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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나리의 문화산책

트럼프와 시진핑의 밀담은 무엇이었으며, 중국은 왜 대동강을 달라고 하는가?? (잃어버린 우리문화)

 

[트럼프와 시진핑의 밀담은 무엇이었으며, 중국은 왜 대동강을 달라고 하는가??]

 (잃어버린 우리문화)

 

 

* 트럼프와 시진핑의 밀담은??

 

지난 4월 6-7일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관한 밀담에 시진핑은 "사실은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라고 말했다고 트럼프는 말했다. 물론 두 양반이 만나면 북한은 큰 이슈로 얘기될 것인데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밀담은 어디까지일까??

 

지난 글에서 둘이 농담쌈치기도 아니고 이 말은 어떤 대화 끝에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충분히 예시하였는데...그 대화는 가령 "북한이 빠지지 않도록 잘 도와주십샤" 하고 트럼프가 이러한 부류의 말을 할 때 시진핑은"그러믄요" '.한국은 원래 중국의 일부인데 잘 도와야지요 "하고 답을 할 수 있는 수순처럼 이러한 대화에서 불거진 말일 것이라 본인은 추정한다.

 

물론 미국과 중국은 건설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추구에 공동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지난트럼프와 시진핑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미, 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대북제재가 한층 더 강화되었는데 과연 시진핑의 입에는 어떤 떡 쪼가리를 물렸슬까?

 

트럼프 정치 100일의 자평에 북핵 문제가 잘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도 수긍이 가는 것은 그간 오바마 정부, 본인으로서는 그리 반기지 않는데, 그는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 내에서 큰 인물도 아니었고 도덕론자 땅콩 장수 지미카터 이후의 정의론자로서 6자회담등 말로만 하다 보니 그의 정부 시절 북핵은 방치되고 북한은 네 번의 핵실험을 통해 핵의 성공을 가져오는 듯 하다.

 

이렇게, 6자회담에 중국은 뒤꽁무니로 똥구멍 구멍으로 북한이 쉼쉬게 하여 다년간 온통 뉴스를 도배하던 6자회담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트럼프는 안이하게 생각하는 미국 의회나 정부를 재촉하여 북핵 제어에 나서며 굳어지고 속이 구린 중국도 일으켜세워 북핵을 단호하게 처리하겠다 한다.

 

이에 어깃장거릴 중국이 정말로 북한에 강한 메세지를 전달하는등 강한 제스쳐는 6자회담시와는 다른 태도로 지금까지엔북핵의 제어에 성과는 없고 어제도 동창리 땅을 판다는 건 발사대를 만들는지 하지만 그래도 트럼프는 미국과 중국이 진짜 북핵의 무장해제를 해야된다는 의식의 변화는 가져온 이다.

 

오늘(5/9일자) 뉴스엔 라이스 전 장관은 "분명히 북한은 스스로 강력하며, 미국을 괴롭힐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이는 어떤 대통령도 인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핵 야망을 멈추기 위해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만 한다"고 강조하며 북한을 국가 공동체로 돌려 놓는게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전한다.

 

사드가 성주에 도착했슬 때 "사드가 중국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표현을 썼으며 중국의 서태평양 야욕에 호주는 국방비를 증가시키고 중국과의 사이가 벌어지자 환구시보는 호주를 미국의 애완견이라표현했다.  국가의 입도 이러한 형용사를 마구잡이로 쓰건만 본인은 개인의 블로그에서 내 마음대로 하기로서니...

 

아뿔사, 이웃집 아저씨같은 인상의 시진핑,,, 속은 짱께들의 똥으로 꽉차있다니...그넘도 짱게라 속은 구린 넘이군. 하지만 이 점에 시진핑만 꼬집을 수는 없다. 이 말의 저의엔 중국 학자자석들,,,짱께들이 골수적으로 생각하는 바이며 다만 시진핑은 앵무새 소리란 점이다.

