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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탈 사회에선

Re-내 이름은 뭐쥬 / 신발끈 두 구멍만 꿰어,,,

내 이름은 뭐쥬

                         남천-손경옥  2016.01.20  01:25

 

 

명태 황태 동태 생태 북어 코다리 노가리

백태 흑태 건태 깡태

망태 조태 애태 왜태 강태

이중에서 뭔 이름이 내 이름이래유

명천지방의(명)자와 (태)가성을 가진

어부가 잡은 물고기라 명명한 어,명태

얼었다 녹았다 푸석푸석해진 덕장의 황태

북극지방에서 잡은 채 동사가 된 동태

싱싱하고 탱탱해서 어전의 고급 생태

사정없이 방망이로 두들겨 패야 되는 북어

속알머리 빼버린 뙤약볕에 반쯤 말린 코다리

술잔 놓고 노가리 떨어대는 안주 노가리

에긍, 얘들 이름은 또 뭐래유

백태 흑태 건태 깡태,

흰 살생선의 특성상 하얗게 말린 백태

말린지 오래되어 검게 변한 흑태

적당히 먹기 좋게 말린 건태

딱딱하게 나무토막처럼 말라버린 깡태

뭐냐 넌, 웬 별칭이 또 있는겨

망태 조태 애태 왜태 강태,

그물로 잡아서 망태

낚시로 잡는다고 조태

어릴 때 잡았다고 애태

북부연안에서 잡은 왜태

강원연안에서 잡은 강태

명태 황태 동태 생태 북어 코다리 노가리

백태 흑태 건태 깡태

망태 조태 애태 왜태 강태

이중에서유 진짜 내 이름 좀 갈켜줘유.

 

창작- 2016-01-19 pm

 

HHHHHHHHHHHHHHXXXXXXXXXXXXXXXXXXXXXXXXXHHHHHHHHHHHHHHH

 

후세백작

재미있사와요.
동태가 팔방미인인듯,,,
별명 만들 시간도 없는듯 이름이 만사옵니다.

짬밥먹던 시절 작전 지원부대라...
오늘처럼 영하15도는 족히 넘는 산속에
동태 한 토막의 얼어붙는 된장국 맛있게 먹던 기억도 납니다.

일본 지진후 시중엔 동태가 많아졌는데
지근 일본애들 안 먹는건 바나나와 동태랍니다.
오늘 이 글 한번 쓸까요??

 

HHHHHHHHHHHHHHHHMMOOOOOOOOOMMMMMMHHHHHHHHHHHH

 

오늘처럼 영하 10도를 넘는 살인을 에는듯한 어느날 저녁,,

임진강상의 모래가 얼굴을 스치면 따갑고 아프다. 그렇다고 사제 마스크는 없다. 모래가 얼굴을 강타해도 그대로 맞을뿐.

해가 지기전에 일년전에 찾아왔던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곳은 산 경사지 두평쯤 땅을 50센티정도 파 내려간 곳으로 어느 부대 작전 지휘소같은 곳으로 그곳에 중간 뽈대하나

세우고 판초의 두서너장을 위를 덮고 하룻밤을 청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일반 소총수처럼 텐트칠 시간도 없고 땅은 얼어 핀도 안꼽힌다. 때론 핀이 얼어 안빠질까봐 철근을 주워 구부려서

가지고 다니지만,,,

그리고 민가 돼지우리 뒤에서 쌥친 집단을 풀어 흐트리고 판초위, 모포도 닷장 이싱을 깔고 텐트 테두리는 자갈이고

돌이고 얼어붙지 않은 것은 죄다 주워 덮어 놓으면 끝.

 

텐트 속은 추워도 모래바람이 얼굴을 파고들지 않아 다행이다,

배속부대라,,,소총부대들도 힘들고 배고프니 밥이 모자란다며조금만 퍼 주는데,,그걸 들고 1Km쯤 걸어 오다보면 이미

밥은 차갑게 식어 버리고, 오늘의 메뉴는 동태가 샤워를 한듯한 동태국인데, 그도 살얼음이 덮어 버렸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데워 먹겠지만 그런건 없다. 그래도 다행은 수통엔 부피가 많은 쇠주보단 고량주라,,, 추위엔 그게

약이지. 얼음 동태국은 안주이고,,

 

얼마나 추웠는가 하면 혹이나 얼까봐 모포속에 감춘 물이 꽝꽝 얼었으니...그거보고 후세는 또 농담을 안할수가...

