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군 역사의 재 조명 (1) 평창군 동면이란??
후세백작 2015,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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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 고구려의 영역에 속해있어 욱오현(郁烏縣(일명 于烏縣))이라 하였음 |
삼국통일 후 경덕왕 16년(757) | 백오현으로 개칭하고 내성군(現 영월군)의 영현(嶺縣)으로 하였음 |
고려 태조 23년(940) | 평창현으로 개칭하고 원주의 속현(屬縣)으로 됨 |
충열왕 25년(1299) | 현령을 파견하고 원주로부터 분리하였음 |
우왕 13년(1387) | 평창군으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평창현으로 강등됨 |
조선 태조원년(1392) | 태조의 5대조인 목조비(穆祖妃)의 고향인 관계로 군으로 승격됨 |
1895. 05. 26. |
칙령 제98호(1895. 5. 26 공포)로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되면서 충주부 평창군으로 됨 |
1896. 08. 04. | 칙령 제36호(1896. 8. 4 공포)로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강원도 평창군으로 됨 |
1906. 10. 01. |
강릉으로부터 대화, 봉평, 진부등 3면이 평창군으로 편입되었고 동면은 정선군으로 이관됨 |
1914. 03. 01. | 군내·남·북면의 3면을 통합하여 평창면으로 하였음 |
1931. 04. 01. | 부령 제11호(1931. 2. 28 공포)로 정선군으로부터 도암면이 편입됨 |
1934. 07. 01. |
대화면인 방림, 운교, 계촌리가 분리되어 방림면이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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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용글은 평창의 고대사 행정 편제의 도표입니다.
위 인용글에서 " 1906. 10. 01.강릉으로부터 대화, 봉평, 진부등 3면이 평창군으로 편입되었고 동면은 정선군으로 이관됨"의 이 시기를 기준으로 평창의 이해를 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아랫줄에 1914년에 군내, 남, 북면을 통합하여 평창면으로 하였슴이라는 연표에서 그러면 옛날의 평창군 행정체제는 동면과 군내, 남, 북면이었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고, 군 소재지는 군내면이란 점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여기에 현, 미탄면 (과거 동촌)은 누락된듯 하다.
1) 420여년전 임진왜란 당시 평창군 전사인 "응암지"에서 1906년 행정개편 당시의 평창군 편재로 보는 이해
이 1914년 행정개편 이전의 평창은 지금으로부터 420여년전의 평창의 임란의 역사인 ""응암지""에서 동촌과 동면이라는 다른 내용으로 두개의 고유명사가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한 곳의 지명이 아닌 두개 지역의 다른 지명을 이야기 하고있다. 즉 동촌은 현 미탄면이고, 동면은 지금의 정선군 신동면을 가르키는 것이다.
"응암지"나 그 자신이 남천 권두문 군수가 직접쓴 "호구록"에 강절부(강소사)가 동면으로 피신한다면 고향집도 가까워 시골집 노친들의 우환이 걱정스러운데 비상시 연락이 용아하고 하는 문장을 볼 수 있다. 이 동면은 지금은 정선군 신동면이지만 임란 그 당시에는 평창군 동면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미탄은 아마도 동면의 한 범주이고 인용글로 보면 ""동촌은 지금 적(왜구)들이 바글데는 소굴인데""라는 글을 볼때 왜구들은 4번대 시마즈 군데로 이들은 강원도 담당으로 김화, 고성, 강릉, 삼척에서 회전하여 백봉령을 넘어 정선, 그리고 평창을 지나 영월, 원주 도영을 정복하는 코스를 가지는데 이렇게 보면 동촌(현 미탄)은 백봉령을 넘은 왜구들이 정선에서 평창으로 오는 주 거점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동면은 먼 정선땅으로 착각하는 것이나 그 당시에 동면은 지리적으로 고립되고, 아마도 이후에 칠족령을 뚫은 산간오지로 이를 가자면 미탄 마하리에서 칠족령 이전의 어떤 산길이나 배로 동강을 건너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의 사북, 고한은 평창땅으로 그곳의 향촌 역사보관엔 임금님이 평창군수를 발령하는 군수임명의 "교지"의 중요 문서도 현존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로 본다면 과거 "엄기종"님이 임란당시 군, 관민의 피신지로 응암굴이 아닌 미탄의 백룡동굴이라는 지적엔 연관이
있으며 이해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응암지나 호구록에 분명한 것은 강소사는 먼저 동면으로 피신보낼것을 계획하였으나 강소사는 지 아비를 남겨두고 혼자 먼저 피신한다는게 옳치 않기에 같이 분투하겠다고 밝힌 점으로 볼때 이 두 역사서에 군, 관민의 대피처가 아니라 군수의 부인을 먼저 피난케 하는 상의는 분명 있었다.