 

우리는 지금 북한을 바라볼 때 동포이기에 언젠가는 멀지 않은 시기에 통일이 오고 똑한 사람들은 평양, 원산 찾아다닐때 본인은 그저 철령재 넘어 갑산 저 오지에 가서 북한 동포들에게 햄버거 장사라도 하겠다 하였다, 아마 이런 류의 장사가처음 느끼는 미각으로 또 먹고싶은 마약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통일을 동일 선상이 아닌 항상 북한 주민보다 우위에서 계산이 뒤를 바치고 있는 것도 부정 못하리오만,,,그래도 좋다, 먼 산도 아니고 저 언덕 넘어의 미풍으로 다가올 것 같은 통일,,,그러나 통일은 따스한 봄날의 그리움이지 정녕 통일은 찾아 올것인가?? 여기에 통일의 봄날은 없다는 것이 본인의 회의적 견해이다.

 

통일이 오지 않는 그것은 중국의 탐욕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논한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발언은 물론, 그들은 한, 미가 북한 침공시에는 38선만 넘으면 중국도 자동개입하여 북한에 참전한다고 으름짱 떠는 것은 제2의 팽덕회( 6,25때 중공군 인해전술의 총두목인 (팽덕화이)를 보내서 또 다시 북한 요리를 하겠다는데..

 

지난 6, 25때도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할때 38선을 넘자 중공군 30만 병력은 압록강,두만강을 건너 적유령 산맥에 한 달간 매복하다가 국군의 압록강 진격을 저지하며 출현하였다. 이로써 국군은 군우리에서 통일의 희망을 고하게 되는데 지금도 짱게넘들은 그때와 똑같이 38선을 넘지 말라고 우겨댄다.

 

개 ×에 보리알 같은 자석들,, 왜 남의 나랏일에 그리 따라붙겠다는 거야..

물론 우리가 한, 미 자유수호의 동맹처럼 그들도 사회주의 어떤 조약은 있으리라. 그러나 이 때문에 중국이 개입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 땅이라고 주장을 펴는 것이기에 북한이 붕괴되거나 어떠한 상황에서 그때에 우리는 당연히 통일을 해야 되게다고 생각한다면 무척 오산일 것이란 점이다.

 

아마도 통일엔 따스한 봄날은 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삽살개 아베는 트럼프 바짓가랑이 잡고 북한의 사정에 이어 한반도를 어떻게 평가했슬까?? 물론 이 이야기는 이슈화 되지도 않았기에 평면적으론 아무런 내용도 없지만  쪽바리들은 제나라 땅이 화산지대라 과거부터 이점을 통탄하고 대륙으로 이동할려고 하는 넘들,, 혹시나 임나 일본설을 또 주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은 왜 대동강을 달라고 하는가?? <우리 역사의 재고>

 

시진핑의 한국은 중국이었다는 즉, 한국은 중국에 조공도 바치던 관속국가라는 생각에, 이것이 무슨말인가 한번 따져 본다면 바로 전장의 글에서도 쓰기 싫었던 얘기이지만 회피할 필요도 없고 우리가 잘 알고 대처해야 될것이란 생각인데. 동북공정, 그에 실마리는 중국학자들은 한민족(韓民族) 형성에는 예족과 맥족의 북방과 남쪽의 韓족이 만나기 이전의 남쪽의 韓族만 한국으로 간주하고 지난 "여만리의 예담"이란 글에서 언급했던 고구려의 영성문화는 한족의 갈래가 아니거니와 예와 맥의 갈래이기에 이러한 고려 이전의 예나 맥, 말갈등 만주족까지 북방지역, 나아가서  대동강 이북은 중국땅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이하 낙랑, 대방군등 한사군을 두고 고조선을 관리했다는 논리와 조공등으로 또한 19세기말 열강제국들이 몰려 올때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청나라는 우리에게 맏형같은 종주권을 핑계삼아 들어왔다. 그에 감독관 원세개는 향후 10여년간 떡 주무르듯 무리 정치, 외교, 내정등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이때 원세개의 계략은, 아니 중국 정치, 지식인들의 생각은 신강성의 위구르의  신장. 티벳, 몽골, 만주등은 독립시키고 유교적 동일 문화권의 한국과 월남, 오끼나와(유구)등을 중국에 편입시켜 대 중국을 만들자는 주장들이 빈발하였다 한다.

 

그런데 역사에서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그 결과로 시모노세끼 조약이 체결되는대 이때 중국은 한국을 자주 독립국으로 인정하여 우리나라는 중국의 대국론이라는 망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본의 침략으로 강점기를 가지지만 중국넘도 똑같은 욕심이었다.