엇저녁 고량주 한 잔 먹길 다행이지 않 먹었더라면 혈관속의 피도 꽁꽁 얼어서 오늘 아침에 아무리 급해도 피를 다 녹이고

 "근무중 이상 무" 하고 무전을 보고하는등.....피가 얼어보지 않아서 죽는지, 녹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다시한번 해 본다면 좀 여유가 있게 해볼듯한 추억이다.

어떻게 운 좋아 빽도 쓴 모양인데, 그래도 그걸 전선의 캬추사라나 어쩐다냐..

하여간,,,,軍시절 동태 한 조각 떠 있는 구수한 소금, 된장국,  맛있게 먹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런데 요즘 길가에 리어카에서 동태 한 마리 오백원에 풍년이다.

언제부터냐 하면 일본원전에 지진이 생긴 다음부터 일본 아들은 생선을 안 먹는다나... 그련데  우리는 그때부터 동태값이

비지값으로 동태를..그러더보니 동태탕 식당은 유행을 구가하는 듯도 하다.

 

일본아덜은 방사능이라 떠들고 우리 해수부도 일본 수산물 빠꾸한적도 있는데...그렇다고 어부들이 많이 잡는다는 뉴스도

없고 언젠가 길에서 만난 어느 트럭 운전수,,, 전화 끝날때를 옆에서 기다리려니..

"고기는 않 잡고 뭐하러 일본가냐""고 하니... 일본가서 명태 배로 한 가득 싵고 온단다.

 

그때 난 그 말을 득고 아하,,, 공해상에 나가서 모시모시,,,훈돗시...그리곤, 일본배와 한국배가 만나서 명태를 통채로

절매하여 옮겨실고 돌아오면서는 만선 깃발을 꼽는다. 어부들도 안 태우고 만선이라 얼마나 경제적일까 하는..

우린 공급과잉이라기 보다 물량이 너무 많아 한마리 천원썩.

이런 야기 괜스레 덕장이 피해입었다 하면,,, 아니 일본에들 무레한 조업과 판매를 근절시키면 더 잘되야 할게 아닌가??

 

우리에겐 이와 유사한 경우가 또 하나 있다.

그건 언제부턴가 바나나가 수입되고 영양과일이라 하건만,,, 그 실 일본에서 바나나가 불매되고 한국으로 밀리며

그 비싸던 바나나 값이 똥값에 사 먹게 되었던 것이다.

 

바나나 원산지는 필리핀이다. 오리지날 필리핀 바나나는 크기가 작은 것으로 달고 맛이 난다.

하지만 미국의 다국적 농장들은 양산(물량)으로 채산을 맞추기 위해 미국제 큰 바나나를 심는다.

그러다 보니 토착식물이 아니라서 병충해가 발생하게 되어, 농약이 무더기로 투여되고 덜익은 파란 과일을 따서

포장전에 농약물에 씻는데 그보다 먼 길을 보내자니 오래도록 보관키 위해 농약물로 코팅하는등 농장에 인부들이

농약으로 사망자도 발생자가 발생되자 그 이유를 연구해 봤더니 과도한 농약 투입이고 포장전 물로 씻을때도

농약물에는 혈액형 O형이 유리하는 연구로  O형의 근무자들로 대체되는등..

농약대신 무해식품을 개발해야지 그 자체 유해식품은 그냥 놔두고 별거만 연구하니...영악한 미국넘들이다.

 

이러한 내용이 일본 주부들에게 알려지자 바로 보이콧 되어 일본 수출이 중단되자, 필리핀의 농장들은 고육지책으로  

한국행을...우리는 아직 그 원인들을 (수입에 값이 싼,,,)  모르고 영양좋은 과일로 또한 아이들 간식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기에 가능한한 껍질은 않만지도록 하는게 좋을 것이다.

