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侯世伯爵의 時評

[김순덕 칼럼]“1948년 건국”은 利敵행위라는 문재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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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1948년 건국”은 利敵행위라는 문재인 말씀

김순덕 논설실장

입력 2015-11-08 22:25:00 수정 2015-11-08 22:28:56

 

“1948년 건국은 反국가적 주장” 문재인 발언 책임질 수 있나
58년 건국10년… 2008년 건국60년 신문 기념사설도 이적질인가
“국민 상당수가 정부수립 반대 통일정부 아니니 건국절 안돼”
노무현식 역사인식 옳단 말인가


김순덕 논설실장

“정확한 워딩을 놓고 시비를 붙어라.” “자꾸 연설을 하라. 애국적인 코멘트를 하는 것을 주저해선 안 된다.” “멍청하게 행동하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차 세계대전 중 스파이에게 내렸던 ‘간단한 방해공작 현장 매뉴얼’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와 관련해 국민 불복종 운동을 촉구한 5일, 나는 이 매뉴얼을 떠올렸다. 물론 상상엔 자유가 있고 연상작용은 내 의지와 상관없다. 다른 의미는 절대 없다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문 대표는 ‘대한민국 건국을 어떻게 보는가’를 묻는 동아일보 사설이 나온 그날 “1948년 8월 15일 우리가 건국했다는 것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주장”이라며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무너뜨리는 반(反)국가적인 주장이고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라고 말했다.

나는 역사전쟁을 원치 않는다. 왜곡된 교과서를 바로잡는 길이 국정화뿐인지도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문 대표가 한 말은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 임정(臨政)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가만있다간 자칫 이적질로 몰릴까 봐서다.

동아일보는 1945년 12월 17∼19일 3회에 걸쳐 임시정부가 1941년 발표한 ‘건국강령’ 해설기사를 실은 바 있다. 건국강령이란 ‘광복 후 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총체적인 계획으로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추진하는 목표’라고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다. 문 대표 말대로 1919년 건국이 맞는다면, 임시정부는 이미 건국했는데 또 민족국가 건설을 계획한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1948년 8월 15일 중앙청 광장 플래카드엔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는 한국인의 일상 언어에서 건국·독립·정부수립은 그냥 동어반복이었다고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지적했다. 이듬해 6월 정부가 4대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낼 때도 8·15의 명칭은 독립기념일이었고, 동아일보는 8·15에 ‘독립1주년을 맞아서’ 사설을 실었다. 광복절로 바뀐 건 그해 가을이었다.

동아일보는 1968년 ‘정부수립 20년의 반성’을 제외하고는 1958년, 1978년, 1988년, 1998년 각각 건국 10년, 30년, 40년, 50년의 의미를 새기는 사설을 냈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을 건국 60주년으로 규정해 격한 찬반 논란이 벌어졌을 때도 동아일보는 “우리 현대사에서 광복과 정부수립(건국)은 똑같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건국 주역들의 선택이 옳았음은 오늘의 북한이 여실히 보여준다”고 사설을 썼다. 문 대표 눈에는 이런 사설도 이적질로 보이는지 궁금하다.

이념과 상관없이, 문 대표처럼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이 임정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돼 있으므로 1919년 건국이라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왜 현행 헌법에는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언급이 없는지 나도 궁금해서 뒤져봤다.

제헌헌법 전문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로 돼 있다. 이것이 1987년 개헌 때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으로 바뀐 데는 광복군 출신의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의 역할이 있다고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역사학)는 지적한다. 임정에 참여한 장인에 관한 저서 ‘석린 민필호 전’ 서문에 그는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 법통 계승을 명기하기 위해 당시 여야 헌법개정대표위원 및 민정당 노태우 대표와 여러 차례 숙의하여 공동으로 추진 성사시키는 데 일조를 하였고…”라고 썼다.

민주화운동 열기와 당시 대학가를 풍미하던 수정주의 사관(史觀)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뒤엔 저마다 자신만이 임정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를 태어나선 안 될 나라처럼 봤던 노무현 대통령은 “실제로 1948년 정부를 수립할 때 우리 국민 상당수가 그 정부 수립을 반대했다”는 말도 했다. 2008년 봉하마을에서였는데 당시 여권이 추진하는 건국절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는 “통일정부가 아닌 (남한)정부 수립에 불만이나 아쉬움이 있는 정서가 아닐까 싶다”는 해석까지 해줬다.

문 대표에게 불만이나 아쉬움이 있는지 알고 싶지 않다. 다만 자신의 역사인식에 찬동하지 않는다고 이적질 운운하다간 멍청한 행동으로 오해받을까 걱정될 뿐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