신장은 북경에서 5,400km떨어져 있으며, 문화도 중동의 이슬람 문화권에 생김새도 중동과 아랍계 모양새인데 그게 어찌 중국일까?? 지금으로선 신강성은 중국의 자원의 보물이다. 지난 북경 올림픽때의 어느 글에 북경까지, 종착은 상해까지 5,400km의 파이프 라인을 건설하였고, 당시에 유가가 배럴당 200달라를 넘던 이유는 중국은 그때까지 석유를 만주의 대정석유에서 자급자족하였지만 그때 석유는 고갈되고 암스텔담등지의 석유 선적분이 빨라야 6개월인데 아마도 웃돈을 주고 하는등 원유가가 급등하게 되었다.

 

신강을 자주 오가던 어느 노친이 신강성으로 가는 밤 기차에서 보니 일개 성은 연탄재처럼 벌겋게 불타더라는데 이는 명나라때부터 500년 불타고 있다하며 이쪽 일대는 석탄, 석유, 가스등이 매장되어 있는 보고이다.

하지만 그들은 독립이 되어야 한다. 삼장법사가 지나갔어도 그들의 역사와 문화 인종은 중국이 아니다. 또한 티벳은 밀교, 라마교등 자체적으로 언어와 문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여러 종족들을 하나의 국가로 엮는 식민지 방법으로 아직도 식민지 시대의 열강 제후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동북공정에서 잠시 언급해본다.

동북공정이란 다른게 아니라 발해, 부여, 고구려등은 중국문화권이고 중국이란 의도이다.중국의 학자들 논리는 이들 나라는 한(韓)나라 민족이 아니란 것이다. 韓나라는 한반도 남부의 삼한(마한, 진한, 변환)이 韓民族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로서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구려의 영역까지인 대동강 이북지역은 중국이라 보는 입장이다.이점에 청의 감독관 원세개도 같은 생각이었고  임진왜란 휴전에서 명나라의 장수 심유경과 구니시 유키가와(所西行長)은 대동강을 경계로 조선을 분할하자는 논의를 한적이 있듯이 중국에서 보는 조선과 韓民族의 영역은 대동강까지란 생각이 팽배해 있는 것을 알 수있다.

 

그래서 임오군란에 중국이 개입하고 텐진조약과 그로부터 10년뒤 갑신정변에서 청일전쟁이 발발돼고 일본의 승리로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중국은 조선을 독립국가로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쪽바리들의 침략의 발판의 구실이었다.

 

이때까지 10여년간 중국(청나라)의 감독관으로 한국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원세개(위안스카이)는 중국의 국가에 신장, 위그루의 코 큰 종족과 히말라야 지붕을 넘어 티벳, 그리고 야만스런 만주족을 분리 독립시키고 대신 같은 유교문화권의 조공도 잘 바치던 이성계 가문과 서인들이라 이러한 조선과 또한 바다로 중국의 관문인 유구 (오끼나와), 월남을 포함 시키는 중국을 제안하는등 음모를 부리다가 청, 일전쟁의 시모노세끼 조약에서 일본에 완패당하며 그러한 구상은 깨지게 된다.

물론 일본의 쪽바리 넘들도 정의는 아니었다. 그들의 욕심으로 이 당시에고 코리어 패싱은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심유겸이나 시모노세끼 조약에서처럼, 요즘 코리아 패싱이란 당사국을 제외하고 자기들의 득을 바라는 의도이다.

 

이제 시진핑과 원세개가 생각이 동일하고 중국은 심유경도 들이대던 대동강까지의 고구려도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중국의 속국이라는데 대하여 자세히 역사를 들춰보면,,동북공정은 얼마나 짝퉁짓인지 잘 알 수 있다.

세계 굴뚝을 끌어모아 놓고 린치를 가하여 공장을 빼앗고, 기술을 훔쳐 짝퉁을 만들더니 급기야는 역사마져도 짝퉁으로 몰고가고 있는데..

 

 

<여기서 "잃어버린 한국의 고유문화" (김종서 지음)이라는 책에서 주장을 인용해보면,,>

 

고조선의 영역은 고구려, 부여, 옥저, 예맥, 삼한, 예, 맥, 신라, 백제, 가야등이 포함되는 강역이 우리 민족이다.

