했습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라 불사 중창 전부가 뜨락에 올망졸망한,,  무엇을 논하고 무엇을 더 얘기할 있습니까??

그리고 이에 이어서 상현거사의 "조선불교총람"이란 저서중 세존 사리가 10곳에 나누어 보관되었다는 가운데

4번째 항에 월정사 8각13층 석탑이라는 목록에서, 아마 이 책의 저술 연대인 1920년대까지는 동 탑이 13층탑이었다는

점에 의거 동탑이 13층탑이라는 다각적 분석의 글입니다.(아래목록들)

 

* 월정사에 붙이는 나의 글 (월정사 8각9층탑의 원형의 복원은 ??)

1) 월정사 8각9층석탑의 諸 문제 (서론)

2) 월정사 8각9층석탑의 諸 문제 (본론 1)

3) 월정사 8각9층석탑의 諸 문제 (본론 2)

4) 월정사 8각9층석탑의 諸문제 (본론 3)

5) 월정사 8각9층석탑의 諸 문제 (본론 4)

6) 월정사 8각9층석탑의 諸 문제 (본론 5)

* "월정사 8각9층석탑의 諸문제에 대한 건의"기록

* 월정사탑에 대한 나의 미학과 예견

 

그리고 이 글의 대단원의 마지막으로 "월정사 8각탑의 아름다움이여 !"라는 글에서 ,,

우리나라 1,200여기에 달한다는 석탑과 그 탑파양식에 신라 정형탑의 3층석탑과 고려 중기 이후의 팔각탑의

미학적 평론. 과연 통일신라 3층 석탑만이 최고의 아름다움일까??월정사 8각9층탑은 이방형이고 북방형인가??

왜 월정사탑은 이러한 평이 생겼슬까??

 

고려 중기의 정치적,지리적 이해와 불교론.사회론등 다각적 이야기를 통해서, 마치 일전의 정양호 선생의

 '70년 월정사 해체,복원 리포트에서 팔각탑의 대한 지식은 잘못이고 넓지 못한, 소양없는 글로 월정사 탑의

미는 북방형이라는 둔갑을 뒤집어 쓴 동 탑의 역사의 평의 가증스런 이 리포트의 오명을 제거하려 합니다. 

 

대체 북방이라면 어디를 말합니까?? 그러한 북방이 불교문화권입니까?? 정확성이 결여된 이야기로서

이런 연유로 월정사 현존 8각9층 석탑의 찬란한 미가 영어의 몸이 된듯 합니다.

후세백작은 바라다보는 동탑의 미는 현존 동 8각9층석탑의 완만한 듯 곡선처럼 보이는 직선의 8각과

부드러움 속에 흐르는 무게감과 아름다움의 미를 통하여 이는 불교 이상의 세계 즉 세존에 대한 공경의

경외심의 표현이란 점 입니다

 

저의 이러한 수식이 팔각탑이 품는자취에 미달할 것이지만 그러나 단연 우리의 모든 탑파를 통해서 제일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는 소감 또한 보태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00여기 모든 탑 가운데 단연 탑 제일의 아름다움이란 점입니다. 그 미학을 그려 보이겠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요.

 

동 탑이 13층 탑이었다는 가설을 문화재청에 신청한 기록은 위일전 글에 잘 설명되어 있어 생략하며

이러한 이야기들을 월정사 홈피나, 아니 조계종에 홈피에선 월정사보다 조횟수가 더 없는 단자리 숫자들이란

점입니다. 

 

일찌기 율곡선생께서 왈,,

오대산에서 소금강으로 넘나들며 월정사를 잘보며 하신 말씀은.. 스님들은 매일 없는 무(無)자나 찾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다 이 후세백작이 보태고 싶은 불만은...

우리나라 불교 모든 곳과 지금까지의 불교 역사에서 모든 스님들은 자기정진 뿐이란 점입니다.

이는 쌀 한톨이면 한달 양식이 되는데 무슨 재정총무가 필요하더냔 식으로 불교 역사는 기록성이 약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는 점입니다.

 

그쉬운 예로 당간지주 사용의 목적이나 사용된 사례 하나 적힌 기록도 없으며 당간의 크기등의 재원을 적은

사찰도 하나없고 아마 일제 강점기시에 대동아(태평양)전쟁 말기에 고철수집을 위해 당간이나 불상등을

강제 압수해 갔다면 이에 항거한 스님 한 명없고 이 잔학한 일본넘들을 몰래숨겨 기록한 문서 하나없다.

