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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 이효석

가산 이효석 선생님의 글에 댓글에서..

 가산 이효석 선생님의 글에 댓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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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백작 Y
  • 2014.10.05 01:01
쌍 전봇대 아래 집인 후배 오셨구려.

건강하신지요.

얼굴은 마주한 적 없지만 그래도 만나면 구면인 듯 한 다정한 후배라..
고교 시절 쌍 전봇대 아래 팅구 자취방에 자주 다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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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아는 범위에서 이효석은 봉평 태생이 아니라 진부 태생이고 6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둔내출신 새 엄마와 봉평에서 2년 생활하다 8살 때 평창초교에 입학하며 평창읍 중리에서 하숙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 이시후씨는 진부면장(1913~23년정도)으로 새엄마와의 봉평 창동리의 요즘 같은 집이 아니라 1925년대엔 초가집을 마련하였죠. 아마 진부서 다시 새 엄마와의 새 가정의 생활이 좀 기분 나지 않아서 둔내서 가까운 봉평에 아마 연관이 있는 곳에 거처를 마련한 듯한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봉평에서 진부까지 출근이란 아마 당시엔 일제가 닦은 신작로도 후일일 듯하여(1930년대) 진부서 봉평까진 약 50여리의 길을 말을 타고 출퇴근한다는 것도 불가능이란 생각에 주말에나 집으로 간듯 합니다

이하 가족사이지만 먼 후일 언제라도 윗 글이 지금도 왜곡되고 있는데 아주 변해 버리면 어느 탐정같은 사가는 이효석은 평창초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진학하며 고향엔 한번도 안 내려웠다고 그의 심성까지 논란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본인은 그 이유를 가족사를 넘어서 적나라하게 쓸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도 진부 할머니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그가 고향을 등지며 고향의 메밀을 이야기하는 모순을 자연스럽게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


  후배님은 이효석과 닮은 면이 만타는 글에 후배도 봉평에서 태어나 평창와서 공부하고..그런 이야기 중에.. 웹 싸이트를 검색하니 정한모씨의 기록에 이효석의 본관이 평창이라 적혀있던데.. 여기서 본관이란 성씨의 본관이라면 좀 어색한 듯한 (전주이씨 평창 본관이 있는가 하는,,,)...

  평창 이씨 족보엔 고려조 정 1품 이광에 임금은 평창이란 호를,내리며 ,,그의 출신지명에 평창이란 이름이 따라온 듯하지만,,(일부 설엔 공자의 출신지가 창평이라,,그를 직접 따오긴 좀 욕심 많은 듯하여 평창이란,,,)

 이런데, 이효석의 본관은 전주 이씨이죠.
그의 선친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왕족인 전주 이씨 압박에 평양에서 산간오지 진부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이효석의 부인도 전주 이씨이죠. 부인 이경원은 함경도 경흥 갑부의 딸로 이효석은 대학시절 미술전시회에서 7살 년하의 그녀를 보자마자 반하여 러브레터(연애편지)도 한 박스가 넘다하나 그들은 동성동본이라 그들의 결혼을 반대한 처가에선 그들의 결혼식장에 오지도 않아 아버지 이시후씨만 결혼식장에 참석하였다 한다.

  또한, 이효석은 평양에서 사망하자 그의 부친은 그를 유골을 가져다 그의 고향인 진부에다 묘소를 만들었다. 그런데, 영동고속도로로 건설에 진부 물골에 그의 묘는 인근 이목정 야산쯤으로 이장하였고 그 10년 후쯤 이번엔 영동고속도로 확장공사로 다시 이장하게 되었으나 평창군은 예산 부족으로 그 능선 아래 골짜기 쯤으로 이장하려 하자, 군의 협조가 미약하자 그의 가족들은 아예 통일 이후엔 그의 선영인 평양으로 가기 위해 파주 실향민 공원 묘원으로 이장하였던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편리와 지식의 공유를 가져다 주지만 또한 오류도 많은 듯하다.
어느 글을 검색하니 이효석의 자식은 원래 2남 2녀인데 남아는 사망하였다 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범위로 그의 가족은 82세의 나미씨가 장녀이며 차녀와 일흔여섯의 우환 씨 3남매가 생존해 있다.