그리고 나아가 숙신(읍루, 말갈, 여진, 만주족0을 우리 민족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선비, 흉오, 몽골, 산융, 동호, 호환, 거란족을 포함하는 우랄 알타이어계 모든 민족을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연구와 논의는 좀 더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민족은 韓민족이라 한다. 여기서 민족은 버려야 종족이 살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민족이란 개념은 언어,종교,세계관, 사회조직,경재생활, 그 밖에에 샤회양상등 문화적 공통사항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다. 이러한 개념에서 보면 한민족이란 한반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수천년 살아온 사람들의 집단을 이야기 하는 것인데..

 

여기에 사투리로 보면은 함경도, 평안도, 경상도, 전라도가 각기 다르고 이 속에는 각기 다른 나라로 신라는 세계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천년 역사를 자랑한다면 이는 한민족이란 개념이 이탈하게 되고 종교관으로만 보아도 하나가 아닌 각기 다른 이질적 문화의 종교를 융합하고 있기에 우리에겐 한민족의 개념은 타당성을 잃어버린다.

 

지난 글에서도 밝힌바 고조선은 민족이 아니라 국가란 점에서 우리민족은 단일민족도 아닌 북방게의 예와 맥의 민족이 남하하고 남방계 농경문화 민족이 북진하며 서로 융화 화합되는 재정일치 사회를 만든것이다.

그런데 이 민족을 韓민족이라 한다면  마한, 진한, 변한의 韓자로 이로서 북방의 고구려, 옥져, 동예, 고조선등을 어찌 포함한다고 인식할 수 있슬까??

 

그러기에 동북공정은 대동강 이북권의 고구려도 중국의 속국으로 계산하는듯 하다. 예만리 예담이란 글에서도 밝힌바 고구려는 부여와 같은 종족으로 중국에서는 商종의 일부라 한다. 물론 고구려 문호에서는 종묘, 사직을 모시고 그와 더불어 상족이 믿는 영성제(하늘의 별자리로 보고 제까지 드리는,,,)의 문화도 있었다 한다.

 

그럼 商족은 누구일까??

중국문명은 단군의 고조선을 도읍한 후 130여년후 중국 최초의 夏나라가 생겼다. 이 하나르를 멸망시킨게 은나라이고 상나라였다. 이렇게 고구려는 북방민족으로 우리는 고구려의 후예로 또한  남쪽 민족의 북상으로 고구려는 이렇게 하나가 되어 한민족이라 하는데 이것은 마치 마,진, 변한의 민족이 북쪽까지 올라온곳만 우리의 영토라고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은 韓족과 예, 맥족이 하나로 결합된 재정일치의 국가인 고조선의 후에임은 분명하기에 한민족은 아니고 이러한 韓민족이란 표현으로 중국에 빌미를 제공할 것도 없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들은 천손민족이라 이름하자 한다.

 

천손민족이란 표현의 이유는 우리의 조상의 시점은 6천 년전 신시에서 하늘을 열고 환웅이 내려와 도읍한 고조선의1대 단군인 단군왕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여기에 환웅은 하느님의 자손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천지만물을 생성, 발전, 소멸하는 하느님의자손이란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고조선> 편에서도 볼 수 있다 

 

<하느님의천국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내려 오셨다. 신시를 건국하고 인간구원의 이념은 홍익인간의 가르침으로 인간 교화를 시작하였다> 라고 삼국유사는 말하고 있다.그러기에 이후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왕이나 북부여를 중흥시킨 동명성왕,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성왕,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 가야를 건국한 김 수로왕등 시조들의 건국설화에 모두들 하느님 자손을 표방했다. 이러기에 이 공통점은 하느님의 아들이란 천손민족이란 주장도 과히 나쁘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색은 고구려 옛 도읍지인 평양성 부벽루에 올라 "천손들은 지금 어디에서 노시는가"" 라고詩를 남겼다. 이색은 말년에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 평창 오대산에 칩거 하였다. 그런데 평창 역사엔 단 한줄의 그림자도 없다.

 

그러면 우리는 배달민족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배달민족이란 삼국유사, 삼국사기등 어떠한 고서에도 없는 단어로 이는 일제 강점시대에 천도교에서 일제에 대항하기위해 단군의 박랄나무 단자의 밝음에서 변형되어 배달민족으로 표시되었다 한다.