 

또한 일본애들은 동태를 멀리하는데...방사능의 중금속 인체 반응은 아이들에겐 2세에 영향을 미치는 충격적인 일일지

몰라도 퀴리부인처럼 그것을 만지고 연구하면 몰라도 우리가 그정도 방사능에 목숨에 영향을 받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면 일본이 잡은 고기와 우리 원양어선이 북 태평양에서 잡은 고기는 다른 것일까??

 

우리는 중국고기와 한국 칼치 맛이 분명 다른것을 느낀다.

칼치잡이는 영해에 백리를  더 나가서 중국인에게 잡히면 중국산이고 한국배에 잡히면 한국산이란 구분에 맛까지 장께들

맞과 국산 맛으로 비교할 수 있슬까??

분명 바다는 하나지만 그곳에세 한국배와 중공 배가 잡는 생선의 맛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이다..그것엔 이유가 있다.

 

한국배는 냉동시설이 제 규정대로 되어 잡자마자 배에서 냉동하지만, 중국배는 낙후된 통통배라 냉동시설은 커녕

냉장고도 없는듯 하다. 칼치는 회도 맛있는데 중국넘들은 이렇게 저장하는등 관리에 문제로 고기는 좀 상할듯

굴렁굴렁대는 것이 맛의 차이를 다르게 하는 것이다.

 

칼치 이야기 하나 하면,,,

일년전 어느 가을날 서울 친구들이 10명정도 칼치 낚시를 가는데 나만 빠졌다. 여수까지 과속으로 달려서 낚시배로

4시간. 제주도보다 아래로 내려가는 듯한데 조그만 차안에 갖혀있기가 싫어 기권하고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는데,

낚시배들의 사고 위험이 문제란다. 그리고 그 배들은 몇명을 태웠는지 명단 보고도 않 된다 한다.

 

 몟날에 군 제대를 하고 놀러다닐 당시 지금은 미국간 친구 송자이천에게 야... 쏘가리 잡으러 응암엘 가자고 하면

이 뜨거운데 어땋게 가냐??

야,, 임마 택시타면 되지하니 택시비가 얼마인데?? 어,, 삼천원이면 돼하고 답을하니..

삼천원이면 그걸로 시장가서 꽁치를 사 먹지 하길래... 야 뺀들아 너 꽁치 많이 사먹고 혼자 놀게나하고 핀잔주던 ...

지금 칼치잡이 배는 1인당 2십만원인데, 진짜 그 돈으로 꽁치 사먹고 배 뚜두리는게 팔자 편할지도..

 

그리고 다음날 그들은 무사히 도착했다.

때로는 일본이 가까워 일본쪽 일기예보를 보고들 가지만 바람이 불어 꽝 하고 올라오고 처음 따라나서는 친구들은

멀미에 배 밑창신세로 꽝하는등..그러나 그날은 수지맞았다고 싱글벙긍하며 칼치회도 떠서 준다.

 

싯가 2만원짜리 칼치 10마리에 만원짜리 칼치 60마리에 기타 상어,방어등,, 판로는 없지만 남는 장사는 했으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것은 이렇게 맛있는 칼치회도 잇는데 어쩌다 시장을 지나며 보는 생선중 칼치는 은색이

누렇게 되고 시간이 좀 경과한 듯 하지만 그래도 맛이 날까??

 

그래서 바다 생선도 좀 신선하게 활어로 배달되어 즉석에서 잡아주면 더 신선한 맛에 돈도 더 벌고 서로 좋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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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경우에는 내가 뺀들이었슬까??

 나는 지난해에도 딸래미에게 날도 추워 발도 시릴텐데 말장화 하나 사 신으라니 뚱쳤다.

올해도 몇일전 또 똑같이 말장화 하나 사 신으라니 오늘저녁 하얀 백구두가 보였다.

 

그래, 신발 샀구나,,,발은 좀 시릴망정 멋이 더 우선이군,,,

 그런데 신발끈 구멍 4 개중 두 개는 빈것이고 마지막 두 구멍만 꿰었다. 오른쪽은 앞, 뒤가 빈 구멍이고 복판 두개만

꿰었다. 왜 이래 꿰었냐고 물으니 잘 할줄몰라 그러니 아빠가 다시 꿰어 달랜다.