또한, 그 글 중엔 봉평의 메밀 막국수는 메밀이 80%이고 밀가루가 20%로 막국수는 아주 쫄깃하고 맛있다 한다. 그러한 글들은 전문가도 아닌 주제들에 답사여행 한번에 제 마음대로 찌껄이는 오류들이라.
모든 막국수의 원료에 표시된 메밀 함량은 30%이고 봉평 팜의 자재는 33%이다. 메밀 100%의 막국수는 점착력이 없어 나무 젖가락로 집으면 면이 끊어지고 숟가락으로 떠 먹는 것이 편리할 정도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제맘대로 꺼꾸로 찌꺼리긴..
80%의 메밀 막국수를 만들면 자재 원가가 불어 막국수 값의 2배를 값을 달라고 할 것이다.
평창에 가면 이 메밀가루를 사지 않고 옛날처럼 메밀을 멧돌에 갈아 배를 타서 채로 걸러서 막국수 만드는 집은 단 한 집있다.

2-30년 전쯤엔 냉면은 자율 값인데 막국수는 협정가라서 재료는 더 비싸지만 냉면보다 천원 한장 적게 받았다. 그런데 냉면은 수돗물로 육수를 하지만 막국수는 수돗물로 만들면 제맛이 않난다. 이것이 수도권에 막국수 집이 성행하지 못하는 원인이라.. 막국수는 강원도 두메산골의 화강암 암반수의 샘물이라야 제맛인 것이다. 그러길래 냉면은 막 음식이지만 막국수는 일품 요리인 것이다.
쓸라면 뭐 이정도는 써야,,,

또한 TV의 생로병사 의학프로에서 메밀 효능 이야기를 하며 어느 박사, 의사란 자 왈..
메밀 물국수를 먹으며 하는 말,,, 국수는 건져 먹고 물을 내 던지면 웰빙음식이고 루틴만 섭취한다나.. 똥같은 자식 무식킨,,,, 그 박사의 말은 오답이다.(생로병사를 다시보면 답이 나온다)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 자라지만 자연이 가져다 주는 천연 혈당 억제제 "루틴"이란 효소는 단 메밀에만 있다. 마치, 자연이 주는 유일한 항생제는 꿀벌의 프로폴리스 단 하나처럼,, 그런데 이 루틴의 특성은 수용성이라 물에 잘 녹는다..

이 말은 생로병사 방송에서도 또한 어떤 학자도 이 수용성이란 말은 모르는 듯,  생로병사에 수용성이란 단어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그 프로도 어지간히 무식하긴,,, 단 후세만 하는 말인가??.
막국수집 메밀의 효능에 루틴은 혈당억제제라고는 긴 설명에도 수용성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는 듯.

막국수의 루틴은 수용성이라 물에 잘 녹아 막국수 그릇 아래에 가라앉기 때문에 국수를 다 건져 먹고 그릇 맨 아래의 가루 찌꺼기를 후르륵 삼키는 것이 물에 녹아가라 앉은 루틴을 섭취하는 것이다. 그럼 생로병사의 그 박사는 국숫물을 버리라는데,,박사라고 모든 게 박사인가??  제 학위논문만 박사일테지.

 

지식보다도 일반 상식의 결여인 없는 땡땡이 박사의 무식으로 여러 사람을 그르치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참으로 인터넷은 오류의 극치를...

 

위 가산 선생의 이야기에서...
평창시장 뒤켠에 이효석 추모비가 책과 노트의 오브제로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 그런데, 아래 설명에서 그의 부인 이름 이경원이 이원경으로 조각되어있는 오류도...

나의 블로그 이 바로 다음 아랫 글에선 같이 산행한 응암의 어느 후배에게.과거 평창의 임란 시의 전사 이야기의 오류들을 전면 수정할 수 있는 이해의 역사 글을 올립니다. 그 글 중에 42여년전 권두문 평창군수의 호구록에 왜병은 대관령을 넘어 정선을 지나 평창으로 쳐들어왔다는 글에서 왜구들은 대관령을 넘지 않았으며, 또한 권 군수는 부임 몇 개월에 강원도 지리를 잘 모르시는듯.
이 점도 평창역사에 자주 인용되는 오류이고. 인터넷 검색의 모리부대는 함경도에 왕세자를 잡으러 갔다가 강릉까지 내려와 정선, 평창, 원주로 진격하였다는 글은 전면 오류라는 점이고, 평창에 들어온 모리부대가 4천 아니면 일만4천 병력이란 점도 오류이고, 여만리 뙤담의 이해도 오류인...

임란 때 평창을 정확하게 재 조명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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