1918년 3월 7일자<신한민민보사>에 " 조선인들은 배달족인가 야마도 족인가"라는 기사에서 배달민족의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그럼 배달민족은 누구일까?? 길거리에 짜장 배달하는 철밥통엔 "리는 배달민족이다"라고 큼직막하게 써 붙이고 다니는데, 그래 너는 배달민족이고 나는 아니다라는 생각에 그 친구들을 보면 혼자 웃음을...

 

 본인은 초교부터 배우길 우리는 韓민족으로 배달민족이며,단일민족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하나도 바르게 배운것은 없고 죄다 엉터리이라면 우리 교육당국은 지금까지도 낮잠만 자고 다닐까?? 아니 문교당국을 상대로 엉터리 교육과 그로인하여 엉터리에 월사금을 납부한  것에 반환소송으로 환급받아야 할까...

 

기록으로 보는 한국 고대사로서는,,,<삼국지><양서><남서>에는 ..

<동이의 엣말에 고구려는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종족이라고 했다.고구려의 언어와 모든 풍습들은 부여와 같다. 다만, 그 성품과 의복은 다르다>

 

중국 <남조>4국의 역사인 <남사> 동이전에 실린 글,

<신라사람들의 절하고 행동하는 것은 고구려와 서로 유사하다.문자는 없고 나무에 신표를 새겨 사용하였다. 신라와 백제사람들은 서로 통역을 통해야 의사가 소통되었다>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오환 선비 동이전>엔..

<읍루인의 생김새는 부여인과 같으나 그들의 언어는 부여말보다 고구려 언어와 동일하다>

 

삼국사기 <시조 동명성왕 편>에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 이웃에 있던 말갈을 물리쳤고 말갈은 고구려가 두려워 고구려에 복종하였다> 서술하고 있다

 

또한 <위서>등 수많은 증거들이 중국의 역사서에서도 잘 서술되어 있다.

이후의 역사에서는 삼한은 신라와 백제에 통합되고,북옥저, 동옥저, 예, 동부여, 북부여는 고구려에 통합된다.

 

그리고 후일 만주(말갈, 여진)족은 고구려, 백제의 유민이다.

 

<삼국지>의 <위서의 오환선비동이전>에서는 읍루를 부여, 고구려, 동옥저, 예, 한(삼한)등과 같은 종족으로 보고 있슴을 증언해 주는 기록들에서 마한의 가구수는 10만호, 부여는 8만호, 고구려는 3만호, 진한, 변한은 4~5만호, 예는 2만호, 동옥저는 5천호이며 읍루는 기록하지 않았는데, 읍루는 동옥저보다 작았다.

 

읍루는 물길로, 물길은 말갈로 말갈이 여진족으로 여진이 다시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꾸어 만주족은 고구려, 백제의 유민이란 점을 알 수 있다.

 

668년 고구려의 멸망엔 당나라의 <구 당서>의 기록엔 <고구려인은 돌궐과 말갈로 투탁하여 갔으며 이로써 고구려 고씨 군장들의 시대는 끊겼다 한다>(여기에 고주몽 이후 고씨들은 저의 파인 제주고씨 횡성파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횡성엔 고주몽 고씨 집성촌이 있으며 이 고구려 왕족의 고씨는 최근엔 중국측의 고구려 고씨 씨족들의 호적과도 연계됨이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제가 멸망하자 당나라의 <구 당서> 동이전 편에는 <백제의 영토는 신라와 발해, 말갈이 나누어 가졌다.그때에 백제의 종족은 마침내 없어졌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것은 <신당서> 동이의 백제편에도 위 기록과 같게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에서 보면 위 가구 수에 말갈은 읍루로서 5천호 미만었는데 그의 90%가 넘는 고구려, 백제 유민이 흡수되었다.본래부터 부여, 고구려는 같은 종족으로 말갈족도 한국 고대사에 포함시켜야 함이 타당한 것이다.

그리하여 고구려 일부세력의 말갈은 발해(699~926)가 되었고, 발해는 거란족의 요나라에 의해 멸망당하자 여진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여진족은 요를 멸망시키고 금나라(1115~1234)를 건국하여 양자강 이북의 광할한 지역을 지배하였다.