그러지 뭐 하고 끈을 다시 똑바로 꿰어줄라 허리를 구부리다 그냥 다시 일어서며 보기 좋은데 하니, 마치 귀찬아서

그러는줄 아는 모양이다. 옆에 있던 우리집 "L"사감왈 뺀들이란 시늉이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우리는 신발끈은 구멍마다 다 꿰야하는 고정관념에 살아왔다. 나는 여태까지 누구한테든 신발끈 한개도 남겨둔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하라는대로 해야 그것이 기본이며 충직하게 완수해야 옳은 것으로만 생각하고 살아왔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두 구멍만 꿴 신발은 불량이고, 등교시엔 학교 교문에서 원산폭격이고, 건달의 반항쯤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란 생각이다.

좋은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미술용어로 아방가드로 같은 (기존의 체계를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발전적

방향도,,,우리는 흔히 정치용어로 뉴스지상에서 새로운 정국으로...뭐가 새로웠던가... 지나고보면 구태의연의 임시

방편뿐,,,그래서 그건 새로운게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라고 이해해야 만족스럽지만...그러며 맨날 정치나 사회는 새로워

진다하며 정작 자신이 새로워 지는 자아의 발견은 없었던 듯 하다.

 

그런데 이 신발끈 두 구멍만  묶고 다닌다면 이는 새로운 방향으로 자신에 대한 도전이란 점이다. 

미술사로 다시한번 비교해보면 인상파 이전에 고전주의 시대는 절대 군주의 왕정시대로 너무나 획일적인 시회에

미술도고정관념을 넘어서지 못했다. 모든 그림은 인물이 캔버스에 중심이고 인물을 위한 배경으로 나무나 산등이

그려졌지 인물이 없는 자연만 그리는 그림은 있슬 수가 없였다.

 

왕은 궁정화가인 렘브란트에게 이번 주말에 궁정 연회파티까지 왕이 가족들과 함께 있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렘브란트가 그려 보여주는 그림엔 왕과 어떤 사람도 없는 오직 자연만이 보이는 풍경화를 제출하였다.

이때까지 인물이 없는 그림은 그림이 아니다. 그림이 아니다라기 보다 그런 생각은 누구도 해 본적이 없고 그냥 그림이란

인물들을 그리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렘브란튼 잘 먹고 살던 궁정화가의 자리에써 쫒겨났다.

하지만 그는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사회의 일상을 넘어서는 개념의 확장을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내 궁핍한

생활로 살았지만 그는 문화의 발전의 모티브를 가한 기원자로 그래도 궁핍보다는 더 큰 해답을 얻었던 것이다.

그래서 렘브란트는 요즘으로 비교하면 스마트 시대의 스티브 잡스와도 같은 그  당시 시대를  생각과 개념의 차이로

변혁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이것이 미술 발전의 초기 발상전환으로 이로써, 사회는 변화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신발 끈을 한,두칸 빼 먹고 끼웠다고 그게 무슨 대수냐하고 웃어넘길 수는 있으나 면밀히 보면 그 속에는 새로운

가치개념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현실의 부정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는 도약의 단계란 점을 확인한다면 디지탈

사회의 자아의 차이의 여러 생성 요소들의 변환과 형상화의 힘의 원천의 변화와 그 지배의 차이를 그곳에서도 감지할

수 있으리라. 그러기에 요즘 젋은이들의 디지탈 사회의 사고적 변환으로 볼때 미래는 밝은 것이다.

 

나는 지금 약간의 겁을 먹고 서글프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고있다.

우리는 하라는 대로 다하는게 잘 하는 것이고 매사에 무탈이고 속이야 어쩧든 남이 알아주면 최고였던 공동체적

삶이 가치구현의 최종목표로 삼고 살았다. 그것이 혹시 위의 렘브란트의 풍경화 이전의 고정된 평면에서의 생활은

아니었던가??

역사가, 환경이, 주변이 그러하다 하여도  왜 그들의 요구되로 개인의 차이와 변화를 추구치 못하는 삶을 살았는가??

모든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자아 선택권도 있다.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으로 앞으로의 시간대에는 나도 이런

남과 동일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을 위한 생각의 디지탈적 삶의 변화를 추구해 볼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