그리고 옛 전투등을 유추해 볼때 모두들 동굴을 요새로 삼듯이 동면을 건너가기전의 백룡동굴은 좋은 피신처란 생각이다.
역사를 지금 시점으로 보아야 옳은가?? 오늘이 5,16이다, 옛날 5,16 혁명을 5,16혁명이후에서 보는것은 역사가 아니다, 이는 5,16 발발 전의 위기감등 이전의 상황에서 역사는 꿰어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하듯, 아래의 모든글들, 율곡 이이는평창이 고향인 평창인이다라는 이해와 또한, 양사언 강릉부사가 부임으로 강릉으로 갈때 봉평의 팔석정에서 3일 놀다 갔다고 해서, 우리는 양사언의 인상에 정무가 아닌 타 군에서 놀아나는 그러한 인상을 떨칠 수 없다. 그리고 월정사 8각9층 석탑의 제 이해에 대한 지금 사람들의 인식력과 후세백작의 생각의 차이는 분명 누가 옳을 것인가?? 분명한 이해력을 갈파하겠습니다.
이 모두가 긴 글이 된다 하여도 이에 이해가 끝날때 까지 그 이유를 소상히 밝히고자 한다. 그래서 먼 후일에도 평창역사의 이해력을 돋구는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는 역사는 지금의 분위기가 아닌 당시의 정황에 대한 이해의 통찰력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이 이유는 이글의 끝에서 이 글의 의미는 자연 드러날 것이란 판단에 이 글의 마감에 다시한번 거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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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윗 인용글에서보면 현은 군보다 행정력이 약한 체계로 군수는 종 4품직이고 현감, 현량은 좀 5품 직이다.
고려말 평창은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조선 개국초 이성게의 5대조 목조비가 평창이씨라는 명분에 다시 평창군으로 승격됨을 알 수 있다. 아마 지금의 행정편제에 면과 읍이 동일한 업무를 하며 차이가 나고 세제도 차이가 나는 그러한 느낌도,.,,
그리고 아래의 주소는 신동읍 (과거 평창군 동면)소재에 평창군수 교지의 기록이다.
이 블로그 주인은 지금 정선 아라리를 낳게 하는데 일역을 담당한 장본인이지만 그에 아리랑 논제는 없는 듯하다. 하지만 정선 아리랑을 최고로 많이 수집하고 알리는데 일조를 담당한 장본인이다.'
http://blog.naver.com/arari63/50021024931
그럼 2부에서는 진부, 봉평과 평창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고구려 장수왕 때 '우오현(于烏縣)' 혹은 '욱오현(郁烏懸)'이란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평창의 가장 오래된 지명이다.통일신라시대인 757년부터는 '백오(白烏)'라 했는데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백오는 상상속의 '흰 까마귀'로 상서로운 징조를 뜻한다. 진나라 시황제가 인질로 삼았던 연나라 태자 단(丹)에게 까마귀 머리가 하얗게 되고 말에 뿔이 나면 고국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후삼국시대에는 궁예가 북원(지금의 원주)을 공략하면서 얻은 10여 개 군,현 중 하나가 평창이었다. 험준한 산세와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평창을 두고 궁예는 마치 검은 숲과 같다고 여겨 '울오(鬱烏)'라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지금의 지명인 평창은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에 개칭됐고, 조선 개국 원년인 1392년 태조의 5대조인 목조 효비의 고향이라고 하여 군을 고향이야기라 하며, 군(郡)으로 승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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