 

이 금나라는 몽골제국에 (1271~1279)에 멸망당하고 여진족은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만주족은 청나라(1616~1912)를 세우고 이 청나라는 명나라를 멸망케 하고 중국 漢族을 300년간 식민지배 하였다.

만주족은 중국 본래의 영토보다 더 큰 내몽골, 신강성등 많은 국가를 정복하고 광대한 영토를 만들어 지배하였으며 진시황제의 만리장성도 이 청나라가 북방 흉노를 막기위해 제일 많이 쌓았으며 오늘의 중국을 일으켰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열강에 잠식당하고 청일 전쟁등에 패하며 그 넓은 만주제국의 제나라 영토를 지키지 못하고 쪽바리들에 의해 소수민족으로 전략하였던 것이다.

 

어떻든 이러한 여진족의 금나라나 만주족의 청나라 역사는 漢族의 역사는 아닌 것이다. 漢族은 이러한 말갈족( 여진과 만주족)의 식민지배를 받았슬 뿐이며 이러한 말갈족은 한국사에 포함시켜 고려와 금나라의 남,북국 시대로 기술하여야 하며 또한 근세 조선과 청나라는 근세 남,북국 시대로 기술되어야 타당한 것이다.

 

여기서 그러면 중국의 漢족은 누구인가?? 하늘에서 떨어진 민족일까??

우리 단군 고조선이 BC 2330년이고 夏나라는 여기서 150년 뒤진 BC 2180년 정도이다.  중국의 처음을 알리는 하나라는 고조선보다 150년 후 세워지는데 漢族은 치우천자의 후손들로 잘 알지못하는 방계 출신들로 치우 후손으로 가게도의줄거리도 없다. 하나라 이전의 역사는 삼황오제의 전설로 우리가 쓰는 황제란 단어는 이 삼황오제의 마지막 하늘의 임금으로 인산세계가 아니고 여기에 하나라를 붙여 중국의 역사는 시작된다.

 

 당시 보잘것 없는 한족은 동이만 만나면 무참히 죽었다는 사기의 서술들은 고조선을 일찍부터 철기문화로 양질의 철을 생산하였기에 칼, 창과 한족의 몽둥이 싸움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漢족의 국가로는 우리가 잘 배운 고구려에 불교를 전래한 동진의 마라난타...이 작디작은 나라가 漢족의 나라였고,중원의 200년간 송나라가 중화문명의 최고로 한족의 나라였다.

 

서기 천년경의 작은 송나라는 풍로를 발명하고 숯을 만들어 주철을 생산하여( 주철은 용융점이 1,580도인데 화목으론 200도가 모자라, 이전의 역사에 주철을 생산하여 담금질 하여도 삽이 땅을 파기전에 녹스는 불량철들이지만 그래도 고조선은 철기생산국가로 삼하의 남부철보다 더 양질의 철을 생산하였다) 이로서 숯을 만들기에 중원일대가 벌목으로 민둥산이되어 황사현상을 가속화 시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황사를 외교적 문제로 해야된다고 마치 자기만의 특별한 아이디어처럼 뇌까리고 주접을 떨더만,,, 본인은 10년전 황사는 천재지변인가 인재인가란 글에서 역사에 참으로 묘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다음으로 漢족의 국가는 명나라였고 명은 청나라에게 져서 청의 속국 300년을 하였다. 이렇게 잘나지도 못한 한족이 청일전쟁이후 만주족을 누르고 중국을 만든 것이다. 그러기에 중국 자체는 한족의 절대적 지배의 국가도 아니란 점이다.

 

조선시대엔 중국도 명나라가 시작되었고 고려는 이 명나라가 건방을 떨기전에 싹을 없에려고 장수들로 하여금 요동정벌을 명하는데 이에 이성게는 반란하여 역으로 최영 장군을 죽이고 조선을 창업한점등 김유신과 우리나라에선 가장 나뿐 역사를 만든 장본인이라 본인은 전장에서 기고하였는데 옛고구려처럼 강인함으로 요동 정벌의 출정만 하였더라도 우리의 역사는 지금 서술되는 역사는 아니었슬 것이다.

 

또한 고려시대 중국은 원나라가 장악하였는데 몽고는 임금이 칸이라 쿠빌라이 칸의 원은 징키스칸의 나라였고 징기스칸은 서역을 넘어 유럽 헝거리까지 점령하였다.