 

스님들은이 일본의 동조자들 입니까??  만공선사만 빼고는 전부 비 애국자들임엔 틀림없다.

동조자는잘 모르겠으나 일본에 항거한 레지스탕스나 아니면 이 폭압의 일제 강점기에대한 비밀스런 기록도

한 조각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글을 몰라서일까??

아마 모든 스님들은 한문의 대가들로 글은 자기 일신의 통달을 위한 경전 이해에만 사용되는등 사회적이지

못하고 오직 자기 통달만 추구하는 욕심쟁이들 같은..

 

3,1운동에 크리스쳔들은 만해의 독립선언이 월남 이상재선생의 생각인 독립청원으로 되었으면 평양리교회

등지에서 아마 33인이 무려 100인이 넘을 수도 있었는데 33인중에 불교계는 딱 두분뿐.

그래서 이 후세백작이 불가를 보는 느낌은??

조선시대에 문정왕후의 섭정으로 과거 급제를 통한 승려들의 양산에..

사명당과 그의 스승 서산대사는 승과시험을 합격한 똑똑한 분이라 그런지 임란때 불교에 기반은 국가수호란

점으로 호국의 길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모든 승려들은 무척 자애롭고 마음의 폭도 넓은지 속세의 한때의 멍애는 찰나에 불과한지라. 그저 열심히

갈고 닦아 득도하여 수미산의 정원사가 되고픈 모양입니다.

 

그래서 후세가 빈정거린다면 스님들은 국가관도 없고 사회도 저버리고 오직 일신의 자기 성찰로 자기만 천당

가겠다는 이기주의자들 이란 점입니다.

저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여타 종교들을 비난하게나 배타적이지는 않습니다.

제가 무교라고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무신론적 믿음자란 점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느님이 이우주를 만들었고 이 지구를 만들었다면 바로 지금 이 사회가 천당이고 극락이란

점입니다.

인간은 삶이란 희망과 절망의 희비가 교차되며 고뇌와 번민속의 바로 이러한 모든 경우의 인간생활 자체가

천당일텐데,, 그들은 현실을 버리고 하느님이 주신 천당이기에 득도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빽을 구하려는

욕심의 의도는 아닐까하는 의구심의 눈총을 가집니다. 

 

이야기는 외람되게 길어 졌으나 암튼 스님들은 역사성이나 사회성, 국가가관이 결여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가 월정사 탑이 대한민국 고유의 탑파 양식에 가장 찬란한 탑이란 이야기를 하고

세상 모든사람들이 모두들 그렇게 찬양한다 하여도 이 스님들은 찰나의 미동이라고 눈도 껌떡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저의 월정사 문화론이나 팔각9층탑의 미학적 서술등은 월정사나 조게종 스님들에게 큰 기대는 걸지 않습니다.

저의 탑파 양식의 제작기법 이론은 독창적이지만 이미 저의 글들에 그러한 전문위원들도 다녀갔다는 점으로

그것은 그들의 머릿속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으리란 점입니다.

이렇듯 이 사회 시민들에게 동탑의 팔각의 미와 장중하면서도 팔각의 온유한 미에 대한 저의 생각이 전달되게

외칠것 입니다.

 

이러한 기록의 보관은 평창문화원정도에서 저의 평창 이야기들중 발췌하여 기록적 보관도 그럴사 하지만

이도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저의 눈으로 보는 평창문화원장은 명예의 감투자리인 것이란 느낌 때문이란 점 입니다.

평창문화원 홈피는 아예 더 합니다.

 

저의 이 글들은 인터넷 검색이나 어느책에서도 인용되지 않은 저의 독창적인 시각니다. 그러나 眞의 정의는

살아있기에 남이 알아보지 못한다하여도 혼자서라도 가는 길 입니다.

못다한 그리고 팔각탑의 아름다움에 이야기들을 마지막 저의 월정사 이야기 종결편에서 하겠습니다.

 

 

 

김*경14.07.19. 12:45 new
네 선생님의 깊이 있는 글과 설득력이 있는 전개를 잘 읽었습니다. 이러한 글을 오대산 월정사 홈페이지 올리면

더 좋을 듯하다는 생각을 문득해 보았습니다. 고향 진부에 가면 꼭 월정사를 갔다가 서울로 오곤 합니다.

그때마다 월정사 석탑이 미를 세삼 느끼곤 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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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백작

답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글을 오대산 월정사 홈페이지 올리면 더 좋을 듯하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라는

답글에 대한 저의 생각을 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