나의 블로그 처음시대에 하룻저녁 일곱아이를 낳은다는 징키스칸 노래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어릴적 울면 부모님은 울음을 달래기 위해서 김일성이 온다고 하였고 그 전세대에는 드라쿠랴가 온다하였다. 그런데 헝거리에선 애기가 울면 징키스칸 온다 뚝 하였다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은 헝거리의 농촌에서 볼 수 있는 도리께. 키. 호미. 디딜방아등 우리의; 농경문화와 같은 농기구들이 있다 한다. 이 점에 징키스칸의 서역 정복에 우리의  농경 문화가 같이 딸려갓다면 이것은 무슨 이유일까??

 

위의 고구려 초기의 가구수( 멸망시는 77만호로 기록이 돠어있다) 3만호보다 삼한의 가구수가 10만으로 더 많은 것은 고구의 목축국가보다는 삼한의 농경국가가 정착생활을 하기에 인국가 더 많았던 것이다) 이처럼 징키스칸의 몽골의 군사는 그 숫자가 적어서 많은 군사가 고구려 유민들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기에 역사학자들은 그 서역루트를 따라 징키스칸의 부대는 다수가 한민족이란 가설도 확인해 보아야 한다.

 

시진핑,,,, 이것이 보잘것 없는 漢족의 중국이다.

그리고 오늘의 중국을 건설한것은 흉노의 진시황도 아니었고 만주족의 청나라였다. 만주족은 부여속의 말갈이고 말갈속에 작은 읍루에 고구려 유민들이 한사군에 밀려 읍루로 들어가 만주족이 된다. 그러기에 말갈, 읍루의 혈통은 고구려, 백제의 유민이 본래 읍루의 인구보다 무려 10배 이상 많다는 점이다.<삼국유사>에서도 말갈(물길), 발해를 수록하고 말갈, 물길을 한국시에 포함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 기록을 들춰보는 고조선과 한민족의 역사이다.

만주족의 청나라도 읍루보다 더 많은 고루려 유민들의 한국역사란 점이다.. 이제 자기네 역사서에 으한 기록도 부정한다면 역사의 과학적 증명을 보여 드립니다.

 

2004년 1월 30일 한림의대 생화학과의 김종길 교수는 "동북아 민족 유전자 연구 심포자엄'에서한국인 66명과 몽고인 72명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DNA)를 분석하고 이미 공개된 전 세계 86개민족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한국과 몽골인은 유전자적으로 가장 높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한다.

 

이러한 DNA 1만 6천개를 직접 비교하는 방식으로 한국인과 몽골인을 비교해 본 결과 한국인들끼리는 4천개당 평균 DNA의 염기서열이 7,4개가 차이나며 몽골인들은 4천개당 8,1개가 차이가 나는 점을 밝히고 여기에 한국인과 몽골인의 유전자 차이는 4천개당 7,8개의 차이로 이것은 한국인과 몽골인이 유전자적으로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히지만 漢족과는 유전자가 상당한 거리가 있다한다.

 

이것이 예맥, 부여, 고구려, 발해, 말갈을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충국측 음모를 분쇄시키는 검증방법이고 여진과 말갈을 한국사에포함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DNA의 돌연변이는 100만분의 1이 될까말까 하며 따라서 미토콘드리아 DNA는 수백년에 하나가 변할까 말까하는 아주 미미한 확율을 가지고 있으며 모계 유전을 한다.

 

 

 

또한 최근의 학계 발표를 보면,,,

유니스트(UNIST) 게놈연구소는 최근 국제공동조사단을 구성해 두만강 북부 러시아 동단의 ‘악마의 문 동굴’에서 발견된 7700년 전 동아시아인의 게놈(유전체)을 분석했다. ‘악마의 문 동굴’은 고구려와 동부여, 북옥저가 자리 잡았던 지역이다.

 

조사단은 ‘악마의 문 동굴’에서 발견된 동굴인과 아시아의 50여 인종의 게놈 변이를 비교해 현대 한국인의 민족기원과 구성을 계산했다  ‘악마의 문 동굴’에서 발견된 동굴인과 아시아의 50여 인종의 게놈 변이를 비교해 현대 한국인의 민족기원과 구성을 계산했다,

 

동굴인을 현대 베트남과 대만에 고립된 원주민의 게놈과 융합하면 한국인의 특성이 더 가깝게 나타났다. 이는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뒤섞이면서 한반도의 조상이 형성됐다는 주장에 힘을 싣는 근거다. 박 소장은“현대 한국인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혼합된 흔적을 분명히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유전적 구성은 남방계 아시아인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는 주로 유목생활을 하던 북방계보다는 정착해 농업을 하던 남방계의 인구가 더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 우리 민족 5000년 전 자생적 형성"한반도서 http://blog.daum.net/kkks1/1369

 

이러한 움직일 수 없는 과학적 증거로 예맥, 부여, 고구려, 발해 말갈을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음모를 제지하여야 한다.그리고 이러한 여러 연구를 통한 증거로 말갈( 여진, 만주족)도 우리민족의 역사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종족사의 체게를 잡고 잃어버린 역사를 회복하는데 기여가 될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한민족이란 어리숭한 민족이란 단어를 버리고 종족을 살려야 하는 것이다. 한족이니 몽골족이니 하는 것처럼 여진족 말갈족이 하나의 우리종족으로 표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정부도 최우선 지원으로 읍루, 여진 이러한 모든 게놈연구를 철저히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언제이고 다시 표출될 민족사와 그로인해 북한의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영토분쟁,, 이것이 불거질때면 우리는 그 즉시 답을주어 그들의 혓바닥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은,,어찌보면 계획된 대통령이지만,,또한 탄핵의 키도 분열한 보수당의 결정이고 이번 대선은 보수당의 키 방향의 선택이었기에,,, 그것은 일전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예로 튀쳐나간 보수당이 향방을 결정지었기에...이것이 이해가 안 된다면 기호 4번이 없다면 기호 5번도 주자선택을 하지 않았슬 것이고 그러면 1,2,3번의 주자는 1;2의 대결이 되기에 결국 1;1의 대결로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런 것을 따질 필요도 없고  만들어진 대통령이 탄생되면 일전 대통령의 속옷값이니 이런 누추한 뉴스쟁이들도 좀 정신차리고 새 국가를 건설함에 모든 국민은 힘을 모아랴 하고 여기에 또한 종북은 원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요즘 불거진 문제의 코리아 패싱을 몰라던 것도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정책의 우선에 이러한 외교에 코리아 패싱을 차단하고 우리가 주인이란 의식으로 주변을 제어하고 지휘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만이 아닌 국민의 바램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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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강원고고학 연구원이 발표한 하리 청동기 유적에서 출토된 2ㅡ500여년전의 古 인골.

이 평창은 위치상 고조선이나 예나라의 지역으로 라오닝식을 넘어서 고조선의 비파형 청동검이 출도되었고

이 동검이 본 무덤의 피장자의 년대를 알려주는데 이 고 인골은 고조선시대에 인골로는 드물개 나타난 것으로

미토콘드리아 DNA 표준 검사도 실시될 것이다. 이 인골은 이러한 확인의 이정표에 매우 중요한 단서로 작용될

것인데 평창인들은 무지한지, 필요없다는 것안지??

 

근자에 이 레포트가 작성되었는데 이 레포트를 보면서 다시 올립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110쪽짜리 레포트도 구하였는데 이는 평창군과 월정사가 후원한 세미나로 2013년 평창문화원에서 개최되었는데 이후 평창군 어느 싸이트에도 기록은 남지 않은듯 하다.

 

더욱 가관은 동 탑을 3층이라 단정하고 석탑 조성원리안 장에서 떠들며 몇가지 의혹스럽다는 표현만,,,

이금 보는 탑은 무너지고 깨진 석재 부품들을 모아서 쌓아 올렸는데, 그것이 양식부족으로 잘못 쌓아 올린점인데 위 학자는 그것을 그대로 해석하려 하였던듯 하길래 몇군데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고 지적했다.

 

본인의 글에서는 현존 석탑 모양이 정상이 아니라 다시 쌓아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발표하였는데, 그 석물들을 바라보면 정상이 아니란 점이다.

그러기에 당 세미나에서의 레포트를 철저히 분석하여 무엇이 오류인가 분석하여 다시 올릴 것입니다. 그렇지 안으면 이 세미나 레포트의 권위에 의해 언제라도 나의 예시 글은 틀렸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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